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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6일 화요일

아카데미 시상식, 콜드 워, 그린 북, 트루 디텍티브 시즌 3

연례행사인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나갔다. 어제는 다른 볼 일이 있다보니 시상식을 라이브로 보거나 소식을 곧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예전처럼 작품상을 엉뚱한 작품에 수여할 뻔한 사고도 없었고, 워런 비티가 다시 나오지도 않은 모양이다. 대신 로마는 이번에도 주요 부문의 상을 받아갔고, 10개의 후보가 되었다는 더 페이버릿은 여우주연상만 받아갔다. 가디언에서는 시상식 전에 거의 글렌 클로스의 수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기사를 냈던 바 있지만 실제로는 올리비아 콜먼의 수상으로 끝났다. 이전에 골든 글로브, 바프타 등에서 계속 올리비아 콜먼이 받았는데 왜 글렌 클로스의 수상을 점쳤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처음 아카데미에서 후보로 오르고 삼십 몇 년을 기다렸다는 글렌 클로스는 이번에도 수상하지 못 했다.

놀랍게도 라미 말렉은 이번에도 남우주연상을 받아갔고,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그린 북의 작품상 수상이다. 가장 마지막에 수여되어 시상식 최고의 영예로 간주될만한 부문에서 그린 북이 수상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되었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백인 구원자'라는 흔한 소재라는 점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돈 셜리 친척 쪽에서 문제를 삼기도 했고, 무엇보다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이자 각본에 참여한 아들 닉이 이슬람 혐오 트윗을 했던 전력이 문제가 되었다.

영상이 아닌 사진 한 컷으로만 접했지만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피아노에서 얼굴을 맞대고 어 스타 이스 본의 노래를 부른 장면은 트위터에서 많은 구설에 올랐던 모양이다. 이 영화는 많은 상을 받을 것 같다는 예상이 많았지만 이번 시상 시즌에서 거의 레이디 가가 정도만 상을 받고 말았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최종 단계에서 외국어 영화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비키 가조쿠나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콜드 워조차도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에 수상의 영광을 양보해야했다.

콜드 워는 폴란드 출신 감독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다. 부모님이 젊은 시절 침대에서 뒹구는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지만 이 남녀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았다. 스승과 제자와 같은 관계로 시작된 이 둘의 만남은 베를린, 크로아티아, 파리, 폴란드를 거치며 많은 굴곡이 있었다.

김혜리 기자의 평가에서 좋은 포인트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둘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지위가 변하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최종적으로 남자는 고문으로 인해 손이 망가져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고, 여성은 폴란드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차지한다. 막판의 장면들로 보건대 여성은 다른 남성과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은 듯 했는데, 그렇지만 이 두 남녀는 기어이 결혼을 한다. 그렇다면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언제 태어난 것인가? 혹여 감독의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남성이었던 것인가 궁금해졌다. 만약 어머니가 이미 다른 남성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것이라면 어머니가 이후의 삶에서 이전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없었을 터인데 영화는 많은 것이 생략되어 그런 부분은 그저 궁금해할 따름이다.

냉전의 시대에 자유 세계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공산 세계의 삶을 잘 상상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감독의 어머니가 자유의 상징과 같은 공간인 파리에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에 돌아간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지옥같을 수 있음도 생각해본다.

논란의 영화 그린 북에 대해 한국에서는 평이 좋은 것 같다. 너무 영리하고 치밀하다는 평가도 들어봤는데, 영미권에서는 여러 논란 때문에도 그렇고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전형성을 얼마나 벗어난 것이냐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들이 많았다. 결국 돈 셜리 입장이 아니라 토니 발레롱가 쪽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보니 토니가 미화되었을 것이다.

마허샬라 알리가 연기한 돈 셜리는 피아노 연주를 하며 백인 상류사회에서 섞일 수 있는 입장권은 갖고 있지만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자신이 연주하는 장소에서조차 식사를 할 수 없는 웃긴 상황을 마주한다. 그는 그런 상황을 알면서, 그린 북에 나온대로 흑인 전용 시설을 이용해야함을 알면서 그런 흑인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그 투어를 견뎌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케네디와 킹 목사의 시절의 남부는 큰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돈 셜리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마허샬라 알리는 며칠 전 종영한 HBO의 시리즈 트루 디텍티브 시즌 3의 주연이기도 했다. 이 시리즈가 시즌 1의 강렬한 인상 이후 시즌 2의 상대적인 폭망(?) 이후에 시작되어 많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는데 다 끝난 후에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이번에는 레딧에서 많은 설들을 읽지 않았기에 중반에 이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의아한 적도 많았지만 시즌 피날레는 일찌감치 사건의 전말을 해명하고 나서 이후로도 긴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시즌 1에서처럼 악마같은 범죄자는 시즌 3에 없었다. 불행한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의 실수는 소년의 죽음을 초래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애매한 한 소녀는 어쨌거나 성인이 되었고 의외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평생을 죄책감에 살았던 한 형사는 이제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손녀 그리고 한동안 멀어졌던 형사 동료이자 친구와 함께 편안한 여생을 살아갈 것처러 그려졌다. 하지만 손자, 손녀가 자전거를 타는 풍경은 시리즈 초반에 범죄의 대상이 된 그 소년, 소녀를 즉각 연상시켜 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의문에 빠지게 만든다. 한국 영화 써니 때의 리뷰에서도 썼던 것 같지만 아이들의 미래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때 이른 죽음에 이를 수도 있고, 누구보다 오래 살 수도 있고, 사회적 성공 가도를 달릴 수도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아이들의 의지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들을 보살필 어른들의 세상과의 작용의 결과일 수 있다.

알리가 연기한 웨인 형사는 베트남 참전 경험이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베트남의 정글로 들어가는 회상 장면인데, 그가 아내에게도 털어놓지 못 하는 지옥도가 펼쳐졌던 모양이다. 노인이 된 웨인은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앓고 있는데 이것이 베트남전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노인이 된 상태에서 아주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때로는 그가 정말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기억상실 상태를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니까 정신이 말짱한데 아닌 척 하는 것인지 애매한 부분도 있었다. 시즌 피날레에서도 그랬는데 나는 그가 죽은 줄 알았던 줄리 퍼셀을 대면하고는 알아본 것으로 이해했는데 미국의 리뷰들에서는 기억상실 상태라 몰라본 것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어쨌거나 그가 과거를 통째로 망각하는 상태는 아닌 이상 어느 시점에서는 줄리 퍼셀이 살아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음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 본다. 

문라이트에 이어 그린 북으로 최근 몇 년 간 두 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알리는 무슬림이기도 해서 많은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이번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로도 수상을 할 수 있으니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에 출연할지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