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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3일 수요일

트윈 픽스 : 더 리턴 종료 후 생각 1

꿈만 같이 시리즈가 다시 시작되고 꿈처럼 끝나버린지 거의 열흘이 되어가고 있다. 시즌 종료 후에 혼란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았고, 어떤 이들은 이게 원래 린치 스타일이니 깔끔한 설명과 종료를 바랐다면 그야말로 착각이라는 말도 한다. 언제까지나 논란이 이어질 이번 트윈 픽스를 되새기는 글들을 몇 개는 쓰지 않을까 싶은데 우선 즉각적인 것들 몇 개만 적어본다.

'트윈 픽스 시즌3'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리뷰 글들을 써왔는데 미국 매체들의 리뷰들에서는 시즌3가 아니라 그냥 '더 리턴'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통상적인 드라마 시즌이 1년 혹은 2년 내에 다음 시즌이 방영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27년만에 돌아온 드라마를 시즌3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다. 실제로 트윈 픽스를 방영한 미국의 쇼타임은 시즌3라고 부르지 않는다. 쇼타임이 시즌1, 2도 재방영했던 걸 생각한다면 이번 트윈 픽스는 편의상 시즌3라고 부를 수 있지만 정식 명칭은 '트윈 픽스 : 더 리턴'이 맞는 것이었다.

'더 리턴'이라는 말은 시즌4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즌3가 없었는데 시즌4가 있을 수 없다. 다음 트윈 픽스가 TV 시리즈로 방영된다면 '더 리턴'과 유사한 식의 부제가 붙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70대인 감독의 나이와 출연 배우들이 계속 세상을 떠나는 상황에서 원작 시리즈의 등장 인물이 주축이 된(이미 '더 리턴'의 스토리에서는 중심에서 멀어졌던 바이고) 다음 시즌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카일 매클라클란은 한 번 더 한다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아마 다른 트윈 픽스를 바라는 것은 모두에게 그저 희망없는 희망 사항에 그칠 것이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이번의 '더 리턴'을 되돌아보면 린치와 프로스트는 이 시리즈를 영원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 것도 같다. 이번에 오드리 혼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그녀가 16편의 마지막 씬이 암시하는 것처럼 정신병원에 갖힌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고 해답은 없는 상태인데, 만약 '더 리턴'의 오드리 씬들이 거의 확실하게 오드리의 상상 속의 장면들이라면 팬들도 상상을 통해, 꿈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만의 트윈 픽스의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작가, 감독이 18편의 여행을 통해 원작 시리즈의 플롯마저 뒤엎어버린 것은 트윈 픽스의 저주에서 벗어나서 다른 대안을 찾아보라는 제안은 아니었을까? 트윈 픽스 이야기를 원한다면 당신들 마음대로 만들어보라, 그러나 영원한 저주의 이 세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가? 세상엔 TV 드라마보다 더 좋은 것이 많다, get a real life!

어젯밤인가 문득 든 생각은 데이빗 린치의 극중 직함에 대한 것이다. '더 리턴'에서 고든 콜은 FBI의 부국장이다. deputy director인데 director는 영화 감독이다. 린치는 극 속에서 부국장이라는 캐릭터의 직함과 감독이라는 현실의 직함을 중첩되게 이용하고 있다. 그는 모니카 벨루치라는 현실의 배우를 꿈 속에서 만났다. 고든 콜이 모니카 벨루치 꿈을 꿀 수 있을까? 우리는 모니카 벨루치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더 리턴'은 TV 쇼의 세계, 현실과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고든 콜이 모니카 벨루치를 꿈 속에서 만난 것은 현실과 가공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행위다. 그런데 가공의 인물이 꿈을 꾼다면 가공의 가공으로 더 깊숙한 비현실의 세계로 가는데 그곳에 현실의 인물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블루 로즈에 대해서도 짧게 생각나는 바를 적어본다. 블루 로즈 케이스는 로이스 더피라는 여성과 그녀의 털파가 얽힌 사건이다. 털파 로이스 더피는 죽어가며 '나는 블루 로즈 같다'라고 말하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루 로즈가 무엇인가? 파란 장미라는 것은 왠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꽃일 것 같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실제로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꽃이다. 그렇다면 털파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완벽한 비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드하우스에서 공연된 곡에 대해 말해보기로 한다. 로드하우스 공연곡들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내가 노래가 좋았냐 여부보다는 노래 가사가 이 시리즈에서 갖는 의미가 더 중요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래 가사들은 시리즈 혹은 각 에피소드의 이야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걸 하나하나 분석하는 사람이 이미 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요즘 많이 듣는 크로마틱스의 섀도우의 가사 중에는 사진을 떼어낸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17편에서 새라가 로라의 사진을 내려놓고 마구 쳤던 그 장면이 예견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노래는 재작년에 만들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더 리턴'의 방영에 맞춰 공개되었다고 한다.

2017년 8월 29일 화요일

트윈 픽스 시즌3 에피소드16 리뷰

이번 편도 예상치 못 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드디어' 쿠퍼가 제정신을 찾았다는 것이 가장 큰 소식이다. 지난 주에는 모든 장면의 내용을 다 적으려다가 글이 길어졌던 터라 이번에는 동일한 식으로 쓰지는 않으려고 한다.

시작은 아버지와 아들의 밤길 드라이브였다. 드디어 리차드 혼이 미스터 씨, 악한 쿠퍼의 아들임이 완전히 확인되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리차드가 미스터 씨를 대신해 올라간 바위 위에서 아주 강력한 전기 충격으로 소멸된 이후 미스터 씨의 입을 통한 확인이었다. 그는 아들의 죽음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미스터 씨는 좌표값을 세 개의 소스로부터 받았다고 말하는데 두 개는 기억이 나는데 하나는 모르겠다. 그가 리차드에게 세 개 중 두 개가 일치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고, 리차드가 두 개가 일치하는 곳부터 확인해야한다고 하자 너 똑똑하다고 하는 장면은 웃겼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선택할 터인데 그는 어떤 위험을 감지했는지 아들을, 아니 털파의 후손이라고 해야 할까, 대신 보내며(내가 너보다 25살 더 먹었다는 이유를 댈 때도 웃겼다) 조심했다. 과연 누가 그 위험한 좌표를 알려준 것일까? 필립 제프리스(라고 주장하는 누군가)가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후 미스터 씨는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all이라는 그냥은 알 수 없는 문자를 다이앤에게 보냈다. 재미있게도 한밤에 보낸 악한 쿠퍼의 문자가 오후 네 시 경에 다이앤에게 도착했는데 미 대륙 내의 시차가 최대 3시간인데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겠다. 문자를 보낼 당시 전송이 안 된 상태라는 표시가 휴대폰 화면에 보이긴 했다.

문자를 받은 다이앤은 갑자기 충격을 받은 듯 했고, 쿠퍼를 외치며 기억이 난다며 정확한 좌표를 문자로 보냈다. 쿠퍼가 좌표값을 전부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다이앤이 보낸 것 같은데, 이후 다이앤이 의미심장한 배경음악(어메리칸 워먼이라는 제목의)이 깔린 채 고든 콜을 찾아가서 쿠퍼를 예전에 만났을 때의 상황을 고백했다. 드러난 바로는 악한 쿠퍼가 혼수상태(혼수상태는 이번 에피소드의 주요 사건이기도 하다)였던 오드리를 강간하여 임신을 시켰고, 다이앤마저 강간을 했다. 쿠퍼가 키스를 하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다이앤의 표현을 볼 때 악한 쿠퍼와의 접촉이 다이앤의 털파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털파가 원본과 별개로 존재한다면 원본 다이앤은 어디 갔을까. 빨간 방에 착한 쿠퍼처럼 갇혀있는 것인가?

착한 쿠퍼, 더기-쿠퍼는 지난 주의 콘센트 수사(FBI인 쿠퍼의 직업정신이 발현되었다는 ew의 제프 젠슨의 표현이다) 이후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코마 상태지만 그 외 모든 신체 기능은 온전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이니이와 소니 짐 그리고 부쉬넬이 모두 자리를 뜨자 빨간 방의 외팔이 마이크가 또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쿠퍼가 벌떡 일어났다. 쿠퍼는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은 물론 더기로서 살았던 며칠의 기억도 함께 간직하고 있었다. 무려 15시간의 답답함 이후 드디어 FBI, "the FBI"로서의 유쾌하고 당당한 쿠퍼로 돌아온 것이다.

쿠퍼는 트윈 픽스의 보안관 사무실로 가야함을 알고 있었고, 제이니이, 소니 짐과 눈물겨운 이별을 한 후 빨간 문을 통해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쿠퍼가 마이크에게 부탁해 더기를 다시 만들어달라고 했기에 가능했다. 전에 쿠퍼가 세상에 돌아오기 위해 더기가 빨간 방에 가서 하나의 황금빛 구슬로 변했는데, 그것이 바로 '씨앗'이고 거기에다 쿠퍼의 머리카락(?)만 있으면 더기를 제조할 수 있었다. 손오공보다는 조금 더 성가신 복제방식이다. 더기는 미첨 형제들의 비행기를 타고 트윈 픽스로 향할 예정이다.

허치와 샨탈은 더기를 살해하기 위해 그 집 앞까지 갔으나 더기는 입원 중이었고, 그 틈에 고든 콜의 명을 받은 FBI 라스 베가스 지부의 요원들에 이어 미첨 형제들까지 더기의 집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연인 청부살인업자의 종말을 재촉한 것은 차를 조금 옮겨서 주차해달라는 지역 주민의 요청을 거부한 오만함이었다. 미첨 형제의 표현을 빌리면 요즘 사람들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이렇게 주차 문제를 총기 살인으로 해결하는 험한 이웃이 만들어졌다.

에피소드의 종반에 역시나 뱅뱅바가 나오고 한 가수가 공연을 했기에 또 이렇게 끝나나 싶었고, 오드리가 안 나오고 지나가는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오드리는 지난 에피소드에서 찰리를 목졸라 죽일 듯한 기세였는데 둘이 결국 로드하우스에 도착한 것이다. 둘은 마티니를 마시려고 했는데 사회자, 지난 주에 화살표로 볼륨업을 요청하고 춤까지 춘 그가 오드리의 댄스를 요청했다. 여기부터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다. 오드리는 25년 전 여고생 시절 남성들을 유혹하던 그 춤을 그 음악에 맞춰 추었다. 그 춤사위에는 여러 이유로 서글픔이 배어있었지만 묘하게도 로드하우스의 손님들은 그 춤에 맞춰 몸을 가벼이 흔들어댔다. 그러나 그 탈선의 장소에서 어떤 남성이 아내의 부정을 발견하고 대판 싸움이 벌어지자 오드리는 여기서 탈출하고 싶다고 외쳤다. 그러자 새하얀 공간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 오드리, 지금까지 시즌3에서 본 오드리의 머리 모양과는 다른 오드리가 경악하는 장면으로 전환되고 끝났다.

오드리가 코마 상태였다는 단서가 있었고, 지난 몇 편 동안의 오드리와 찰리의 모습을 보며 이것은 현실이 아닌 상상 혹은 꿈이라는 추측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주장들이 힘을 얻게 되는 모양새다. 15편을 두고서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인 '법 앞에서'와 유사하다는 글을 보았는데 매우 흥미롭고 설득력이 있었다. 지난 주 리뷰에 썼지만 고든 콜 사무실에 대놓고 걸린 카프카의 사진을 보건대 이번 시즌3가 카프카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과연 진짜 오드리는 어디에 있는지, 주디는 누구인지, 주요 인물들이 모여들 트윈 픽스 보안관 사무실에서 무슨 결말이 날지 다음 주면 알게 된다(물론 궁금한 부분들이 다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17편의 제목은 과거가 미래를 정한다, 18편의 제목은 너의 이름은 무어냐이다.

2017년 8월 22일 화요일

트윈 픽스 시즌3 에피소드15 리뷰

매우 슬프고고 흐뭇한 에피스도였다. 뜻밖에도 한 번 더 시리즈에 출연한 로그 레이디는 호크와 조금 긴 통화를 하고 죽었다. 한편 에드와 노마는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지난 주에는 트윈 픽스에 대한 글을 많이 봤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봤는데 그렇다고 확 이해가 가게 된 것도 아니다. 파이어 워크 위드 미도 다시 보며 이번 시리즈와 연결되는 점들을 여럿 확인했다. 글을 쓰며 참고가 될 지점들은 언급하기로 한다.

우선 오프닝 신에 대해 생각해봤다. 오프닝은 원작 시리즈의 목재 공장의 장면은 사라지고 안개가 많은 산을 보여주다가 폭포로 끝난다. 폭포에서 물은 당연히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만 카메라 앵글은 마치 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퍼지는 느낌을 준다. 마치 핵폭탄이 터진 후 버섯구름이 생겨나듯이. 버섯 구름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한다.

에피소드의 시작은 14편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네이딘이 금삽을 들고 씩씩하게 아주 먼 길을 걸어가서 에드의 주유소에 도착했다. 그들의 대화는 네이딘이 드디어 에드를 완전히 놔주기로, 즉 노마와 함께 하라고 허락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이 커플이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네이딘은 닥터 앰프, 자코비 덕에 에드를 드디어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에드는 자코비가 무슨 방송을 하는지 알고 있고 그다지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둘이 자코비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자코비의 많은 출연 분량을 감안하고, 트윈 픽스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 중 하나인 네이딘의 마수에서 에드가 드디어 탈출했으니 닥터 앰프가 앞으로 세 편 남은 시즌에서 더 큰 일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이어지는 장면에서 나쁜 쿠퍼는 칠흑 같은 밤길에 자동차를 몰아 그 유명한 편의점에 도착한다. 편의점은 아마 8편에서도 나왔을 텐데 원래는 파이어 워크 위드 미에서 필립 제프리스가 꿈속에서 가보았다는 장소다. 이 때 흐르는 음악의 제목에는 히로시마가 들어간다. 전에도 이 음악이 한두 번 시즌3에서 우즈맨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다는 리뷰를 본 적이 있다. 즉 우즈맨과 블랙 로지는 8편에서 나온 핵실험과 분명히 연결되는 것이다.

확인차 앞 에피소드들의 몇 장면을 다시 봤는데 3편에서 나오는 고든 콜의 필라델피아 사무실에는 그의 책상 바로 뒤에 걸린 거대한 사진 속에 핵폭발 이후의 버섯 구름이 있고, 맞은 편 벽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사진이 걸려있다. 데이빗 린치의 의도가 상당히 반영된 벽 장식일 것이고, 지난 편에서 모니카 벨루치와 관련한 꿈 이야기를 감안하면 감독으로서의 린치가 미국의 현대적 악이 핵실험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선언으로 보면 될까 싶다.

나쁜 쿠퍼, 레이도 그렇고 팀 로스와 제니퍼 제이슨 레이가 연기하는 허치와 찬탈은 모두 가장 무거운 범죄인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히 자신들의 밥 먹을 걱정이나 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어린 자식 앞에서 아버지를 저격한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그들은 라스 베가스의 또 하나 악한인 덩컨 토드를 살해한 후 햄버거를 뜯으먹으며 미국은 기독교 나라면서 인디언을 학살한 살인자의 나라라는 이야기를 자신들은 살인자 나라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듯 태연히 말했다.

다시 편의점 장면으로 돌아가면 나쁜 쿠퍼는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올랐고 사라졌다. 이들은 어느 방에 들어갔는데 벽 장식으로 보건대 파이어 워크 위드 미에서 로라가 방에 걸어두라고 블랙 로지의 아주머니에게 받은 그 그림 속의 방 같았다. 그 방에서 필립 제프리스를 찾는 나쁜 쿠퍼를 보며 다른 남자가 기계를 작동하자 역시 영화판에서 나왔던 하얀 가면을 쓴 아이의 얼굴이 잠깐 보였다. 쿠퍼는 긴 복도와 또 하나의 계단을 올라갔고, 그 위에는 적지 않은 방이 있는 기다란 집이 있었다. 마치 영화판에서 편의점 위에 살던 아주머니 같은 실루엣을 한 어떤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줬고, 쿠퍼는 드디어 필립 제프리스를 만난다.

처음에 15편을 보고 나서 엔딩 그레딧에서 필립을 데이빗 보위가 연기했다길래 그렇다면 죽기 전에 목소리만 어떻게 녹음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재차 확인하니 목소리는 다른 배우가 연기했고, 보위는 영화판의 장면으로 등장했던 것이었다. 화면 속의 필립은 기계와 그 기계가 내뿜는 수증기 혹은 연기였다. 둘은 서로 만났음을 인정했지만 무언가가 어긋나고 있었다. 레딧의 글에서 필립이 이상하다는, 필립을 사칭한 다른 누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이미 제기된 바 있는데 필립은 레이를 알지만 나쁜 쿠퍼를 죽이기 위해 레이를 보내지도 않았고, 나쁜 쿠퍼의 전화번호를 모르니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도플갱어가 흔한 트윈 픽스이니 필립의 도플갱어도 있는 것일까?

나쁜 쿠퍼는 영화판에서의 만남에서 필립이 강조했던 인물인 주디가 누구냐고 계속 물었다. 그러자 필립은 이미 쿠퍼가 주디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고, 어떤 숫자 다섯 개 정도를 연기로 보여주며 적어두라고 권했다. 주디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이미 레딧에서는 논의가 있었는데 물론 결론은 없다. 다이앤? 오드리?

전화를 받으며 편의점을 나오게 된 나쁜 쿠퍼는 자신을 따라와서 총구를 겨누는 리차드 혼과 마주친다. 리차드는 그를 그냥 FBI 요원인 쿠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자신의 범죄 때문에 도둑이 제발 저려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오드리 혼이라고 밝혀 시청자들이 거의 확신하고 있던 의혹을 해결해주었다. 물론 아버지가 누구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이전의 설정상 나쁜 쿠퍼인 게 거의 확실할 것이다. 이 둘은 트럭을 타고 가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번 편에는 뱅뱅바가 두 번 등장한다. 먼저 나온 뱅뱅바 장면에서는 르네를 발견한 제임스가 인사를 건네다가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르네라는 여성은 2편에서 셸리 옆에 있던 여성이고, 이 때도 뱅뱅바에 온 제임스가 자꾸 눈길을 줬던 사람이다. 이후 제임스가 뱅뱅바의 가수로서 공연을 할 때 눈물을 흘리던 것도 르네다. 그러나 그녀는 멀쩡히 남편이 있는 여성임이 드러났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르네를 향해 눈치도 없이 제임스가 인사를 건넨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남편에게 무례한 처사였다. 제임스는 르네 남편과 그 친구에게 흠씻 얻어맞았다. 그러나 그 옆에는 무적의 오른손 주먹을 가진 프레디가 있었다. 프레디는 약하게 때렸지만 제임스를 공격한 두 남성은 응급실행이다. 제임스와 프레디는 감옥으로 가서 이미 수감된 Naido, 채드, 술 취한 남자와 만난다. 프레디가 파이어맨이 점지한 운명에 따라 트윈 픽스로 왔는데 감옥에 갇힌 만큼 그의 운명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Naido가 있는 바로 그 감옥에서 무언가 큰 일을 하는 것 같다. 프레디를 감옥으로 보내기 위해 제임스가 그렇게 멍청하게 도발을 하는 설정을 했으리라. 2편에서 셸리가 말한 교통사고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눈치가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베키의 남편인 스티븐이 숲 속에서 자살하는 듯한 장면도 있었다. 스티븐은 도나의 여동생과 숲 속의 큰 나무 밑에서 마약 기운 혹은 금단 증상으로 몸을 떨면서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둘의 대화를 보건대 스티븐이 베키를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스티븐은 산책 나온 트레일러 파크의 주민을 보자 화들짝 놀라 총을 감추는 듯 보였고, 도나 여동생은 나무를 돌아 다른 쪽으로 도망갔다. 그녀가 왜 도망쳤을까. 그 전까지는 스티븐의 자살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트레일러 파크의 주민은 관리인인 칼 로드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파이어 워크 위드 미의 칼 로드는 훨씬 젊어서 사실 영화를 최근에 다시 보기 전까지는 매치가 안 되었다. 영화 속의 젊은 칼은 지금의 성인군자 같은 캐릭터는 아니고 조금 더 다혈질이었다.

더기-쿠퍼는 제이니이가 주는 케익을 맛있게 먹다가 갑자기 TV 리모콘을 누르고, 또 먹다가 눌러봤다. 지극히 수동적인 더기-쿠퍼의 과거 행동을 감안하면 꽤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그가 전원 버튼을 우연히 누르자 어떤 영화가 나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TV에서 고든 콜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더기-쿠퍼는 깜짝 놀랐고 이후 콘센트에서 예의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케익을 먹을 때 쓰던 포크로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그 위험한 행동, 포크로 콘센트 쑤시기를 시도하다가 감전이 되었고 이후 다른 장면으로 넘어간다. 더기-쿠퍼 캐릭터에 대해서 행동이 아이 같다며 무너진 아버지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떠올리게 한다. 전기 콘센트를 통해 세상에 돌아온 쿠퍼가 콘센트와 전기를 통해 접촉했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로그 레이디의 마지막은 숙연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전에 린치, 즉 고든 콜이 알버트를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생사를 다투는 투병을 한 배우들이 정말 죽음을 앞두고 열연을 했다는 게 놀랍다. 그만큼 이 시리즈가 배우로서 그들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로그 레이디는 호크에게 자신은 이제 죽어가지만 이게 끝이 아니고 다른 식으로 또 만나게 됨을 예고했다.

호크는 통화가 끝난 후 로그 레이디에게 굿 나잇에 이어 굿 바이를 건네며 그녀가 죽었음을 이미 알았다. 호크는 프랭크 트루먼이 업무를 보고 있던 회의실에 바비, 앤디, 루시를 불렀다. 로그 레이디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회의실에 들어오던 앤디와 루시의 모습은 14편에서 앤디가 파이어맨 앞에 갔을 때 봤던 그 장면으로 보인다. 덧붙여 앤디가 거인 앞에서 본 마지막 장면은 파이어 워크 위드 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칼 로드의 트레일러 파크에 있던 전봇대(?)였다.

오드리는 여전히 로드하우스에 가지 못 하고 남편이라고 하는 찰리와 다투고 있었다. 오드리와 함께 로드하우스에 가려고 코트까지 입은 찰리는 오드리에게 코트를 입으라고 권유했는데 오드리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찰리를 몰아붙여 결국 찰리는 다시 코트를 벗고소파로 돌아갔다. 오드리는 결국 그 방을 별로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 찰리가 내가 알던 사람과 달라보인다고 주장하더니 소파로 돌아간 찰리를 덮쳐서 공격한다.

마지막 장면은 역시 뱅뱅바, 로드하우스다. 한 젊은 여성이 홀로 앉아 공연을 보고 있는데, 폭주족으로 보이는 두 남성이 와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들어서 바닥에 주저앉히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지난 편에서 새라에게 집적대던 남성처럼 왜곡된 남성성에 대한 비판의 일환일 것이다. 그녀는 바닥에 있다가 기어서 앞으로 가기 시작하고는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낯설고 거친 남자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자신은 바닥에서 기어가는데 아무도 봐주지 않고 공연만 보며 춤추는 현실에 대한 저항일까?

엔딩 크레딧은 뱅뱅바 공연이 아니라 편의점 위에 있는 가상의 그 공간을 보여준 것 같다. 한 번 장면 전환이 있는데 무슨 의도일지 모르겠다. 참고로 지난 편 엔딩에서 에드가 밖을 내다보며 음식을 먹을 때 창에 비친 자그마한 에드의 모습을 포착한 레딧의 내용이 있었다. 나는 한참을 돌려보고야 알아볼 수 있었는데 현실의 에드와 창 속의 에드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뱅뱅바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고 마치기로 한다. 영화판에서 뱅뱅바는 퇴폐의 장소였다. 고등학생인 로라와 도나가 술을 마시고, 운영자인 자크 르노가 로라에게 매춘을 알선한 곳이다. 이번 시리즈에서 매 번 엔딩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밴드나 가수가 공연하는 바로 그 와중에 로라는 그런 끔찍한 일들을 하고 겪고 있었던 것이다. 2편을 다시 보니 자크 르노를 연기했던 그 배우가 장-미셸 르노로서 로드하우스를 경영하는 장면을 얼핏 볼 수 있었다(물론 다른 에피소드에서 그 악명높은 바닥 청소 장면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설명이 된다). 당시 장-미셸은 셸리의 남자 친구가 될 레드와 무언가 논의하고 있었다. 밥이 사라진 트윈 픽스에는 25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10대 매춘과 마약 거래가 성행하는 로드하우스가 있고, 밤마다 그곳에는 썩어 있는 사회의 일면을 외면하고 그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거대한 군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