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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6일 월요일

행복 목욕탕 (2016)

네이버의 기자, 평론가 평점을 보면 보통, 나쁘지 않다 정도의 영화다. 하지만 정말 오래간만에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봤다. 신파라는 규정이 틀리지 않지만 곰곰 생각할 때 이 영화가 눈물을 짜내기 위해 오버를 했다는 결론은 내리기 힘들었다. 물론 스토리의 설정들은 비현실적이고 우연이 지나친 면이 있다. 적어도 음악 사용에 있어서는, 이른바 내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며 감독이 이래도 안 울거야라고 다그치는 듯했던 그 음악에 비교하면, 과잉이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컨대 이 영화의 설정은 어떤 잘 짜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논리들의 결합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후타바의 시신을 다른 곳도 아닌 집에서 태우기 위해 목욕탕, 그것도 나무를 태워서 물을 데우는 오래된 방식의 목욕탕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를 하나도 아닌 둘을 키우기 위해서 엄마 자신이 어릴 적에 버려진 아이일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뻔뻔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아버지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다기리 죠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섯 명의 인간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망나니 젊은이가 그녀가 죽기 전에 목욕탕에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영화의 원제는 목욕탕물을 데우는 뜨거운 사랑 정도일 것 같은데, 영화를 다 보고 나야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고 너무 납득이 되는 제목이다. 그녀 자신은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로 자라서 다 설명하지 않아도 대강 이해가 되는 어려운 삶을 살아왔을 것이고, 바람둥이까지는 아니라도 여자 관계가 복잡하고 책임감이 모자란 남편을 만나 고생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말기암 4기 진단, 두세 달의 남은 수명. 남편은 돌아와야했고 다행이도(?) 순순히 돌아올 상태였다. 다만 어릴 적 자기와 꼭 닮은 처지에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자기가 낳지 않은 딸은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지만, 이제는 그 아이가 혼자 고난에 맞서고 극복해야했다. 결국 딸은 교실 내 탈의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지메를 극복했다. 탐정은 일본 흥신소의 이미지로 흔하게 나오는 험악한 사내가 아니라 어린 딸을 혼자 기르는 착한 남성이었다. 그 탐정마저 후타바의 심성에 감복하여 그녀를 위해 하기 힘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후타바라 역할을 맡은 배우는 어린 시절 미모로 한 시대를 풍미한 미야자와 리에. 이제 그녀는 너무 말라서 죽기 직전의 환자 역할이 어울리는 외모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연기력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후타바는 밝고 씩씩한 사람이지만 아즈미를 낳고 도망간 후 매년 게를 보내주던 기미에를 대면하자 뺨을 때렸고, 자기를 버리고 어느 부자와 결혼해 손자까지 본 친모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자 그 집에 돌(단단한 강아지 인형)을 던졌다. 이렇게 그녀는 수십 년의 억울함, 분노를 완전히 무화시킬 정도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서지는 않았다. 이런 나약함, 불완정성이 남편이 만들어준 인간 피라미드를 보며 죽기 싫다며 오열하는 그녀 캐릭터의 비극성을 극대화시킨다.

빨간 색이 좋다는 후타바는 빨간 차를 운전하다가 자신과 정반대로 시간이 남아돌아 불만이라는 청년을 만날 수 있었고, 암으로 인해 하얀 변기 속에 빨간 피를 흩뿌렸고, 탐정의 딸로부터 빨간 꽃을 선물받았고, 장례식 후 빨간 꽃에 둘러쌓이고 그 꽃들과 함께 아궁이 속에서 불타며 빨간 연기를 내뿜었다. 그 뜨겁고 빨간 사랑으로 인해 남은 그녀의 가족들, 그러나 실제로 빨간 피의 성분은 전혀 다른, 혈육이 아닌 존재들이 따뜻함에 어쩔줄 몰라 좋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