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그 영화, 사람들이 스포일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그 영화 기생충을 나도 보았다. 안경을 가져가지 않아 또렷하지 않은 영상을 봐야했지만 후반부의 폭력적인 장면들을 덜 생생하게 본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평자들은 주로 계급의 문제로 이 영화를 해석하고 있고 상하의 구별이 뚜렷한 영화의 카메라 앵글을 보건대 그런 해석은 타당하다. 천국-연옥-지옥과 딱 맞지는 않지만 저택-반지하-지하(의 지하)라는 공간적 배치는 사람의 등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가 흔히 하는 방식처럼 부르주아를 비난하고 노동자를 더 대우해야한다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어떤 대사에서 부자가 착하다는 말이 강조되고, 빈자들은 사기, 주거침입, 절도 더 나아가 폭행, 살인을 별다른 죄책감없이 행했다.
상황은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마치 영화 '어스'를 연상시키는 지하세계의 사람들은 노동자보다 더 낮은, 아예 보이지 않는 존재들까지 다룬다. 지하인은 모스 부호라는 형식으로 주인에게 신호를 보내지만 주인은 신경을 쓰지 않거나 오독하거나 이해를 하지 못 한다. 오직 지하세계를 경험한 반지하인 아들이 나중에 신호를 이해하게 되지만 응답할 방법은 없다. 단지 상상 속에서 부자가 되어 그 저택을 사고 지하의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사실상 희망없는 꿈 밖에.
영화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다. 최근에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은 이유는 대왕 카스테라를 비롯한 반짝 인기업종을 따라하다가 망했다는,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망한 자영업자의 경로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지하세계의 남성, 문광의 남편도 대왕카스테라가 망하고 사채를 빌려쓴 결과 지하인이 되었다고 설정이 되었다. 양자를 가른 것은 사채를 썼느냐의 여부인 듯 하고 그 결과로 반지하인은 상승을 꿈꾸기도 하지만 지하인은 상승의 꿈을 포기하고 주인에게 감사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지하인과 반지하인의 대결에 대해 섬뜩함을 느낀다는 평을 커뮤니티에서 많이 보았다. 전투는 부자나 정치인을 향해 벌여야하는데 빈자들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은 지배전략의 효과이기도 하고 쉬운 싸움 상대를 고른 결과일 수도 있겠다.
남궁현자라는 유명건축인이 설계한 것으로 설정된 저택의 풍경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출세작 '송곳니'의 저택을 연상시켰다. 다시 확인해본 결과 카메라 앵글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통유리를 통해 집 안에서 잔디 마당을 볼 수 있다는 점과 잔디 마당이 넓고 주요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는 유사했다. 봉준호 감독이 '송곳니'를 참고했다면 반지하 집 안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을 대비시켰다는 점에서 더 진척을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인디언 설정은 어떤 의미였을까? 인디언 차림의 송강호는 결국 살인을 저지른다. 그 대상은 공교롭게도 숙주인 이선균. 그도 인디언 차림이었다. 송강호가 인디언 흉내를 낸 것은 근무의 연장이었을 뿐이지만 같은 인디언을 죽인다는 설정은 인디언의 폭력성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아닐 터이다. 숙주와 기생충,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라도 원래는 같은 족속, 인간이라는 것을 환기하는 것일까? 원래 인디언 놀이는 다송이라는 아들 캐릭터가 시작한 것이다. 지하인이라는 귀신을 본 후의 부작용인 듯한데 인디언놀이가 다송의 '~인 체'하는 삶의 방식의 일환인지(실제 다송은 인디언의 옷, 화살, 텐트라는 외양 외에 인디언에 대해 이해하려는 태도는 전혀 없다)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영화에서 가장 웃음을 안겨준 대사는 '코너링'이었다. 처음 운전기사가 된 송강호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사장역의 이선균은 음료가 가득 든 컵을 들고 차가 회전할 때 음료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지켜보았다. 결과적으로 음료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러니까 차가 부드럽게 방향전환을 하는 걸 확인하자 사장이 '코너링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경찰이 우병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아들을 운전병으로 뽑은 이유로 내놓은 말이기도 했다. 즉 우병우에 대한 환기와 동시에 오랜 운전 경력이 있다면 정말 코너링이 좋을 수도 있었는데 우병우의 아들이 정말 그러했을까라는 의구심을 다시 갖게 만드는 짧지만 복합적인 장면이었다.
마찬가지로 문광이라는 캐릭터가 반지하인 가족을 궁지로 몰아놓은 이후 북한 뉴스 여자 앵커를 흉내내는 장면은 현 국제정치 상황을 반영했다. 모르는 사람인 척하며 온 가족이 빌붙어서 부자집에 고용된 상황을 폭로하는 영상을 보낼 메시지의 전송 버튼이 김정은의 미사일 버튼같다는 평가도 대사로 등장했다. 메시지 전송과 미사일 발사를 비유할 수는 있지만 문광이 뉴스 앵커를 흉내낼 하등의 이유는 없다. 그래서 뜬금없다는 평가를 볼 수도 있었다. 아마 감독은 국내 정치의 계급 투쟁 혹은 생존 투쟁과 함께 북한이 얽힌 국제정치의 상황까지 짧게나마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는 배우들의 이전 작품에서의 캐릭터를 잘 활용했다.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이었던 송강호가 운전기사로 일한다는 설정은 금방 납득이 갔고, 조여정의 역할도 이전 작품들의 이미지를 상당히 가져와서 활용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선균은 여러 이미지를 연기할 수 있기에 이번 작품 캐릭터의 전거를 어디에서 찾아야하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고, 나머지 배우들은 이전 활동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면 비극은 줄어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면 영화의 톤은 매우 비관적이다.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2018 연말의 한국 대작 영화들
최근 씨네21에는 송경원 기자가 쓴, 대자본을 투입하고 2018년 연말에 개봉하여 모두 손익분기점에 크게 미치지 못한 세 편의 영화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글을 읽다보니 영화를 보고 읽어야할 것 같아 영화들을 보고 나중에 기사의 나머지를 읽었다. 송경원의 글은 대개 수긍할만했지만 나로서는 과하게 비판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마약왕은 송강호 원톱 주연 영화로서 송강호에게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다. 나도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기왕에 흥행에 실패한 이후 봐서인지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작은 밀수꾼이 마약 밀매를 하다가 나중에 제조도 하고, 피맛을 본 이후에는 직접 몸에 뽕을 놔서 마약쟁이가 되고 파멸한다는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두삼에게서 박정희를 발견한다면 제대로 본 거라고 친절하고 설명하는 걸 읽고 난 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친절하게 이두삼의 부인을 육영수 여사의 머리 스타일로 변신시킨 장면까지 있었다. 설에 만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는 자기가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박정희가 없었으면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가, 그러니까 이런 경제발전의 세상을 만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오랜 친구의 그런 반응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이 시점에 박정희 말년에 대한 비판 영화가 적절한 것이냐라는 질문은 던질 수도 있겠다.
아마 영화의 기획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에 이루어졌고, 원래의 박근혜 정권 말기를 겨냥한 영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파급력도 크고 논쟁도 더 크게 되었을 터이지만 갑자기 시작된 문재인 정부에서 이 영화는 이미 몰락한 박정희 정부와 그의 딸인 박근혜 정권도 과거의 일이 된 상황에서 이들 부녀의 정권이 이렇게 추악했다는 걸 환기시키는 역할 정도에 그쳤다. 이두삼은 직접적으로 박정희와 악수하고 대면하는 위치에 올랐고, 권력의 중요직에 있는 여러 인물에게 뇌물을 바쳤다. 박정희 사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는 이두삼의 수첩에는 여러 권력자들의 연락처가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적혀있었다.
후반부의 텅빈 저택에서 엽총을 쏘아대는 이두삼의 광경은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상당히 길게 묘사된 그 장면에서 감독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을까?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는 폭군의 말로?
스윙 키즈는 어떤가. 작년 초에 이런 영화가 올해 개봉한다는 씨네21의 기사에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탭 댄스를 추는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줄거리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거제 수용소에서 탭 댄스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 엄청난 거리감은 결국 영화의 설득력을 무너뜨렸다. 강형철의 예전 작품인 써니는 웃음 포인트는 많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몇 장면 때문에 좋게 평가할 수 없었다. 스윙 키즈는 비극의 장소인 포로수용소에서마저 많은 웃음 포인트를 넣었고 어떤 지점에서는 설득이 될 뻔도 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영화를 본 후에 많이 찾아서 읽어보았다. 나로서는 뜨악한 설정은 기록사진에서 수용소에서 탈춤 추는 걸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완전한 판타지는 아니라는 것이고, 영화는 뮤지컬 원작이 있다고도 한다. OK. 영화가 흥겨운 전반부와 광기의 후반부로 급격히 전환되는 이유에 대해 감독은 뻔한 전개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막판 주인공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설정에 대해 친구는 B급, C급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라 평했다. 하지만 거제수용소의 실제 역사를 감안한다면 감독이 비극의 결말을 제시하며 남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의 비극을 환기한다는 그 취지에는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인 하사, 가짜 전쟁영웅의 동생인 북한군 포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게 들어온 민간인, 뚱뚱한 영양실조의 중국군 포로, 젊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스윙 키즈 탭 댄스단은 여러 마이너리티들의 조합이자 전쟁 참전국들이 고르게 포함된 다층적 메타포일 것이다. 결국 이 순진무구한 존재들은 이데올로기의 광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다(미국인은 죽지 않는다. 그들이 살인자였다). 감독의 취지는 남북 화해 모드의 현실에서 이 관계가 다시 옛날처럼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포로 수용소라는 장소를 그저 용광로 같은 소재로 보지 말고 그 비극성의 역사적 심각함을 생각했어야 한다.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 할 기획이라고 본다.
영화 개봉 초기의 반응은 칭찬 일색이었다. 특히 언론 기사, 리뷰는 거의 하나도 빼지 않고 긍정적이었다. 흥행 참패 이후에서야 150억 투자한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책임감이 없었다는 때늦은 비판이 나오긴 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열연, 새로운 배우들의 발견, 신나는 탭 댄스, 올바른 영화의 취지까지 흠을 잡지 않으려면 장점은 많다. 그러나 보헤미안 랩소디가 역주행 흥행을 하는 상황에서 몰살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은 너무 어두웠던 모양이다. 그 반작용인 것처럼 극한직업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지금까지 흥행 싹쓸이를 하고 있다.
PMC 더 벙커는 송경원 기자가 세 작품 중 그나마 후하게 평한 영화였다. 많은 대사가 영어로 처리되는데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장르적 차원에서는 호의적으로 평할만한 영화였다. 특히 막판에 낙하산 씬과 미사일 씬은 한국 영화에서 이런 것도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다룬 이 영화에서 대선 투표일에 출구 조사 결과가 대통령이 인터뷰하는 와중에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장면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눈여겨본 것은 하정우가 맡은 배역의 이름인 에이햅이다. 에이햅은 모비 딕의 그 유명한 선장 캐릭터다. 선장, 캡틴. 에이햅이 다리를 잃은 것은 흰 고래 때문이고 그 고래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집착이 소설의 줄기다. 이 영화가 소설의 에이햅과 같은 것은 한쪽 다리를 잃은 캐릭터라는 점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에이햅이 의족을 한 이유는 낙하산에서 한 명을 더 안고 내려와서이고 이는 죽어가는 동료를 데리고 다녀야하느냐는 영화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는 문제와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죽어버리더라도 그냥 놔두면 속절없이 죽을 동료를 살려보겠다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영화의 대답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냥 두면 죽을 북한 의사를 애써 살려내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 모비 딕이 죽을 것을 알면서 죽으러가는 이야기라면 영화는 노력해도 동료가 거의 죽을 걸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려보는 노력을 해본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복잡하게 돌아가서 미국이 대선일에 서울 하늘에서 미사일을 북한 소행으로 위장해 날리고 막고, 중국이 북한을 먹으려고 하기도 하고, 중국과 미국이 공중전을 벌이는 등 살벌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잘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 모든 소동의 결과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하는 모양인데 한반도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정우는 사실상 미국인이고 이선균은 북한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한국 땅에서 살아남아서 나중에 어떻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 영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남북 관계를 다룬다. 스윙 키즈가 이념 대립의 극한에서 전쟁을 벌이던 과거를, 마약왕은 일본이라는 제3국을 경유한 남북 민간 합작의 한 형태를, PMC는 가상의 미래에 지하 벙커에서의 전투를 그린다. PMC는 굳이 따지면 남한 쪽은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미군과 북한군 그리고 민간 전투 집단들의 조합. 근래에 북한을 다룬 영화는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한국 내의 사건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총기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좋은 소재였을까? 북한을 전반적으로 악마처럼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하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실제 북한의 모습과 영화 속의 그 모습들은 얼마나 닮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가상의 전형을 만들어 놓고 답습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마약왕은 송강호 원톱 주연 영화로서 송강호에게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다. 나도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기왕에 흥행에 실패한 이후 봐서인지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작은 밀수꾼이 마약 밀매를 하다가 나중에 제조도 하고, 피맛을 본 이후에는 직접 몸에 뽕을 놔서 마약쟁이가 되고 파멸한다는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두삼에게서 박정희를 발견한다면 제대로 본 거라고 친절하고 설명하는 걸 읽고 난 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친절하게 이두삼의 부인을 육영수 여사의 머리 스타일로 변신시킨 장면까지 있었다. 설에 만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는 자기가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박정희가 없었으면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가, 그러니까 이런 경제발전의 세상을 만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오랜 친구의 그런 반응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이 시점에 박정희 말년에 대한 비판 영화가 적절한 것이냐라는 질문은 던질 수도 있겠다.
아마 영화의 기획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에 이루어졌고, 원래의 박근혜 정권 말기를 겨냥한 영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파급력도 크고 논쟁도 더 크게 되었을 터이지만 갑자기 시작된 문재인 정부에서 이 영화는 이미 몰락한 박정희 정부와 그의 딸인 박근혜 정권도 과거의 일이 된 상황에서 이들 부녀의 정권이 이렇게 추악했다는 걸 환기시키는 역할 정도에 그쳤다. 이두삼은 직접적으로 박정희와 악수하고 대면하는 위치에 올랐고, 권력의 중요직에 있는 여러 인물에게 뇌물을 바쳤다. 박정희 사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는 이두삼의 수첩에는 여러 권력자들의 연락처가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적혀있었다.
후반부의 텅빈 저택에서 엽총을 쏘아대는 이두삼의 광경은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상당히 길게 묘사된 그 장면에서 감독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을까?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는 폭군의 말로?
스윙 키즈는 어떤가. 작년 초에 이런 영화가 올해 개봉한다는 씨네21의 기사에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탭 댄스를 추는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줄거리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거제 수용소에서 탭 댄스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 엄청난 거리감은 결국 영화의 설득력을 무너뜨렸다. 강형철의 예전 작품인 써니는 웃음 포인트는 많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몇 장면 때문에 좋게 평가할 수 없었다. 스윙 키즈는 비극의 장소인 포로수용소에서마저 많은 웃음 포인트를 넣었고 어떤 지점에서는 설득이 될 뻔도 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영화를 본 후에 많이 찾아서 읽어보았다. 나로서는 뜨악한 설정은 기록사진에서 수용소에서 탈춤 추는 걸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완전한 판타지는 아니라는 것이고, 영화는 뮤지컬 원작이 있다고도 한다. OK. 영화가 흥겨운 전반부와 광기의 후반부로 급격히 전환되는 이유에 대해 감독은 뻔한 전개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막판 주인공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설정에 대해 친구는 B급, C급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라 평했다. 하지만 거제수용소의 실제 역사를 감안한다면 감독이 비극의 결말을 제시하며 남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의 비극을 환기한다는 그 취지에는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인 하사, 가짜 전쟁영웅의 동생인 북한군 포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게 들어온 민간인, 뚱뚱한 영양실조의 중국군 포로, 젊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스윙 키즈 탭 댄스단은 여러 마이너리티들의 조합이자 전쟁 참전국들이 고르게 포함된 다층적 메타포일 것이다. 결국 이 순진무구한 존재들은 이데올로기의 광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다(미국인은 죽지 않는다. 그들이 살인자였다). 감독의 취지는 남북 화해 모드의 현실에서 이 관계가 다시 옛날처럼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포로 수용소라는 장소를 그저 용광로 같은 소재로 보지 말고 그 비극성의 역사적 심각함을 생각했어야 한다.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 할 기획이라고 본다.
영화 개봉 초기의 반응은 칭찬 일색이었다. 특히 언론 기사, 리뷰는 거의 하나도 빼지 않고 긍정적이었다. 흥행 참패 이후에서야 150억 투자한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책임감이 없었다는 때늦은 비판이 나오긴 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열연, 새로운 배우들의 발견, 신나는 탭 댄스, 올바른 영화의 취지까지 흠을 잡지 않으려면 장점은 많다. 그러나 보헤미안 랩소디가 역주행 흥행을 하는 상황에서 몰살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은 너무 어두웠던 모양이다. 그 반작용인 것처럼 극한직업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지금까지 흥행 싹쓸이를 하고 있다.
PMC 더 벙커는 송경원 기자가 세 작품 중 그나마 후하게 평한 영화였다. 많은 대사가 영어로 처리되는데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장르적 차원에서는 호의적으로 평할만한 영화였다. 특히 막판에 낙하산 씬과 미사일 씬은 한국 영화에서 이런 것도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다룬 이 영화에서 대선 투표일에 출구 조사 결과가 대통령이 인터뷰하는 와중에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장면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눈여겨본 것은 하정우가 맡은 배역의 이름인 에이햅이다. 에이햅은 모비 딕의 그 유명한 선장 캐릭터다. 선장, 캡틴. 에이햅이 다리를 잃은 것은 흰 고래 때문이고 그 고래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집착이 소설의 줄기다. 이 영화가 소설의 에이햅과 같은 것은 한쪽 다리를 잃은 캐릭터라는 점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에이햅이 의족을 한 이유는 낙하산에서 한 명을 더 안고 내려와서이고 이는 죽어가는 동료를 데리고 다녀야하느냐는 영화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는 문제와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죽어버리더라도 그냥 놔두면 속절없이 죽을 동료를 살려보겠다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영화의 대답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냥 두면 죽을 북한 의사를 애써 살려내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 모비 딕이 죽을 것을 알면서 죽으러가는 이야기라면 영화는 노력해도 동료가 거의 죽을 걸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려보는 노력을 해본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복잡하게 돌아가서 미국이 대선일에 서울 하늘에서 미사일을 북한 소행으로 위장해 날리고 막고, 중국이 북한을 먹으려고 하기도 하고, 중국과 미국이 공중전을 벌이는 등 살벌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잘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 모든 소동의 결과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하는 모양인데 한반도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정우는 사실상 미국인이고 이선균은 북한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한국 땅에서 살아남아서 나중에 어떻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 영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남북 관계를 다룬다. 스윙 키즈가 이념 대립의 극한에서 전쟁을 벌이던 과거를, 마약왕은 일본이라는 제3국을 경유한 남북 민간 합작의 한 형태를, PMC는 가상의 미래에 지하 벙커에서의 전투를 그린다. PMC는 굳이 따지면 남한 쪽은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미군과 북한군 그리고 민간 전투 집단들의 조합. 근래에 북한을 다룬 영화는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한국 내의 사건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총기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좋은 소재였을까? 북한을 전반적으로 악마처럼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하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실제 북한의 모습과 영화 속의 그 모습들은 얼마나 닮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가상의 전형을 만들어 놓고 답습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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