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4일 일요일

퍼스트맨 (2018)

 대미언 셔젤(?)의 신작 퍼스트맨에 대한 반응은 전작들에 비해 미지근하다. 위플래쉬의 폭발적 에너지, 라라랜드의 아름다움(?)에 비해 이 영화는 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웍으로 어지름증을 유발한다. 그만큼 1960년대 달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미국의 조급증은 위험한 사업을 진행했음을 반증하고 있고, 이 영화는 그런 면을 비교적 솔직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케네디가 완전히 무모한 계획을 공언한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인간은 비행기를 타고 대기권을 벗어난 비행을 하기 시작했고, 영화 시작부에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닐 암스트롱은 나사 소속이 아니라 어떤 민간 업체?에서 일하면서 대기권 밖으로의 비행을 경험했다. 그렇게 조금씩 지표면에서 더 멀어진 비행의 경험은 fly me to the moon이라는 낭만적 가사를 현실감있게 만들어나갔다.
 인간을 달로 보내는 과정은 많은 비용이 들었다. 물질적 비용뿐 아니라 오랜 시간 길러낸 미국 최고의 인적 자원들도 희생되었다. 영화에서도 자료 화면이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지금 내 옆에서 힘들어하는 이웃, 미국인이 있는데 도대체 왜 달로, 우주로 가기 위해 터무니없는 돈을 쓰느냐는 항의가 등장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먼저 소련으로 인공위성을 보내고 사람을 태워서 보낸 소련과의 경쟁이었고, 이 경쟁은 단순한 과학 기술의 선봉에 서느냐가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을 비롯한 군사적 위협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문득 소련이라고 인명 희생없이 그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며 그런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영화에서 나온대로 백인들만 달에 갔는데 유색인종의 우주 탐험 참여의 역사도 생각해봄직하다.
 퍼스트맨은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세계적 박스오피스 상황을 보면 한국에서는 비교적 성적이 좋은 편이다. 라 라 랜드에 대한 충성심이 반영되었을 것인데 그럼에도 졸렸다는 반응이 많아서인지 소위 대박 흥행까지는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닐이 달표면에 미국 국기를 세우는 장면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고 분개했고 그것이 저조한 흥행에 기여했다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거야 상관없다.
 개인적으로는 딸이 아기 때에 워낙 병으로 고생을 했던 터라 영화 초반 닐의 어린 딸이 힘들어하다가 죽는 장면부터 왠지 공감이 되어버렸다. 그 괴로운 경험과 기억은 인류 최초로 달을 밟게 되는 닐의 여정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에게 달에 간다는 것은 딸의 죽음을 잊기 위한 새로운 도전같이 보이기도 했고, 그 도전의 과정에서 친구 이상, 거의 가족같은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죽어감에 따라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라도 성공해야겠다는 결의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보편적인 것이라 퍼스트맨 이후 본 영화들에서는 유사한 설정들이 눈에 띈다. 중국 돈으로 만든 에단 호크 주연의 24 hours to live에서 주인공 트래비스는 일 년 전에 아내와 아들을 잃었고 어떤 암살 계획의 진행 와중에 아들의 환영이 귀신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퍼스트맨에서 닐의 눈앞에도 죽은 딸이 종종 나타났다. 12 strong이라는 9.11 이후 탈리반을 물리치기 위한 미군 12명의 이야기에서는 파병이 결정된 이후 군인들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어, 퍼스트맨에서 닐이 달로 가기 직전 두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한 달도 되지 않은 듯 한데 훌루에서는 더 퍼스트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공개되었다. 무려 숀 펜이 주연인데 공교롭게도 우주비행에 대한 드라마였다. 줄거리를 정확히 모르고 봤을 때는 퍼스트 맨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는데 더 퍼스트라는 드라마가 거의 비슷한 이야기로 방송을 한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작년 말과 올 초에 게티 가문의 이야기가 영화와 드라마로 거의 동시에 나왔던 것과 비슷해보였다. 알고 보니 드라마는 달 여행이 아니라 가상의 미래에 화성으로 인간을 보낸다는 설정이었다. 대망의 발사일에 우주선은 출발 얼마 후 폭발해버리고 새로운 우주인들을 모으고 다시 화성으로 가기 직전까지가 이 드라마 시즌1의 내용이었다.
 톰 행크스가 주연이었던 아폴로 13은 아직 안 본 상태인데,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닐 암스트롱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후의 이야기였다. 여하간 퍼스트 맨은 달 탐사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만들어서 HBO가 예전에 만들었던 From earth to the moon이라는 드라마도 볼 예정이다.
 며칠 전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를 다시 보았다. 처음 볼 때는 음악의 작용과 마약 카르텔에 의해 처참히 죽은 시체들의 광경 때문에 인상적이었던 영화인데 두번째로 볼 때는 무엇이 올지 알고 있어서인지 이 단순한 플롯의 영화가 무엇이 대단했던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미국의 20?30?%가 마약을 하지 않았던들 이런 초법적 대처는 안 할 거라는 조쉬 브롤린의 대사가 아마도 영화를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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