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9일 수요일

네이버 이북 카페의 분열

전자책, 이잉크(e-ink) 기기를 써본지 오래된 편이다. 아주 예전 대학생 시절(?)에 중고등학교 동기가 소니의 전자책 단말기(모델명은 모르겠다)를 당당히 자랑했을 때가 기억난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기업들의 전자책 단말기가 몇 가지 있었고, 삼성도 기기를 만들던 시절이다.

이후 국내기업 파피루스(?)에서 페이지원이라는 기기를 18만원인가의 가격으로 내놓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것이 내 전자책 리더 생활의 시작이었다. 페이지원은 여러모로 좋은 기기였지만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리며 전자책 기기도 안드로이드 기반 단말기의 시대로 전환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내가 네이버의 이북카페에 가입한 것도 페이지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나는 아이리버와 KT가 합작한 단말기를 두번째로 소유했고, 킨들 시리즈를 비롯해 한국epub의 크레마 시리즈, 중국의 오닉스 제품들, 소니의 dpt 시리즈 등도 사용해보았다. 나름 여러 기기를 사용해보았는데, 일단 이북 리더기를 써보면 여러 개를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써보게 마련이라 특이한 경우도 아니다.

이북카페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얻었다. 안드로이드 기기의 시대가 오며 루팅이라는 걸 해야했기에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카페에서 많은 글을 읽었지만 직접 글을 쓰는 일은 별로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 나는 글을 별로 안 쓴다.

그런데 얼마 전 최근 많이 들락거리는 커뮤니티에서 최신의 이잉크 액정의 스마트폰을 소개하는 글을 보았다. 전자기기들이 많이 소개되는 커뮤니티지만 이잉크 이용자들이 많아보이진 않는 곳이었다. 리뷰를 읽어보니 구미가 당기는 기기인지라 검색을 해보니 관련글이 많은 카페가 있었는데 네이버 이북카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름은 이북카페나 별로 차이가 없는, 들어가보니 같은 성격의 카페인 것이다. 또한 이북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이용자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은 무엇인가? 왜 이북카페라는 대표적인 이북 리더기 카페가 있는데 같은 걸 왜 만들었지? 여기 회원수는 왜 이렇게 많지? 등 온갖 궁금증이 생겼다. 카페가 생긴지는 이제 1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잠정적으로 알아낸 바로는 2018년 7월 12일을 기점으로 이북카페의 여러 이용자들이 탈퇴하여 새로이 카페를 만들었다. 그 자초지종은 이북카페에서 게시글 3개의 등업 조건을 채우고 판매글 혹은 홍보글만 올리고 사라지는 이용자들을 제재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졌고, 운영자는 날선 반응으로 대응했고, 이에 반발한 많은 회원들이 이동한 것이었다. 이북카페는 자주 가는 곳인데 그런 사건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새로운 카페의 존재를 1년 반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는 것에도 놀랐다.

이북카페의 운영자가 이 카페는 내 것이니 나갈 테면 나가라는 식의 글을 올린 모양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많은 정보글 작성으로 이북카페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작성글을 남김없이 삭제하여 자기 것에 대한 소유권을 표현했다.

현재로서는 2018년 7월 12일 언저리의 글이 많이 사라져 정확한 경과는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두 개의 이북 리더기 카페에 가입되어있다. 그렇다고 어디에서건 글을 자주 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카페 혹은 어떤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것이 아무리 잘 돌아가도 결국 주인은 정해져있고, 돈을 버는 건 그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된다.

2020년 1월 19일 일요일

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12 멍키스의 감독인 테리 길리엄의 최근작은 돈 키호테에 관한 영화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거의 시작점이면서 역대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테리 길리엄이 만들었다는 점 만으로도 엄청난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주연 배우는 최근 가장 핫한 남자 배우인 아담 드라이버와 역시 좋은 작품들에서 비중있는 연기를 펼치는 조나단 프라이스다. 그런 상황은 이 둘이 작년 말 넷플릭스의 전략적 아카데미 후보용 작품인 매리지 스토리, 더 투 포프스의 주연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살펴보지 않았지만 수상 소식을 들은 바도 없고, 사람들이 거론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미치광이 이야기로 치부되는 돈 키호테는 너무 오래된 식상한 이야기고, 테리 길리엄은 브라질을 만들었던 아주 오래된 감독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개봉 소식을 듣고는 현기증을 일으킬 이 작품을 막상 접하고는 몇 번이나 초반 몇 장면을 넘기지 못했던 걸 보면 이 영화에 존재하는 어떤 장벽이나 결함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드디어 어제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고, 결국 '망작'은 아니라는 결론은 얻을 수 있었다.

돈 키호테 이야기는 오래된 만큼이나 많이 변주되어 왔고, 철학자들의 사유를 자극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기사도 소설을 너무 읽어서 소설 이야기가 진실이며 자신은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라고 믿게 된 어느 스페인 사람이 기사도 여행을 떠나며 벌이는 여러 에피소드가 소설의 주를 이른다. 돈 키호테 1권의 성공에 힘입어 나오는 2권은 1권에서 모험을 펼친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돈 키호테를 다룬다는 점에서 푸코의 상상력을 키운바있다. 소설은 픽션, 허구라고 하지만 두 권에 걸친 돈 키호테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가 몇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조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영화로 만들자 이 층위는 다시 몇 배로 복잡해졌다.

영화의 초반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 키호테가 등장한다. 말 그대로 소설 책과 그 안의 문자들이 1차 텍스트로서 제시된다. 이어서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든 장면이 등장하고, 또 이어서 그 장면을 촬영하는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등장한다. 이미 세 가지 차원이 등장한 것인데, 근래 일본 영화로 화제를 일으킨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연상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극중 돈 키호테 영화의 감독인 토비(아담 드라이버)는 유명한 감독인데, 10년 전 첫 연출작으로 이미 돈 키호테 영화를 찍은 바 있다. 그 첫 작품의 제목이 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였다. 그는 새 돈 키호테 영화를 찍으러 스페인에 온 도중에 자신의 첫 작품의 DVD를 발견하고 다시 돌려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첫 작품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했고, 영화를 보며 그 속의 주인공들을 다시 찾게 된다. 10년 전 돈 키호테 영화라는 네 번째 차원이 등장한 것이다.

토비가 돈 키호테 역할을 했던 남성(조나단 프라이스)을 찾아가니 그는 여전히 자신을 극중 역할인 돈 키호테라고 믿고 있었다. 400년도 더 전에 탄생한 캐릭터가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미 조짐은 10년 전 촬영 장소에서 보였다. 토비는 원래 구두를 만들던 남자를 배우로 만드는 과정에서 연기 지도를 많이 했고, 그 남자는 연기 상황이 아닌 때에 칼을 휘드르며 돈 키호테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돈 키호테라고 10년 동안 주장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그의 광기를 이용하여 중개자로서 돈을 벌고 있었다.

토비와 재회한 자칭 '돈 키호테'는 즉각 토비를 산초 판사라고 규정했다. 토비는 보통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영화의 캐릭터가 자신을 또 다른 캐릭터로 규정한 이후 이 새로운 세계에 합류한다. 그는 환상을 체험하는데 무가치한 화폐를 스페인 제국 금화로 착각하고, 양이 자신의 얼굴을 핥는 것을 여성(안젤리카)의 키스로 오해하기도 했다. 안젤리카를 가짜로 화형시키는 장면을 중세 마녀 사냥처럼 보며 절규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황량한 그 마을의 세팅은 돈 키호테가 현대 문명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그의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방해했다. 물론 돈 키호테는 대도시를 보더라도 마법사의 장난이라고 가볍게 해석해낼 수는 있다.

이렇게 10년 전의 과거가 현재의 토비의 현실을 바꾼 것이 또 다른 차원이다. 그리고 원래 소설의 내용을 영화로 만든 테리 길리엄의 차원도 있다. 그는 이 복잡한 여러 겹의 이야기를 원작 소설의 핵심 장면들과 엮으려고도 노력했다. 그래서 그 유명한 풍차/거인에 대한 공격씬이 여러 돈 키호테들에 의해 연출되었고, 가짜 말을 타고 하늘로, 달로 날아가는 돈 키호테도 등장하고, 돈 키호테를 집으로, 제정신으로 돌려보내려는 이웃 지인들의 노력도 등장했다. 그가 영화 초반에 25년간 제작을 하다가 포기하다가 겨우 만들었다는 자막을 넣은 것도 이해할만하다. 지금 살펴보니 국내의 감상평은 대개 황당한 이야기라는 반응이고, 해외의 평도 60점대로 대중적인 평이 어중간하다.

영화 속 돈 키호테는 토비로 인해 사망하고, 이어서 토비는 자신이 또 다른 돈 키호테라고 자임하며 결론이 난다. 창조자가 핵심 캐릭터를 죽이고, 자신이 그 역을 취한다는 묘한 관계의 전환이 일어난다. 그는 감독에서 산초 판사로 격하되었다가, 돈 키호테로 변신한 것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산초가 생겼다. 겉보기로는 허구에 너무 탐닉하다가 탄생한 또 하나의 미치광이에 불과하지만 보스와 돈줄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반기를 들고 10년전 젊은 시절의 순수성으로 회귀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원작 소설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 소설이 모든 장면을 다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부분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인상깊은 장면은 토비가 안젤리카의 아버지 라울과 재회한 부분이다. 둘은 처음에 스페인어로 이야기하지만 토비가 화면 하단에 등장하는 자막을 손으로 치우면서 우리는 이런 게 필요없다며 이후 영어로 대화를 한다. 스페인의 시골 식당 주인인 라울이 영어를 할 일은 거의 없고, 토비가 스페인어를 할 수는 있지만 유창하지는 않아서 둘의 소통이 쉽지는 않지만 그런 '사실적인' 설정은 걷어치우고 내용/스토리에 집중하자는 선언처럼 보였다. 혹은 허구의 세계, 소설의 세계, 영화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한 창조자의 상황을 보여주고 이어지는 난관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