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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테일 오브 테일즈. 엘르. 더 이노센츠

테일 오브 테일즈는 동화적인 이야기 세 편이 하나에 담긴 옴니버스 스타일의 영화다. 동화라고는 해도 피가 흥건하고 성인의 알몸이 등장하는 등 수위가 높다. 그렇다고 말초적 자극을 위한 B급 영화는 아니다. 

감독에 대해 잘 몰랐는데 나폴리 지역의 범죄조직을 극사실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은 영화 "고모라"를 만든 분이었다. 고모라 이후 리얼리티라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고 얼마 전 테일 오브 테일즈를 만든 것이다. 

테일 오브 테일즈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영화지만 대사는 모두 영어고, 토비 존스 같이 유명한 영국 배우도 기용했다. 출신이 영미권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에 익숙한 얼굴인 샐마 헤이엑, 뱅상 카셀도 주연으로 등장한다. 리뷰들을 읽다보니 영어 영화를 만든 것은 관람객 층의 확대를 꾀한 조치였던 것 같은데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의 원작은 17세기 나폴리 지역의 시인인 바실레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처음 들은 이름이지만 그의 작품은 그림 형제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작가들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성들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데 모두 이탈리아에 실제로 있는 성들이라고 한다. 나폴리는 10년도 전 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치안이 불안하다느니 소매치기 조심하라느니 등의 말을 들었다. 거의 동시대에 촬영이 되었을 고모라를 생각하면 감독이 현재의 나폴리를 상상의 중세 나폴리의 엽기적 일들을 통해 풍자한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재미있게 본 영화고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도 없어 불편함이 남지 않아 좋았지만 되새겨보면 난감함이 남는다. 영어로 된 리뷰들을 보니 아무래도 전작이 뛰어난 감독이다보니 그걸 감안해 호의적으로 평가한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로저버트닷컴의 리뷰는 내 감상과 비슷하게 영화의 메시지 차원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다른 리뷰에서도 영화의 촬영 같은 기술적 부분에 대한 좋은 평가가 내용적인 부분보다 앞섰던 것 같다.

벼룩을 고기를 먹이며 애완용으로 기르면 커다란 개만큼 커진다는 상상은 황당하게 웃겼고, 문틈으로 삐져나온 노파의 손가락을 핥아대던 뱅상 카셀의 연기도 우습다. 해저 괴물의 심장으로 인해 하루만에 태어난(아비 없이! 두 명이나!) 아이들 이야기는 결말이 너무 미약했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성 위의 허공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은 왜 등장하는지도 의아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또 다른 영화, 문제작들의 아버지 폴 버호벤의 신작 "엘르" 속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바로 고공 줄타기, 그것도 아래 안전망이 없는 진짜 줄타기 연기였다는 평가를 어떤 리뷰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식이긴 폴의 영화를 볼 때는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데 두 시간이 넘는 이 영화는 어떤 불편함이 앞으로 전개될까 궁금해하며 힘들게 버텨야했다. 다름 아닌 강간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가디언을 보다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말론 브란도의 강간 장면에서 베르톨루치 감독이 현실성(성기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무엇인가가 삽입되기는 했다고 한다)을 높이기 위해 브란도와 짜고, 19살의 여배우 슈나이더에게는 알리지 않고 그 장면을 촬영했다고 하여 영화계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진 바가 있었다. 당시 어떤 기사는 "엘르"의 위페르는 무엇을 찍는지 알고 찍었다고 라스트 탱고와 비교를 했던 것이다. 엘르가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라는 점 말고는 다른 정보가 전혀 없던 시점이었다. 감독이 폴이었다는 것은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여하튼 괴상한 이 영화는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재미있게도 영화 리뷰들 중 몇 개가 영화가 B급과 고차원적 영화 사이라면서 B+ 등급을 매겼다. 결국 A는 줄 수 없다는 건데 소재의 자극성이 한몫했으리라. 

위페르의 극중 이름은 미셸 르블랑이고, 10살 때 살인마 아버지의 범행 현장에 있고 심지어 그의 범행을 도왔던 혐의를 받고 자랐다. 그녀는 문학 혹은 학계에 있다가 잔혹하고 에로틱한 비디오 게임(플스용인듯) 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벌었다. 어릴 적의 충격 때문인지 혹은 원래 그런지 그녀는 게임이 더욱 더 자극적이게 만들도록 요구했고, 그 목적을 위해 아르바이트 모델 여성이 사진사에 의해 거칠게 옷이 벗겨져도 개의치, 아니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마 영화 시작하자마자 그녀 자신이 괴한에게 강간을 당하고 나서도 별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고 아무렇지 않게 전남편과 절친에게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그녀의 태도를 가장 잘 대변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강간범을 알아채고는 그 사람을 유혹하는 장면은 처음에 이상했다. 범인이 아주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은 나중 일이지만 강간범에 대한 환상은 미셸이 많이 뒤틀린 사람임을 보여준다. 강간범 혹은 그녀의 이웃인 은행원은 미셸이 요구하면 거부한다. 다만 자신이 거칠게 여자를 때릴 때에만 성욕이 생긴다. 영화 말미에서 은행원의 아내가 말하듯(그녀는 예전에 남편의 범행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좋은 사람인데 어떤 부분에서는 고통받는 영혼이었다. 한 리뷰에서 잘 지적했듯이 성행위에서 여자가 주도하려고 할 때 남자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는 지적은 맞는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부분은 미셸의 아들인 뱅상이 약혼녀가 출산을 했는데 피부색이 상당히 어두운데도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할 뿐 아니라 그 옆에 같이 혼 흑인 친구가 자꾸 싱글싱글 대고 있어서 그 친구야말로 아기의 친아빠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도록 찍은 장면이다. 뱅상의 약혼녀는 그럼에도 언제나 당당하고 항상 뱅상에게 야단을 친다. 

더 이노센츠라는 영화도 공교롭게 강간에 대한 영화다. 처음에 수녀원이 화면에 등장해서인지 그런 영화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1945년 폴란드라고 하니 홀로코스트와 관련이 있을까 추측해보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라고 하면 수백 만명이 죽은 유대인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영화는 여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영화 속 희생자 여성은 다름 아니 수녀들이다. 폴란드의 수녀원이기에 독일군도 지나갔고 러시아군도 지나갔다. 그들은 그냥 지나간 것이 아니라 수녀들을 강간하고 갔다. 영화 속에서는 독일군의 강간은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고, 러시아군들이 하루도 아닌 며칠을 머물렀다고 한다. 

강간은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지만 여러 수녀들이 임신을 하게 되었고 수녀원이라는 설정은 더 큰 문제를 제기한다. 수녀들은 성적 순결을 맹세한 이들이고, 그렇다고 자살을 할 수도 없다. 그녀들은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원장 수녀에 의해 어디론가 옮겨졌다. 원장의 설명은 아기들이 어떤 가족에게 넘겨서 잘 클 거라는 것이었지만 영화 속 한 사례가 보여주듯 아기들은 추운 겨울밤 들판에서 얼어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프랑스 적십자 소속의 한 여성 의사가 수녀원에서 출산을 돕게 되었고,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러시아군들에게 수녀원에 티푸스?가 있다는 거짓말로 그들의 방문을 막고, 결국 나중에는 수녀원에서 수녀들이 낳은 아기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에 대한 해답까지 제시하게 된다. 

세계대전의 와중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폴란드에 수많은 고아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 고아들을 수녀원에서 돌보면 수녀들의 아기를 다른데 보내지 않고도 기를 수 있다는 처방이었다. 

아무 죄가 없는, innocent 수녀들의 이야기는 눈물없이는 보기 힘들다. 꽤 유명한 영화인가 싶었는데 네이버 영화에는 소개조차 되지 않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