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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1일 화요일

에일리언: 커버넌트

에일리언이라는 이름을 걸고 새롭게 개봉했던 에일리언 커버넌트. 원래 시리즈는 본 지 오래되어 기억도 잘 나지 않아서인지 프로메테우스가 훨씬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일반적인 평가야 리들리 스콧의 1편과 제임스 캐머런의 2편이 가장 훌륭하다고 하고, 3, 4편은 각각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이라는 평과 별로라는 평이 갈린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 시리즈와 연결이 되지만 그 작품만으로는 연결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터인데 이제 제목부터 '에일리언'이 포함된 이번 영화로 인해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1편 에일리언과 프로메테우스를 연결시켜보려는 감독의 의도가 확고히 드러났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인간의 창조주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여정과 그 와중에 발생한 사고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에일리언의 괴물들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초반은 웨일랜드가 데이빗을 만들어낸 이후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데이빗은 자기를 웨일랜드가 만들었다면 웨일랜드는 누가 만들었냐고 질문한다. 웨일랜드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강조한다. 예술이라는 인간 정신의 최고봉의 행위는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꽤 논쟁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지구에서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고, 자신과 닮은 인조인간까지 훌륭하게 만들어낸 인간이라는 존재는 과연 누가 만들었나를 궁금해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기도 하다. 다만 웨일랜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니라 우주 너머 어느 별에 살고 있을 창조주를 탐색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실 나로서는 이 영화 시리즈의 세계관에서 인간을 엔지니어가 만들었다면 결국 질문은 엔지니어는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적이다. 엔지니어들은 그 답을 알고 있을까? 엔지니어들의 건축물을 보건대 그들도 어떤 영웅이나 신을 믿고 있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 세계관에서는 우주 곳곳에 식민지 비슷한 행성들을 관리하는 엔지니어들이 지구를 멸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이 인간보다 고등한 존재조차 데이빗의 만행에 의해 일거에 소멸된다. 물론 다른 식민지 행성에 거주하거나 출장간 엔지니어들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따지고 보면 피조물의 피조물이 현재까지 드러나기로는 최상위의 창조주를 파괴한다는 건 비참한 일이다. 

영화의 부제인 '커버넌트'는 내러티브 속에서는 우주선의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원래는 기독교 성경에서 신과 인간의 언약이다. 그래서인지 에일리언 커버넌트에 대해 토론하는 독립된 웹사이트에서 누군가는 이 영화의 해석을 위해 성경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엔지니어 외에 기독교의 신과 천사 같은 존재들이 있고, 그 신적 존재들이 인류의 멸망을 명령했다는 식이었던 것 같다.

영화 개봉 전에 유튜브에 공개된 프롤로그 중 하나의 제목이 '최후의 만찬'이어서 기독교적 해석을 만든 이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단서들이 그저 보는 이들의 흥미를 배가하기 위한 조치인지 정말 시리즈의 세계관의 일부인지는 모르겠다. 기독교적 해석을 할 수는 있지만 당연하게도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AI에 대한 온갖 영화, 드라마의 내러티브들처럼 기계가 정신이란 걸 갖게 된다면 인간과 기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계보다 낫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등등의 이야기들.

에일리언 커버넌트에 대한 많은 이야깃거리들-가령 마지막에 남은 것이 데이빗이 아니라 월터일지 모른다는 가설이나 우주선의 시스템인 마더가 무엇이냐 등-이 있었지만 며칠 동안 다른 것들을 보면서 잊혀지기도 하여 두 가지 점에 대해서만 더 적어두려고 한다.

첫번째는 로빈슨 크루소다. 데이빗은 엔지니어들을 몰살시킨 후 살아있는 동물이라고는 자신이 유일했던 그 행성에서의 삶을 대니얼 디퍼의 유명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처지에 빗댔다. 크루소 이야기 전에 의문스러운 것은 데이빗이 행성에 도착한 날 뿌린 바이러스(?)로 인해 엔지니어들이 죽었다고 할 수는 있는데, 그 몸 속에서 튀어나온 괴생물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데이빗의 설명을 보건대 그는 여러 가지 조작을 통해 변종을 계속 만들어나갔다. 그렇다면 숙주가 될 죽지 않은 엔지니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마 적지 않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데이빗은 엔지니어의 몸을 찢고 튀어나온 괴물을 다시 숙주로 삼아 실험을 했다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커버넌트 선원의 몸에서 나온 변종은 인간과 상당히 비슷한 체형을 갖고 있었으니. 그렇더라도 피에 주린 이 괴물들을 데이빗이 어떻게 다루었을지 궁금하다. 이 부분에서 크루소가 다시 적실성을 가진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라고 여겨진 섬에서 유일한 인간으로서, 원시 상태와 유사한 상황에서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세계를 손으로 구축한 인물이다. 나중에 등장한 프라이데이는 그의 세계의 하나의 부속품일 뿐이다. 그는 무인도의 세계에서 실로 신과 같은 존재였다. 데이빗은 무엔지니어, 무동물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신을 가진 존재로서 외로이 군림했다. 그는 생명을 조작하고 조작하고 또 조작해서 인간 멸절을 위한 최상의 도구를 만들어냈다. 로빈슨이 결국 인간 세계에 돌아와 잘 적응한 것에 비하면 데이빗은 애초에 자신보다 못한 인간들을 없애려는 목적 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생명을 창조하는 자신에 비해, 인류 생존의 최적지인 지구를 파괴하고 다른 식민지 행성을 찾아나서는 인간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엔지니어나 데이빗이나 인류 파괴에 대한 목적은 동일하다.

다음으로는 영화 처음과 끝을 장식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이야기다. 신들의 발할라 입성이라는 곡을 데이빗이 웨일랜드 앞에서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했고, 마지막에는 마더에게 들려달라고 요청한 음악이었다. 이 음악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그너 작품을 알아야하고, 그에 앞서 북유럽 신화까지 섭렵해야 한다. 마침 닐 게이먼의 어메리칸 갓스를 읽는 중이니 며칠 후에는 할 말이 더 많아지리라 기대한다. 현재로서는 인간의 예술성이 인조인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시험해보려는 웨일랜드의 요청에 따라 바그너의 곡을 연주했던 데이빗이 인간은 물론 엔지니어까지 없애고 자기 마음대로 생명을 주물러본 이후 인간에 대한 비웃음의 의미로 이 곡을 들려달라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