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에 샀던 크록스 슬리퍼는 이제 바닥이 많이 닳았다. 그래서 미끄러운 곳을 지나가거나 눈비가 오는 날에는 좀 위험하다. 어제는 전형적으로 그런 위기 상황에서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차를 가져가지 않고 마을버스로 동네 마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빗줄기가 예상보다 훨씬 굵어졌다. 우산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터라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다. 몇 대는 그냥 지나가버렸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그냥 마을버스를 다시 탈까 싶던 와중에 용케 택시를 잡은 아내가 나를 불렀고, 아들을 안고 있던 나도 부랴부랴 택시로 뛰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횡단보도와 인접한 약간 경사진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졌고, 내 품에 있던 아이는 대략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나는 약간 아팠지만 어디 까진 곳도 없었는데, 아들은 황당한 상황에 처음에 멍한 상태였다가 울기 시작했다. 원래는 아이를 그 자리에서 달래야할 터이지만 비가 계속 많이 내리는 상황이라 아내가 아이를 안고 택시 안으로 급히 들어갔고, 행인들이 애를 어쩌나라며 걱정하는 소리를 하는 와중에 나도 약간의 민망함과 아이에 대한 걱정과 함께 택시에 탔다.
다행히 아이는 다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이후 식탁 모서리에 부딪혀 한 번 더 울어야했지만.
바닥이 닳은 크록스 신발을 아내는 당장 버리겠다고 말했다. 전에도 미끄러진 적이 있던 터이긴 했다. 아내의 조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만 다행으로 아이가 안정적인 자세로 떨어졌지만 조금만 다르게 날아갔어도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다.
살다보면 찰나의 순간이 엄청나게 다른 결과로 나올 수도 있었음을 실감하는 일들이 생각보다는 종종 생긴다. 아내의 기도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 버텨올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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