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30일 일요일

토레스

토레스가 리버풀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가 클럽에 정식으로 이적 요청을 했기에 그의 마음은 분명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팬들에게 이 사실은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물론 토레스가 많은 선수가 그렇듯 돈을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선수에게 거짓 약속만 날린 전 구단주들의 책임은 막대하다. 그들은 세계적 경제위기를 핑계로 대겠지만 결코 리버풀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토레스가 자신이 사랑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난 것은 더 나은 팀에서 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토레스가 오기 직전 라파 감독 체제에서 두번째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오른 리버풀이지만 하필 토레스가 온 이후로는 한 번도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즉 토레스가 며칠내로 첼시로 간다면 그는 리버풀에서 한 번의 우승 경험도 없이 떠나는 것이다. 스페인 대표팀에서 유로, 월드컵 모두 우승한 선수에겐 만족스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보면 떠날 완벽한 이유이긴 하다. 일부에선 핵심 선수들이 대부분 삼십대인 첼시가 우승을 경험할 적합한 장소냐고 묻는데 긴축재정을 펼치던 아브라모비치가 토레스를 영입함으로써 다시 팀 재건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면 why not? 쓰라린 말이지만 리버풀에서 있는 것보다는 빨리 우승을 해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거짓말하는 구단주에 더해 작년에는 그를 영입한 라파 베니테스와도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라파가 핵심선수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건 많이 알려졌는데 그 선수들이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토레스, 레이나라고도 하고 로컬 출신인 제라드, 캐러거가 언급되기도 한다). 지난 여름부터 토레스는 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에이전트사에 요청했고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시티, 첼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세 팀 모두와 상당한 접촉이 있었고 첼시는 여름에도 영입제안을 한 바 있다. 1월 28일의 제안은 토레스측에서 더욱 강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양측은 며칠 전에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재 팬들은 떠나겠다는 그를 이해하면서도 왜 시즌 도중에, 왜 같은 리그의 팀으로 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첼시 입장에서는 파이낸셜 페어 플레이의 제약을 받지 않는 마지막 시기에 큰 영입을 해야하는 시기적 절박함이 있었다. 토레스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뛸 수 있기에 당장 몇 개월 후에 첼시에서 여러 대회 우승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AT를 떠날 당시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은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그에 대한 평가를 뒤집을 수밖에 없다.

남겨진 리버풀의 모든 구성원들은 오웬이 떠났을 때처럼 그가 틀렸음을, 결국 클럽이 어떤 개인보다 크고 중요함을 증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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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3일 일요일

간만의 스포츠베팅

얼마나 쉬었던가. 얼마 되지도 않는 베트맨의 예치금이 거의 떨어진 후 미련없이 베팅을 그만두었다. 스포츠를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해질 만큼 마이너스 행진이었다. 그나마 거액 베팅은 하지 않아서 그냥 몇 달 잘 놀았다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스포츠엔 별로 관심도 없어보이던 후배 녀석이 최근에 프로토를 좀 한다기에 자극을 받았나 보다. 문득 베트맨에 다시 예치금을 충전하고 간만에 베팅을 해 보았다. 시즌 초반의 광란이 지났기에 이번에는 그나마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낙관을 하며.

토요일밤 경기를 보다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 경기 결과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에 가득 차 천천히 본다. 이게 왠일인가. 리버풀부터 비겼단다. 아니 첼시까지? 리버풀은 조금 불안한 감이 있어 하나밖에 베팅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첼시까지 비길 줄은 몰랐다. 그나마 맨유가 비긴 것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무득점 무승부일 줄이야.

현재까지 결과를 보니 모두 무승부인 2조합 한 개가 맞았고, 3조합 한 개는 두 개가 맞은 상황에서 내일 남은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한다. 3조합까지 맞으면 약간 이득을 보고, 틀리면 4천원 정도 손해를 보는 형국이다.

간만에 한 이번 베팅이 주는 교훈은 국대 주간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다. 리버풀에 베팅할 때는 주전들의 부상이나 피로를 감안했는데 다른 팀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분석없이 거의 흐름에 대한 감만으로 베팅을 했는데 아주 빗나가지는 않은 것이 다행스럽긴 하다만. 프리메라나 세리에 쪽의 결과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역시 마구잡이로 베팅을 하는 것은 내 돈을 그냥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2008년 8월 30일 토요일

코드 블루 제9화의 백미

"팔은 ... 꼭 이을께"

"내 팔 어딨어?"

3분기 드라마 중 가장 스타들이 많이 출연하여 한껏 시청자들의 기대를 높였던 코드 블루. 그러나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고, 위급한 환자를 헬기로 옮기는 의료 현장의 긴박감은 그다지 전달되지 않는다. 너무 진지해진 야마삐는 연기 변신을 제대로 못 한 것인지 기존의 가벼운 이미지가 강렬해서인지 시청률 상승 요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라이어 게임으로 바까쇼지키나 캐릭터에 딱 맞음을 보인 토다 에리카는 비중도 높아 보이지 않고 야마삐처럼 캐릭터 변신이 힘겨워 보인다. 아라가키 유이는 그나마 성실한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가는데 임팩트는 약하다.

사공이 너무 많은 이 드라마는 갈 길을 잃었고, 이 젊은 견습의들을 지도하는 야나기바 토시로의 팔 절단은 드라마 내용은 물론 시청자들의 절망감도 함께 표현하고 있다. 팔은 꼭 이어보려고 하는데 겨우 이어놓았을 뿐. 야나기바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외친 자기 팔이 어딨냐는 외침은 드라마의 운명과 일치한다. 사공이 많은 드라마가 항상 실패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잘 융합되지 않는 젊은 의사들의 행보와 드라마 한 편을 꾸려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넣는 구구절절한 환자들의 사연은 잘 연결되지 않으며, 그저그런 메디컬 드라마가 하나 추가되었구나 싶은 씁쓸함만이 남는다.

비극적이지만 허탈한 웃음만 나는 사진 속의 장면처럼.

2008년 8월 27일 수요일

베이징 올림픽의 끝

일요일에 끝난 올림픽이 벌써 한두 달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국제 유가는 하락세를 멈추고 다시 조금 올랐으며, 중국 경제는 올림픽 기간에 오히려 더 안 좋아졌고, 한국 경제는 주가의 꾸준한 하락과 급등하는 환율로 요약된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은 금의환향했다. IOC는 공식적으로 국가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메달 수의 정확한 집계를 위해 메달 순위를 기록한다. 본래 의미야 어찌되었건 한국은 목표로 했던 10-10을 초과하여 금메달 13개, 세계 7위라는 성과를 거둔다. 10+10=13+7. 지독한 우연인가.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원래 스포츠 강국이지만 자국 개최를 등에 업고 세계 1위에 오른 중국을 제외하면 10위 안에 있는 국가 중 유일하게 전체 메달 중 금메달의 비율이 가장 높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세 종류 메달의 비율이 비슷하거나 가장 따기 힘든 금메달의 비율이 제일 낮아야 한다. 은메달을 따고도 처절한 눈물을 흘리는 한국 스포츠계의 풍토 때문일까. 우리 선수들은 유난히 금메달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것이리라.

메달 순위 세계 10위 안을 보면 흔히 선진국이라 부르는 혹은 강대국의 경험이 있는 국가들이다. 중국,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호주, 한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묘한 경쟁 의식을 가지게 되는 일본이 지난 대회 5위에서 8위로 변한 것이 눈에 띈다. 이래저래 한국은 자랑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 글을 쓰게 된 주된 동기는 영국의 순위 때문이었다.

영국의 BBC는 영국의 올림픽 선수단의 환영식을 중계했다. 방송 자체를 아직 보진 못했지만 그런 게 있었던 건 확실하다. 한국의 경우도 기를 들고 앞장선 박태환, 장미란 등 금메달을 딴 선수를 중심으로 환영식을 열었다. 잠깐 보니 트로트, 댄스, 인순이 누나 등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가수들의 축하 공연이 있었고, 금메달 딴 선수들은 개인기를 선보였다. 국민대축제란다. 많은 네티즌들은 이런 행사를 왜 하냐, 지금이 80년대냐라며 불만을 표현했다.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수많은 근대 스포츠의 발상지이자 선진국인 영국에서도 내용은 다를지라도 환영식을 한단다.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이런 행사를 계속 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번에 특별히 하는 거라도 쳐도 이해할만하다. 메달 순위 4위이기 때문이다. 한국 방송의 올림픽 중계만 봐서는 중국이나 미국이 금메달 따는 건 봐도 영국 금메달은 거의 못 본다. 어디서 그렇데 메달을 획득했을까 싶어 찾아보니 사이클에서 무려 8개. 요트, 조정, 수영 등 물 관련 스포츠에서 8개를 땄다. 얘네도 메달 편중이 참 심하구나 싶다.

5위를 한 독일은 카누, 승마, 펜싱, 근대5종, 트라이애슬론 등 한국에서 안 보여줄만한 종목들에서 많은 금메달을 얻었다. 재미를 잘 느끼지도 못하는 종목에서 선전했던 영국, 독일의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여주지 않은 한국 방송의 중계 행태를 비난하자는 건 아니다. 자기들 유리한 종목에 많은 메달을 만들어 놓고 동양인이 유리한 종목은 메달 수를 적게 제한하는 있는지없는지 모를 차별을 규탄하자는 것도 아니다.

올림픽이 세계 평화와 인류의 화합을 위해 개최된다는 취지와 아주 작은 성과를 인정할수밖에 없지만 결국 국가 중심의 경쟁은 화합보다 큰 갈등의 씨앗이 되기에 경계해야 한다. 올림픽 메달 순위라는 것이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올림픽 메달이라는 것이 거의 모든 운동 선수들의 최종 목표가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TV를 응시하면 자기 몸을 혹사하는 인간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펼쳐진다. 스포츠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 몸은 붕대투성이가 된다. 이건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운동선수를 메달을 따는 기계로 만들어버린다. 메달에 너무나 집착하는 한국이기에 운동기계는 수시로 새 기계로 대체된다. 선진국에 급하게 도달하려는 국가의 비극이리라. 10대신 13을 얻은 이번 올림픽은 다음 올림픽 메달 수에 대한 부담을 낳아 한국 체육계에 불행한 미래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2008년 8월 24일 일요일

귀화 선수

단지 깨끗하게 잡힌다는 이유로 YTN FM을 즐겨듣는다. 9시가 넘으면 MLB 전문가로 유명한 송재우가 스포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늘은 스포츠 평론가 최모씨(성함을 기억할 수 없다-_-)가 귀화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당예서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 탕나라는 이름이었던 당예서는 19세에 한국으로 건너와 작년에 한국 국적을 얻어 이번 올림픽에 한국 대표 선수로 탁구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오즈민의 권유로 한국에 왔다는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다.

그녀는 탁구라는 종목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었으나 선수풀이 너무나 커서 경쟁의 치열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중국에서 꿈을 이루지 못해 한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통해 올림픽 동메달을 땄다. 한국에서만 20대 초반을 포함하여 8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얻어낸 메달. 시상식에서 눈이 빨개지고 부었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경쟁하는 국제경기 무대-이번엔 베이징올림픽의 경우에 한정했지만-에 귀화 선수를 보는 것이 흔치 않음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인정한다. 다만 상업적 이익을 위해 국적을 간단히 바꾸는 선수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결국 당연한 소리만 나왔다. 한국 탁구 전력을 상승시킨 당예서를 비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호주와 일본으로 국적을 바꿔 양궁 경기에 나선 전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비난의 화살이 날아갔다.

국적을 바꾸는 것은 법적인 절차지만 개인 차원뿐 아니라 국가적 일이기도 하다. 외국의 뛰어난 선수에게 적지 않은 돈을 쥐어주면서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귀화한 선수가 쉽사리 메달을 안겨줄 수도 있다. 축구계는 중동 국가들이 넘치는 오일 머니로 남미의 선수를 말그대로 사들인지 오래다.

국가가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자신이 국가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국가가 아무 도움이 안된다면 다른 대안을 생각하는 것도 개인에겐 합리적인 선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요즘의 합리성은 금전적인 부분에서 크게 발휘되고 있으며, 스포츠계에서 최고가 되려는 선수들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부를 통한 향후의 안정적인 삶에 대한 희망과 무관하지 않으니 돈 있는 국가들이 우수한 선수를 사들이는 일이 더욱 증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귀화를 선택하려는 선수의 측면을 보면 외국에서의 삶에 적응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국제적인 경쟁력이 없다면 귀화를 한 나라의 지원이 장기간 이어질리도 없다. 한국에 메달을 안겼음에도 온갖 악성 루머에 시달리는 당예서를 봐도 새 국가의 기존 국민들이 곱게 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외국 선수를 받아들이는 국가의 입장을 보자. 우선 큰 자금을 투자하면서 받아들이고 싶은 선수의 수가 많지 않다. 또 일례로 중국의 탁구 선수가 넘쳐난다고 쳐도 한국에서 데려오는 수는 1, 2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국제대회에 출전가능한 대표팀 선수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개인적 차원에서 직면하는 문제는 국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느날 갑자기 외국인에서 같은 국민이 된 부자 선수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이질적인 선수가 정말 같은 국민인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을 최우선하는 국가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별도로.

결국 귀화 선수를 두고 벌어지는 수요와 공급 관계는 극히 한정된 시장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귀화 선수를 국제대회에서 목격하는 일이 늘어날 수는 있고 실제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라는 틀에 대한 집착이 지속되는 한 국제스포츠계에 만연한 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2008년 8월 23일 토요일

글쓰기의 어려움

개인의 지식이 얼마나 제한적인 범위에 머무르고 마는가를 여실히 느끼는 요즘 글을 쓴다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일본의 소설가들은 그냥 살기 위해 다작을 한다는데 그네들의 학계도 비슷한 것 같다. 최소한 번역 분야에 있어서는.

억지로 읽지만 그런대로 얻는 것은 있는 방법론 도서를 보다보니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내놓아야 의미가 있다는 말이 있었다. 글을 쓰고 깨지고 하는 것이 자신의 학문의 발전을 위한 당연한 절차일텐데 요즘은 (나도 그렇도 다른 사람도) 글을 쓰고 나서의 비판이 두려워서인지 글을 잘 내놓지 않는 것 같다.

학계에 내놓는 논문도 아닌데 블로그에 글쓰기는 왜 이리 안 했던지. 그냥 머리가 무겁다. 추워진 날씨 탓도 있겠고.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서 할 말이 몇 가지 있었지만 다음 달이나 되어야 쓸 수 있을 것 같다.

2008년 7월 30일 수요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화려한 캐스팅과 믿을만한 감독이 만든 놈, 놈, 놈. 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2008년 7월 드디어 국내에서 개봉했다. 호의적인 평가가 많지만 별로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 영화를 보기 직전 내 주변 사람마저 영화를 보며 잠깐 졸았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배우와 감독만 믿고 영화평, 영화 정보는 일체 보지 않은 채 관람을 했다.

주인공은 송강호?

영화가 시작하고 조금 후 하늘에서 새가 한 마리 날고 옆에 송강호라는 이름이 나왔다. 정우성, 이병헌 이름이 나왔던가 싶었다. 영화 제목은 분명 '좋은 놈', '나쁜 놈'에 이어 '이상한 놈'이 나오는데. 조금 후 다른 배우들의 이름이 나온다. 영화는 세 명 배우의 쓰리톱 체제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송강호야말로 주인공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씨네21의 김지운 감독 인터뷰를 보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지게 된다.

'멋'의 기준은 개인차가 있겠으나, 언제나 홀홀단신으로 그야말로 웨스턴에서나 나오는 복장으로 장총을 정확하게 쏴대는 정우성은 멋있는 놈이다. 이병헌은 잔인한 캐릭터지만 총, 칼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기술을 선보인다는 측면에서 멋있다. 반면 송강호는 이전 영화들의 역할과 유사하게 이번에도 그다지 뛰어난 재능은 없으면서 실수를 연발하여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태구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이상하고 웃기는 놈이지만 멋있는 놈은 아니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에 대한 많은 기대와 실망감에 대해 오락 영화로 봐달라는 주문을 했다. 오락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스펙터클이건 액션이건 코미디건. 이병헌이 멋있지만 창이 역할이 전면에 나섰다면 영화는 잔혹하게 흘렀을 것이다. 정우성도 멋있지만 이 친구는 당체 무슨 동기로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다. 원한 관계가 원래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뺐다고 하고, 영화에서 독립군과 약간의 연결점이 있고 막판 일본군 살해 장면이 있어 애국심이라는 단서는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런 동기는 너무 미미해서 마지막까지 봐도 정우성도 꽤 이상한 놈으로 비춰진다. 그러기에 영화의 재미를 유지하는 상당 부분은 송강호가 이끌어야했고 이점으로만도 그가 진정한 주인공의 자격을 갖췄으리라.

영화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캐릭터가 얼추 딱 정립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캐릭터의 통일성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좋은 놈은 이상하고, 나쁜 놈은 좋았던 시절이 있는 것 같고, 이상한 놈은 좋은 면이 꽤 많지만 예전에는 유례없는 악한이었던 것 같다. 손가락 귀신에 얽힌 이병헌과 송강호의 관계는 수수께끼를 던진다. 이병헌은 뛰어난 칼 솜씨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자르지 못해 칼 탓만 하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당했던 기억이 행동을 저지했으리라.

영화 막판에 밝혀지는 사실들은 송강호의 존재를 더 알 수 없게, 더 이상한 놈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영화에 나타나지 않은 거대한 송강호의 실체가 있으리라는 상상만 할 뿐. 김지운 감독이 어떤 단서를 숨겨놨는지는 영화를 다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면 송강호야말로 나라잃은 민족의 잡초같은 삶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욕망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이지만 보물 지도를 획득해서 간직하고, 보물을 찾으면 어떻게 운반할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혼자서 돌진하고, 보물을 찾아봤자 하고 싶은 게 집 짓고 가축 기르는 것 밖에 없단다. 방향성을 잃은 민족의 이상할 수밖에 없는 삶?

영화의 내러티브가 부족함은 감독도 인정하는 바인데 보물지도의 행방을 아는 집단이 어찌 그리 많은지 모르겠고, 보물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은 일본군밖에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석유를 보고 실망에 잠긴 송강호의 반응은 알 수 없기에 매혹적인 목표에 대한 단순하지만 질긴 욕망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 같다. 창이의 다이아를 챙긴 태구는 영화 막판 또 다시 무엇인가를 향해 질주한다. 질주의 끝은 없을 것이다.




세 주인공의 복장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가장 당하는 부분이 많은 송강호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계속해서 교정하고 재생시킨다. 밧줄타기, 마상 총격을 일상으로 삼는 정우성이 모자를 항상 쓰고 있는 것도 희한하다. 옷으로 만들어내는 캐릭터. 캐릭터의 성격을 좋은, 나쁜, 이상한 놈으로 유지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는 마당에서도 그들은 복장을 잘 갖춰야했다.


-영화에 들어가기 전 인터뷰에서 장르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선택하는 영화는 <놈놈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나. 그때 장르를 선택한다는 것은 모종의 이야기와 주제도 같이 선택한다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한 것 같다. 당시 웨스턴이라는 장르에 관해서는 시각적인 지점을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기에 웨스턴이라는 장르에서 비롯된 이야기와 주제가 뭐였다고 생각하나.

=그때도 말했지만 웨스턴은 스페인 여행을 하다가 떠올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웨스턴을 만들고 싶다는 영화적 로망은 있었는데, 그런 벌판을 보니 일종의 해방감이나 막 내달리고 싶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저 멀리에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마구 내달리고자 하는. 영화 안에도 그런 대사가 있지만, 꿈이나 욕망, 집착을 갖고 뭔가를 쫓아갈 때 그것을 또 쫓아오는 인생의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집착이나 욕망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런 광활한 대평원을 배경으로 웨스턴영화 안에서 보여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뭔가를 쫓아갔다가 그것을 보고 다시 어떤 다른 두려움과 공포가 쫓아와서 다시 거기서 벗어나 다시 무언가를 쫓아가는…. 인생은 이런 추격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엔딩의 대추격전에 인생의 카오스와 혼란과 아비규환을 집어넣으려 했던 것이다. 일제시대 한반도에서 쫓겨난 선조들도 만주라는 대륙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로또당첨을 바라는 식으로 그 공간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태구라는 인물도 이를테면 알량한 로또 번호를 받은 건데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끝까지 가서 확인해보고 싶어하는 거다. 로또나 지도나 한낱 종잇조각 아니냐.

-그런 추격전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해나갔나.

= 내가 영화를 만들 때는 어떤 이미지, 영화적 순간들을 가장 우위에 두고 거꾸로 만들어간다. 여기에 이르려면 무엇을 거쳐야 하나 하면서 거꾸로. 단점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놈놈놈>은 결국 마지막에 대평원을 달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다. 물론 이야기를 직조하는 과정이 부실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나는 이야기가 부실하다는 부분보다는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야기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도 작은 영화에 스펙터클이 없는 게 큰 하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이런 오락영화에서 이야기가 탄탄하면 더 좋겠지만 내러티브의 부재가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런 액션에서 추구했던 스타일이 있었나.

=한국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우리가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귀시장은 사람들이 결과물만 보니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반 헬싱>이나 <스파이더 맨>에서는 다 와이어캠으로 찍은 것이잖나. 그런데 우리는 와이어를 매단 사람들이 직접 했으니까. 그러니까 슈퍼크레인이라든가 와이어캠이라든가 도기캠이 해야 할 것들을 슈퍼맨, 와이어맨, 도기맨이 했다. (웃음) 이게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인가. 여러 재밌는 장면이 많은데, 지붕 위의 도원을 찍으면서 아래로 뛰어내리니까 카메라도 같이 뛰어내리고 다시 아래서 창이를 잡으면서 뒤로 빠지는 식의 촬영은 <스파이더 맨>에서도 없었을 거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렇게 만들어낸 것은 어떤 영화에서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귀시장신과 대평원은.

=도원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멀리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캐릭터다. 태구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을 치고 가는 게 아니라 그가 세력 분포를 파악한 뒤 하나씩 잡아가는 전문가스러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공중으로 올라가야 했다. 도원은 도르레 장치로 위에 올라가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수의 열세를 극복해나간다. 도원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서 수직과 하강의 동선을 짰던 거다. 대평원은 아까 말했듯 욕망의 집합체, 카오스적인 상황을 정신없이 보여주기 위해 대폭발을 시켰던 것이다.

김지운 감독 씨네21 인터뷰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1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