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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1일 화요일

기생충 (2019)

소문의 그 영화, 사람들이 스포일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그 영화 기생충을 나도 보았다. 안경을 가져가지 않아 또렷하지 않은 영상을 봐야했지만 후반부의 폭력적인 장면들을 덜 생생하게 본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평자들은 주로 계급의 문제로 이 영화를 해석하고 있고 상하의 구별이 뚜렷한 영화의 카메라 앵글을 보건대 그런 해석은 타당하다. 천국-연옥-지옥과 딱 맞지는 않지만 저택-반지하-지하(의 지하)라는 공간적 배치는 사람의 등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가 흔히 하는 방식처럼 부르주아를 비난하고 노동자를 더 대우해야한다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어떤 대사에서 부자가 착하다는 말이 강조되고, 빈자들은 사기, 주거침입, 절도 더 나아가 폭행, 살인을 별다른 죄책감없이 행했다.

상황은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마치 영화 '어스'를 연상시키는 지하세계의 사람들은 노동자보다 더 낮은, 아예 보이지 않는 존재들까지 다룬다. 지하인은 모스 부호라는 형식으로 주인에게 신호를 보내지만 주인은 신경을 쓰지 않거나 오독하거나 이해를 하지 못 한다. 오직 지하세계를 경험한 반지하인 아들이 나중에 신호를 이해하게 되지만 응답할 방법은 없다. 단지 상상 속에서 부자가 되어 그 저택을 사고 지하의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사실상 희망없는 꿈 밖에.

영화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다. 최근에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은 이유는 대왕 카스테라를 비롯한 반짝 인기업종을 따라하다가 망했다는,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망한 자영업자의 경로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지하세계의 남성, 문광의 남편도 대왕카스테라가 망하고 사채를 빌려쓴 결과 지하인이 되었다고 설정이 되었다. 양자를 가른 것은 사채를 썼느냐의 여부인 듯 하고 그 결과로 반지하인은 상승을 꿈꾸기도 하지만 지하인은 상승의 꿈을 포기하고 주인에게 감사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지하인과 반지하인의 대결에 대해 섬뜩함을 느낀다는 평을 커뮤니티에서 많이 보았다. 전투는 부자나 정치인을 향해 벌여야하는데 빈자들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은 지배전략의 효과이기도 하고 쉬운 싸움 상대를 고른 결과일 수도 있겠다.

남궁현자라는 유명건축인이 설계한 것으로 설정된 저택의 풍경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출세작 '송곳니'의 저택을 연상시켰다. 다시 확인해본 결과 카메라 앵글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통유리를 통해 집 안에서 잔디 마당을 볼 수 있다는 점과 잔디 마당이 넓고 주요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는 유사했다. 봉준호 감독이 '송곳니'를 참고했다면 반지하 집 안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을 대비시켰다는 점에서 더 진척을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인디언 설정은 어떤 의미였을까? 인디언 차림의 송강호는 결국 살인을 저지른다. 그 대상은 공교롭게도 숙주인 이선균. 그도 인디언 차림이었다. 송강호가 인디언 흉내를 낸 것은 근무의 연장이었을 뿐이지만 같은 인디언을 죽인다는 설정은 인디언의 폭력성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아닐 터이다. 숙주와 기생충,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라도 원래는 같은 족속, 인간이라는 것을 환기하는 것일까? 원래 인디언 놀이는 다송이라는 아들 캐릭터가 시작한 것이다. 지하인이라는 귀신을 본 후의 부작용인 듯한데 인디언놀이가 다송의 '~인 체'하는 삶의 방식의 일환인지(실제 다송은 인디언의 옷, 화살, 텐트라는 외양 외에 인디언에 대해 이해하려는 태도는 전혀 없다)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영화에서 가장 웃음을 안겨준 대사는 '코너링'이었다. 처음 운전기사가 된 송강호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사장역의 이선균은 음료가 가득 든 컵을 들고 차가 회전할 때 음료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지켜보았다. 결과적으로 음료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러니까 차가 부드럽게 방향전환을 하는 걸 확인하자 사장이 '코너링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경찰이 우병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아들을 운전병으로 뽑은 이유로 내놓은 말이기도 했다. 즉 우병우에 대한 환기와 동시에 오랜 운전 경력이 있다면 정말 코너링이 좋을 수도 있었는데 우병우의 아들이 정말 그러했을까라는 의구심을 다시 갖게 만드는 짧지만 복합적인 장면이었다.

마찬가지로 문광이라는 캐릭터가 반지하인 가족을 궁지로 몰아놓은 이후 북한 뉴스 여자 앵커를 흉내내는 장면은 현 국제정치 상황을 반영했다. 모르는 사람인 척하며 온 가족이 빌붙어서 부자집에 고용된 상황을 폭로하는 영상을 보낼 메시지의 전송 버튼이 김정은의 미사일 버튼같다는 평가도 대사로 등장했다. 메시지 전송과 미사일 발사를 비유할 수는 있지만 문광이 뉴스 앵커를 흉내낼 하등의 이유는 없다. 그래서 뜬금없다는 평가를 볼 수도 있었다. 아마 감독은 국내 정치의 계급 투쟁 혹은 생존 투쟁과 함께 북한이 얽힌 국제정치의 상황까지 짧게나마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는 배우들의 이전 작품에서의 캐릭터를 잘 활용했다.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이었던 송강호가 운전기사로 일한다는 설정은 금방 납득이 갔고, 조여정의 역할도 이전 작품들의 이미지를 상당히 가져와서 활용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선균은 여러 이미지를 연기할 수 있기에 이번 작품 캐릭터의 전거를 어디에서 찾아야하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고, 나머지 배우들은 이전 활동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면 비극은 줄어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면 영화의 톤은 매우 비관적이다.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2018 연말의 한국 대작 영화들

최근 씨네21에는 송경원 기자가 쓴, 대자본을 투입하고 2018년 연말에 개봉하여 모두 손익분기점에 크게 미치지 못한 세 편의 영화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글을 읽다보니 영화를 보고 읽어야할 것 같아 영화들을 보고 나중에 기사의 나머지를 읽었다. 송경원의 글은 대개 수긍할만했지만 나로서는 과하게 비판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마약왕은 송강호 원톱 주연 영화로서 송강호에게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다. 나도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기왕에 흥행에 실패한 이후 봐서인지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작은 밀수꾼이 마약 밀매를 하다가 나중에 제조도 하고, 피맛을 본 이후에는 직접 몸에 뽕을 놔서 마약쟁이가 되고 파멸한다는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두삼에게서 박정희를 발견한다면 제대로 본 거라고 친절하고 설명하는 걸 읽고 난 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친절하게 이두삼의 부인을 육영수 여사의 머리 스타일로 변신시킨 장면까지 있었다. 설에 만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는 자기가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박정희가 없었으면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가, 그러니까 이런 경제발전의 세상을 만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오랜 친구의 그런 반응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이 시점에 박정희 말년에 대한 비판 영화가 적절한 것이냐라는 질문은 던질 수도 있겠다.

아마 영화의 기획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에 이루어졌고, 원래의 박근혜 정권 말기를 겨냥한 영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파급력도 크고 논쟁도 더 크게 되었을 터이지만 갑자기 시작된 문재인 정부에서 이 영화는 이미 몰락한 박정희 정부와 그의 딸인 박근혜 정권도 과거의 일이 된 상황에서 이들 부녀의 정권이 이렇게 추악했다는 걸 환기시키는 역할 정도에 그쳤다. 이두삼은 직접적으로 박정희와 악수하고 대면하는 위치에 올랐고, 권력의 중요직에 있는 여러 인물에게 뇌물을 바쳤다. 박정희 사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는 이두삼의 수첩에는 여러 권력자들의 연락처가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적혀있었다.

후반부의 텅빈 저택에서 엽총을 쏘아대는 이두삼의 광경은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상당히 길게 묘사된 그 장면에서 감독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을까?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는 폭군의 말로?

스윙 키즈는 어떤가. 작년 초에 이런 영화가 올해 개봉한다는 씨네21의 기사에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탭 댄스를 추는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줄거리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거제 수용소에서 탭 댄스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 엄청난 거리감은 결국 영화의 설득력을 무너뜨렸다. 강형철의 예전 작품인 써니는 웃음 포인트는 많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몇 장면 때문에 좋게 평가할 수 없었다. 스윙 키즈는 비극의 장소인 포로수용소에서마저 많은 웃음 포인트를 넣었고 어떤 지점에서는 설득이 될 뻔도 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영화를 본 후에 많이 찾아서 읽어보았다. 나로서는 뜨악한 설정은 기록사진에서 수용소에서 탈춤 추는 걸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완전한 판타지는 아니라는 것이고, 영화는 뮤지컬 원작이 있다고도 한다. OK. 영화가 흥겨운 전반부와 광기의 후반부로 급격히 전환되는 이유에 대해 감독은 뻔한 전개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막판 주인공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설정에 대해 친구는 B급, C급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라 평했다. 하지만 거제수용소의 실제 역사를 감안한다면 감독이 비극의 결말을 제시하며 남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의 비극을 환기한다는 그 취지에는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인 하사, 가짜 전쟁영웅의 동생인 북한군 포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게 들어온 민간인, 뚱뚱한 영양실조의 중국군 포로, 젊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스윙 키즈 탭 댄스단은 여러 마이너리티들의 조합이자 전쟁 참전국들이 고르게 포함된 다층적 메타포일 것이다. 결국 이 순진무구한 존재들은 이데올로기의 광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다(미국인은 죽지 않는다. 그들이 살인자였다). 감독의 취지는 남북 화해 모드의 현실에서 이 관계가 다시 옛날처럼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포로 수용소라는 장소를 그저 용광로 같은 소재로 보지 말고 그 비극성의 역사적 심각함을 생각했어야 한다.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 할 기획이라고 본다.

영화 개봉 초기의 반응은 칭찬 일색이었다. 특히 언론 기사, 리뷰는 거의 하나도 빼지 않고 긍정적이었다. 흥행 참패 이후에서야 150억 투자한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책임감이 없었다는 때늦은 비판이 나오긴 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열연, 새로운 배우들의 발견, 신나는 탭 댄스, 올바른 영화의 취지까지 흠을 잡지 않으려면 장점은 많다. 그러나 보헤미안 랩소디가 역주행 흥행을 하는 상황에서 몰살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은 너무 어두웠던 모양이다. 그 반작용인 것처럼 극한직업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지금까지 흥행 싹쓸이를 하고 있다.

PMC 더 벙커는 송경원 기자가 세 작품 중 그나마 후하게 평한 영화였다. 많은 대사가 영어로 처리되는데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장르적 차원에서는 호의적으로 평할만한 영화였다. 특히 막판에 낙하산 씬과 미사일 씬은 한국 영화에서 이런 것도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다룬 이 영화에서 대선 투표일에 출구 조사 결과가 대통령이 인터뷰하는 와중에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장면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눈여겨본 것은 하정우가 맡은 배역의 이름인 에이햅이다. 에이햅은 모비 딕의 그 유명한 선장 캐릭터다. 선장, 캡틴. 에이햅이 다리를 잃은 것은 흰 고래 때문이고 그 고래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집착이 소설의 줄기다. 이 영화가 소설의 에이햅과 같은 것은 한쪽 다리를 잃은 캐릭터라는 점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에이햅이 의족을 한 이유는 낙하산에서 한 명을 더 안고 내려와서이고 이는 죽어가는 동료를 데리고 다녀야하느냐는 영화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는 문제와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죽어버리더라도 그냥 놔두면 속절없이 죽을 동료를 살려보겠다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영화의 대답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냥 두면 죽을 북한 의사를 애써 살려내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 모비 딕이 죽을 것을 알면서 죽으러가는 이야기라면 영화는 노력해도 동료가 거의 죽을 걸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려보는 노력을 해본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복잡하게 돌아가서 미국이 대선일에 서울 하늘에서 미사일을 북한 소행으로 위장해 날리고 막고, 중국이 북한을 먹으려고 하기도 하고, 중국과 미국이 공중전을 벌이는 등 살벌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잘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 모든 소동의 결과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하는 모양인데 한반도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정우는 사실상 미국인이고 이선균은 북한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한국 땅에서 살아남아서 나중에 어떻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 영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남북 관계를 다룬다. 스윙 키즈가 이념 대립의 극한에서 전쟁을 벌이던 과거를, 마약왕은 일본이라는 제3국을 경유한 남북 민간 합작의 한 형태를, PMC는 가상의 미래에 지하 벙커에서의 전투를 그린다. PMC는 굳이 따지면 남한 쪽은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미군과 북한군 그리고 민간 전투 집단들의 조합. 근래에 북한을 다룬 영화는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한국 내의 사건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총기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좋은 소재였을까? 북한을 전반적으로 악마처럼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하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실제 북한의 모습과 영화 속의 그 모습들은 얼마나 닮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가상의 전형을 만들어 놓고 답습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2008년 7월 30일 수요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화려한 캐스팅과 믿을만한 감독이 만든 놈, 놈, 놈. 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2008년 7월 드디어 국내에서 개봉했다. 호의적인 평가가 많지만 별로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 영화를 보기 직전 내 주변 사람마저 영화를 보며 잠깐 졸았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배우와 감독만 믿고 영화평, 영화 정보는 일체 보지 않은 채 관람을 했다.

주인공은 송강호?

영화가 시작하고 조금 후 하늘에서 새가 한 마리 날고 옆에 송강호라는 이름이 나왔다. 정우성, 이병헌 이름이 나왔던가 싶었다. 영화 제목은 분명 '좋은 놈', '나쁜 놈'에 이어 '이상한 놈'이 나오는데. 조금 후 다른 배우들의 이름이 나온다. 영화는 세 명 배우의 쓰리톱 체제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송강호야말로 주인공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씨네21의 김지운 감독 인터뷰를 보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지게 된다.

'멋'의 기준은 개인차가 있겠으나, 언제나 홀홀단신으로 그야말로 웨스턴에서나 나오는 복장으로 장총을 정확하게 쏴대는 정우성은 멋있는 놈이다. 이병헌은 잔인한 캐릭터지만 총, 칼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기술을 선보인다는 측면에서 멋있다. 반면 송강호는 이전 영화들의 역할과 유사하게 이번에도 그다지 뛰어난 재능은 없으면서 실수를 연발하여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태구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이상하고 웃기는 놈이지만 멋있는 놈은 아니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에 대한 많은 기대와 실망감에 대해 오락 영화로 봐달라는 주문을 했다. 오락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스펙터클이건 액션이건 코미디건. 이병헌이 멋있지만 창이 역할이 전면에 나섰다면 영화는 잔혹하게 흘렀을 것이다. 정우성도 멋있지만 이 친구는 당체 무슨 동기로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다. 원한 관계가 원래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뺐다고 하고, 영화에서 독립군과 약간의 연결점이 있고 막판 일본군 살해 장면이 있어 애국심이라는 단서는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런 동기는 너무 미미해서 마지막까지 봐도 정우성도 꽤 이상한 놈으로 비춰진다. 그러기에 영화의 재미를 유지하는 상당 부분은 송강호가 이끌어야했고 이점으로만도 그가 진정한 주인공의 자격을 갖췄으리라.

영화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캐릭터가 얼추 딱 정립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캐릭터의 통일성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좋은 놈은 이상하고, 나쁜 놈은 좋았던 시절이 있는 것 같고, 이상한 놈은 좋은 면이 꽤 많지만 예전에는 유례없는 악한이었던 것 같다. 손가락 귀신에 얽힌 이병헌과 송강호의 관계는 수수께끼를 던진다. 이병헌은 뛰어난 칼 솜씨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자르지 못해 칼 탓만 하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당했던 기억이 행동을 저지했으리라.

영화 막판에 밝혀지는 사실들은 송강호의 존재를 더 알 수 없게, 더 이상한 놈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영화에 나타나지 않은 거대한 송강호의 실체가 있으리라는 상상만 할 뿐. 김지운 감독이 어떤 단서를 숨겨놨는지는 영화를 다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면 송강호야말로 나라잃은 민족의 잡초같은 삶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욕망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이지만 보물 지도를 획득해서 간직하고, 보물을 찾으면 어떻게 운반할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혼자서 돌진하고, 보물을 찾아봤자 하고 싶은 게 집 짓고 가축 기르는 것 밖에 없단다. 방향성을 잃은 민족의 이상할 수밖에 없는 삶?

영화의 내러티브가 부족함은 감독도 인정하는 바인데 보물지도의 행방을 아는 집단이 어찌 그리 많은지 모르겠고, 보물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은 일본군밖에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석유를 보고 실망에 잠긴 송강호의 반응은 알 수 없기에 매혹적인 목표에 대한 단순하지만 질긴 욕망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 같다. 창이의 다이아를 챙긴 태구는 영화 막판 또 다시 무엇인가를 향해 질주한다. 질주의 끝은 없을 것이다.




세 주인공의 복장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가장 당하는 부분이 많은 송강호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계속해서 교정하고 재생시킨다. 밧줄타기, 마상 총격을 일상으로 삼는 정우성이 모자를 항상 쓰고 있는 것도 희한하다. 옷으로 만들어내는 캐릭터. 캐릭터의 성격을 좋은, 나쁜, 이상한 놈으로 유지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는 마당에서도 그들은 복장을 잘 갖춰야했다.


-영화에 들어가기 전 인터뷰에서 장르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선택하는 영화는 <놈놈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나. 그때 장르를 선택한다는 것은 모종의 이야기와 주제도 같이 선택한다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한 것 같다. 당시 웨스턴이라는 장르에 관해서는 시각적인 지점을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기에 웨스턴이라는 장르에서 비롯된 이야기와 주제가 뭐였다고 생각하나.

=그때도 말했지만 웨스턴은 스페인 여행을 하다가 떠올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웨스턴을 만들고 싶다는 영화적 로망은 있었는데, 그런 벌판을 보니 일종의 해방감이나 막 내달리고 싶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저 멀리에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마구 내달리고자 하는. 영화 안에도 그런 대사가 있지만, 꿈이나 욕망, 집착을 갖고 뭔가를 쫓아갈 때 그것을 또 쫓아오는 인생의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집착이나 욕망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런 광활한 대평원을 배경으로 웨스턴영화 안에서 보여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뭔가를 쫓아갔다가 그것을 보고 다시 어떤 다른 두려움과 공포가 쫓아와서 다시 거기서 벗어나 다시 무언가를 쫓아가는…. 인생은 이런 추격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엔딩의 대추격전에 인생의 카오스와 혼란과 아비규환을 집어넣으려 했던 것이다. 일제시대 한반도에서 쫓겨난 선조들도 만주라는 대륙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로또당첨을 바라는 식으로 그 공간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태구라는 인물도 이를테면 알량한 로또 번호를 받은 건데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끝까지 가서 확인해보고 싶어하는 거다. 로또나 지도나 한낱 종잇조각 아니냐.

-그런 추격전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해나갔나.

= 내가 영화를 만들 때는 어떤 이미지, 영화적 순간들을 가장 우위에 두고 거꾸로 만들어간다. 여기에 이르려면 무엇을 거쳐야 하나 하면서 거꾸로. 단점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놈놈놈>은 결국 마지막에 대평원을 달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다. 물론 이야기를 직조하는 과정이 부실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나는 이야기가 부실하다는 부분보다는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야기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도 작은 영화에 스펙터클이 없는 게 큰 하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이런 오락영화에서 이야기가 탄탄하면 더 좋겠지만 내러티브의 부재가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런 액션에서 추구했던 스타일이 있었나.

=한국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우리가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귀시장은 사람들이 결과물만 보니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반 헬싱>이나 <스파이더 맨>에서는 다 와이어캠으로 찍은 것이잖나. 그런데 우리는 와이어를 매단 사람들이 직접 했으니까. 그러니까 슈퍼크레인이라든가 와이어캠이라든가 도기캠이 해야 할 것들을 슈퍼맨, 와이어맨, 도기맨이 했다. (웃음) 이게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인가. 여러 재밌는 장면이 많은데, 지붕 위의 도원을 찍으면서 아래로 뛰어내리니까 카메라도 같이 뛰어내리고 다시 아래서 창이를 잡으면서 뒤로 빠지는 식의 촬영은 <스파이더 맨>에서도 없었을 거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렇게 만들어낸 것은 어떤 영화에서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귀시장신과 대평원은.

=도원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멀리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캐릭터다. 태구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을 치고 가는 게 아니라 그가 세력 분포를 파악한 뒤 하나씩 잡아가는 전문가스러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공중으로 올라가야 했다. 도원은 도르레 장치로 위에 올라가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수의 열세를 극복해나간다. 도원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서 수직과 하강의 동선을 짰던 거다. 대평원은 아까 말했듯 욕망의 집합체, 카오스적인 상황을 정신없이 보여주기 위해 대폭발을 시켰던 것이다.

김지운 감독 씨네21 인터뷰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1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