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용 영화같다는 영화 평을 얼핏 보고 극장에 갔지만 레이싱 영화가 어떻길래 그럴까 고개가 꺄우뚱해졌다. 어쨌거나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라는 말에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갖고 갔다.
주인공의 성은 레이서요, 이름이 스피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조롱한대로 영화는 아동용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았다. 실제 레이싱 경기장의 박진감이 아니라 CG로 창조한 롤러코스터 같은 경기장에서 카트레이서를 방불케 하는 폭력적 레이스가 펼쳐졌다.
인투더와일드를 비롯해 요즘 많은 영화에 출연하는 에밀 허쉬가 스피드 레이서 역을 맡았고, 로스트에서 최고의 훈남으로 등극한 매튜 폭스가 레이서 X로 나온다. 수잔 서랜든이 비교적 젊은 엄마로 나와 어색했고, 존 굿맨은 키가 너무 크게 나와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다. 비는 역시 대사가 많지 않았고(이건 영화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역할을 맡았다. 과연 미국에서조차 저조한 흥행을 거둔 이 영화로 비가 월드 스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원작 만화라는데 영화가 원작의 세세한 부분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감독은 이 영화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가족에 대한 사랑? 거대 자본이 짜고 치는 판에서 레이싱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우승하는 도전 정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기대한 것은 매트릭스 3부작의 영향이 클 것이다. 실제 이 영화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화려한 영상은 기본이고, 네오에 대응하는 스피드 레이서라는 한 명의 영웅에 의해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기본 줄기도 그렇다. 하지만 매트릭스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 반면 스피드 레이서는 별다른 두통거리를 주지 않는다. 매트릭스가 생각하거나 즐길 수 있는 두 가지 알약을 줬다면 스피드 레이서는 보고 즐기라는 헐리웃 영화의 기본적인 메뉴만 제공할 뿐이다. 그것도 나름의 미덕이지만 워쇼스키의 영화를 기다린 팬들은 아마도 더 많은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