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멘은 존 햄을 스타덤에 세운(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드라마이고, 내가 AMC라는 채널을 인지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미 드라마는 종결되었고, 나도 그 엔딩을 보긴 했다. 하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몰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다 시즌1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1편의 맨 처음에 매드멘이라는 말의 뜻이 나온다. 그동안은 왜 여기에 나오는 남자들이 미쳤다는 것인지 궁금했던 터였다. 알고 보니 미쳤다는 게 아니라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광고 회사에 있기 때문에 매디슨의 축약으로 매드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캐릭터들이 평범하지는 않기에 미쳤다는 매드라도 이해를 할 수 는 있다.
존 햄이 연기한 돈 드레이퍼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서 자라며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는데, 한국전쟁을 계기로 도널드 드레이퍼라는 남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광고회사의 중역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그는 모델 출신의 아름다운 아내가 있음에도 여러 여성들과의 외도를 즐긴다. 다만 회사의 주인이자 동료인 로저 스털링이 외도 자체를 즐기는 것과 달리 돈 드레이퍼는 일종의 구원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전에 봤을 때는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돈이 지속적으로 외도를 할 때는 한 명의 여성만 상대하고 있으니 결코 바람둥이는 아니다. 결국 시즌이 거듭되어 가면 그는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비서와 결혼하지만 그 관계도 오래가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돈 드레이퍼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페기 올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페기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모스는 존 햄처럼 이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이제는 핸드메이즈 테일 등을 통해 존 햄 이상의 명성을 얻고 있다. 페기는 돈의 비서로 출발하여 작가writer로 승진하는데 이어 계속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여가는 여성을 대표한다. 1950년대에서 시작하는 드라마의 시대 배경에서 여자가 광고 카피를 쓴다는 것은 개가 글을 쓴다는 것과 비견될 정도로 남자 카피라이터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능력과 야망에 더해 주요 남자 캐릭터들과의 미묘한 관계를 이용해 적대적인 세계에서 살아남는다. 비록 페기와 돈은 성이 다르지만 결국 닮은 꼴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지금까지 다시 보기한 부분에서 인상적인 대목들이 몇 개 있다. 결혼하여 아이 둘을 두고 살아보니 너무 공감되는 장면이 있는데, 베티가 아들이 집안에서 사고를 치면서 화가 날대로 난 상태에서 돈에게 화를 내는 부분이다. 어린 딸과 아들을 아내가 혼자 돌봐야 하는, 요즘 엄마들 말대로 '독박 육아'의 상황에서 지쳐버린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를 혼내라고 하자 남편, 즉 돈은 말로만 타이르고 나오고, 베티는 그게 뭐냐고, 때려야한다고 말하고, 아들이 또 사고를 치자 돈은 물건을 집어 던지며 이제 만족하냐고 소리치는 장면은 정도가 덜하지만 나도 겪은 일처럼 느껴졌다. 돈은 회사일을 핑계로 종종 늦게 들어오고, 그는 퇴근 후 주로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보고,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는 아이들과 별로 놀아주지 않고 아이들이 오면 TV를 보라고 보내버린다. 이 역시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 반성하게 된다.
페기가 피트 캠블의 아이를 낳는 상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그녀가 임신 사실을 전혀 모르다가 갑자기 애를 낳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회사의 남자 직원들은 임신으로 후덕해진 페기를 조롱하다가 출산 후 날씬해진 페기를 보며 그녀가 돈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 짐작했다. 페기는 마침 돈의 명령으로 비서에서 작가로 갑자기 승진하기도 한 터였다. 페기는 입덧도 안 했단 말인가? 아이가 발로 차는 걸 느끼지 못할 수 있나? 그렇다고 심각하게 아이가 빨리 나온 것도 아니었다. 이 부분은 경험상 전혀 납득이 안 되었다. 그녀가 아기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육아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녀는 태어난 아기를 안아보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외면해버렸다. 아마 그녀 혼자 사다리를 타며 올라가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195,60년대의 시대 배경에서 가정과 일 모두에서 성공하는 수퍼우먼을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페기와 피트의 관계도 불가사의다. 입사 후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의 피트와 관계를 가진 페기는 한 번 회사에서 피트와 재차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피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남자인 걸 알고도 그와의 관계를 원했다. 아마 피트를 좋아하기도 한 것 같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구조와 흐름상 페기는 자기주도적이고 자기결정권을 수행하는 젊은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와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남자를 선택해서 좋으면 관계를 가졌던 것 같다. 페기가 광고할 대상인 다이어트 기구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기구의 부수적 효과인 자위의 기능을 발견하고 즐기는 장면들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피임은 몰랐던 모양인데 그것이 당시 미국의 현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돈 드레이퍼가 가짜 정체성,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의 이름으로 사회적 성공을 하고, 그래서 자기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남의 성을 붙이는 결과를 낳고, 드라마 속 어느 히피?의 비난처럼 없는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업을 한다는 설정은 무슨 의미일까. 피트는 자기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고 있지만 자기는 아버지가 된 줄 모르며 아내와 산부인과에 가서 테스트를 받는다. 한편 그의 직업을 좋아하지 않던 아버지는 유명한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죽는다. 바야흐로 시대는 TV의 대중화로 광고업도 큰 변화를 맞게 되어 해리 크레인이라는 캐릭터는 갑자기 TV 부문을 담당하게 된다. 전후의 번영은 계속되어 모든 산업이 성장하고, 광고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일깨우고 창출하여 성장은 가속화되는 흐름이 영원할 것 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돈이 배다른 동생과 그가 상징하는 가난과 비굴의 과거를 단호하게 내친 것이 상징하듯 또 쿠퍼 사장이 휘트먼이라는 돈 드레이퍼의 과거의 자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처럼 지금 그리고 미래에 회사에 많은 이익을 낼 인물이라면 과거는 무의미했다. 로저 스털링은 어메리칸 에어라인을 얻을 수 있다면 과거의 고객이지만 소규모인 모호크 에어라인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욕망, 여성의 욕망은 광고업계가 가장 신경써야 할 큰 손이 되었다. 소련이 위성을 쏘아올리고, 미국에서는 케네디라는 젊다 못해 어린 대통령이 당선되는 시대의 분위기는 새로움을 숭상했던 것일까. 지금도 특히 IT라는 분야는 새로움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여 숭배한다. 혁신이 없는, 잡스가 없는 애플은 예전같지 않다고 비난한다. 모든 과거가 아름답지 않은 것처럼 모든 새로움이 좋은 것일리도 없다. 매드멘 시리즈의 마지막 광고는 코카 콜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되었건 해방을 경험한 돈 드레이퍼가 코카 콜라 광고를 만들었다는 건 우울한 일이다. 광고란 그렇게 거품이 가득한 달짝지근한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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