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0일 화요일

The King: 사기다! (strong spoiler)

이 투 마마에서 처음 접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라틴계의 미소년 쯤으로 여겨졌다. 아마로 신부의 죄에서는 처녀가 애를 배도록 만든 신부 역할을 맡아서 좀 깬다 싶었다. 수면의 과학에서도 범상치 않은 역할이었고, 그나마 바벨에서는 이해할만한 인물을 연기했다. 하지만 난 평범한 캐릭터보다 희한하고 엽기적인 캐릭터에 더 열광하는지라 이 배우가 마음에 들었다.그런데 베르날의 영화 중 내가 놓친 영화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영화를. 바로 더 킹이다.

아주 우연히 그리고 급작스럽게 더 킹을 만났다. 매달 발급되는 알라딘의 맥스무비 할인쿠폰을 이용해서 급하게 볼 영화를 찾던 와중에 씨네큐브에서 이 영화가 상영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혼자 보기에 좋은 영화인 것 같아 덥썩 예매했다.

극장에 가기 전에 영화 정보를 확인하지 않아서 신작 영화인줄 알았고,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계속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미 2005년에 개봉되었단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영화를 보고 시간이 꽤 지난 시점이라 기억이 많이 사라진 것이 아쉽지만 영화의 내적 논리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보는 재미를 느낀 흔치 않은 영화였다. '~의 왕'도 아닌 더 킹이라는 대범한 제목을 건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주요 줄거리는 막 제대한 엘비스(베르날)가 죽은 어머니가 남긴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만난 적이 없는 아버지를 찾아나서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다. 핵심은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윌리엄 허트(데이빗, 아버지 역),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엘비스, 데이빗의 사생아), 펠 제임스(맬러리, 데이빗의 딸), 폴 다노(폴, 데이빗의 아들), 로라 해링(트윌라, 데이빗의 부인)이다. 사진 속에 나타나듯 원래 가족의 일원인 폴 다노는 사라지고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연히.

느닷없이 아버지를 처음 찾아간 날 엘비스는 가혹하게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했다. 데이빗의 논리는 예전의 사고는 안타깝지만 지금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엘비스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현실을 거부하고 거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 복수 과정에 이복동생과의 사랑이라는 변수가 개입하여 문제는 아주 복잡해진다.

여동생 맬러리와 엘비스가 심각한 사이라는 것을 눈치챈 폴은 엘비스를 찾아가 따졌고, 나중에 엘비스는 아니라고 했지만 내 생각엔 다분히 고의적으로 폴을 살해했다. 영화 전반부에 폴이 데이빗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는 말이 거듭해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었는데, 그 아들이 사라진 것이다. 가족은 큰 위기에 빠진다.

영화의 배경으로 깔리는 교회의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는 교회와 기독교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데이빗은 지역 사회에서 신뢰를 받는 목사지만 목회자가 되기 이전에 엘비스라는 사생아를 낳았다. 하지만 신의 은총으로 과거의 과오는 용서받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신이 자신의 과거를 지워줬다고 믿었는지 몰라도 그 무책임함은 결국 부적절한 아들이 적합한 아들을 살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내와 아들, 딸 한 명씩을 둔 단란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욕심은 부적절한 아들을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집으로 불러들였고, 결국 아내와 딸까지 잃고 만다. 이제 그가 적합하다고 믿은 가족은 사라지고 원래 가족이 되었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원래의 아들(엘비스)만이 남는다. 그 아들은 묻는다. 신은 나를 용서할 것인가?


마침내 데이빗은 비록 사생아지만 엘비스가 자신의 아들임을 교회 내에서 선포했고, 소수의 신도는 저주를 하며 떠났지만 많은 이들은 아름다운 장면이라며 박수를 쳤다. 현실의 아들이 사라진 이후에 많은 무리를 하며 받아들인 또 다른 아들.


맬러리는 오빠를 사랑하고 오빠의 아이를 잉태한 것을 나중에야 알았고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엘비스는 태연하게 음료수를 마시며 왕관을 쓴다. 목사인 아버지 데이빗이 기독교의 권위와 가식을 등에 업고 자기를 거부했을 때부터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았던 것일까. 아무도 사생아이자 살인자인 엘비스를 저지하지 못했다. 나는 맬러리가 자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엘비스가 맬러라와 트윌라를 제대하며 은닉해서 가져온 총으로 죽이며 스토리를 완결했다.

영화의 내용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매력적인 십대 여고생 역할을 맡은 펠 제임스가 사실은 30대라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다. 사기 수준이다. 영화 찍을 때는 비록 20대 후반이었지만, 심지어 오빠로 나온 폴 다노는 물론 베르날보다도 나이가 많다. 나는 완전히 10대로 철썩같이 믿고, 성관계 장면을 어떻게 찍은 것일까, 역시 18세는 넘은 배우겠구나 짐작하는 정도였건만.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로라 해링을 다시 만난 것도 반가웠는데 장성한 자식들을 둔 중년 여성으로 나와 이질감이 느껴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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