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3일 월요일
Terminator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년 생활을 마감하던 마지막 겨울 방학을 장식한 영화가 있었으니 터미네이터다. 시골 소년이었던 나는 중학생이 되어 원주 시내에서 좀 놀겠다는 기대도 있었고, 풋사랑의 재미를 느끼는 시절이기도 했다. 소위 청소년이 되려는 시기에 본 터미네이터는 당시의 상황과 어울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랑하는 방법도 학습하는 것인지라 그 때까지는 영화의 키스 장면이 나와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없었다. 시골 마을에서 키스는 커녕 어떤 농밀한 신체 접촉도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학급 친구들이 저학년 시절 이성에 대한 단순한 적대심을 버리고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여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주고, 졸업 선물을 주고 받는 등 변화가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많은 로맨스 영화들을 봤겠지만 로맨스가 주된 내용이 아닌 터미네이터의 연애 장면이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터미네이터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시간축을 무시한 영화의 내용이었다. 존 코너의 아버지가 미래에서 날아왔다는 설정 때문에 애당초 존 코너는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고, 마침 토요명화에서 방영한 터미네이터를 본 학급 친구와 그 이야기를 나눴으나 별 소득은 없었던 것 같다.
여하튼 터미네이터는 몸짱 아놀드가 돌아오겠다, 돌아왔다를 연발하며 3편까지 제작되었고, 최근 2, 3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 볼 때 시간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주목했지만 대충 얼버무리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3편은 어떤 블로그에서 본 대로 1, 2편의 패러디 영화의 성격이 강했다.
시간 이동은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그러나 '잘못된' 과거를 바꾸겠다는 은밀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변경된 과거로 인해 현재가 통째로 바뀌는 위험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거나, 과거에서 다른 행동을 해도 결국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터미네이터에서는 기계들이 인간 군대의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 과거로 인간형 병기를 보낸다는 설정이다. 미래 인간 군대에서도 대응하기 위한 사람과 기계 병기를 차례로 보내는데 결국 존 코너를 지켜낸다.
터미네이터에 대한 몇 가지 설명 방식들을 봤지만 납득하기는 힘들고, 지금 떠오르는 의문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기계들은 왜 존 코너 암살을 위한 터미네이터를 띄엄띄엄 보내나?
- 터미네이터1, 2, 3는 거의 10년씩의 시간 간격을 두고 제작되었다. 이런 제작 시기의 문제 때문에 10년 주기로 기계들이 과거로 투입되는 것은 이해할만하나 매번 업그레이드된 성능의 터미네이터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터미네이터 여러 대를 보내지도 않고, 더 자주 보내지도 않은 이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3편에서 아놀드는 자신이 공장에서 양산되는 모델임을 밝히기도 했다.) 로봇과 인간의 전쟁이 몇 년 지속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로봇이 스스로 개발을 거듭해 진화된 병기를 양산했다면, 존 코너가 이끄는 인간이 한정된 자원과 재래식 무기로 어떻게 승리를 할 수 있는지도 납득하기 힘들다.
2. 2, 3편의 터미네이터는 어떻게 의복까지 함께 복원되는가?
- 2, 3편의 터미네이터들이 알몸으로 과거로 갔다가 처음 얻어입은 옷을 입은 상태로 매번 재생되는데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몇 번씩 총알로 벌집이 되는 터미네이터들이 그 때마다 옷까지 다 헤지면 또 누군가의 의복을 갈취해야하니 번거롭고, 단순히 의상 담당자가 귀찮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누드를 덜 보여줘서 심의 등급을 낮추거나, 막되먹은 기계라도 옷을 입혀서 관객의 눈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3. 터미네이터는 왜 인간형인가?
- 이것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3편에서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순간을 보면 로봇들은 인간처럼 머리와 몸통이 있지만 다리 대신 바퀴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인간과 기계의 전투가 심화될 때를 보면 기계들은 보통 두 다리를 가진 인간형이다. 과연 두 다리를 가진 로봇이 가장 효율적일까? 기계들이 인간형인 것은 효율성이나 기계들의 진화의 산물이라기보다 기계와 인간의 대결을 역사상 지속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결의 또 다른 형태로 풍자한 것이 아닐까 싶다.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등에서 꾸준히 인간 아닌 것이 인간과 같은 의지와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인간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들이 제기되어왔다. 순전히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나 인간의 신체가 노화, 사고, 병으로 망가졌을 때를 대비해 '만든' 복제인간의 존재는 어떻게 봐야 할까? 터미네이터는 스스로 기계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에 인간이 되겠다고 하지는 않고 무게나 힘 등에서 인간과 확실히 차이가 나기에 문제가 덜 되지만 아일랜드에서처럼 복제인간들이 인권을 주장하고 나서면 외형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 골치아픈 문제가 제기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2편에서는 확실히 그리고 3편에서는 불분명하게 아놀드가 프로그램된 명령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통해 스스로를 버리는 모습이 나온다. 비록 아놀드는 자신은 죽음에 대한 관념이 없다고 하지만 2편의 자살신은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시고니 위버가 용광로에 뛰어들어 죽는 장면과 여러모로 유사해보인다.
이 시리즈에서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처럼 인간을 동력원으로 착취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인간의 통제가 '싫은' 것인지, 기계가 아닌 존재들은 전부 없애겠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에너지는 어떻게 얻으려고 했던 것인지, 의지가 있다면 기계들끼리의 권력 투쟁은 없었는지 등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3편 마지막에서는 스카이넷이 요즘 회자되는 집단 지성과 비슷한 것처럼 설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기계들의 '배후'나 다른 기계를 통제하는 메인 컴퓨터는 정말 없는지도 궁금한 점이다.
4. 시간 여행이 애당초 가능한 것인가?
-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시계에서 보는 가시적인 존재가 아님은 물론, 선후 관계가 항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 정도만 말할 수 있으리라. 과거, 현재, 미래라는 분류의 불분명함. 불가능한 진보. 영원회귀...
2008년 6월 15일 일요일
The level of Being
그저께는 짐짝이 되었다. 다마스에 네 명이 타야했는데 두 명은 좌석에 앉았지만, 둘은 화물칸에 짐들과 함께 앉았다. 크지도 않은 다마스에 덩치 큰 장정 두 명이 있으니 쪼그려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둘은 인간으로서 좌석에 앉지 못하고 화물이 되어 철창 밖을 바라보는 아픔을 느꼈다. 안에서 소리를 쳐도 아는 형조차 무심하게 눈앞에서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그 안에 갖혀있다는 가상의 상황을 연기한 것뿐이지만 그 갑갑함은 예전에 술집에서 주변 사람의 장난으로 수갑을 했을 때에 못지 않았다. 문득 인간 존재의 등급이 이렇게 철저하게 나눠지는구나 싶었다.
얼마전 에반게리온 시리즈에 등장하는 제레가 독일어이며 영혼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레(SEELE, soul). 위키피디아의 에반게리온 용어 해설 페이지를 보니 제레는 써드 임팩트을 일으켜 인류보완계획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들이 현실 속에서 찌질하게 살아가며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을 없애고, 인류를 한 차원 높은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차원 높은 인간. The Higher Man. 니체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종교를 통해 추구하는 것도 현실의 고난과 번뇌를 초월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인간이 되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에반게리온에서는 고슴도치인지 바늘두더지인지 헛갈리지만 서로 다가갈수록 상처를 주는 그 딜레마는 원래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란다. 하지만 가만 생각하니 고슴도치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의문이 생겼다. 위 사진들처럼 고슴도치는 종종 몸을 맞대고 살아가는데 다치고, 딜레마 상황에 놓일까? 따지고 보면 고슴도치의 딜레마란 인간 관계의 어려움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례지만 현실적인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인간이 되는 것은 다른 생명체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니 삶이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http://en.wikipedia.org/wiki/Neon_Genesis_Evangelion_glossary
http://scshin.egloos.com/3598268
얼마전 에반게리온 시리즈에 등장하는 제레가 독일어이며 영혼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레(SEELE, soul). 위키피디아의 에반게리온 용어 해설 페이지를 보니 제레는 써드 임팩트을 일으켜 인류보완계획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들이 현실 속에서 찌질하게 살아가며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을 없애고, 인류를 한 차원 높은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차원 높은 인간. The Higher Man. 니체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종교를 통해 추구하는 것도 현실의 고난과 번뇌를 초월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인간이 되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에반게리온에서는 고슴도치인지 바늘두더지인지 헛갈리지만 서로 다가갈수록 상처를 주는 그 딜레마는 원래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란다. 하지만 가만 생각하니 고슴도치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의문이 생겼다. 위 사진들처럼 고슴도치는 종종 몸을 맞대고 살아가는데 다치고, 딜레마 상황에 놓일까? 따지고 보면 고슴도치의 딜레마란 인간 관계의 어려움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례지만 현실적인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인간이 되는 것은 다른 생명체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니 삶이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http://en.wikipedia.org/wiki/Neon_Genesis_Evangelion_glos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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