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에 대한 증오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가짜 그리스도는 그 사자가 그랬듯이 유대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먼 이방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호르헤가, 능히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나름의 진리를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허위로 여겨지는 것과 몸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리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장미의 이름(하) pp.638~639.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장미의 이름을 이제서야 아주 힘겹게 한 번 읽게 되었다. 교황과 황제 그리고 수도회간의 투쟁 부분은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책읽기를 힘들게 만든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니 그 지루했던 부분들이 책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들이었음이 느껴진다. 지루하고 유치찬란한 그 논쟁들은 그 과거는 물론 지금까지도 어느 사회에서나 되풀이되고 있고, 언제든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을 것이니...
묵시록의 상황이 그대로 연출되어 일곱 개의 나팔이 하나씩 울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이미 구원받을 자와 비참한 최후를 맞을 사람은 정해졌을 터이니. 행여 세계가 멸망하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상징적 의미로) 일곱 개 나팔이 다 울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두번째 나팔부터 막도록 노력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