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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30일 수요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화려한 캐스팅과 믿을만한 감독이 만든 놈, 놈, 놈. 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2008년 7월 드디어 국내에서 개봉했다. 호의적인 평가가 많지만 별로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 영화를 보기 직전 내 주변 사람마저 영화를 보며 잠깐 졸았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배우와 감독만 믿고 영화평, 영화 정보는 일체 보지 않은 채 관람을 했다.

주인공은 송강호?

영화가 시작하고 조금 후 하늘에서 새가 한 마리 날고 옆에 송강호라는 이름이 나왔다. 정우성, 이병헌 이름이 나왔던가 싶었다. 영화 제목은 분명 '좋은 놈', '나쁜 놈'에 이어 '이상한 놈'이 나오는데. 조금 후 다른 배우들의 이름이 나온다. 영화는 세 명 배우의 쓰리톱 체제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송강호야말로 주인공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씨네21의 김지운 감독 인터뷰를 보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지게 된다.

'멋'의 기준은 개인차가 있겠으나, 언제나 홀홀단신으로 그야말로 웨스턴에서나 나오는 복장으로 장총을 정확하게 쏴대는 정우성은 멋있는 놈이다. 이병헌은 잔인한 캐릭터지만 총, 칼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기술을 선보인다는 측면에서 멋있다. 반면 송강호는 이전 영화들의 역할과 유사하게 이번에도 그다지 뛰어난 재능은 없으면서 실수를 연발하여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태구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이상하고 웃기는 놈이지만 멋있는 놈은 아니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에 대한 많은 기대와 실망감에 대해 오락 영화로 봐달라는 주문을 했다. 오락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스펙터클이건 액션이건 코미디건. 이병헌이 멋있지만 창이 역할이 전면에 나섰다면 영화는 잔혹하게 흘렀을 것이다. 정우성도 멋있지만 이 친구는 당체 무슨 동기로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다. 원한 관계가 원래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뺐다고 하고, 영화에서 독립군과 약간의 연결점이 있고 막판 일본군 살해 장면이 있어 애국심이라는 단서는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런 동기는 너무 미미해서 마지막까지 봐도 정우성도 꽤 이상한 놈으로 비춰진다. 그러기에 영화의 재미를 유지하는 상당 부분은 송강호가 이끌어야했고 이점으로만도 그가 진정한 주인공의 자격을 갖췄으리라.

영화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캐릭터가 얼추 딱 정립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캐릭터의 통일성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좋은 놈은 이상하고, 나쁜 놈은 좋았던 시절이 있는 것 같고, 이상한 놈은 좋은 면이 꽤 많지만 예전에는 유례없는 악한이었던 것 같다. 손가락 귀신에 얽힌 이병헌과 송강호의 관계는 수수께끼를 던진다. 이병헌은 뛰어난 칼 솜씨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자르지 못해 칼 탓만 하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당했던 기억이 행동을 저지했으리라.

영화 막판에 밝혀지는 사실들은 송강호의 존재를 더 알 수 없게, 더 이상한 놈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영화에 나타나지 않은 거대한 송강호의 실체가 있으리라는 상상만 할 뿐. 김지운 감독이 어떤 단서를 숨겨놨는지는 영화를 다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면 송강호야말로 나라잃은 민족의 잡초같은 삶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욕망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이지만 보물 지도를 획득해서 간직하고, 보물을 찾으면 어떻게 운반할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혼자서 돌진하고, 보물을 찾아봤자 하고 싶은 게 집 짓고 가축 기르는 것 밖에 없단다. 방향성을 잃은 민족의 이상할 수밖에 없는 삶?

영화의 내러티브가 부족함은 감독도 인정하는 바인데 보물지도의 행방을 아는 집단이 어찌 그리 많은지 모르겠고, 보물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은 일본군밖에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석유를 보고 실망에 잠긴 송강호의 반응은 알 수 없기에 매혹적인 목표에 대한 단순하지만 질긴 욕망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 같다. 창이의 다이아를 챙긴 태구는 영화 막판 또 다시 무엇인가를 향해 질주한다. 질주의 끝은 없을 것이다.




세 주인공의 복장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가장 당하는 부분이 많은 송강호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계속해서 교정하고 재생시킨다. 밧줄타기, 마상 총격을 일상으로 삼는 정우성이 모자를 항상 쓰고 있는 것도 희한하다. 옷으로 만들어내는 캐릭터. 캐릭터의 성격을 좋은, 나쁜, 이상한 놈으로 유지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는 마당에서도 그들은 복장을 잘 갖춰야했다.


-영화에 들어가기 전 인터뷰에서 장르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선택하는 영화는 <놈놈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나. 그때 장르를 선택한다는 것은 모종의 이야기와 주제도 같이 선택한다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한 것 같다. 당시 웨스턴이라는 장르에 관해서는 시각적인 지점을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기에 웨스턴이라는 장르에서 비롯된 이야기와 주제가 뭐였다고 생각하나.

=그때도 말했지만 웨스턴은 스페인 여행을 하다가 떠올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웨스턴을 만들고 싶다는 영화적 로망은 있었는데, 그런 벌판을 보니 일종의 해방감이나 막 내달리고 싶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저 멀리에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마구 내달리고자 하는. 영화 안에도 그런 대사가 있지만, 꿈이나 욕망, 집착을 갖고 뭔가를 쫓아갈 때 그것을 또 쫓아오는 인생의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집착이나 욕망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런 광활한 대평원을 배경으로 웨스턴영화 안에서 보여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뭔가를 쫓아갔다가 그것을 보고 다시 어떤 다른 두려움과 공포가 쫓아와서 다시 거기서 벗어나 다시 무언가를 쫓아가는…. 인생은 이런 추격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엔딩의 대추격전에 인생의 카오스와 혼란과 아비규환을 집어넣으려 했던 것이다. 일제시대 한반도에서 쫓겨난 선조들도 만주라는 대륙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로또당첨을 바라는 식으로 그 공간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태구라는 인물도 이를테면 알량한 로또 번호를 받은 건데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끝까지 가서 확인해보고 싶어하는 거다. 로또나 지도나 한낱 종잇조각 아니냐.

-그런 추격전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해나갔나.

= 내가 영화를 만들 때는 어떤 이미지, 영화적 순간들을 가장 우위에 두고 거꾸로 만들어간다. 여기에 이르려면 무엇을 거쳐야 하나 하면서 거꾸로. 단점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놈놈놈>은 결국 마지막에 대평원을 달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다. 물론 이야기를 직조하는 과정이 부실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나는 이야기가 부실하다는 부분보다는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야기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도 작은 영화에 스펙터클이 없는 게 큰 하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이런 오락영화에서 이야기가 탄탄하면 더 좋겠지만 내러티브의 부재가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런 액션에서 추구했던 스타일이 있었나.

=한국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우리가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귀시장은 사람들이 결과물만 보니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반 헬싱>이나 <스파이더 맨>에서는 다 와이어캠으로 찍은 것이잖나. 그런데 우리는 와이어를 매단 사람들이 직접 했으니까. 그러니까 슈퍼크레인이라든가 와이어캠이라든가 도기캠이 해야 할 것들을 슈퍼맨, 와이어맨, 도기맨이 했다. (웃음) 이게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인가. 여러 재밌는 장면이 많은데, 지붕 위의 도원을 찍으면서 아래로 뛰어내리니까 카메라도 같이 뛰어내리고 다시 아래서 창이를 잡으면서 뒤로 빠지는 식의 촬영은 <스파이더 맨>에서도 없었을 거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렇게 만들어낸 것은 어떤 영화에서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귀시장신과 대평원은.

=도원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멀리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캐릭터다. 태구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을 치고 가는 게 아니라 그가 세력 분포를 파악한 뒤 하나씩 잡아가는 전문가스러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공중으로 올라가야 했다. 도원은 도르레 장치로 위에 올라가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수의 열세를 극복해나간다. 도원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서 수직과 하강의 동선을 짰던 거다. 대평원은 아까 말했듯 욕망의 집합체, 카오스적인 상황을 정신없이 보여주기 위해 대폭발을 시켰던 것이다.

김지운 감독 씨네21 인터뷰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1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