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9일 월요일

Red Joan, Long shot

두 편의 정치적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어본다. 우선 레드 조안은 캠브리지 출신의 여성 스파이에 대한 실화를 다룬 영화고, 롱 샷은 미모의 여성 미국 국무장관과 소위 대조적인 외모와 위치의 한 남성의 그럴듯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레드 조안의 핵심 메시지와 주장은 대담하다. 영국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깊히 관여한 여성 학자, 즉 주인공인 조안이 핵무기의 핵심 정보를 러시아에 넘기는 스파이 행위를 했는데 그 이유가 러시아가 더 빨리 핵무기를 개발해서 세계의 핵균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핵무기의 역설, 너무 파괴력이 커서 오히려 쓸 수 없다는 역설적인 상황은 대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고 체계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을 영국의 한 학자가 러시아 진영을 강화함으로써 세계 핵무기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는 일화는 자못 흥미롭다.

영화에서 핵무기 정보를 넘기는 계기는 단지 그 뿐이 아니라, 실제 러시아측의 스파이이자 조안의 애인인 남성의 역할이 큰 것으로 나온다. 즉 영국에서 활약하는 러시아 스파이(그들은 원래는 영국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자발적으로 러시아에 협조하는 것처럼 보였다)들이 영국의 핵개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공교롭게도 지인인 조안이 핵심 인력임을 알고 접근하여 설득하고 회유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영국 엘리트들, 특히 캠브리지의 스파이들은 수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설이자 영화로도 나온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그런 내용이었다. 스파이들은 단지 영국 내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정보기관의 최상층까지 자리하고 있었고, 레드 조안에서처럼 영국 외교성의 핵심에도 존재했다.

조안의 스파이 행위는 오래지 않아 발각되는데, 물론 그녀가 특정된 것이 아니라 연구팀에서 정보가 새나갔다는 정도가 확인되어 결국 그녀의 동료이자 연인인 교수가 잡혀가기에 이른다. 그녀가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평가절하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은 카메라를 핸드백의 작은 틈에 넣거나 여성용품 속에 숨겨서 검색을 회피하는 등의 기지를 발휘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국의 핵무기가 러시아보다는 빨리 개발되었다는데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는지 궁금해졌고, 러시아가 2차대전의 연합국에서 냉전의 양축으로서 갈라서는 과정이 가져온 상황 변화도 유의해서 볼만한 부분이었다.

롱 샷은 샤를리스 테론, 세쓰 로건 주연의 코미디 영화다. 세쓰 로건의 대사는 곱씹어볼 라인들이 굉장히 많아서 재미있다. 각본과 감독 모두 세쓰 로건과 전에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합이 잘 맞은 영화였다.

샤를리스 테론은 전형적인 금발 미인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게 많응 영예를 안겼던 몬스터를 비롯해 매드 맥스에서도 망가뜨린 외모임에도 돋보인 연기력으로 승부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금발 미인의 전형을 들고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결국 끝에 가면 어떤 전형을 넘어선 캐릭터를 연기한 셈이다.

테론이 연기한 샬롯 필드는 미국의 현 국무장관이고 재선을 포기한 현 대통령에 의해 차기 대권 후보로 지명될 예정이었다. 대통령은 브레이킹 배드로 유명해진 밥 오든커크가 연기하는데 상당 부분 트럼프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였다. 또 하나 등장인물로 부도덕한 재벌이 있는데 그의 헝클어진 듯한 붕뜬 머리 모양도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바가 있어서 트럼프를 두 개의 캐릭터러 분리하여 배치하는 설정으로도 보였다. 영화에서 실제로 둘은 밀접하게 이권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 혐의가 짙어진다.

제목인 롱 샷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을 의미한다. 라 라 랜드에서 밤이 시작되는 LA의 언덕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에마 스톤에게 we've got no shot이라고 말했듯이 남녀관계를 두고 쓰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영화의 기본 설정상 국무장관인 샬럿과 무직인 전 언론인 프레드의 별로 가능성없는 연애, 그리고 대통령을 향한 그녀의 야망에 객관적으로 방해 요소가 될 연애가 바로 롱 샷이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이 되는 샬럿이 자신이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임을 선포하는 것처럼 여성 대통령이라는 가상 현실도 롱 샷이기도 하다. HBO의 인기 시리즈인 빕VEEP에서도 셀리나 마이어스는 몇 시즌 동안 부통령으로 고통을 겪은 후 짤막한 대통령 생활을 한다. 그녀는 다음 선거에서 다른 여성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어주나, 마지막 시즌에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다시 대통령이 된다. 하우스 오브 카즈에서도 그랬던가? 미국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을 두 개의 미국 드라마에서는 일단 부통령인 상태에서 대통령이 사라진 후 그 자리를 이어받는 식으로 설정했다. 그만큼 여성 대통령이 미국에서 등장하기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며, 힐러리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에 얼마나 가까웠던가를 되새기게 한다. 롱 샷과 위에 언급한 드라마들을 포함해 많은 픽션 속의 미 여성 대통령은 실제로 힐러리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공화당식 철학의 편안함을 설명하는 부분도 있는데 길지는 않지만 재치가 있고 설득력이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은 부분이다.

픽션이기에 영화 마지막 부분의 위기가 극복되는 과정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아마도 샬럿은 정치적으로 몰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녀는 정치가의 가식과 부도덕한 타협이 아니라 솔직함의 극치로서 난관을 돌파했다. 완벽해보이는 그녀도 애인이 있다(미혼인 그녀에게 전혀 흠은 아니다), 그 애인은 자신의 영상을 보며 자위를 한다(그녀는 다들 자위는 하지 않냐며 미 국민들에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는 현실은 그녀의 입을 통해 폭로된다. 그것은 자폭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바뀌었다. 이미 그 선언 이전에 그녀의 인기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손색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폭이 아닌 것을 알았을까? 진심이 통한다는 이상적인 결말이 비현실적이라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통쾌함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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