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는 아이가 생긴 후 아내와 두번째로 극장에서 본 영화로 내 생애에 기록된다.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던 유열이라는 가수가 진행한 라디오 방송에 대한 영화는 얼핏 보기엔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수 년 전부터, 아마도 <건축학 개론>이 신호탄이었던 같은 90년대 청춘에 대한 회고물들은 계속 나오고 있으니 이번 영화도 그런 흐름의 하나로 읽을 수 있다.
영화는 94년 10월 1일을 기점으로 97년, 2000년? 2005년까지 몇 년씩 건너뛰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광고된 대로 정해인과 김고은이 맡은 캐릭터들의 두근대는 사랑이 전개된다. 영화가 끝나고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동료 관객들은, 5, 60대 몇 명은 정해인이 드라마에서 보던 그의 특유의 미소를 그대로 영화에서 보여줬다며 실망 반 만족 반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40대 중반 정도의 몇 명은 <엑시트> 같은 영화보다는 훨씬 좋았다며 만족해했다. 하지만 나는 영화가 무언가 이상했고, 많은 곱씹어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우 감독은 아마 <해피엔드>로 가장 유명한 감독일 것이고, <은교>도 화제작이었던 것 같고(아마 그 인연으로 김고은이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을 것이고), 근래의 <4등>이라는 영화도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침묵>의 경우도 보고 나서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에 대한 타인의 설명을 조금 들어보면 그런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인정할 수는 있었다. 그의 이번 작품은 잘 팔리지만 이제 지긋해지고 있는 90년대를 배경에 대세?라고 할 정해인을 투입하여 살려내려고 하는 영화로도 보이지만 가만 생각하면 분명 그 이상의 의미를 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4>
11년 정도의 시간을 다루는 이 영화는 많은 부분을 생략한다. 마치 <보이후드>에서 갑자기 생겨난 변화들을 관객이 천천히 파악해야하듯 이 영화를 보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구석들이 많다. 그런 이야기의 축을 지탱하는 것이 1994년부터 13년동안 KBS 라디오에 존재했던 <유열의 음악앨범>이다. 그 프로그램이 시작되던 날 미수는 빵집을 찾아온 현우를 처음 만났고, 현우는 진행자가 바뀐 음악앨범을 들으며 기적을 선포했다. 공교롭게도 미수는 음악앨범 프로그램의 작가가 될 뻔했고(그녀의 과 동기인 친구는 그 방송 작가가 되었다), 군대에 간 현우에게 할 이야기를 음악앨범에 두부와 도너츠라는 가명을 이용한 사연을 보내 전하려 했고, 영화의 막판 현우는 음악앨범의 보이는 라디오 첫 방송 날 카메라를 만졌다. 그리고 현우는 유열의 배려로 부르고 싶은 이름, 미수가 유열의 입을 통해 나오도록 할 수 있었고 해피 엔딩이 찾아온다.
위는 행복한 이야기들이지만 영화에는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짙은 안개처럼 깔려있다. 현우는 어떤 아이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의 범인으로서 소년원 생활을 해야했고, 그 기억을 지우고 싶지만 지우지 못 하고 산다. 현우의 친구가 옥상에서 떨어진 사건은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공놀이를 하는 와중에 실수로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현우와 그외 '불량' 청소년들이 그 아이를 집단으로 괴롭혀서 그 아이가 자살한 것인지 혹은 타살이기까지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현우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고, 그의 순진한 얼굴을 보건대 많은 관객은 그가 진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태권도장 운전기사로 일하는 친구는 현우가 '불량'한 그의 친구들과 다를 거라고는 그 잘생긴 얼굴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현우는 그의 고모와 할머니가 자신의 무죄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모와 할머니는 현우의 행실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 된 한동안의 사건, 정황,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관객이 짧게짧게 보게 되는 현우의 미소, 정해인의 미소는 그의 어두운 이면을 거의 완전히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현우와 미소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이 두 캐릭터는 단순히 젊고 애틋한 감정으로 살아나가는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사실 둘은 사회계급적으로 중간에도 미치기 힘든 높이로 설정되어있다. 현우는 부모가 없는 와중에 고모, 할머니와 살았고, 그마저도 소년원을 출소한 이후로는 홀로 산다. 미수의 빵집에서 알바를 했지만 폭력 사건에 휘말려 다시 소년원에 가야했고 20대 초반에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하다가 군입대를 한다. 제대 후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는 영상작업 쪽 일을 하는데 안정된 직장은 아니었다. 미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언급이 있지만 아마 아버지는 더 일찍 돌아가신 듯 하며 역시 홀로 살아간다. 미수는 그나마 빵집을 물려받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곧 문을 닫게 된다. 1997년 IMF 구제금융의 해에 졸업반인 그녀는 대기업 취업에 실패하고 KBS의 단기 알바가 아니면 중소기업?의 정규직 채용이라는 선택지만을 갖고 있었고 안정성을 이유로 정규직을 택했다. 하지만 소음 공해의 직장은 견디기 어려웠고,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잊어버렸다. 몇 년 후 작은 출판사에 일하며 책을 만들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지만 역시 그녀의 이상에 도달한 느낌은 아니었다.
이들의 삶을 작게 만든 대표적인 설정은 옥탑방이다. 아주 작은 옥탑방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된 빌라촌의 꼭대기 집이 이상적인 거주 공간은 아니다. 미수는 그 집에서 몇 년인가 홀로 살았고, 그녀가 더 큰 집으로 떠난 이후 다른 여성이 살았고, 이어서 현우가 그 집에 살게 된다. 미수는 자기가 원래 살던 그 집에서 현우와 잠깐 동거를 했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다른 가족이라고는 없는 두 남녀가 작고 저렴한 공간에서 살아보겠다는 모습은 그들의 형편에 맞았기에 슬프기도 했다.
현우는 삶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은 캐릭터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그는 빵집 알바에 만족했고 그것은 기적이 선포된 94년 10월 1일 미수와의 만남 덕분이기도 했다. 그에게 기족이 일어나 빵이 생겼으니 그에게 다른 건 필요없어졌다. 그는 죄책감으로 미수를 다시 찾지 못할 때가 여러 번 생기게 되지만 일단 미수와 극히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만남을 반복할 때마다 그의 첫 기적 덕분인지 이 만남을 수긍하고 더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 같다. 삶에 좋은 일이 별로 없던 그는 미수라는 좋은 여성을 만났고, 빵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미수의 옥탑방에서 입대 전날 불면의 하룻밤을 보냈다. 그에게 미수, 빵집, 옥탑방은 거의 집착에 가까운 대상들이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라온 궤적이 이런 몇 가지 지점에 집착하게 했다는 설정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오히려 측은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94년부터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품은 두 남녀가 몇 년마다 만나는 계기는 제각각이지만 헤어지는 이유의 근원은 거의 언제나 현우가 연루된 친구의 죽음이다. 그 죽음의 공범인 친구들은 그를 술자리로 이끌다가 폭력 사건에 연계되게 만들었고, 97년은 입대 상황이었으니 예외라 하겠고, 대학생인 그는 친구가 소개한 일자리인 헬스장에서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또 폭력 사건으로 경찰서에 끌려가고(이 때의 현우는 분명 무죄였다), 2004년, 즉 예의 그 사건에서 10년이 지난 후 죽은 친구의 가족을 찾아가는 상황 때문에 미수와 헤어지게 된다. 현우는 미수가 이제 그 사건을 잊어버리면 안 되냐고 하자 미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만은 내가 그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 자체를 몰랐으면 했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빵집에서 두부를 찾던 현우를 보며 미수는 그가 무슨 일을 저질렀음을 알지만 정확한 내용은 몰랐던 것 같고, 세세한 내용은 10년이 지나 현우의 친구에게 들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그녀가 현우를 더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다만 그가 그 일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실망한 정도였다. 하지만 현우에게 그 사건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서 그의 일생을 억누르고 있었다. 영화에 묘사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도 소년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오해와 지탄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둘이 사랑한다면 그러한 근원적 어둠을 계속 숨기고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불가피한 충돌은 둘을 갈라놓았고, 유열의 음악앨범의 기적은 마지막 효력을 발휘하여 둘을 다시 강하게 결합시켰다.
영화에서 이해가 가지 않거나 작위적인 설정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애초에 현우는 빵집에서 왜 두부를 찾았을까? 두부과자를 빵집에서 팔기도 하지만 그는 원래 두부를 사는 일반적인 장소인 시장이나 마트에서 바로 두부를 사는 것이 두려웠을까? 당연히 두부가 없는 빵집에서 현우는 콩으로된 다른 것을 찾았지만 역시 그마저도 없다. 왜 콩이 든 음식을 찾을까? 애초 출소자가 두부를 먹는 것은 깨끗하게 살라는 의미 아닌가? 그렇다면 미수가 제시한 우유도 적절한 하얀 청결제가 아닐까? 감독은 여기서 '빵'을 이중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감방에 간 것을 '빵'에 다녀왔다고 하므로 빵집에서 '빵'을 나온 청소년이 유혹되고, 다시 빵집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콩음식을 찾을까? 애초에 우리는 감방 음식을 '콩밥'이라고 불렀으니 현우가 여전히 감방을 잊지 못했거나 감방으로 곧 갈 운명임을 제시한 것일까?
둘이 믿기 힘들게 헤어지고 재회하는 설정은 아마 너무 우연적이라고 지탄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적을 선언한 영화이기에 이 정도는 넘어가줄 수 있다. 애초에 둘은 왜 서로의 집 주소나 집 위치 정도도 몰랐는지, 미수는 현우가 어느 부대로 배치받았는지 알아볼 시간은 없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현우가 방송 카메라를 조작하는 직업을 갖게 될 개연성은 별로 없지만 <유열의 음악앨범>의 보이는 라디오를 위해 투입시키도록 그렇게 설정되었다. 생각해보면 94년부터 사진찍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친구이기도 하니 밑밥이 깔려있기는 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 자체가 현우가 찍은 웃는 미수의 얼굴이기도 하다. 별로 가진 것이 없는 그가 갖고 싶은 전부였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94년부터 2007년까지 존재했기에 영화의 이야기도 더 진행되었다고 해도 2007년이 최대치였다. 해당 프로그램은 <이현우의 음악앨범>이 되어 유열 시대와 비슷한 시간이 흘러갔다. 유열은 9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지 않다가 KBS의 다른 채널에서 음악앨범과 같은 시간대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고 한다. 라디오의 사회적 의미가 예전같지 않음이 너무 당연하고, 이제는 보이는 라디오가 당연해진 시대에 통신 기술 수준이 낮았던 시절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라디오 덕분에 가능했다는 설정은 이제는 믿기 어렵지만 아마 그 시절에는 그랬을 수 있겠다는 깨우침을 새삼 주는 영화. 그렇지만 높은 예매율에도 불구하고 큰 흥행은 힘들겠구나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본 후 시간이 좀 흐른 후 조금 더 호의적인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애매한 영화다.
2019년 8월 19일 월요일
Red Joan, Long shot
두 편의 정치적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어본다. 우선 레드 조안은 캠브리지 출신의 여성 스파이에 대한 실화를 다룬 영화고, 롱 샷은 미모의 여성 미국 국무장관과 소위 대조적인 외모와 위치의 한 남성의 그럴듯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레드 조안의 핵심 메시지와 주장은 대담하다. 영국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깊히 관여한 여성 학자, 즉 주인공인 조안이 핵무기의 핵심 정보를 러시아에 넘기는 스파이 행위를 했는데 그 이유가 러시아가 더 빨리 핵무기를 개발해서 세계의 핵균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핵무기의 역설, 너무 파괴력이 커서 오히려 쓸 수 없다는 역설적인 상황은 대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고 체계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을 영국의 한 학자가 러시아 진영을 강화함으로써 세계 핵무기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는 일화는 자못 흥미롭다.
영화에서 핵무기 정보를 넘기는 계기는 단지 그 뿐이 아니라, 실제 러시아측의 스파이이자 조안의 애인인 남성의 역할이 큰 것으로 나온다. 즉 영국에서 활약하는 러시아 스파이(그들은 원래는 영국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자발적으로 러시아에 협조하는 것처럼 보였다)들이 영국의 핵개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공교롭게도 지인인 조안이 핵심 인력임을 알고 접근하여 설득하고 회유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영국 엘리트들, 특히 캠브리지의 스파이들은 수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설이자 영화로도 나온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그런 내용이었다. 스파이들은 단지 영국 내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정보기관의 최상층까지 자리하고 있었고, 레드 조안에서처럼 영국 외교성의 핵심에도 존재했다.
조안의 스파이 행위는 오래지 않아 발각되는데, 물론 그녀가 특정된 것이 아니라 연구팀에서 정보가 새나갔다는 정도가 확인되어 결국 그녀의 동료이자 연인인 교수가 잡혀가기에 이른다. 그녀가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평가절하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은 카메라를 핸드백의 작은 틈에 넣거나 여성용품 속에 숨겨서 검색을 회피하는 등의 기지를 발휘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국의 핵무기가 러시아보다는 빨리 개발되었다는데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는지 궁금해졌고, 러시아가 2차대전의 연합국에서 냉전의 양축으로서 갈라서는 과정이 가져온 상황 변화도 유의해서 볼만한 부분이었다.
롱 샷은 샤를리스 테론, 세쓰 로건 주연의 코미디 영화다. 세쓰 로건의 대사는 곱씹어볼 라인들이 굉장히 많아서 재미있다. 각본과 감독 모두 세쓰 로건과 전에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합이 잘 맞은 영화였다.
샤를리스 테론은 전형적인 금발 미인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게 많응 영예를 안겼던 몬스터를 비롯해 매드 맥스에서도 망가뜨린 외모임에도 돋보인 연기력으로 승부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금발 미인의 전형을 들고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결국 끝에 가면 어떤 전형을 넘어선 캐릭터를 연기한 셈이다.
테론이 연기한 샬롯 필드는 미국의 현 국무장관이고 재선을 포기한 현 대통령에 의해 차기 대권 후보로 지명될 예정이었다. 대통령은 브레이킹 배드로 유명해진 밥 오든커크가 연기하는데 상당 부분 트럼프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였다. 또 하나 등장인물로 부도덕한 재벌이 있는데 그의 헝클어진 듯한 붕뜬 머리 모양도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바가 있어서 트럼프를 두 개의 캐릭터러 분리하여 배치하는 설정으로도 보였다. 영화에서 실제로 둘은 밀접하게 이권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 혐의가 짙어진다.
제목인 롱 샷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을 의미한다. 라 라 랜드에서 밤이 시작되는 LA의 언덕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에마 스톤에게 we've got no shot이라고 말했듯이 남녀관계를 두고 쓰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영화의 기본 설정상 국무장관인 샬럿과 무직인 전 언론인 프레드의 별로 가능성없는 연애, 그리고 대통령을 향한 그녀의 야망에 객관적으로 방해 요소가 될 연애가 바로 롱 샷이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이 되는 샬럿이 자신이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임을 선포하는 것처럼 여성 대통령이라는 가상 현실도 롱 샷이기도 하다. HBO의 인기 시리즈인 빕VEEP에서도 셀리나 마이어스는 몇 시즌 동안 부통령으로 고통을 겪은 후 짤막한 대통령 생활을 한다. 그녀는 다음 선거에서 다른 여성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어주나, 마지막 시즌에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다시 대통령이 된다. 하우스 오브 카즈에서도 그랬던가? 미국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을 두 개의 미국 드라마에서는 일단 부통령인 상태에서 대통령이 사라진 후 그 자리를 이어받는 식으로 설정했다. 그만큼 여성 대통령이 미국에서 등장하기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며, 힐러리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에 얼마나 가까웠던가를 되새기게 한다. 롱 샷과 위에 언급한 드라마들을 포함해 많은 픽션 속의 미 여성 대통령은 실제로 힐러리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공화당식 철학의 편안함을 설명하는 부분도 있는데 길지는 않지만 재치가 있고 설득력이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은 부분이다.
픽션이기에 영화 마지막 부분의 위기가 극복되는 과정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아마도 샬럿은 정치적으로 몰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녀는 정치가의 가식과 부도덕한 타협이 아니라 솔직함의 극치로서 난관을 돌파했다. 완벽해보이는 그녀도 애인이 있다(미혼인 그녀에게 전혀 흠은 아니다), 그 애인은 자신의 영상을 보며 자위를 한다(그녀는 다들 자위는 하지 않냐며 미 국민들에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는 현실은 그녀의 입을 통해 폭로된다. 그것은 자폭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바뀌었다. 이미 그 선언 이전에 그녀의 인기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손색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폭이 아닌 것을 알았을까? 진심이 통한다는 이상적인 결말이 비현실적이라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통쾌함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레드 조안의 핵심 메시지와 주장은 대담하다. 영국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깊히 관여한 여성 학자, 즉 주인공인 조안이 핵무기의 핵심 정보를 러시아에 넘기는 스파이 행위를 했는데 그 이유가 러시아가 더 빨리 핵무기를 개발해서 세계의 핵균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핵무기의 역설, 너무 파괴력이 커서 오히려 쓸 수 없다는 역설적인 상황은 대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고 체계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을 영국의 한 학자가 러시아 진영을 강화함으로써 세계 핵무기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는 일화는 자못 흥미롭다.
영화에서 핵무기 정보를 넘기는 계기는 단지 그 뿐이 아니라, 실제 러시아측의 스파이이자 조안의 애인인 남성의 역할이 큰 것으로 나온다. 즉 영국에서 활약하는 러시아 스파이(그들은 원래는 영국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자발적으로 러시아에 협조하는 것처럼 보였다)들이 영국의 핵개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공교롭게도 지인인 조안이 핵심 인력임을 알고 접근하여 설득하고 회유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영국 엘리트들, 특히 캠브리지의 스파이들은 수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설이자 영화로도 나온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그런 내용이었다. 스파이들은 단지 영국 내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정보기관의 최상층까지 자리하고 있었고, 레드 조안에서처럼 영국 외교성의 핵심에도 존재했다.
조안의 스파이 행위는 오래지 않아 발각되는데, 물론 그녀가 특정된 것이 아니라 연구팀에서 정보가 새나갔다는 정도가 확인되어 결국 그녀의 동료이자 연인인 교수가 잡혀가기에 이른다. 그녀가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평가절하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은 카메라를 핸드백의 작은 틈에 넣거나 여성용품 속에 숨겨서 검색을 회피하는 등의 기지를 발휘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국의 핵무기가 러시아보다는 빨리 개발되었다는데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는지 궁금해졌고, 러시아가 2차대전의 연합국에서 냉전의 양축으로서 갈라서는 과정이 가져온 상황 변화도 유의해서 볼만한 부분이었다.
롱 샷은 샤를리스 테론, 세쓰 로건 주연의 코미디 영화다. 세쓰 로건의 대사는 곱씹어볼 라인들이 굉장히 많아서 재미있다. 각본과 감독 모두 세쓰 로건과 전에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합이 잘 맞은 영화였다.
샤를리스 테론은 전형적인 금발 미인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게 많응 영예를 안겼던 몬스터를 비롯해 매드 맥스에서도 망가뜨린 외모임에도 돋보인 연기력으로 승부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금발 미인의 전형을 들고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결국 끝에 가면 어떤 전형을 넘어선 캐릭터를 연기한 셈이다.
테론이 연기한 샬롯 필드는 미국의 현 국무장관이고 재선을 포기한 현 대통령에 의해 차기 대권 후보로 지명될 예정이었다. 대통령은 브레이킹 배드로 유명해진 밥 오든커크가 연기하는데 상당 부분 트럼프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였다. 또 하나 등장인물로 부도덕한 재벌이 있는데 그의 헝클어진 듯한 붕뜬 머리 모양도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바가 있어서 트럼프를 두 개의 캐릭터러 분리하여 배치하는 설정으로도 보였다. 영화에서 실제로 둘은 밀접하게 이권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 혐의가 짙어진다.
제목인 롱 샷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을 의미한다. 라 라 랜드에서 밤이 시작되는 LA의 언덕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에마 스톤에게 we've got no shot이라고 말했듯이 남녀관계를 두고 쓰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영화의 기본 설정상 국무장관인 샬럿과 무직인 전 언론인 프레드의 별로 가능성없는 연애, 그리고 대통령을 향한 그녀의 야망에 객관적으로 방해 요소가 될 연애가 바로 롱 샷이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이 되는 샬럿이 자신이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임을 선포하는 것처럼 여성 대통령이라는 가상 현실도 롱 샷이기도 하다. HBO의 인기 시리즈인 빕VEEP에서도 셀리나 마이어스는 몇 시즌 동안 부통령으로 고통을 겪은 후 짤막한 대통령 생활을 한다. 그녀는 다음 선거에서 다른 여성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어주나, 마지막 시즌에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다시 대통령이 된다. 하우스 오브 카즈에서도 그랬던가? 미국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을 두 개의 미국 드라마에서는 일단 부통령인 상태에서 대통령이 사라진 후 그 자리를 이어받는 식으로 설정했다. 그만큼 여성 대통령이 미국에서 등장하기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며, 힐러리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에 얼마나 가까웠던가를 되새기게 한다. 롱 샷과 위에 언급한 드라마들을 포함해 많은 픽션 속의 미 여성 대통령은 실제로 힐러리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공화당식 철학의 편안함을 설명하는 부분도 있는데 길지는 않지만 재치가 있고 설득력이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은 부분이다.
픽션이기에 영화 마지막 부분의 위기가 극복되는 과정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아마도 샬럿은 정치적으로 몰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녀는 정치가의 가식과 부도덕한 타협이 아니라 솔직함의 극치로서 난관을 돌파했다. 완벽해보이는 그녀도 애인이 있다(미혼인 그녀에게 전혀 흠은 아니다), 그 애인은 자신의 영상을 보며 자위를 한다(그녀는 다들 자위는 하지 않냐며 미 국민들에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는 현실은 그녀의 입을 통해 폭로된다. 그것은 자폭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바뀌었다. 이미 그 선언 이전에 그녀의 인기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손색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폭이 아닌 것을 알았을까? 진심이 통한다는 이상적인 결말이 비현실적이라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통쾌함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2019년 8월 14일 수요일
작은 아씨들의 새 버전
가디언의 문화면을 읽다가 한국에서는 작은 아씨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Little Women이 새로운 영화로 개봉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트레일러가 포함되었는데 이 캐스팅은 그저 등장인물들 자체만으로 눈을 어지렆일 정도여서 이야기 자체는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보고 싶을 정도이다.
일단 감독이 전작 레이디버드로 능력을 공인받은 그레타 거윅이고, 네 아씨의 어머니가 로라 던, 네 아씨는 서샤 로난, 에마 왓슨, 플로렌스 퓨, 일라이자 스캔런에, 고모는 메릴 스트립이고 남자 상대역은 티모시 샬라메가 맡는다.
에마 왓슨이 맡은 역은은 원래 에마 스톤이 캐스팅 되었으나 다른 일정이 생겨서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 두 배우는 전에도 다른 영화, 라 라 랜드를 두고 캐스팅이 바뀌는 상황이 있었으니 재미있다. 둘의 이미지는 그리 비슷하지 않은데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일라이자 스캔런은 HBO의 샤프 오브젝츠의 무시무시한 딸을 연기했던 터라 트레일러에서 잠깐 봐도 사람을 서늘하게 만드는 기운이 있다.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샤프 오브젝츠의 역할과 유사점이 있을까?
가디언 기사에 따르면 무려 8번째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이 이야기에 대해 가만 생각하면 한 번도 읽은 적도 없고, 영화를 다 본 적도 없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의 상황이라고 하니 시대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시도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트레일러에 따르면 거윅의 새 영화는 올 크리스마스에 개봉한다고 한다.
일단 감독이 전작 레이디버드로 능력을 공인받은 그레타 거윅이고, 네 아씨의 어머니가 로라 던, 네 아씨는 서샤 로난, 에마 왓슨, 플로렌스 퓨, 일라이자 스캔런에, 고모는 메릴 스트립이고 남자 상대역은 티모시 샬라메가 맡는다.
에마 왓슨이 맡은 역은은 원래 에마 스톤이 캐스팅 되었으나 다른 일정이 생겨서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 두 배우는 전에도 다른 영화, 라 라 랜드를 두고 캐스팅이 바뀌는 상황이 있었으니 재미있다. 둘의 이미지는 그리 비슷하지 않은데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일라이자 스캔런은 HBO의 샤프 오브젝츠의 무시무시한 딸을 연기했던 터라 트레일러에서 잠깐 봐도 사람을 서늘하게 만드는 기운이 있다.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샤프 오브젝츠의 역할과 유사점이 있을까?
가디언 기사에 따르면 무려 8번째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이 이야기에 대해 가만 생각하면 한 번도 읽은 적도 없고, 영화를 다 본 적도 없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의 상황이라고 하니 시대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시도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트레일러에 따르면 거윅의 새 영화는 올 크리스마스에 개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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