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4일 수요일

트윈 픽스의 템포

새로은 트윈 픽스를 보고 나서 진행이 상당히 느리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미드들이 많은 경우 빠른 전개를 특징으로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어떤 드라마들은 대사가 너무 빠르면서 많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경우도 많다. 그런 영상들에 익숙해진 이후 트윈 픽스를 보면 답답함마저 느껴진다.

파트 1의 초반에 뉴욕 고층 건물의 유리 박스 장면이 대표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유리 상자와 그 내부를 촬영하는 카메라 몇 대가 느릿하게 보여지고, 그 방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스피커를 통해 지시가 가끔 내려오면 그대로 이행할 따름이다.

빨간 방 속 인물들의 대사도 느리고, 거인의 말도 느리다. 별 일도 아닌 듯한 대사를 듣기 위해 시청자들은 많은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갑자기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법도 없다. 연옥과 같은 빨간 방 속에서 쿠퍼가 가끔 이상한 일을 갑작스럽게 겪긴 하지만 그 갑작스러움 조차도 길게 묘사가 된다.`

듀코브니의 재등장은 예기치 못 했다. 지난 주 정도의 뉴스를 보니 트윈 픽스로 가장 성공한 배우가 바로 듀코브니라고 한다. 사실 트윈 픽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후 성공적인 배우 커리어를 이어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린치가 배우로서 깊숙히 이번 시리즈에 개입한 것도 관심거리다. 트윈 픽스의 이야기는 린치와 프로스트가 만들어냈고, 린치는 이번 시즌 3 전체의 감독을 맡았다. 그런 그가 예전과 달리 배우로서도 많이 출연할 기미가 보인다.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마침내 트윈 픽스의 귀환

2년 전의 약속대로 트윈 픽스가 돌아왔다. 1990~91년의 원래 시리즈에서 25년 후에 만나자던 로라의 대사가 거짓말처럼 지켜졌다. 물론 제작 기간 때문에 셈에 따라 26 혹은 27년 후에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지만 정확히 25년 후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시즌1, 2가 미국의 공중파에서 방영된 것과 달리 이번 시즌은 케이블 채널인 쇼타임에서 방영된다. 그런만큼 폭력과 노출의 수위는 영화판처럼 높았고 난해하기로 따지면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여서 별로 일반 TV 시청자를 위한 드라마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실제 방영 직후 타임지 온라인 판의 리뷰는 시청자에게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은 이 드라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우선 1, 2번 에피소드가 한꺼번에 방영되었다. 마치 27년 전 충격적인 트윈 픽스의 첫 여정이 두 개 에피소드 분량의 파일럿으로 시작된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온라인을 통해서는 3, 4번 에피소드까지도 공개되었다. 한 에피소드마다 거의 한 시간을 꽉 채우고 있어 최종적으로 18회까지 방영될 이번 시리즈는 18시간의 쉽지 않은 여행이 될 터이다.

방영 전 뉴스를 통해 원작 출연자 중 의외로 많은 얼굴들이 이번에 참여해서 놀라웠다. 파이어 워크 위드 미 시절부터 이탈한 출연진도 있었고, 밥 역할의 프랭크 실바와 로그 레이디처럼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벤자민 혼과 그의 동생 같은 인물도 재등장한다. 하지만 많은 인물들이 에피소드 2까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공간적 범위가 트윈 픽스를 벗어나 뉴욕과 사우스 다코타, 라스 베가스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에 새 공간의 새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다보니 정작 트윈 픽스의 기존 인물 중 얼굴을 내비친 사람은 몇 명 없다. 새로 참여한 엄청난 네임 밸류의 배우들이 언제 등장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는 벤자민 혼의 호텔에 비서로 출연한 애슐리 주드 정도가 있었다.

몇 개의 언론 리뷰들을 읽어봤는데 대체적인 줄거리는 25년 동안 붉은 방에 사로잡힌 쿠퍼가 세상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데 일치한다. 세상에는 25년 전 밥에 사로잡혀버린, evil 쿠퍼가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나중에는 더기라는 또 다른 버전의 쿠퍼도 세상에서 살고 있음이 드러나는데 이 존재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이야기에서는 붉은 방의 쿠퍼가 더기와 교환되는 형식인데..

물론 새로운 살인, 기괴한 살인이 등장한다. 로라 팔머의 살인에서 신체훼손은 없었으나 이번 트윈 픽스의 살인(들)은 지나치게 끔찍하다. 미스터리는 더 커졌고, 그에 발맞춰 린치의 카메라워크는 시청자의 눈을 말그대로 어지럽게 만든다. 이미지들은 흔들리고, 춤을 추고, 땅이 갈라지고, 눈 앞에서 갑자기 등장하거나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거인, 작은 나무 모양의 '팔(arm)', 외팔이 남성, 로라 팔머의 수수께끼가 던져지는 가운데 뭐가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린치와 프로스트가 만든 이 트윈 픽스의 세상은 2년 동안 여름마다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군 미스터 로봇이나 봄마다 돌아온 게임 오브 쓰론처럼 쉬운 예측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우리가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것인지를 쇼가 끝난 이후에도 한참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여하튼 귀환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