어린 시절 영화를 잘 안다는 사람들의 호평을 듣고 대단한 젊은 감독으로 알고만 있었던 레오 까락스 감독. 그의 대표작 퐁네프의 연인들을 아직도 본 적은 없지만 엄청난 작품이라고 그냥 믿고만 있다.
레오 까락스 감독이 폴라 X 이후 13년만에 만들었다는 신작 홀리 모터스. 제목이나 포스터만 보아서는 어떤 내용일지 상상할 수 없었다. 로튼 토마토의 평가는 칭찬 일색. 엄청난 작품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러나 일단 보고난 후 이 영화는 무엇인지 멍해지고 만다.
레오 까락스의 인터뷰나 영화평들을 보면 대강의 플롯과 의도하는 바는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얼개를 받아들이면 영화가 참 잘 짜여졌구나라고 인정할 수도 있다.
길쭉한 리무진을 보며 까락스는 저 차는, 저 차에 탄 사람들은 자신들을 과시하면서 날 좀 보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실체는 보여주지 않는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자동차가 보통 썬팅 때문에 안에서 밖은 잘 보여도 밖에서 안에 누가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긴 한데, 리무진은 그 기이할 정도로 긴 모양 때문에 까락스에게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홀리 모터스. 영화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마지막 부분에 드러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동차가 말을 한다는 건 공개해도 될 것 같지만.
이야기는 오스카로 불리는 한 남성이 리무진에 있는 온갖 분장도구와 역할 지침서를 읽어가며 하룻동안 여러 가지 역할로 변신하는 이야기다. 초반에는 한 부자 남성이 할 일이 없어 남들 모르게 기행과 일탈을 경험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스카는 누군가 주문하는 대로 명령에 따를 뿐이다.
그는 여자가 되기도 하고, 거지가 되기도 하고,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위한 모델이 되기도 하고, 죽어가는 부호, 살인자이자 희생자, 킬러, 미치광이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는 마지막 충격적 역할까지 온갖 정체성을 구현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까락스의 의도대로 인터넷 세대의 분열된 자아상의 영화화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흔히 이야기되듯이 게시판의 지배자이자 오피니언 리더 같은 한 인물이 사실은 찌질한 오덕후일 수도 있듯이 굳이 롤 플레잉 게임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현실의 자아와는 다른 모습을 그것도 여러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 이상의 의미를 읽어낼 가능성은 많다. 나는 그저 하나의 큰 줄기를 이야기해볼 따름이다. 많은 이들이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는 이 영화. 나로서도 큰 이견은 없다. 레오 까락스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실험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