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영화들을 보며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느낀다. 인공지능, 즉 사람이 설계한 기계의 지적 능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상상하면 종교적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터미네이터>에서처럼 기계가 인간을 없애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인조인간과 사람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벌어지는 혼란에 대한 고전적 영화들은 너무 많았는데 근래 드라마 중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그런 문제를 깊게 다룬바 있다.
작년, 올해 중에 개봉했던 유명작들도 이 주제를 다룬 것들이 있다. 그 중 <허>, <트랜센던스>, <로보캅>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세 작품의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 다르다. <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고, <트랜센던스>는 수퍼컴퓨터에 인간의 지성 혹은 영혼을 업로드하면 어떻게 될까의 이야기였고, <로보캅>은 예전 시리즈의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을텐데 육체로서 최소한의 인간성(정말 최소한인지는 논란의 대상이겠지만)을 갖춘 로봇 혹은 인간과 로봇의 융합체에 대한 이야기다.
<허>는 지금의 현대 사회가 조금만 더 지나면 나올 법한 세상을 그렸다. 이미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치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의 음악, 뉴스, 게임 혹은 팟캐스트에 빠져 주변 사람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웨어러블이 모바일 기기의 새로운 주류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 <허> 속의 세상은 정말 멀지 않은 미래로 보인다. 이미 사람들은 자기 세상에 빠져있는데 만약 귓속으로 24시간 언제나 감미로운 이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맘에 드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를 연기한 운영체제가 인간과 사랑(심지어 육체적으로!?)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만약 빅데이터의 축적이 더 진행된다면 소프트웨어가 그럴듯한 대답을 해낼 수도 있다고 상상할 수는 있으리라.
만약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영혼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한다면 <트랜센던스>는 거꾸로 인간의 정신을 업로드하겠다는 발상을 한 것 같다. 이에 어떻게 가능한지 설득력은 떨어지고, 영화 속에서도 그것이 가능하겠냐고 의심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는 SF라기보다 종교 영화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원래부터 조니 뎁은 신성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컴퓨터와 결합된 이후 진정한 신이 될 수 있었다. 신성을 가진 기계,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지구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수 있고,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거룩한 목표를 위해 행동하는 존재. 그래서 범인들은 이 기계신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고, 그래서-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인 것처럼-살해한다.
로보캅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묻는 방식으로서 기계로 만들어진 사지에 의해 목숨이 지탱되는, 원래 가진 것은 머리와 심장, 허파 정도밖에 남지 않은 한 경찰을 이용한다. 이 사람은 머리는 아직 인간의 것이지만 상업적 이해 때문에 뇌마저 통제당하고 만다. 그러나 기계적 통제는 인간 두뇌의 깊은 능력을 모두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반인반기계 인간은 만든 이들이 보기엔 폭주하고 만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전작의 리메이크고, 주제도 새롭다고 할 것은 없지만 자잘하게 보는 재미가 있다. 트랜센던스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모건 프리먼, 킬리안 머피 등을 끌어들여서 아주 희한하게 무의미한 캐릭터로 전락시키는 실수를 한 반면 로보캅은 미묘하게 배트맨과 연결되고 있다. 게리 올드만이 여기에서도 정의로운 캐릭터로 등장했고, 로보캅은 영화의 상당 분량에서 검은 의상을 입고 다녔다. 검은 의상은 회사의 이익에 끌려다니는 어두운 캐릭터를 상징하기도 하고 존재적 의미에서 박쥐와 연결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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