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트윈 픽스 더 리턴 다시 보기 - 1

트윈 픽스 블루레이 디스크가 인기를 끌어서 많은 구매자들이 아직 못 받고 있다는 소식이 보이는 가운데 아마존의 블루레이 세트 가격은 예매 때보다 십몇 달러 정도 인상되었다. 당분간 사지는 못할 듯 하고 '더 리턴'의 초반 에피소드 몇 개를 다시 보았다.

예상대로 1편부터 다시 보면 몇 달 전 어리둥절한 상태로 보았던 조각들이 더 잘 맞춰진다. '더 리턴'을 18시간 짜리 영화로 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확실히 18편까지 전체를 염두에 두고 봐야, 즉 다시 보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리즈다.

이번에 다시 발견한 부분은 3편 초반에 끝도 없이 어디론가 떨어지는 듯한 장면에서 흔들리는 쿠퍼의 얼굴이 고든 콜 사무실의 카프카 사진의 얼굴과 매우 비슷하게 연출된 점이다. 그 의도가 카프카의 어떤 소설과 연관이 있는지는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빨간 방에서 마이크가 쿠퍼에게 한 이야기는 잘 몰랐던 것을 알게 해준다. 마이크는 빨간 방에 갖힌 쿠퍼가 나가기 위해서는 도플갱어인 미스터 C가 빨간 방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스터 C가 알고 있었고, 손을 써놨다고 말했다. 이후의 전개 과정을 보면 미스터 C가 돌아간 후 쿠퍼가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 더기가 빨간 방으로 들어갔고 쿠퍼는 더기로서 세상에 나왔다.

위의 상황을 감안하면 더기라는 존재는 미스터 C가 빨간 방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이며, 세상에 존재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기가 커리어를 쌓았다는 보험사의 공간과 제이니 이와 소니 짐이 있는 가정의 공간은 모두 미스터 C가 만들어냈거나 혹은 미스터 C가 조작해낸 장소들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드라마의 흐름상 이는 명확해보인다. 미스터 C는 쿠퍼의 암살도 사주했다.

통나무틀 통해 마가렛은 호크에게 인디언의 유산과 연관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라고 했다. 회의실에서 증거물들을 늘어놓은 이후 증거품 중 하나인 토끼 그림이 그려진 초콜릿이 의혹의 대상이 되는데 호크는 토끼가 상관있을리가 없다고 확신한다. 그 과정에서 설마하는 심정으로 돌아가다가도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나듯이 잭래빗의 궁전이 가야할 장소였으니 통나무의 조언은 확실한 정보였다.

쿠퍼가 더기로 세상에 나온 이후의 모습은 어린아이 같다는 이야기는 이미 나온 바 있는데 그는 확실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더기/쿠퍼는 남들이 자기를 미스터 잭팟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받아들였고, 남들이 너는 더기 존스라고 부르자 나는 더기 존스라고 말했다. 자신이 에이전트 쿠퍼라는 의식은 전혀 없었다. 그는 갓난아이처럼 말들을 배우고, 화장실 이용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지만 커피에 대한 본능이나 암살자를 제압했을 때의 반응처럼 쿠퍼로서의 경험이 무의식 상태로 남아있다.

실버 머스탱 카지노에서 CCTV 카메라가 두 번 카메라에 잡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쿠퍼 덕에 두 번의 메가잭팟을 터뜨린 가난한 할머니는 쿠퍼가 잭팟을 떠뜨리고 수거하지 않은 동전을 탐내다가 머리 위의 감시 카메라를 보며 손가락 욕을 했다. 카지노를 떠나 집으로 가려던 쿠퍼는 카지노 사무실에서 돈자루를 받으며 관리자의 위협을 받고는 역시 머리 위의 카메라를 보았다. 그의 의식 수준에서 감시 카메라의 존재를 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물론 그 카메라를 통해 미첨 형제들이 감시를 하는 것이지만 쿠퍼가 그들을 만난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마치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감시를 인식하듯이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이 시리즈에서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다. 처음부터 뉴욕의 고층 빌딩 옥상에서 텅 빈 상자를 멍하니 한참 바라보는 청년이 등장했고, 커다른 TV를 보는 새라의 장면은 초반은 물론 이후로도 몇 번 등장한다. 화이트 로지로 알려진 거인과 세뇨리타 다이도의 공간은 극장처럼 생겼고 극장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보는 행위들은 모두 다른 의미가 있다. 카지노 사무실에서 쿠퍼의 감시 카메라 보기는, 쿠퍼가 눈길이 바로 가는 관리자 책상 위에 놓인 주사위로 만든 펜꽂이를 호기심에 바라보는 행위와는 다른, 마치 카메라가 나를 보라고 명령해서 바라본 것 같은 시선의 이동이었다. 카지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감시 카메라가 출입자들을 다 파악하고 있으니 다시는 카지노에 오지 말라는 관리자의 말을 확인하는 차원의 행위이겠으나 이 때의 쿠퍼가 그럴리는 없다. 요원으로서 쿠퍼의 무의식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 장면은 매우 이상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즉각적으로 어떤 신의 시선을 느낀 피조물의 의식 같은 것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과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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