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4일 금요일

Joker (2019)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소문의 영화 '조커'.  호아킨 피닉스는 워낙 예전부터 좋아하던 배우라 출연작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그가 DC 코믹스의 영화에 출연한 것은 의외였는데 그 결과물은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호평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영화의 주제가 애매하다거나 도덕적이지 않다는 부정적 평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약간 졸린 상태로 보았는데 수면 부족이라는 영화 외적인 원인이 크지만 영화가 후반부가 되기 전에는 졸린 기운을 확 깨울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만화, 그래픽 노블 원작의 영화에서 기대하게 되는 액션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영화였고, 내가 그런 걸 기대한 것도 아니긴 했다.

배트맨 중심의 기존 영화들에서 조커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할 빌런 역할이었다. 그의 내면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그 빌런을 전면에 내세워서 정신이 온전치 않고 육체적으로도 그다지 강하지 않은 낮은 계급, 실업자 남성 아서 플렉이 어떻게 조커가 되는지 그 과정을 펼쳐보인다.

첫 장면에서 아서 플렉은 거울 앞에서 광대 분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광대 등을 요청하는 곳에 보내는 인력파견업체 소속의 노동자였다. 그는 어느 폐업 정리 중인 업체 앞에서 광고판을 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어느 청소년들 무리에게 광고판을 빼앗긴 후 집단 구타까지 당했다. 영화속 사회상을 보건대 아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일 이 청소년들은 더 약자로 보이는 아서의 약함을 확인하자 잔인하게 짓밟았다. 쥐, 수퍼쥐가 창궐하고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고담의 상징적인 한 단면이었다.

이후 아서의 궤적은 몇 가지 이야기 축을 통해 진행된다. 이웃집 여자 소피, 머레이 프랭클린, 어머니, 웨인 가문, 동료가 건네준 총 등이다.

이웃집의 소피는 어린 딸이 있는 젋은 흑인 여성인데, 앨리베이터에서 둘이 처음 만났는데 복도에서 헤어지며 무슨 이유인지 아서를 보며 자신의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아서도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 다음날인지 아서는 소피를 하루 종일 따라다녔고, 그 날 저녁 소피가 아서를 방문해 자기를 하루 종일 따라다녔냐고 추궁했다. 이후 어느 사건을 계기로 둘이 사귀게 되는데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듯 이는 망상이었다. 그래서 어디부터가 아서의 망상인지가 관건이 된다.

머레이 프랭클린은 아서와 어머니가 즐겨보는 TV 쇼의 진행자다.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론계에서는 마틴 스코세지의 옛날 작품들인 '택시 드라이버', '더 킹 오브 코미디'와 직접 비교가 되고 있다. 택시 드라이버는 영화 주제의 측면에서, 더 킹 오브 코미디는 로버트 드니로의 바뀐 입장, 드니로의 자리에 들어간 아서 플렉, 호아킨 피닉스의 위치 등이 비교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번 영화 조커가 너무 낡은 틀을 가져다 쓴 것은 아니냐는 비아냥도 받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아서는 머레이 프랭클린을 코미디를 하고 싶은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는데, 사건의 우연하고 잔인한 전환에 의해 머레이가 자신의 쇼에서 처음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는 아서의 영상을 조롱하게 되고, 또 공교롭게 그 일로 아서의 영상이 화제가 되자 아서가 머레이의 쇼에 출연하고, 그 기회에 아서는 '조커'로서, 자신을 쇼에서 '조커'로 불러준 그 창시자, 아버지를 총으로 사살한다.

어머니와 웨인 가문의 흐름은 연결되는 이야기 구조다. 어머니는 토마스 웨인에게 자꾸 편지를 보내며 답장을 기다린다. 토마스 웨인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낮의 이름으로 유명한 배트맨의 아버지다. 하지만 기다리는 편지는 오지 않고, 왜 자꾸 토마스에게 편지를 부치라는지 궁금해진 아들은 편지를 뜯어보고는 충격적인 문구를 발견한다. 어머니는 아서가 토마스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충격을 받은 아서는 토마스에게 접근해 추궁했고, 어머니는 정신이 이상하다, 너는 입양된 애다라는 말과 함께 주먹질로 답을 받았다. 젊은 시절 정신병원에 있는 어머니 장면이 나오며 모든 것은 어머니의 망상이라는 결론이 난 듯 했지만 후반부 젋은 시절 어머니 사진 뒷면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T. W.의 손글씨가 적혀있었다. T. W.는 누가 봐도 토마스 웨인으로 추측되고, 후반부의 증거이기 때문에 오히려 아서가 정말로 토마스의 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한다. 아까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화 관련 글에서 아서 어머니가 여러 남자를 만났다는 설명이 영화에 있었다는데 나는 기억에 없어서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주장도 입양이라는 웨인 집안의 설명은 기각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아서가 입양아라면 어릴 적에 그를 학대해서 정신이 온전치 않게 만든 어머니의 행동이 조금은 더 이해가 갈 수도 있지만, 친자식이라고 하면 모자가 모두 온전치 않은 상황이 어떤 유전적인 질병처럼 이해가 쉽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어머니는 남자에게 버려진 충격 때문에, 자식은 어머니의 학대 때문이라는 다른 이유로 정신이 온전치 않게 된 것으로 해석되어야 맞을 것이다. 결국 토마스는 아서의 지하철 살인 사건으로 촉발된 광대 가면 폭도 중 한 명에게 총을 맞아 죽는데 이로서 아서는 두 명의 아버지 격의 인물을 살인하게 된다.

동료가 건네준 총은 아서에게 자신감을 불어준 중요한 계기가 된다. 아서처럼 광대로 분장하는 듯한 직장 동료는 영화 시작부분에서 아서가 구타를 당하자 권총을 건네주면서 자신을 지키라고 권했다. 아서는 하필 그 총을 어린이 병원에 가지고 가서 춤을 추다 떨어뜨렸고 그 소식을 들은 직장 상사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이후 승객이 거의 없는 지하철 안에서 아서는 자기를 괴롭히는 세 명의 젊은 남성(그들은 직전에 한 여성을 희롱하고 있었다)에게 구타를 당했고, 품 속의 권총으로 세 명을 확인 사살했다. 도망친 그는 어느 외진 공간에서 천천히 춤을 추며 달라진 자신을 확인했고, 망상 속에서 옆 집의 소피와 사랑을 나눈다.

아서가 죽인 세 남자는 웨인의 금융 회사의 직원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로부터 살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정반대의 환호를 받고 광대 가면을 쓴 모방 범죄를 낳았다. 슬픔의 광대였던 아서는 자신을 흉내낸 광대 가면을 보며 기뻐했고, 자신의 모방품의 표정을 따라했다. 광대 가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가면이 가진 자들에 대한 상징으로서, V for vendetta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연상시키며 사용되며 살인 용의자인 아서는 광대 분장의 물결 속에서 자신을 숨기기가 더 편해졌다. 그리고 TV 쇼라는 무대에서 자신의 범죄를 드러내고, 자신을 무시한 머레이를 생방송에서 죽이며 광대 가면들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아서는 고담의 무력한 경찰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체포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의사? 상담사?와 대화를 하다가 자신의 질병인 아무 때나 터지는 웃음을 선보이며 그녀를 살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는 점은 영화의 OST 중 여러 경우가 순전히 아서의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의 음악, 그러니까 영화 제작하는 팀에서 사후적으로 넣었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영화 속의 맥락에서는 그런 음악이 실제로 재생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어느 순간 머릿 속으로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는 것이었다. 그 음악들은 분명 예전 노래였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맞다면 80년대 혹은 이전 시대 미국의 노래일 것이다. 마지막 씬에서도 머릿속으로 자기 혼자 상대방을 죽일 생각을 하고는 웃음이 터지고 음악을 틀고 일을 벌였다.

영화를 해석하는 여러 의견 중에는 마지막 정신병원 씬 때문에 마지막을 뺀 영화 전체의 이야기가 조커가 정신병원에서 하는 망상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조커는 배트맨이라는 이야기의 세계에서 실재하는 캐릭터이고, 영화에서 그 모든 일을 겪고 벌이며 아서가 조커로 변신했다는 전개가 이상한 것도 아니므로 하나마나한 해석으로 보인다. 물론 정신병이 있는 화자는 말그대로 믿을 수 없는 화자이고, 소피와 사귄 부분이 영화 속에서 다 거짓이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으므로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지 더 따질 구석은 있지만 감독이 그 이상 관객을 속일 의도는 없어보인다. 지금은 이 정도까지 쓰고 더 쓸 여력이 있다면 다음 글을 적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