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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블레이드 러너 2049, 미스터 로봇 생각들 추가

* 최승호 감독의 '공모자들'을 본데 이어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거의 유사한 주제를 다룬 방송까지 보니 착잡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예상했던 일들이 조금씩 확인된 것에 불과해서 무덤덤하다고 해야 할까. 김종배님의 팟캐스트, 방송에서 자주 이름을 들었던 해직 기자라는 타이틀의 이용마님의 병색으로 야윈 얼굴이 두 영상물에서 공히 등장하는데 그의 얼굴은 지난 9년간 정권에 의한 언론 장악의 상징으로 제시되었다. 권력이 언론을 죽였다는 상징. 김종배님도 병을 얻어 애써 유지하던 팟캐스트를 접어야 했는데 그간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 생각하게 된다.

*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생각했던 내용 중 적지 못 한 것을 하나 더 적어둔다. 82년 리들리 스콧 영화에서 룻거 하우어가 연기한 로이 배티의 육체는 아름다웠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 배우지만 나는 게르만 혈통을 자랑하는 독일인을 보았다. 히틀러가 강조했던 게르만의 몸이 자꾸 떠오른 건 왜일까. 2차대전에서 독일의 악행은 차치하고 그들의 몸이 아름답다는 프로파간다는 무의식 중에 인정된 것일까? 82년 영화나 2017년 영화나 흑인이 등장했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지구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다른 행성으로 떠나고, 가난하거나 원작에 따르면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 남아있을 지구에 그렇게 차별받는다고 하는 흑인은 왜 별로 안 보일까? 버려진 행성에서도 백인이 주인 노릇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하면 과할 것 같고 사회 구조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는 사고관 때문일까. 더구나 레플리컨트들마저 모두 백인일색 아닌가? 드라마 웨스트월드는 고객의 취향을 만족시킬 모든 종류의 인종들을 배치했던 것 같은데 영화는 이야기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그런 방식을 취한 것일까? 쿠바인인 조이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든 것은 약간의 변화라고는 하겠다. 82년 시리즈에서는 고층 건물 외벽에서 웃음짓는 일본 여인이 인상적이었는데 시대마다 섹시한 나라가 바뀜을 반영한 결과일 것도 같다. 말이 나왔으니 첨가하자면 애초 82년에 한국어, 한글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LA가 30년 후에 갑자기 한글, 한국어가 대폭 증가했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치 일본 여성이 쿠바인 조이로 대체된 것이 이상하듯이. 그냥 2017년 세계의 현실이 82년 영화의 세계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세계로 침입한 결과로 보인다.

* 미스터 로봇 지난 편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적지 못 했다. 지난 번 글은 리뷰라기도 뭐하고 그냥 배설한 내용에 가까웠다고 하겠지만 지하철 속의 사람들 얼굴이 거대한 이모티콘으로 변한 장면을 빠뜨렸다. 미국의 시사 잡지들에서는 최근 스마트폰의 악영향에 대한 특집 기사가 이어지고 있고, 좀더 특정해서 에모지(이모지)에 대한 우려를 표한 기사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카카오톡, 네이버 등의 이모티콘이 스마트폰 화면을 벗어나 인형을 비롯한 캐릭터 상품으로 불티나듯 팔린다는데 이게 뭐하는 일인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블레이드 러너 2049 - 생각들 추가

자기 전에 지난 번 글에서 적지 못했거나 여타 잡다한 생각을 짧게 적어두려고 한다.

지난 리뷰에서 빠뜨린 가장 중요한 내용은 고독에 대한 것이었다. 82년 영화의 LA의 모습도 황량하긴 했지만 2049의 LA와 그 속의 K는 더욱 고독한 존재로 그려졌다. 2049에서 K의 호버카는 하늘에 있는 유일한 차였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대도시인 LA 하늘에 차가 한 대만 다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영화 속의 현실이라기보다 K의 고독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유튜브에서 김중혁 작가가 영화의 K라는 이름을 카프카와 연결시키는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카프카의 K야말로 고독한 개인이었다.

82년 영화에서 조라가 죽는 장면에서 주변에 마네킨들이 즐비했던 것도 상징적이었다. 보진 않았지만 큐브릭도 마네킨을 핵심적으로 이용한 영화를 찍은 바 있었는데, 옷가게에 있는 마네킨들은 가끔씩 섬뜩한 느낌을 주곤 한다. 이 사람과 비슷하면서 신체의 여러 부분이 생략되고 영혼은 물론 없는 이 물체는 레플리컨트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레이첼을 연기한 숀 영은 며칠 전까지도 꽤 잘 나가는 배우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지만 실상은 이미 오래 전에 배우 경력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리하여 블레이드 러너는 그녀의 초기 작품이지만 최고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후 두세 편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 등에 출연했다. 알고 보니 남성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흉흉한 에피소드도 있고, 캣우먼으로 캐스팅되기 위해 기행을 벌이기도 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고, 알콜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82년 작품에서도 출연 분량은 매우 적었다. 숀 영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함께 블레이드 러너에 출연했던 대릴 하나도 의외로 화제작에는 별로 출연하지 못 한 것으로 드러나 나름 충격적이었다. 룻거 하우어는 여전히 활발하게 연기 경력을 이어가지만 생각만큼 유명한 작품 출연은 별로 없었다.

지난 번 조이와 K의 인접성을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러브도 알파벳 상으로 인접한 이름이었다. J, K, L.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복제가 가능할 테니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고 해야할지?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블레이드 러너 2049

언제나 기대를 충족시키는 영화를 내놓은 드니 빌뇌브의 신작은 리들리 스콧의 SF 고전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편이다. 이미 개봉을 했는데,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두기도 했다. 그래서 책, 2049, 예전 영화의 순으로 최근에 감상을 한 셈인데 이야기가 어디까지 흘러갈지 모르지만 그 감상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5일까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국 박스오피스 성적은 22만명 수준이라고 한다. 해외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지만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과 느릿한 전개, 혹은 롱 테이크 장면들이 많아서 여러 관객의 고백처럼 졸기에 좋은 영화였다. 나는 12일 정식 개봉일에 봤는데 자리가 많이 비었을 뿐 아니라 뒷 자리의 두 남성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큰 목소리로 토론을 해서 성가셨던 터이다. 나도 졸음을 떨쳐내기 위해 한동안 노력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영화에 대한 진지한 리뷰를 본 적은 없다. 자주 가는 대형 커뮤니티에는 많은 감상들이 올라와있지만 근거를 적지 않거나 짤막한 이유를 대며 극찬을 하는 경우가 우세했고, 정반대로 왜 찬사를 받는지 모르겠다거나 졸렸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SF 장르에 익숙하거나, 전작을 여러번 본 사람들의 글, 댓글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내용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짤막한 분량 때문에 영화 전반, 혹은 전작, 원작 소설과의 연결시켜 체계적으로 분석한 글은 아니었다. 굳이 열심히 찾아 읽은 건 아니었고, 이렇게 극찬을 하는 사람이 많은 이상 어딘가에 좋은 리뷰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혹은 전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릭 데커드라는 캐릭터가 레플리컨트 혹은 원작의 표현대로면 안드로이드인가의 여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82년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은 릭 데커드를 레플리컨트로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릭 K. 딕의 원작 소설을 읽고는 릭 데커드가 안드로이드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기에(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원작을 읽은 독자와 영화판을 본 관객의 입장은 다를 수 있고, 둘 다 본 사람은 헛갈릴 수 있다. 하지만 창작자가 의도를 명확히 한 이상 릭의 정체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을 본 바로는 릭이 레플리컨트라는 암시를 별로 받지 못했다. 레이첼이 당신은 테스트를 받아봤느냐고 도발했던 점 정도가 떠오르는데 이는 원작 소설에도 있던 내용이다. 그런데 82년 영화에 대한 리뷰들을 보면 유니콘의 꿈을 꾸는 데커드 장면과 영화 마지막에 가프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 유니콘이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는 강력한 암시라고 한다. 유니콘 꿈을 꾸는 장면은 원래 극장판에서는 빠졌던 것인데 나중에 감독판으로서 들어갔다고 한다.

2049에서는 릭이 자신과 레이첼, '우리'가 쫓겨다녔다는 식의 대사가 있었고(나는 레플리컨트니까 도망다녔다로 이해했지만, 82년작을 보면 단순히 레이첼을 보호하기 위해 도망다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월러스가 프로그램된 대로 레이첼과 사랑에 빠진 거라고 릭을 놀리는 대목도 그가 레플리컨트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다. 릭이 K에게 자신이 '은퇴했다'고 말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소설에서 '은퇴'는 레플리컨트의 죽음을 의미하고, 이는 영화(아마 82년작?) 초반에 나오는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2049에서 릭의 은퇴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은퇴했다는 의미가 1차적이었다.

가프의 종이접기, 일본식으로 오리가미도 재미있는 내용이긴 하다. 그는 82년 영화에서 닭, 사람 모양(성기가 큰?), 유니콘을 접었고 모두 데커드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된 행위였다. 그는 2049에서는 양을 접었다. 원작 소설에서 릭은 집에서 전기양을 기르고 있었으므로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이다. 82년 영화에서 부각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원작 소설에서는 지구 상에 진짜 동물은 거의 남지 않았고 인간의 안드로이드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 동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데커더는 집에 있는 가짜 양이 아니라 진짜 동물을 너무 갖고 싶어했고, 그래서 나중에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고 받은 돈으로 진짜 염소를 할부로 구매한다. 하지만 이는 소설의 내러티브고, 82년 극장판의 데커드는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 빠진 캐릭터이므로 가프의 양 오리가미가 어떤 의미일지는 불확실하다.

내가 최근에 본 순서 때문에 2049를 볼 때는 가프가 누구인지 몰랐다. 즉 배틀스타 갈락티카(이 드라마도 인간과 인조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다룬 작품이었다)의 카리스마 넘치는 선장으로서의 에드워즈 제임스 올모스라는 배우를 기억했지만 블레이드 러너의 출연 배우로서 올모스는 몰랐던 것이다. 그의 출연 분량이 적은 것에 대한 불만도 볼 수 있지만 82년 버전에서도 출연 분량 자체는 많지 않았다. 다만 릭 데커드의 정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였을 뿐이다.

다음으로 소설의 주인공인 K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주인공의 이름이 K라는 점은 여러모로 상징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즉각적으로는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인 K가 떠오르고, 소설의 작가가 미들네임으로 K를 갖고 있으니 이와 연결이 될 수도 있겠다. 2049의 내러티브 속에서는 이름을 가질 수 없는 레플리컨트, 노예 신분으로서의 존재를 상징한다. 그의 홀로그램 연인이 조이Joi고 그가 나중에 그녀로부터 조Jo라는 이름을 얻은데, J와 K는 인접한 알파벳이기도 하다.

2049에서 가장 의문인 점 중 하나는 사람들, 레플리컨트들이 어떻게 K가 레플리컨트인지 즉각적으로 알아채는냐이다. 레플리컨트들이 인간이 하기 싫은 직업들을 시키기 위해 창조된 존재들이라면 특정 직업군은 레플리컨트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으나 K는 경찰이다. 경찰서 내에서 그의 정체를 아는 동료들이야 그를 레플리컨트라고 천대할 수 있겠으나 경찰서 밖의 세계에서 어떻게 그의 정체가 그토록 쉽게 탄로가 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K가 릭과 레이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레플리컨트 반란군 측에서는 그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그가 나름대로 블레이드 러너로서 활보를 하고 다녔으니 그의 손에 죽지 않으려는 레플리컨트들은 그를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거리의 모두가 K를 보고 즉각적으로 레플리컨트인지 알아챌 수는 없었을 것이다.

K의 여정은 릭의 여정과 닮은 면이 많다. 직업적으로 동일하고 레플리컨트이면서 레플리컨트를 은퇴시키는 아이러니에 처해 있다. 게다가 영화의 전개 흐름상 K가 릭의 아들이라는 암시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반복되는 사건, 인생이라는 주제인가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이 결국 K는 릭의 아들이 아니었고, 그저 남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하나의 레플리컨트일 뿐이다. 유튜브의 단편 영화를 보건대 82년 영화의 레플리컨트들은 넥서스 6이었고, 2022년?인가에 수명 연한이 없어진 넥서스 8이 제조되었다(사실 이 부분이 릭이 레플리컨트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면 근거가 될 수 있다. 넥서스 6은 4년 연한이 있었고, 2019년에 살았던 릭이 넥서스 8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분명히 나왔는지 기억은 없지만 영화 초반 은퇴한 레플리컨트가 K를 신형으로 지칭해서인지 K를 넥서스 9로 칭한 유튜버도 있었다.

2049에서는 K의 연인인 조이 역의 아나 데 아르마스가 뛰어난 미모로 인해 많은 주목을 끌었다. 전에도 아름다운 배우였겠지만 화제작에서 보편적인 미를 대변하는 캐릭터를 맡아서 인기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조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허'를 연상시키는 존재다. 실체를 따지면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인데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K만을 위한 존재, 의미있는 존재로 변한 것처럼 변한다. '허'의 인공지능이 동시에 세계의 뭇 남성과 연애를 할 수 있고, 조이도 원래는 그랬는데 중앙 서버와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막대기 같은 단말기 안에 들어가 K만을 위한 조이로 변한 것이다. 인간에 대해 레플리컨트가 로봇이나 노예 같은 존재였다면, 조이는 레플리컨트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더 아래 단계의 존재다. 인간이 레플리컨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원작 소설의 테마였다면, 이번에는 레플리컨트가 홀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식으로 유사하면서 다른 차원의 사랑이 변주된다.

안드로이드/레플리컨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적'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초기 레플리컨트들이 수명 연한이 4년에 불과한 만큼 자기들끼리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성인 크기의 레플리컨트를 만들어내면 되는데 왜 성가시게 수정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하는 과정을 거친단 말인가. 그러나 신체적 능력은 더 우월하고 정신적 능력은 인간과 유사한 레플리컨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보다 떨어지는 인간들에게 왜 복종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신작인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주제와 정확히 부합하지 않나! 여하간 레플리컨트들은 자신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면 인간이 없어도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월러스도 그렇게 잉태할 수 있는 레플리컨트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레플리컨트가 아무리 인간과 유사하더라도 찢어진 피부를 접착제로 발라 붙여버리는 K의 장면을 보건대 세포가 있더라도 인간과는 다른 세포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출산까지 가능했던 것일까? 한 번의 기적을 제외하면 레플리컨트들 사이의 후손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과연 반복할 수 있을까? 한 번만 일어나는 일 아닐까? 혹은 안드로이드에서 태어난 아이는 반란군의 동기 부여를 위한 사기극은 아닐까?

기적이 일어나서 레플리컨트들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스텔라인 박사가 정말 릭과 레이첼의 아이라고 치자. 그녀는 가장 기억을 그럴 듯 하게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한 창의성, 예술성이 인간이 아니라 레플리컨트로부터 나온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가장 도발적인 설정이라고 본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적수가 될 수 없을 거라던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미 인간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인공 지능이 인간이 들어서 그럴 듯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세상에 이미 도달한 지금 인간성의 대표적인 지표로 거론되는 예술성마저 레플리컨트가 점령한다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그 특이성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기타 몇 가지 지점들을 적어두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타이렐 회사가 망한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월러스인데 둘 사이의 유사점도 발견된다. 레플리컨트를 제조하는 회사임은 물론이고 타이렐이 로이의 공격으로 눈이 망가지며 죽음에 이르렀는데 월러스가 공교롭게도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눈, 눈동자는 82년작과 2049 모두 오프닝 신에서 주요하게 배치되었다. 레플리컨트는 오른쪽 눈에 일련번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른쪽 안구가 없는 존재는 사람인지 레플리컨트인지 쉽게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 월러스에게는 많은 비밀이 있는 듯 한데 영화를 한 번 보고서는 종잡기 어려웠다. 그가 레이첼을 이야기하며 성서의 라헬(=레이첼)을 운운한 것은 재미있었다. 불임의 여성에게 일어난 기적.


릭 데커드가 은신하고 있던 라스 베가스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스 베가스에는 많은 벌거벗은 여성 조각, 거대한 조각 혹은 건축물들이 무너져내려 있었다. 무대에는 시대착오적으로 거의 100년 전의 가수 엘비스와 배우 마릴린 먼로가 등장했다. 그걸 즐기는 릭 데커더는 또 무언가.

영화에서 한국말이 들리고 한글 간판들이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82년 영화에서도 한국말이 들렸다. 밥 먹으려는 릭을 경찰서로 데려가며 가프와 함께 온 경찰이 '이리 와'라고 한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재미있었다. 아마도 스페인어를 주로 쓰는 가프와 한국어를 쓰는 또 다른 경찰, 그리고 그들의 말을 해석해서 영어로 말하는 일본인인 식당 주인.

2049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괜찮은 면모가 많고, 특히 시각적인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전편보다 더 나아간 측면이 있었다. 반젤리스에서 한스 짐머로 교체된 음악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작을 보고 나니 전작이 더 마음에 들기는 했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이전 영화들이 더 좋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