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을 쓰고 난 후 못 적은 내용이나 하룻동안 주워들은 이야기를 참고해서 더 써보려 한다.
이 영화에서 떠오른 다른 작품이 란티모스 감독의 '송곳니'외에도 데이빗 린치의 드라마 '트윈 픽스'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인디언 복장 때문인데 '트윈 픽스'에서는 벤자민 혼의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이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었다. 트윈 픽스에서는 인디언 경찰도 있기 때문에 인디언은 여러 의미로 사용되지만, 시즌2에서 정신이 나간 상태로 남부군 놀이를 하던 벤자민 혼의 아들이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이상하게 만든 설정이라 할 만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그 상하로 계속 이동하는 카메라 앵글 때문에 '기생충'과 닮아있다. 그
영화에서는 인종과 관련된 계급 문제가 핵심적인 소재였고, 분리된 주거와 다른 언어 등이 부각되었다. 영화 시작에서 개똥이 뒹구는 바닥을 물로 청소하는 앵글은 주인공의 낮은 계급을 극단적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어린 쿠아론에게 그 식모
아주머니는 누나 같고 어머니 같은 친근한 존재라는 점에서 단순한 계급 갈등이 아닌 묘한 라틴 아메리카적 현대의 특이성이 드러났다.
'어느 가족'의 경우는 손석희 사장이 뉴스룸에서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기생충'과 유사한 점이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실 피로 연결되지 않은 개인들이 가족인 척 하고 더 나아가 혈연 가족보다 더 정이 깊은 모습을 보여준 '어느 가족'과 적어도 가족들의 연대가 깨지지는 않은 '기생충'은 설정이 매우 다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동아시아 국가의 감독들이 작년과 올해 깐느에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점과 가족을 소재로 했다는 외양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손석희 사장이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으로 추정되는 공통점이 왠지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가난한 가족의 위태로운 상황이 아닐까?
인디언의 경우 몇 가지 해석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원주민의 상징으로 쓰였다는 게 일차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다. 인디언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지만 백인 이주민에 의해 몰살되고 소수자로 전락했다. 사실 한국 관객만 염두에 두었다면 굳이 인디언 설정을 가지고 왔을까 싶은데 글로벌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면 직관적으로 그네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면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 '기생충'에서 원주민은 누구인가? 굳이 따져보면 문광이 저택에서 가장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녀가 원주민에 해당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 건축가에게 고용되어 살았을 것이고, 박사장에게도 고용되어 살았다는 측면에서 인디언과 일대일 매치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인디언을 미국 내의 타자로 보면서 자본주의의 화신과 같은 미국과 한국의 관계에 대한 비유로서 인디언을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 언론에서도 인정받은 글로벌 기업의 박사장,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저택을 차지한 외국인 등이 미국 혹은 자본주의의 상징으로서 원주민 격의 한국을 혹은 피지배계급을 억압하는 식으로 보는 류이다. 수긍은 가지만 그렇게까지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그리고 아마 부차적인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인디언 소품을 아마존을 통해 직구했다는 대사와 그들의 아픈 역사에 대해 아무 고민이 없이 놀이로 소모되는 인디언이라는 외피를 감안하면 인디언은 타자에 대한 무감각, 무공감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박사장과 아들 다송에게 인디언은 놀이의 하나이고 직구한 작은 인디언 도끼는 생존을 위한 방어/생계 수단이 아니라 상황극을 위한 소품이었다. 이 대목에서 다송이 쏘던 장난감 활도 도끼와 동일한 기능의 소품이라 하겠는데, '괴물'에서 배두나가 양궁을 했던 걸 감안한 이중적 장치라는 생각도 든다. 짧게 더 붙이면 저택의 건축가의 이름을 굳이 '남궁'씨로 정한 것은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와 연결지은 감독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걸 봤다. 아마 잘 찾아보면 감독이 전작들의 소재 혹은 장면을 차용한 것들이 더 있을 것 같다.
영화에 많이 등장한 '계획', '냄새', '선'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큰 주제이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가 못 본 이야기 중에 개들에 대한 것을 써본다. 영화에서 저택에는 개가 세 마리 살았던 것 같다. 비글이 있었던 것 같고 나머지 둘을 잘 모르겠다. 개는 몇 차례 등장했는데 송강호가 연기한 기택의 가족들과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가령 박소담 역의 딸은 술 마시며 육포를 뜯어먹는데 그게 사실은 개먹이였다. 폭우로 캠핑이 취소되고 박사장 가족이 갑자기 돌아오며 벌어지는 대소동 이후 아들이 다혜의 침대 밑에 숨었을 때 그의 정체를 폭로할 뻔한 것은 그를 알아챈 강아지였다. 문광의 남편이 꼬챙이에 찔려 죽은 후 개는 죽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꼬챙이에 여전히 남아있는 소시지를 탐했다. 이렇게 기택의 가족은 개와 유사한 처지로 묘사되는 경우들이 있었고, 그 개는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앞의 욕심에만 충실했다. 물론 영화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기택 가족 그리고 문광의 가족은 기생충, 즉 벌레, 영화상에서는 특히 바퀴벌레와 동격으로 취급되었다. 송강호가 주인이 나간 집 거실에서 술파티를 벌이며 바퀴벌레가 불이 켜지면 막 구석으로 숨는다는 대사를 한 이후 곧바로 그것이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이 되며 기택 가족은 정말 바퀴벌레처럼 어두운 곳, 사각지대로 숨어들었다. 영화 초반 반지하 집에서 송강호는 식탁(?) 위의 바퀴벌레를 손으로 튕겨냈던 바, 이는 자신보다 더 낮은 자들에 대한 가혹한 태도를 암시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퀴벌레가 되었을 때 인간의 손가락 튕김의 타격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칠지 몰랐다는 경고였을 수 있겠다. 더 생각해본다면 카프카의 '변신'에서 인간이 단지 벌레의 모양이 되었다는 이유로 죽어야만 했듯이 벌레가 아니라 정체가 인간인 타인에 대해 더 존중해야한다는 메타포일 수도 있겠다.
몇 차례 보고들은 해석 중 하나로 기택 가족이 '전원 백수'이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너무 잘 한다는 설정에 대한 것이 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느 누구도 그 정도로 맡은 일을 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우는 영어보다 연애를 더 하는지도 모르고, 기정은 그림을 무슨 식으로 가르치는지 모를 일이다. 기택도 경력에 비해서는 운전을 잘 했고, 충숙은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데, 단지 투포환 선수여서 힘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온갖 요리를 잘 하고 저택의 집안일을 잘 해내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능력은 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재기의 발판이 없어서 주저앉은 사람이 많다는 의미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리고 인생사에서 운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람의 경제적 처지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땅부자, 비트코인 부자, 주식 부자 중 많은 경우가 극히 운이 좋았을 것이다. IT 기업도 속성상 대기업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면 그 사장은 벼락부자일 가능성이 높다.
문광의 남편 근세가 있던 지하실의 많은 책들은 의문스러운 소품이다. 그 책들이 고시서적으로 보이기에 근세가 젊은 시절을 고시공부로 보낸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고 그럴 듯 하긴 하다. 하지만 이미 사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이 다시 고시 공부를 하는 걸까? 고시가 아니라 공무원 시험 준비라고 해도 마찬가지인데 이미 사회 재진입을 포기한 근세에게 있어 그런 수험 서적의 의미는 무엇일까? 클래식 음악을 듣고 책을 많이 본 유사 지식인임을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젊은 시절 고시를 준비한 게 아니라 사업이 망한 이후 오히려 살길은 공무원이라는 생각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공무원 열풍을 풍자한 것일까? 치킨집, 대만 카스테라나 공무원이나 모두 극한의 생존 문제의 결론으로서 나온 눈에 보이는 해결방안이고 동시에 치열한 경쟁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은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 정도로 기생충 이야기는 일단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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