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4일 목요일

어느 가족, 더 페이버릿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비키 가조쿠, 한국 개봉명 어느 가족은 감독의 전작들을 많이 연상시켰다. 예전에 듣기로 감독이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며 세 번째 살인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다시 가족이라는 소재를 가져왔고 매우 도발적으로 다루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간다에서 가난하지만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강조한 릴리 프랭키는 만비키 가조쿠에서도 따뜻한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의 따뜻함 뒤에 어두운 과거와 비밀이 있었다. 할머니 역할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여러 번 노모 역할로 등장한 키키 키린이 맡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유작으로 남았다. 원래도 고령이었지만 영상 속 키키 키린은 정말 병약해보였다. 그녀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아이와 중년의 남성이 어느 마트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일본 마트에는 CCTV가 없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들은 집에 가는 길에 아동 학대를 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줄 요량으로 집에 데려온다. 그렇게 아이는 가족 구성원이 된다.

그 집의 가족은 얼핏 보기에 할머니가 있고, 중년의 부부가 있고, 20살 전후의 젊은 여자가 있고,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새로 들어온 미취학 여아로 구성된다. 하지만 사실상 그 누구도 혈연은 아니다. 진실이 드러난 바에 따르면 할머니와 젊은 여자는 일종의 할머니와 손녀 관계이지만 손녀의 부모와 할머니의 혈연 관계가 없다. 중년의 부부는 중심축이라고 하겠는데 일종의 불륜 관계였고 심지어 여성의 원래 남편을 공모하여 죽이기까지 했다. 초등학생 남아와 미취학 여아는 모두 이 부부가 주워온(?) 아이들이다. 이 부부는 사실상 할머니도 주워왔고, 그런 면에서 이 불법의 부부는 불법의 삼대 가족을 생성해냈다.

돈이 부족한 이 가족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돈을 번다. 각자 직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할머니의 경우 할아버지의 또 다른 가족들로부터 돈을 뜯어낸다. 그렇긴 하지만 돈이 부족하다보니 마트 절도를 통해 생활을 이어간다.

어린 아이들은 영화 첫 장면에서처럼 절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자기들끼리 일을 벌이기도 한다. 버려진 아이들은 이 새로운 가족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리를 요구하기 위해 자기 몫의 생활비를 벌려고 생각하고 스스로 절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영화 후반부의 비극의 시작을 알린다. 린이라는 이름을 새로 부여받은 여아가 무리한 절도를 시도하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오빠가 아무 것이나(양파?) 들고 도주하다가 고가 도로에서 뛰어내려서 입원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의 질문에 유사 부모는 경찰로부터 도주했고, 아마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의 신고로 아동보호 기관의 조사가 시작되어 이들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린은 학대자인 원래 부모에게 돌려보내졌고,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듯 이 생물학적 부모이지만 학대자에 불과한 가족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남자 아이는 아동보호 시설에 보내지지만 유사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그가 범죄자이지만 아버지로 남았으면 하는 심정을 유지한다. 불륜 남녀 중 여성이 모든 죄를 떠안으며 5년의 수감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녀는 임신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고 그런 신체적 결함이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온 동기가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법적으로 '유괴'였다.

영화에서는 유쾌한 순간들도 많이 그려지고 영화 포스터의 해변 장면이 대표적일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에서도 해변 장면이 포스터에 나오는데 이 때는 영화 결말부인 반면 만비키 가조쿠에서 해변 장면은 비극 직전의 하나의 이상적인 시점으로 등장했다. 합법의 테두리에서는 존재할 수 없고, 텔레비전에 충격적인 사건(유괴, 살인, 사체유기 등등)으로 보도될 범죄의 집합체인 이 유사 가족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간다에서 혈연상 남의 자식을 잘 길러냈던 릴리 프랭키가 이번 영화에서 사실상 같은 배역이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이번 영화는 가슴이 따뜻해지기 보다는 서늘해지는 경향이 더 크기에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세 번째 살인에 이어 더 어두운 이야기를 펼쳐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감독은 이미 파괴된 가족을 복원하기가 어렵다면, 그리고 유사 가족의 형태라도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합법의 범위를 더 넓혀야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치정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는 예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있었다. 애초에 가족이 잘 굴러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이제 그러기가 쉽지 않다면 각 가족을 구성하는 인간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더 근원적인 원인에 대한 규명도 필요할 것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이자 각종 유명 시상식에서 상복이 터진 더 페이버릿은 사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앤 여왕의 치세, 18세기 초반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우주연상을 쓸어담는 올리비아 콜먼이 앤 여왕이고, 레이첼 바이스가 말보로 공작부인인 새라, 에마 스톤이 새라의 사촌이자 몰락한 가문 출신의 애비게일 역을 맡았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단순한 편이다. 기왕에 앤 여왕의 총애를 받던 새라가 있고, 새로 궁전에 들어와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애비게일이 허브를 이용해 여왕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계기로 점점 여왕의 총애를 얻게 되어 결국 새라를 궁에서 축출하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는 동성애가 적극 개입된다. 역사상의 사실로서 앤 여왕이 동성애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한다. 다만 소문이 위력을 발휘하던 상황이 영화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어떤 소문, 모함으로서 그런 이야기가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극중에서는 새라가 여왕이 자신에게 보낸 적나라한 연애 편지를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인 조나단 스위프트에게 넘겨 스캔들을 일으키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 그와 비슷한 소문이었을 것이다.

새라의 남편은 말보로 공작으로 그는 처칠 수상의 조상이기도 하다. 당시는 프랑스와의 전투가 진행되었는데 말보로 공작이 전투를 이끌었고, 승전보도 올리는 모양이었고, 궁에서는 토리와 휘그가 본격적으로 대립을 하고 있었다. 새라는 전투 승리를 위해 토지세를 두 배로 올리는 안을 원했고, 토리를 대표하는 할리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즉 당시의 전세는 지원병이 있다면 영국의 대승이 예상되었지만 국내 정치에서 새라에 반대하는 토리 측에서 토지세 인상을 반대하여 결과적으로 추가 파병이나 군비 지원을 반대하였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새라가 패배하고 영국은 프랑스와 휴전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사건, 더구나 잘 모르는 영국의 어느 시절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 묘사된 새라는 앤 여왕을 조종하는 실력자인데 그녀의 정책은 전장에 있는 남편을 죽일 수도 있지만 영국의 패권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왕권을 뒤흔드는 존재는 왕정 통치기에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의회를 통한 견제가, 모략의 형태로 나타나긴 했지만 실현된 것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비게일은 새라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앤 여왕은 그녀의 행태가 새라보다 더 추악할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아비게일을 억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더 페이버릿이 왜 평단의 극찬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 오늘 아침 가디언에서 한 페미니스트는 유명 여배우 셋이 출연하고 영국의 어느 여왕의 시절을 다루며 여성 동성애 스토리가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실망감을 보이기도 했다.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들이 블랙 코미디적이면서 괴팍하고 신화적 이야기를 다뤄서 소화하기 어려웠던 반면 이번 영화도 블랙 코미디적이긴 하지만 스토리 자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전혀 없다. 이해를 못 해야 좋은 영화인 것은 전혀 아니지만 스토리에서 어떤 깊이를 발견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궁 내부의 권력 암투라고 하면 한국의 사극에서 흔하디 흔한 소재이고 여왕이 포함되는 여성 동성애라고 하더라도 새롭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던 시기에 대한 어떤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역사 지식의 측면에서는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내용에서는 무엇이 특별했던가. 앞서 말한 페미니스트는 광각 혹은 어안 렌즈의 과다 사용이 시상식을 휩쓰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전작인 한국 개봉명 '킬링 디어'에서도 광각 렌즈가 주요하게 쓰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여왕의 외로움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라고는 한다.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앤은 17명이나 자식을 낳았지만 아무도 장성하지 못했고, 그 슬픔과 무상함을 영화에서는 17마리의 토끼를 기르는 것으로 표현했다. 아비게일은 실세 권력이 된 후 무도하게도 토끼 한 마리를 발로 잔인하게 밟아보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몰락을 의미했다. 하지만 심한 질환에 계속 시달리는 앤 여왕은 결국 후계자가 없었고, 영국은 하노버 왕조의 치세로 넘어간다. 앤 여왕을 17번 잉태시킨 남성 배우자는 누구였는가? 앤 여왕이 영화에서처럼 동성애를 했다면 그것은 결실없는 양성애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을까? 앤 여왕이 아이가 세상을 떠날 때마다 자기의 일부분도 사라진다고 했는데 이는 매우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그런 면에서 앤 여왕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겨워했던 것이 납득이 된다. 영화의 세 주인공인 여성들은 모두 불행한 결말을 맞을 것이 예고되었고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 추구의 무상함을 반증하기도 한다.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2018 연말의 한국 대작 영화들

최근 씨네21에는 송경원 기자가 쓴, 대자본을 투입하고 2018년 연말에 개봉하여 모두 손익분기점에 크게 미치지 못한 세 편의 영화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글을 읽다보니 영화를 보고 읽어야할 것 같아 영화들을 보고 나중에 기사의 나머지를 읽었다. 송경원의 글은 대개 수긍할만했지만 나로서는 과하게 비판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마약왕은 송강호 원톱 주연 영화로서 송강호에게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다. 나도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기왕에 흥행에 실패한 이후 봐서인지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작은 밀수꾼이 마약 밀매를 하다가 나중에 제조도 하고, 피맛을 본 이후에는 직접 몸에 뽕을 놔서 마약쟁이가 되고 파멸한다는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두삼에게서 박정희를 발견한다면 제대로 본 거라고 친절하고 설명하는 걸 읽고 난 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친절하게 이두삼의 부인을 육영수 여사의 머리 스타일로 변신시킨 장면까지 있었다. 설에 만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는 자기가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박정희가 없었으면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가, 그러니까 이런 경제발전의 세상을 만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오랜 친구의 그런 반응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이 시점에 박정희 말년에 대한 비판 영화가 적절한 것이냐라는 질문은 던질 수도 있겠다.

아마 영화의 기획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에 이루어졌고, 원래의 박근혜 정권 말기를 겨냥한 영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파급력도 크고 논쟁도 더 크게 되었을 터이지만 갑자기 시작된 문재인 정부에서 이 영화는 이미 몰락한 박정희 정부와 그의 딸인 박근혜 정권도 과거의 일이 된 상황에서 이들 부녀의 정권이 이렇게 추악했다는 걸 환기시키는 역할 정도에 그쳤다. 이두삼은 직접적으로 박정희와 악수하고 대면하는 위치에 올랐고, 권력의 중요직에 있는 여러 인물에게 뇌물을 바쳤다. 박정희 사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는 이두삼의 수첩에는 여러 권력자들의 연락처가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적혀있었다.

후반부의 텅빈 저택에서 엽총을 쏘아대는 이두삼의 광경은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상당히 길게 묘사된 그 장면에서 감독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을까?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는 폭군의 말로?

스윙 키즈는 어떤가. 작년 초에 이런 영화가 올해 개봉한다는 씨네21의 기사에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탭 댄스를 추는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줄거리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거제 수용소에서 탭 댄스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 엄청난 거리감은 결국 영화의 설득력을 무너뜨렸다. 강형철의 예전 작품인 써니는 웃음 포인트는 많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몇 장면 때문에 좋게 평가할 수 없었다. 스윙 키즈는 비극의 장소인 포로수용소에서마저 많은 웃음 포인트를 넣었고 어떤 지점에서는 설득이 될 뻔도 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영화를 본 후에 많이 찾아서 읽어보았다. 나로서는 뜨악한 설정은 기록사진에서 수용소에서 탈춤 추는 걸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완전한 판타지는 아니라는 것이고, 영화는 뮤지컬 원작이 있다고도 한다. OK. 영화가 흥겨운 전반부와 광기의 후반부로 급격히 전환되는 이유에 대해 감독은 뻔한 전개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막판 주인공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설정에 대해 친구는 B급, C급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라 평했다. 하지만 거제수용소의 실제 역사를 감안한다면 감독이 비극의 결말을 제시하며 남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의 비극을 환기한다는 그 취지에는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인 하사, 가짜 전쟁영웅의 동생인 북한군 포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게 들어온 민간인, 뚱뚱한 영양실조의 중국군 포로, 젊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스윙 키즈 탭 댄스단은 여러 마이너리티들의 조합이자 전쟁 참전국들이 고르게 포함된 다층적 메타포일 것이다. 결국 이 순진무구한 존재들은 이데올로기의 광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다(미국인은 죽지 않는다. 그들이 살인자였다). 감독의 취지는 남북 화해 모드의 현실에서 이 관계가 다시 옛날처럼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포로 수용소라는 장소를 그저 용광로 같은 소재로 보지 말고 그 비극성의 역사적 심각함을 생각했어야 한다.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 할 기획이라고 본다.

영화 개봉 초기의 반응은 칭찬 일색이었다. 특히 언론 기사, 리뷰는 거의 하나도 빼지 않고 긍정적이었다. 흥행 참패 이후에서야 150억 투자한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책임감이 없었다는 때늦은 비판이 나오긴 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열연, 새로운 배우들의 발견, 신나는 탭 댄스, 올바른 영화의 취지까지 흠을 잡지 않으려면 장점은 많다. 그러나 보헤미안 랩소디가 역주행 흥행을 하는 상황에서 몰살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은 너무 어두웠던 모양이다. 그 반작용인 것처럼 극한직업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지금까지 흥행 싹쓸이를 하고 있다.

PMC 더 벙커는 송경원 기자가 세 작품 중 그나마 후하게 평한 영화였다. 많은 대사가 영어로 처리되는데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장르적 차원에서는 호의적으로 평할만한 영화였다. 특히 막판에 낙하산 씬과 미사일 씬은 한국 영화에서 이런 것도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다룬 이 영화에서 대선 투표일에 출구 조사 결과가 대통령이 인터뷰하는 와중에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장면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눈여겨본 것은 하정우가 맡은 배역의 이름인 에이햅이다. 에이햅은 모비 딕의 그 유명한 선장 캐릭터다. 선장, 캡틴. 에이햅이 다리를 잃은 것은 흰 고래 때문이고 그 고래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집착이 소설의 줄기다. 이 영화가 소설의 에이햅과 같은 것은 한쪽 다리를 잃은 캐릭터라는 점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에이햅이 의족을 한 이유는 낙하산에서 한 명을 더 안고 내려와서이고 이는 죽어가는 동료를 데리고 다녀야하느냐는 영화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는 문제와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죽어버리더라도 그냥 놔두면 속절없이 죽을 동료를 살려보겠다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영화의 대답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냥 두면 죽을 북한 의사를 애써 살려내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 모비 딕이 죽을 것을 알면서 죽으러가는 이야기라면 영화는 노력해도 동료가 거의 죽을 걸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려보는 노력을 해본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복잡하게 돌아가서 미국이 대선일에 서울 하늘에서 미사일을 북한 소행으로 위장해 날리고 막고, 중국이 북한을 먹으려고 하기도 하고, 중국과 미국이 공중전을 벌이는 등 살벌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잘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 모든 소동의 결과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하는 모양인데 한반도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정우는 사실상 미국인이고 이선균은 북한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한국 땅에서 살아남아서 나중에 어떻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 영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남북 관계를 다룬다. 스윙 키즈가 이념 대립의 극한에서 전쟁을 벌이던 과거를, 마약왕은 일본이라는 제3국을 경유한 남북 민간 합작의 한 형태를, PMC는 가상의 미래에 지하 벙커에서의 전투를 그린다. PMC는 굳이 따지면 남한 쪽은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미군과 북한군 그리고 민간 전투 집단들의 조합. 근래에 북한을 다룬 영화는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한국 내의 사건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총기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좋은 소재였을까? 북한을 전반적으로 악마처럼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하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실제 북한의 모습과 영화 속의 그 모습들은 얼마나 닮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가상의 전형을 만들어 놓고 답습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더 와이프, 보헤미안 랩소디

이제 BAFTA까지 지나갔고 주요 시상식이자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만이 남았다. 2018년의 영화에서 주요 부문의 상은 쿠아론 감독의 로마와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이 나눠갖고 있다. 작품상은 아직까지는 로마의 독주다. 여우 주연상은 더 페이버릿의 올리비아 콜먼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 올리비아 콜먼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내가 보고는 싶었지만 못 본 작품이 대부분이라 얼굴이 익숙치 않다. 콜먼과 여우 주연상을 다툴 또 다른 배우는 바로 더 와이프의 글렌 클로스였는데 아직까지는 밀리고 있다.

더 와이프는 영화 말미에 중요한 반전 혹은 비밀이 드러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가만 생각하면 그러한 감춰진 진실은 미리 짐작할 여지들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제목부터가 더 와이프로 영화에서 노벨문학상을 받는 그녀의 남편이 주인공이 아니다. 카메라도 이상하리만치 글렌 클로스를 많이 잡는다. 그래서 진실을 알고 있는 부인이 영화 스토리상의 기괴한 역설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계속 살펴보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라 하겠다.

글렌 클로스는 아마 좋은 배우이겠으나 이전 작품에서 그녀를 눈여겨본 기억은 없다. 아주 오래전 그녀가 젊은 시절의 영화에서는 어떤 시각적 만족을 주는 배우 정도로 여겼을까? 그녀의 출연작을 별로 본 것 같지도 않다. 이번 영화 더 와이프는 영화의 스토리도 단순하지만 흥미롭게 논할 지점도 있었고 글렌 클로스의 연기도 칭찬할만했다. 글렌 클로스의 젊은 시절은 연기한 배우는 어딘가 눈에 익었지만 사실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내가 닮았다고 생각한 배우는 다운튼 애비의 셋째 딸 역할의 배우였다.

골든 글로브에서 라미 말렉이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는 언론의 반응이 완전히 납득하겠다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 그는 BAFTA에서도 같은 상을 받았다. 영화 자체로는 평단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보헤미안 랩소디였지만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은 실존 인물과 외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칭찬을 받은 편이긴 하다. 과연 아카데미에서도 상을 받을까? 나는 그가 주연한 드라마 미스터 로봇으로 너무 익숙한 배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몰랐던 사람이 훨씬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고, 그래서 급조된 자칭 올드팬도 양산되는 모양인데 나는 퀸 노래를 이래저래 오래 전부터 들어는 봤지만 테잎이나 cd를 산 적도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희한한 뮤직 비디오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고, 20대에 일본 드라마 주제가로 이런 노래도 있었나 알게 되기도 하고, 히스 레저의 더 나이츠 테일에서 시대에 안 맞는 위 윌 락 유를 접하는 정도의 기억?

영화는 요즘 많이 다뤄지는 남성 동성애가 주요한 소재로 쓰였고, 한 단어로 말할 수 없는 머큐리의 출신 성분의 복잡함에도 '파키'로 불리며 차별당했던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 그의 노래에 넋놓고 좋아하는 여자친구나 팬들의 표정은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을 주지만 당시에 영국에서라면 그런 사람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2019년 1월 10일 목요일

플로렌스 퓨,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문득 최근에 본 '리틀 드러머 걸'의 여주인공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찬욱 감독이 만든 존 르 카레 원작의 이 드라마는 마이클 섀넌과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라는 유명 배우가 출연했지만 주인공인 여배우는 처음 보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본 적이 있는 얼굴 같았고, 그 이전 작품은 레이디 맥베스가 아닌가 싶었다. 검색해보니 정말 그러했다. 그녀의 이름은 플로렌스 퓨.
  리틀 드러머 걸에서 극중 역할이 배우이면서 스파이로 활약하는 것인데 그녀의 거침없는 행동, 연기는 레이디 맥베스에서 그녀의 배역을 생각하면 매우 납득이 갔다. 그녀의 출연작은 아직 많지 않은데 거의 주연으로 출연했고 앞으로도 여러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제목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맥베스와 연결점이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마담 보바리와 유사성도 있다. 맥베스를 생각하니 최근에야 감상하게 된 넷플릭스의 대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즈도 맥베스에서 따온 듯한 설정이 있다.

 소문의 일본 영화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과연 훌륭했다. 딱 보면 저예산인 것이 분명한 조잡한 화면의 영화이지만 그 시도 자체는 확실히 칭찬할만했다.
 표면적으로 네 겹의 이야기가 겹쳐진 설정, 소설로 치면 액자 소설 같은 그러나 액자라고 하기는 애매한 중층의 서사 구조는 단순한 설정에 지친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을 것 같다.
 1차적인 차원, 바로 영화 시작 부분에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좀비 주제의 공포 영화 장면이 진행된다. 그러나 곧바로 영화감독이라고 주장하는 캐릭터가 배우들의 연기를 지적하며 더 실감나게 하라고 다그친다. 즉 처음부터 영화의 이야기가 이중적임이 드러난다. 처음 등장한 여자, 남자 캐릭터는 사실 영화 속의 영화의 배우들이다.
 좀비 영화 촬영 현장의 애환이 이어지더니 갑자기 영화 세트 밖에서 진짜 좀비가 나타나고 영화 스태프들이 차례차례 좀비로 변하며 여주인공을 제외한 모두가 좀비가 되거나 사망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렇게 1차적인 이야기가 종료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이어서 1개월전으로 시간이 거슬러올라간다. 먼저 이야기에서 영화감독 역할로 출연한 배우가 실제 현실에서 영화 감독이었음이 드러나고 그가 생방송으로 좀비 영화를 찍기로 결정되는 과정이 펼쳐진다.
 이야기는 또 한 번 전환되는데 영화 감독에게 아내와 딸이 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아내는 1차적인 차원에서 출연했던 배우였다. 딸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영화 스태프를 직업으로 갖고 있다. 아내와 딸은 각기 다른 동기로 영화감독이 만들게 된 생방송 좀비 영화의 각본을 달달 외우게 된다. 영화 제작 과정, 특히 저비용 영화에서 흔히 그렇듯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촬영 전 준비과정부터 그랬는데 실제 촬영일에 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두 명의 출연 배우가 나타나지 못하며 영화감독과 그의 아내(그녀는 예전에 배우였으나 너무 배역에 몰두하여 다른 배우의 팔을 부러뜨린 후 연기를 그만두었다)가 대신 연기를 하게 된다. 영화 속 감독이 자신의 영화의 배우로도 출연하는 것이다. 좀비 역할을 맡은 사람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고, 카메라 담당은 갑자기 허리가 망가져 카메라를 들지 못하고, 영화 스태프 역할을 맡은 배우는 물을 잘못 먹어 설사를 한다. 그러나 생방송을 위해 영화는 계속 촬영된다.
 첫번째 좀비 배우가 술에 취하자 감독이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는 위치에서 그의 몸을 움직여서 연기하도록 만든다. 감독의 소위 디렉팅이라는 것을 매우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만한데 사실 1차적 차원에서 이 좀비가 매우 실감났다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감독의 아내는 오래간만의 연기자 복귀 자리에서 뛰어난 연기력과 순발력을 보였지만 나중에는 의욕이 넘치다못해 폭주하여 영화 자체를 망가뜨리게 된다. 그러자 그녀를 기절시키며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깨어난 그녀는 다시 영화에 등장하여 처음 그 장면을 볼 때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세번째 이야기 구조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은 감독의 딸이 펼친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배우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영화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생방송으로 돌아가는 원 컷 영화의 촬영과정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해결책을 제시했다. 사실상의 감독이 된 것이다.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장면인데 이 장면을 찍기 위한 장비가 고장나자 그녀는 인간 피라미드를 쌓아서 그 장면의 촬영을 가능하도록 만든다. 이 지점은 사실 감동적이기까지 한데 왜냐하면 어린 시절 젊은 아빠가 꼬마인 그녀를 목마를 태우는 사진 한 장에서 딸이 영감을 받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전 장면에서 어린 시절 딸 사진을 보며 통곡하던 아버지, 감독이 나왔던 바, 자신과의 사진을 촬영 현장에 갖고 온 아버지에 대한 딸의 고마움이 영화를 무사히 끝마치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영화는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영화의 촬영 장면들이 또 다른 카메라에 의해 찍힌 것이 보인다. 여기서의 장면은 조금 전까지 배우들이 영화 스태프로서 좀비 영화를 찍는 것과 다르다. 이전에는 영화 속 감독과 스태프가 생방송 영화 촬영 및 상영이라는 좀체 있기 어려운 작업을 해내는 과정이 드러났지만 기실 그들이 찍은 영상이 영화 첫 부분의 1차적 차원의 영화가 아니었다. 실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이 영화의 촬영 스태프들이 1차적 차원을 찍은 것이고, 세번째 단계의 영화 촬영 장면은 이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촬영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아마 정확한 설명을 위해서는 각 차원과 인물들에 대해 번호를 매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적은 것이 영화를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오해없이 전달되리라는 자신은 없다.
 영화에는 많은 카메라와 모니터 혹은 TV 화면이 등장한다. 영화를 실제 만드는 배우와 스태프 이외에 제작자, 시청자까지 다층적인 인물들도 있다. 배우를 찍는 카메라를 또 촬영화고 있는 카메라를 다시 촬영하는 카메라의 복잡한 구성도 있고, 영화에서 감독 역할을 맡은 배우는 순전히 소품으로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진지한 연기를 주문하고 카메라를 멈추면 안 된다고 외친다.
 방송사와 제작자는 비교적 영화 작품 자체에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생방송으로 촬영되어 공개되는 영화라는 모험을 하지만 감독 선정부터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고, 영화의 전개가 몇 차례 이상해지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거나 그냥 중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속 감독과 배우인 아내, 그리고 큰 역할을 한 딸은 매우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진지하게 이 허술한 좀비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낸다.
 엔딩 크레딧의 영화 스태프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영화를 찍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그 열정과 진지함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의 진지함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지함에 있어 배우보다는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더 강조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 인간 피라미드 장면에 이르면 배우, 스태프, 제작자가 모두 혼연일체가 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이를 보는 관객도 헛웃음도 짓다가 따뜻한 감동을 받게 된다.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Roma (2018)

알폰소 쿠아론의 화제작!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로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지금 일반 상영관에서도 볼 수 있지만 보통 대중적 인기가 없는 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 몇 곳에서만 상영되고 있다. 김세윤 작가는 이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오래 묵혀둔 프로젝터를 틀어서 80인치 스크린으로 감상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린 후 밤 늦게 보기 시작한 나는 중간에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시 졸고 말았다. 많이 놓치지는 않았으나 흐름이 조금 끊긴 것은 사실. 늦은 밤의 몽롱함 때문인지 이 극찬을 받은 영화, 내가 좋아했던 그 영화들의 감독의 신작이 처음에는 왜 그렇게 격찬을 받는지 잘 와닫지 않았다.

영화는 1970년경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다. 쿠아론 감독 자신의 이야기라는 정도는 알고 봤다. 큰 집에 사는 한 가족이 있다(그러니까 쿠아론의 가족인데 영화속 이름은 변경되었다). 가족은 할머니 하나(나중에 밝혀지기론 외할머니다), 부모, 아이들 넷이다. 개가 한 마리 있고 집에서 일하는 식모(?)는 두 명이다. 이 부유한 집의 가족과 식모들의 차이는 한 눈에 들어온다. 흑백 화면이기에 피부색 차이까지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가족들은 백인(혼혈이라도 거의 백인에 가까운)이고 식모들은 인디오에 더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는 인종이다. 가족의 친척, 그러니까 쿠아론의 삼촌집도 상당히 부유해보였고 이곳은 아예 미국인이 한 가족일 정도로 더욱 백인에 가까워보였다.

주인공은 식모 중 한 명인 클레오다. 아이들의 엄마처럼 늘씬하고 호리호리하지 않은, 그러니까 잘 사는 백인, 부르주아 백인과 거의 정반대에 놓인 인물로서 클레오가 설정된다.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알고보면 바닥에 있던 개똥을 물로 닦아내는 광경이었다. 영화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이 집의 개 한 마리가 어떻게 그렇게 똥을 많이 싸느냐다. 클레오가 개똥을 자주 안 치웠던 것인지 몰라도 복도라고 불러야할지 모를 그 장소를 카메라가 비출 때는 자주 개똥이 여러 곳에 놓여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큰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해야할 클레오에게는 큰 도전인 셈이다.

이런 현격한 계급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클레오가 집주인들로부터 천대를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우대를 받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예능 프로그램 혹은 웃긴 영화를 보고 있을 때 그녀도 그 옆에 앉아 같이 감상을 해도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의도치 않게 임신을 했어도 쫓겨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에게 아기침대까지 제공될 예정이었다. 클레오는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 연애를 할 여유도 있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 그녀는 식모보다는 이모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평범한 일상은 아버지의 부재와 클레오의 임신으로 인해 바뀌어갔다. 클레오를 임신하게 만든 페르민은 그녀와의 연락을 끊었다. 출장을 갔다는 아버지는 사실 다른 여자와 살고 있었다. 페르민은 멕시코 정부의 사주를 받은 청년단체에서 일하며 결국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학살하는 주범 중 하나가 된다. 아기침대를 고르던 클레오는 그 때 학살의 광경을 목격하고, 그 중에 총을 든 페르민을 본 충격 때문인지 갑자기 양수가 터졌지만 아이를 사산하고 만다. 쿠아론 감독은 사산의 과정을 꽤 길고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학살자라는 충격은 연이은 사산의 충격으로 이어졌고, 그녀는 죽은 아이를 잠깐 안아보고 의료진에게 아이를 넘겨주어야했다.

영화에서는 자동차가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 집에는 자동차가 적어도 두 대는 있다. 아버지는 포드사의 폭이 넓은 자동차를 모는데 집안에 주차시킬 때마다 차 옆이 긁히지 않도록 조심해야할 정도로 너무 넓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떠난 이후 이 차를 매우 조심성없이 몰아서 양 옆이 다 긁히게 만든다. 마치 남편의 존재를 지우려는 듯한 그 행동은 결국 남편과의 결별을 정식화하는 과정에서 포드의 그 큰 차를 팔아치우고 더 작은 차를 사는 것으로 이어진다.

새 차를 산 아내/어머니 소피아는 아이들과 클레오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 이 여행은 사실 남편이 자신의 짐을 빼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여행 과정에서 바다를 즐겨 찾은 이 가족은 큰 위기에 처한다.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바다에서 놀던 아이 두 명이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더 깊은 곳에서 놀다가 거의 익사할 지경에 처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바다에 전혀 들어가지 않던 클레오-그녀가 수영을 할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하며 그녀는 출산한지 얼마되지 않아 몸이 약한 상태였다-가 높은 파도 속으로 전진하며 두 아이를 구해내는 장면은 숭고하다고 할만하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잃은 것을 만회하려는 듯이 주인집의 아이들을 구조했다. 이어진 엄마와 네 자녀 그리고 클레오가 바닷가에서 얼싸안은 장면은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이기도 하다. 혼자 남은 여자, 아이(들)을 홀로 키워야하는 처지의 엄마로서 소피아와 클레오는 운명을 공유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짐 정리, 집 정리를 하는 와중에 클레오가 옥상에 올라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긴 시간 동안 옥상 위의 클레오는 내려오지 않는다. 그녀가 위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그녀가 아래로 몸을 던지거나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영화 초반이 집의 일부인 바닥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보여주었던 것처럼 영화의 끝은 집의 가장 높은 곳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며 잡고 있다. 상징의 차원에서 보자면 개똥을 치우기 위해 바닥을 응시하던 클레오를 더 고양된 인격을 가진 존재로 위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전작인 그래비티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하겠는데, 그래비티에서는 우주에서 계속 하강해 물속을 거쳐 지상으로 올라오는 생명의 역사가 축약된 바 있다. 클레오는 승천한 것일까? 첫 장면에서 클레오가 안 보였지만 존재했던 것처럼 마지막에서도 그녀가 안 보여도 존재하고 있을 것 같다.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씬은 그래비티를 즉각 연상시킨다. 해외 리뷰에서도 감독이 이 영화를 본 것이 그래비티를 만든 직접적 계기인 것처럼 연출되었다는 평이 있다. 그러나 칠드런 오브 멘, 그래비티에 이어 로마도 직접적으로 젊은 엄마와 아기라는 소재가 사용되었고(이 투 마마 탐비엔도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이는 단순히 한 여성이 잉태를 하고 출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칠드런 오브 멘에서처럼 인류의 미래가 달린 문제일 수도 있고, 그래비티처럼 인류의 역사를 포함하면서 초월하는 생명의 역사에 대한 고찰이기도 했다. 후반부 바다에서 아이들을 구출하는 장면은 그래비티의 후반부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대학생들을 학살한 젊은 남성들이 훈련을 하던 장면에는 미국인 교관과 한국인 교관이 있었다. 한국인 교관은 새로 왔고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는 한국말로 청년들을 통제했다. 실제 있었던 일인지 매우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71년에 왜 한국인 교관이 멕시코 정부의 일을 했던 것일까? 군부 독재의 경험 때문일까? 태권도? 월남전? 미국인 교관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는데 한국인이 개입되어있었다면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영화가 알폰소 쿠아론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라면 그가 어린 시절 이런 광경을 목격했을까? 영화에서는 클레오만 그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다. 쿠아론이 클레오의 말을 전해들었는지 아니면 아예 다른 경로로 전해들은 것을 클레오의 경험으로 상상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2018년 11월 26일 월요일

Mad men

매드멘은 존 햄을 스타덤에 세운(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드라마이고, 내가 AMC라는 채널을 인지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미 드라마는 종결되었고, 나도 그 엔딩을 보긴 했다. 하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몰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다 시즌1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1편의 맨 처음에 매드멘이라는 말의 뜻이 나온다. 그동안은 왜 여기에 나오는 남자들이 미쳤다는 것인지 궁금했던 터였다. 알고 보니 미쳤다는 게 아니라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광고 회사에 있기 때문에 매디슨의 축약으로 매드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캐릭터들이 평범하지는 않기에 미쳤다는 매드라도 이해를 할 수 는 있다.

존 햄이 연기한 돈 드레이퍼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서 자라며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는데, 한국전쟁을 계기로 도널드 드레이퍼라는 남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광고회사의 중역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그는 모델 출신의 아름다운 아내가 있음에도 여러 여성들과의 외도를 즐긴다. 다만 회사의 주인이자 동료인 로저 스털링이 외도 자체를 즐기는 것과 달리 돈 드레이퍼는 일종의 구원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전에 봤을 때는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돈이 지속적으로 외도를 할 때는 한 명의 여성만 상대하고 있으니 결코 바람둥이는 아니다. 결국 시즌이 거듭되어 가면 그는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비서와 결혼하지만 그 관계도 오래가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돈 드레이퍼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페기 올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페기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모스는 존 햄처럼 이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이제는 핸드메이즈 테일 등을 통해 존 햄 이상의 명성을 얻고 있다. 페기는 돈의 비서로 출발하여 작가writer로 승진하는데 이어 계속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여가는 여성을 대표한다. 1950년대에서 시작하는 드라마의 시대 배경에서 여자가 광고 카피를 쓴다는 것은 개가 글을 쓴다는 것과 비견될 정도로 남자 카피라이터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능력과 야망에 더해 주요 남자 캐릭터들과의 미묘한 관계를 이용해 적대적인 세계에서 살아남는다. 비록 페기와 돈은 성이 다르지만 결국 닮은 꼴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지금까지 다시 보기한 부분에서 인상적인 대목들이 몇 개 있다. 결혼하여 아이 둘을 두고 살아보니 너무 공감되는 장면이 있는데, 베티가 아들이 집안에서 사고를 치면서 화가 날대로 난 상태에서 돈에게 화를 내는 부분이다. 어린 딸과 아들을 아내가 혼자 돌봐야 하는, 요즘 엄마들 말대로 '독박 육아'의 상황에서 지쳐버린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를 혼내라고 하자 남편, 즉 돈은 말로만 타이르고 나오고, 베티는 그게 뭐냐고, 때려야한다고 말하고, 아들이 또 사고를 치자 돈은 물건을 집어 던지며 이제 만족하냐고 소리치는 장면은 정도가 덜하지만 나도 겪은 일처럼 느껴졌다. 돈은 회사일을 핑계로 종종 늦게 들어오고, 그는 퇴근 후 주로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보고,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는 아이들과 별로 놀아주지 않고 아이들이 오면 TV를 보라고 보내버린다. 이 역시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 반성하게 된다.

페기가 피트 캠블의 아이를 낳는 상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그녀가 임신 사실을 전혀 모르다가 갑자기 애를 낳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회사의 남자 직원들은 임신으로 후덕해진 페기를 조롱하다가 출산 후 날씬해진 페기를 보며 그녀가 돈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 짐작했다. 페기는 마침 돈의 명령으로 비서에서 작가로 갑자기 승진하기도 한 터였다. 페기는 입덧도 안 했단 말인가? 아이가 발로 차는 걸 느끼지 못할 수 있나? 그렇다고 심각하게 아이가 빨리 나온 것도 아니었다. 이 부분은 경험상 전혀 납득이 안 되었다. 그녀가 아기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육아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녀는 태어난 아기를 안아보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외면해버렸다. 아마 그녀 혼자 사다리를 타며 올라가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195,60년대의 시대 배경에서 가정과 일 모두에서 성공하는 수퍼우먼을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페기와 피트의 관계도 불가사의다. 입사 후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의 피트와 관계를 가진 페기는 한 번 회사에서 피트와 재차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피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남자인 걸 알고도 그와의 관계를 원했다. 아마 피트를 좋아하기도 한 것 같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구조와 흐름상 페기는 자기주도적이고 자기결정권을 수행하는 젊은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와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남자를 선택해서 좋으면 관계를 가졌던 것 같다. 페기가 광고할 대상인 다이어트 기구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기구의 부수적 효과인 자위의 기능을 발견하고 즐기는 장면들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피임은 몰랐던 모양인데 그것이 당시 미국의 현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돈 드레이퍼가 가짜 정체성,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의 이름으로 사회적 성공을 하고, 그래서 자기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남의 성을 붙이는 결과를 낳고, 드라마 속 어느 히피?의 비난처럼 없는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업을 한다는 설정은 무슨 의미일까. 피트는 자기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고 있지만 자기는 아버지가 된 줄 모르며 아내와 산부인과에 가서 테스트를 받는다. 한편 그의 직업을 좋아하지 않던 아버지는 유명한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죽는다. 바야흐로 시대는 TV의 대중화로 광고업도 큰 변화를 맞게 되어 해리 크레인이라는 캐릭터는 갑자기 TV 부문을 담당하게 된다. 전후의 번영은 계속되어 모든 산업이 성장하고, 광고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일깨우고 창출하여 성장은 가속화되는 흐름이 영원할 것 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돈이 배다른 동생과 그가 상징하는 가난과 비굴의 과거를 단호하게 내친 것이 상징하듯 또 쿠퍼 사장이 휘트먼이라는 돈 드레이퍼의 과거의 자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처럼 지금 그리고 미래에 회사에 많은 이익을 낼 인물이라면 과거는 무의미했다. 로저 스털링은 어메리칸 에어라인을 얻을 수 있다면 과거의 고객이지만 소규모인 모호크 에어라인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욕망, 여성의 욕망은 광고업계가 가장 신경써야 할 큰 손이 되었다. 소련이 위성을 쏘아올리고, 미국에서는 케네디라는 젊다 못해 어린 대통령이 당선되는 시대의 분위기는 새로움을 숭상했던 것일까. 지금도 특히 IT라는 분야는 새로움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여 숭배한다. 혁신이 없는, 잡스가 없는 애플은 예전같지 않다고 비난한다. 모든 과거가 아름답지 않은 것처럼 모든 새로움이 좋은 것일리도 없다. 매드멘 시리즈의 마지막 광고는 코카 콜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되었건 해방을 경험한 돈 드레이퍼가 코카 콜라 광고를 만들었다는 건 우울한 일이다. 광고란 그렇게 거품이 가득한 달짝지근한 것이려나.

2018년 11월 4일 일요일

퍼스트맨 (2018)

 대미언 셔젤(?)의 신작 퍼스트맨에 대한 반응은 전작들에 비해 미지근하다. 위플래쉬의 폭발적 에너지, 라라랜드의 아름다움(?)에 비해 이 영화는 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웍으로 어지름증을 유발한다. 그만큼 1960년대 달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미국의 조급증은 위험한 사업을 진행했음을 반증하고 있고, 이 영화는 그런 면을 비교적 솔직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케네디가 완전히 무모한 계획을 공언한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인간은 비행기를 타고 대기권을 벗어난 비행을 하기 시작했고, 영화 시작부에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닐 암스트롱은 나사 소속이 아니라 어떤 민간 업체?에서 일하면서 대기권 밖으로의 비행을 경험했다. 그렇게 조금씩 지표면에서 더 멀어진 비행의 경험은 fly me to the moon이라는 낭만적 가사를 현실감있게 만들어나갔다.
 인간을 달로 보내는 과정은 많은 비용이 들었다. 물질적 비용뿐 아니라 오랜 시간 길러낸 미국 최고의 인적 자원들도 희생되었다. 영화에서도 자료 화면이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지금 내 옆에서 힘들어하는 이웃, 미국인이 있는데 도대체 왜 달로, 우주로 가기 위해 터무니없는 돈을 쓰느냐는 항의가 등장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먼저 소련으로 인공위성을 보내고 사람을 태워서 보낸 소련과의 경쟁이었고, 이 경쟁은 단순한 과학 기술의 선봉에 서느냐가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을 비롯한 군사적 위협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문득 소련이라고 인명 희생없이 그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며 그런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영화에서 나온대로 백인들만 달에 갔는데 유색인종의 우주 탐험 참여의 역사도 생각해봄직하다.
 퍼스트맨은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세계적 박스오피스 상황을 보면 한국에서는 비교적 성적이 좋은 편이다. 라 라 랜드에 대한 충성심이 반영되었을 것인데 그럼에도 졸렸다는 반응이 많아서인지 소위 대박 흥행까지는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닐이 달표면에 미국 국기를 세우는 장면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고 분개했고 그것이 저조한 흥행에 기여했다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거야 상관없다.
 개인적으로는 딸이 아기 때에 워낙 병으로 고생을 했던 터라 영화 초반 닐의 어린 딸이 힘들어하다가 죽는 장면부터 왠지 공감이 되어버렸다. 그 괴로운 경험과 기억은 인류 최초로 달을 밟게 되는 닐의 여정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에게 달에 간다는 것은 딸의 죽음을 잊기 위한 새로운 도전같이 보이기도 했고, 그 도전의 과정에서 친구 이상, 거의 가족같은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죽어감에 따라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라도 성공해야겠다는 결의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보편적인 것이라 퍼스트맨 이후 본 영화들에서는 유사한 설정들이 눈에 띈다. 중국 돈으로 만든 에단 호크 주연의 24 hours to live에서 주인공 트래비스는 일 년 전에 아내와 아들을 잃었고 어떤 암살 계획의 진행 와중에 아들의 환영이 귀신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퍼스트맨에서 닐의 눈앞에도 죽은 딸이 종종 나타났다. 12 strong이라는 9.11 이후 탈리반을 물리치기 위한 미군 12명의 이야기에서는 파병이 결정된 이후 군인들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어, 퍼스트맨에서 닐이 달로 가기 직전 두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한 달도 되지 않은 듯 한데 훌루에서는 더 퍼스트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공개되었다. 무려 숀 펜이 주연인데 공교롭게도 우주비행에 대한 드라마였다. 줄거리를 정확히 모르고 봤을 때는 퍼스트 맨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는데 더 퍼스트라는 드라마가 거의 비슷한 이야기로 방송을 한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작년 말과 올 초에 게티 가문의 이야기가 영화와 드라마로 거의 동시에 나왔던 것과 비슷해보였다. 알고 보니 드라마는 달 여행이 아니라 가상의 미래에 화성으로 인간을 보낸다는 설정이었다. 대망의 발사일에 우주선은 출발 얼마 후 폭발해버리고 새로운 우주인들을 모으고 다시 화성으로 가기 직전까지가 이 드라마 시즌1의 내용이었다.
 톰 행크스가 주연이었던 아폴로 13은 아직 안 본 상태인데,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닐 암스트롱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후의 이야기였다. 여하간 퍼스트 맨은 달 탐사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만들어서 HBO가 예전에 만들었던 From earth to the moon이라는 드라마도 볼 예정이다.
 며칠 전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를 다시 보았다. 처음 볼 때는 음악의 작용과 마약 카르텔에 의해 처참히 죽은 시체들의 광경 때문에 인상적이었던 영화인데 두번째로 볼 때는 무엇이 올지 알고 있어서인지 이 단순한 플롯의 영화가 무엇이 대단했던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미국의 20?30?%가 마약을 하지 않았던들 이런 초법적 대처는 안 할 거라는 조쉬 브롤린의 대사가 아마도 영화를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