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5일 수요일

인랑 (2018)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알고 있던 인랑이 김지운 감독에 의해 한국적 맥락으로 변형되어 극장에 걸렸다. 바로 오늘 개봉되었고 마침 시간이 되어 조조로 관람하였다.

예고편만 공개되었을 때 내가 가본 커뮤니티에서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압도적이었고, 최근 며칠 시사회 반응은 좋았다는 글 제목을 얼핏 보았다.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원작과 비교하려고하는 부담감은 갖지 않은 채 편견없이 영화를 보았고, 그 결과 애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영화를 액션 영화로 분류한다면 수준급의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영화 초반의 시위와 테러 장면, 섹트라는 테러 집단을 응징하는 특기대의 진압 과정, 남산 타워에서의 총격 및 차량 액션(특히 드론의 총질이 훌륭했다), 그리고 공안부를 무찌르는 인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우성과 강동원의 대결까지 영화는 액션으로 가득하다.

로맨스 영화로 보면 어떨까. 영화는 최근 실제 연인설이 제기된 강동원과 한효주의 러브 라인을 주요 줄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둘은 처음부터 서로를 이용하여 자신의 혹은 조직의 이익을 챙기려고 했다. 하지만 영화의 화면 배치가 암시하는 바 둘은 남산 케이블카에서의 첫 만남부터 사랑에 빠졌다. 그리하여 인랑이라고 하는 임중경(강동원)은 정우성이 잘 정리하듯 테러리스트인 한효주를 전혀 죽일 생각이 없었고, 조직의 명령을 거역하며 조직을 탈출한다. 하지만 강동원은 북한으로 가는 한효주를 따라가지 않고 역에 남으며 로맨스의 앞날, 결말을 애매하게 만든다.

정치 드라마로 보면 어떨까. 영화는 초반 정우성의 내러이션을 통해 2018년에서 6년 지난 2024년 남북이 통일에 전격 합의한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 부분이 가장 문제적이라고 느껴지는데 왜냐하면 정우성은 '앞으로 6년' 후라며 2018년의 시점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회고가 아니라 예언이기 때문이다. 내러이션의 정우성은 극중 특기대 훈련대장이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2018년 현재 살아있는 배우 정우성이란 말인가? 다시 돌아가면 2024년부터 통일에 반대하는 세력이 무장을 하며 섹트라는 테러 집단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후 영화는 5년이 더 지난 2029년 시점에서 시작된다.

테러 집단의 이름을 섹트로 지은 것은 왜일까? 사실 섹트라면 종교적인 폐쇄 집단의 의미로 사용될 터인데 영화속 섹트가 종교적이라는 암시는 전혀 없었다. 더 구체적인 이름을 지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여하튼 영화의 핵심 배경은 남북이 주변 강대국의 무장화 움직임 속에서 생존을 위해 통일을 결단하지만 공안부로 대변되는 통일 반대 세력이 섹트 같은 테러 조직을 사실상 먹여살리며 공작을 벌였고 특기대가 이런 계획을 분쇄하며 더 공고한 통일의 길로 간다는 스토리다. 그렇다보니 맨 마지막의 어떤 컷은 통일부의 선전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 관계를 해소하는 차원의 통일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음에도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결국 모든 일이 끝나고 DMZ로, 평양으로 그리고 신의주로 더 나아가 유럽까지 열차를 타고 달려가고 휴가를 보내는 꿈같은 일들이 펼쳐질 터인데 공안부의 자기파괴적 공작이 정당화될 수 있겠냐는 항변이 들리는 것 같았다.

현재 한국에는 없는 공안부는 그 깃발 모양에서부터 국정원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한 조직이다. 공안은 공각기동대에서 등장한 조직이고 인랑 원작에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북한 간첩을 만들어내기까지 하며 생존하는 국정원이 통일을 반기지 않을 가능성도 많겠지만 국가정보를 관리할 일이 통일 이후에도 충분히 많을 터인데 국정원을 통일 반대 세력으로 설정한 것은 그럴 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과하다는 느낌이다. 물론 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런 류의 국가 폭력 조직간의 대결을 설정했다고 넘어갈 수 있고 원작에 유사한 설정이 있었다고 짐작도 해본다.

영화가 근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는 방식은 약간 게으른 것 같았다. 사실상 거의 지금 현실을 그대로 가져갔고, 일반 주택가에는 통일에 반대하는 벽보들이 건물 외벽이나 담장을 뒤덮는 것으로서 포인트를 주었다. 차량에서는 택시들이 차 위에 무언가 볼록 튀어나온 형태로 다니는 것이 이색적이긴 하다. 버스의 번호 앞에 알파벳을 붙이기도 하고 전철역 출구에도 알파벳이 붙어서 현재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주긴 한다. 가장 다른 점은 총격전이 서울 중심에서 벌어진다는 것인데, 총기 모델을 보는 눈이 없어 얼마나 적실한 설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특기대의 방탄 능력이 뛰어난 아머? 전투복?과 빨간 두 개의 동그라미가 빛나는 안면 마스크가 가장 지금과 다른 시대라는 느낌을 주었다.

영화는 인간 늑대라는 제목을 스토리 속에서 변주했다. 예고편에도 나오는 것처럼 인간의 탈을 쓴 늑대가 인랑의 진실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사실 인랑의 실체는 영화를 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공안부에서 파악하는 인랑은 특기대 내의 비밀 조직이라는 것인데 영화 후반부의 장면을 보면 임중경만이 인랑인 것처럼 이해되기도 하여 헛갈렸다. 여하간 임중경은 인랑이라는 것이 확정적이고 그는 공안부의 겁없이 무장 안한 애송이들은 물론이고 쿨한 외모로 바주카포를 쏘아대는 공안부 내의 특임대도 홀로 다 물리치는 괴물 같은 전투 유닛이다. 갑옷 같은 전투복이 방탄 기능은 훌륭하지만 아이언맨 같은 능력을 주는 정도는 아닌 것 같고, 등에 짋어진 통 속에서 늑대 같은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스가 입으로 주입되는 건가 의아했다. 그런 전투력으로 왜 영화 초반에 섹트의 리더를 놓쳤을까?

임중경이 인랑이라는 설정을 통해 김지운 감독은 또 하나의 유명한 모티브를 결합시켰다. 바로 빨간 모자 이야기다. 이 모티브는 아주 꾸준하게 등장해서 집요할 정도이다. 영화에는 한효주를 중간으로 하고 초반에 한효주의 여동생 그리고 막판에 남동생이 전면에 등장하는데 이 세 남매 모두가 해당 시점에 빨간 외투를 걸치고 있다. 그에 더해 한효주는 강동원을 자신의 책방으로 유인한 이후 비극적 버전의 빨간 외투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빨간 모자를 누가 죽였나? 할머니? 늑대? 어머니? 그녀는 누구 탓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억울하다고 했다. 이 대사는 엔딩 크레딧 막판에 한 번 더 등장한다.

영화의 주요 기제 중 하나인 2024년의 피의 금요일은 특기대가 잘못된 정보에 의해 무장하지 않은 여고생 10여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임중경은 이 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이고 그 트라우마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그는 한효주의 동생이 섹트의 일원으로서 자폭 테러를 할 순간인데도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 그 여동생은 자폭을 했지만 한효주는 당신이 죽인 건 아니라며 그를 두둔했다. 임중경은 상관 지시로 한효주를 죽여야했지만 역시 죽이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구원했으며, 마지막에는 투병생활을 하던 남동생이 누나와 북한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결국 늑대여야 할 임중경은 세 명의 빨간 모자를 모두 죽이지 않았다. 늑대가 할머니를 잡아먹고 빨간 모자를 잡아 먹는 것은 식욕이라는 욕망의 결과물이다. 물론 할머니를 먹고 배가 불렀을 터인데 금세 손녀까지 잡아먹는 것은 탐욕이라고 해야할 수도 있다. 빨간 모자는 엄마 심부름을 했을 뿐인데 왜 죽어야했나.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 탐욕스러운 늑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부조리한 것은 아닐까?

한효주는 자신이 섹트에 들어가 활동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여겼다. 여동생의 경우는 왜 그랬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언니를 따라 가입하고 활동한 것인지 모른다. 특기대가 학살했던 여고생처럼 그녀도 고1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테러에 사용될 폭탄을 운반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순진했던 그녀, 자신을 둘러싼 특기대를 보며 분노의 자폭을 선택한 그녀는 세계 도처에서 자폭 테러를 하고 내전에 휩싸인 10대 전투원들을 연상시킨다. 그 어린 청춘들은 어른들이 주입한 생각대로 행동하다가 도구처럼 사용되고 그렇게 죽어갔다. 자신의 사고를 하지 못하는 존재는 바로 특기대 대원들이고 또한 공안부의 요원들이다. 그저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면 따지지 않고 움직이는 기계, 로봇, 짐승. 임중경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싶다며 특기대를 떠났고 인간이 되어가는 듯 보였다. 섹트와 공안부 양쪽으로부터 덫에 걸린 한효주는 두 조직이 붕괴되자 자유의 몸이 되었고, 그야말로 아무 죄 없는, 순진무구한 그녀의 남동생은 빨간 옷을 입고도 안전하게 북한 땅으로 떠났다.

생각해보면 빨간 색의 모티브는 한국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를 상징할 수도 있겠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이 되며 당의 색을 빨간 색으로 바꾸는 대변신으로 이 사회에서 빨간 색이 '빨갱이'로 연결될 여지는 훨씬 줄었지만 아직도 어디의 누군가는 종북 세력과 빨갱이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빨간 옷을 입고 북한에 간다는 설정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도발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만하면 다 썼을까? 잘 모르겠다.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처럼 분단 한국의 현실을 다른 모티브와 잘 섞어서 영화로 만들었다. 남과 북은 통일을 하겠다는데 대한민국 내 정부 조직들이 말 그대로의 전투를 벌이고, 어제의 동지가 다른 편에 넘어가 나를 죽이려고 하고, 상관과 부하가 생사의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현재의 남북 화해 국면에서 앞으로 제발 이렇게는 하지 말자는 당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무열과 최민호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끝내야겠다. 김무열이라는 배우는 전에 본적이 없고, 샤이니의 최민호의 연기도 이 영화로 처음 보았다. 김무열은 강동원의 최대 적으로서 매우 비중있는 역을 맡았고 최민호는 비교적 짧게 출연한다.  김무열은 공안부에서 맡은 직책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젋은 얼굴이었지만 설득력있는 연기를 한 것 같고, 최민호는 곱상한 평소의 외모를 많이 망가뜨리며 애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인랑이라는 조직에 어울리는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캐스팅의 이유가 궁금하다. 늑대가 이렇게 고울 수도 있다는 사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