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7일 금요일

미끄러짐

결혼 초에 샀던 크록스 슬리퍼는 이제 바닥이 많이 닳았다. 그래서 미끄러운 곳을 지나가거나 눈비가 오는 날에는 좀 위험하다. 어제는 전형적으로 그런 위기 상황에서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차를 가져가지 않고 마을버스로 동네 마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빗줄기가 예상보다 훨씬 굵어졌다. 우산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터라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다. 몇 대는 그냥 지나가버렸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그냥 마을버스를 다시 탈까 싶던 와중에 용케 택시를 잡은 아내가 나를 불렀고, 아들을 안고 있던 나도 부랴부랴 택시로 뛰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횡단보도와 인접한 약간 경사진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졌고, 내 품에 있던 아이는 대략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나는 약간 아팠지만 어디 까진 곳도 없었는데, 아들은 황당한 상황에 처음에 멍한 상태였다가 울기 시작했다. 원래는 아이를 그 자리에서 달래야할 터이지만 비가 계속 많이 내리는 상황이라 아내가 아이를 안고 택시 안으로 급히 들어갔고, 행인들이 애를 어쩌나라며 걱정하는 소리를 하는 와중에 나도 약간의 민망함과 아이에 대한 걱정과 함께 택시에 탔다.

다행히 아이는 다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이후 식탁 모서리에 부딪혀 한 번 더 울어야했지만.

바닥이 닳은 크록스 신발을 아내는 당장 버리겠다고 말했다. 전에도 미끄러진 적이 있던 터이긴 했다. 아내의 조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만 다행으로 아이가 안정적인 자세로 떨어졌지만 조금만 다르게 날아갔어도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다.

살다보면 찰나의 순간이 엄청나게 다른 결과로 나올 수도 있었음을 실감하는 일들이 생각보다는 종종 생긴다. 아내의 기도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 버텨올 수 있었을까?

2019년 5월 20일 월요일

왕좌의 게임 시즌8 피날레

드디어 역사상 가장 화제를 몰았던 TV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왕좌의 게임이 종영되었다. 지난 편에서 대너리스가 드로곤의 화염으로 킹스 랜딩을 초토화한 상황에서 이제 어떻게 상황들이 마무리되느냐가 남은 상황이었다. 최대 관심사인 누가 왕이 되느냐에 대해 작가들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내놓았고, 그 외에 아랴의 선택 정도가 예외적이었던 것 같다. 피날레 에피소드 내내 날리던 회색의 재는 마치 눈처럼 보였다. 흰 눈의 겨울, 나잇킹의 죽음의 시간에 이어 회색의 종말, 잿더미의 시간이 출현하고야 말았다. 누군가 대니를 막아야했다.

지난 편에서 보인 대너리스의 학살은 존 스노우의 충성심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대니가 즉위식을 하던 장면에서 드로곤의 날개가 마치 대니의 날개인양, 즉 대니가 마치 악마의 날개를 단 것처럼 편집한 것은 대니의 정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존은 자신이 왕이 될 생각은 없지만 대니가 여왕으로 세븐 킹덤을 통치하게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죽인다. 다소 허무했던 그 살해 장면에서 드로곤은 화염을 내뿜었으나 시리즈의 주인공인 존 스노우가 아니라 아이언 쓰론을 향한 것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탐내고 대니가 만져보며 기뻐했던 그 철의 왕좌는 녹아내렸다. 마치 그 왕좌가 자신의 어머니, 대니를 죽였다고 원망하는 것처럼. 원군도 거의 없이 왕을 살해한 존은 언설리드 군대에 의해 투옥되었다.

대니의 왕위 즉위식 격이었던 장면에서 암살자 아랴가 걷는 장면이 보여 많은 이들의 예상처럼 그녀가 대니를 암살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되었으나 아직 그런 행동을 할만한 이유가 그녀에게 부족했다고 작가들이 판단한 것 같다. 나중에 대서양 개척을 떠나는 탐험대를 이끄는 그녀를 보건대 전문 암살자로 성장한 자신의 과거와 완전한 결별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역사에서 보았던 것처럼 유럽인들의 대서양 횡단은 또 다른 학살을 낳았기에 그녀의 행보에 대한 설정에는 의문이 따른다.

로버트 배러씨언이 죽은 이후 최대의 관심사인 세븐 킹덤의 최종 주인공은 브랜이 되었다. 티리언이 수감자의 상태로 손이 묶인 상황에서 브랜이야말로 '스토리'와 기억의 왕이기 때문에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브랜이 왕이 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야말로 쿨하게 내가 무엇 때문에 여태 살았다고 생각하냐는 되묻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냈다. 아이언 쓰론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미 왕좌인양 의자에 앉아서 오래 생활한 브랜의 모습은 준비된 왕의 그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것은 예정된 대로 벌어진다는 듯한 브랜의 통치를 과연 통치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대니와 산사의 최대 갈등 지점인 북부의 독립은 산사의 소원대로 성취되었다. 다른 지역의 군주들이 자신들의 독립을 함께 주장하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아마도 티리언의 주장처럼 대니 이후의 군주를 자신들 중 누군가가 합의로 선출한다면 자신이나 그 가문에서 왕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참았으리라 상상해본다. 샘이 소위 대중 민주주의를 주장했고 다른 군주들은 모두 실소하며 무시해버렸는데, 죽을 것으로 예상된 대니 이후의 정치체로 민주주의를 상상한 팬들도 적지는 않았다. 여기서의 결론은 최소한 혈연으로 인한 왕위 계승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왕위 계승을 합의했는데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포스트 브랜의 세븐 킹덤은 아마도 나이트 킹의 기억, 드래곤들과 대니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격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쓸데없는 팬의 걱정일 것이다.

지난 편에서 고스트를 북부로 보내버린 존 스노우에게 반려견에 대한 예의가 부족하다고 질타한 팬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존은 고스트와 재회하고 앞으로 헤어지지 않을 것 같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겠다고 약속한 존에게 가장 애정에 가까운 것을 줄 상대는 고스트밖에 없다. 약간 멍청한 표정의 토문드가 마지막 장면을 위해 다시 등장했는데 그와 브리엔 사이에 다음 기회가 있을런지 없을런지도 조금은 궁금하다. 제이미가 죽었기에 그로서는 작은 희망을 걸지도 모를 일이다.

티리언이 몇 차례에 걸쳐 핸드 오브 킹이 되며 인생이 희한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모습도 있었고, 시리즈의 첫 장면이 장벽 너머에서 시작된 죽음이었던데 반해 마지막은 다시 삶의 터전을 개척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로 그려진 것도 수미쌍관을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었다. 시리즈는 세븐 킹덤의 왕을 여자로 만드는데는 실패했지만 최소한 북부에서 독립된 왕국을 여왕이 통치하게 되었고, 브랜이라는 최고의 능력자이지만 장애인이 왕이 되었다는 설정도 사회적 올바름의 측면에서는 고무적인 선택이라고 하겠다. 마음에 안 드는 팬들도 많겠지만 최소한 게으른 마무리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왕좌의 게임 시즌8 5화, 웰컴 투 마르웬, 더 프론트 러너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은 세 편 연속 영화 한 편 분량의 러닝 타임을 보이고 있다. 나이트 킹과 화이트워커들의 소멸 이후 4화에서 대너리스의 드래곤이 하나 더 사망하고 이제 5편에 이르면 시리즈 최고의 악당 중 하나로 설정된 써씨가 퇴장한다. 대니와 드로곤의 분노의 화염으로 킹스 랜딩이 초토화될 때 그 불길을 피하며 탈출하는 과정은 한 모녀와 아랴의 동선을 통해 처연하게 표현되었다.

왕좌의 게임 시리즈는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아직 출간되지 않은 6권 이후의 이야기가 TV에 먼저 방영되는 중이다. 레딧의 어떤 이는 작가인 마틴이 이미 6, 7권을 썼지만 시리즈 종영 이후에 출간하기로 합의했다는 설을 주장했는데 진위 여부가 어찌되었건 작가의 본심을 알 수 없는 독자들은 TV 시리즈의 전개, 특히 파이널 시즌의 흐름에 분개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큰 흐름에 있어 TV 시리즈의 작가들과 마틴 간의 합의가 있었다고는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 점을 인정하더라도 책의 깊이에 TV 드라마가 따라가지 못 한다는 불평은 남는다. 나는 책을 안 봤기 때문에 뭐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시즌8이 왜 이전의 10편 구도가 아니라 6편으로 끝나느냐는 불만이 많다. 하지만 3~5편이 통상적인 에피소드의 2배임을 감안하면 대략 10편 구성의 한 시즌과 비슷한 시간을 상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전투의 시작과 끝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영화 상영 시간과 맞먹는 진행이 필요했다면 그것은 그대로 존중할만하다. 윈터펠의 전투가 두 편으로 나눠진다면 그것도 적절치 못했을 것이다.

독자들 혹은 이전 시즌들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들은 시즌7, 8에 대해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요구를 충족할 수는 없다. 아직도 밝혀졌으면 좋을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부분은 아마도 마틴의 소설이 출간된다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한 편의 결말이 팬들의 큰 분노를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선제작을 끝낸 이 이야기는 수정될리 없다. 아주 깊이 왕좌의 게임의 세계관에 빠져들지도 않고 가볍게 충성했던 팬으로서 시즌8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비난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다.

스티브 카렐 주연의 웰컴 투 마르웬이라는 영화에는 브리엔 오브 타스, 이제는 기사가 된 브리엔, 제이미 래니스터와 사랑을 확인한 브리엔이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는 러시아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다소 어색한 배역을 소화했다. 영화는 하이힐을 신는 남자에게 가해진 린치를 소재로 삼았는데 영화 말미를 보니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었다. 실제 인물과 닮은 인형들의 인형극 이야기를 현실과 착각하는 카렐이 연기한 인물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 영화다. 비록 영화는 덜 '남성적'이지만 어쨌거나 남성인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그를 구원하는 것은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최근 미국 연예계의 여성주의적 흐름과 공명하고 있다.  

더 프론트 러너라는 영화는 이제 울버린 역할에서 벗어난 휴 잭맨이 미국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개리 하트를 연기한 작품이다. 개리 하트라는 이름은 생소했지만 1988 대선에서 모든 예비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여 사실상 백악관을 예약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이자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한 젊고 똑똑한 여성과의 불륜설로 인해 3주만에 후보에서 사퇴하고 만다. 영화에서 잠깐씩 소개된 개리 하트의 공약, 그의 연설, 그의 젊은 리더로서의 이미지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불륜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영화는 만약 그 때 조지 부시가 아니라 개리 하트가 당선되었다면 미국이 그리고 탈냉전의 세계가 얼마나 달라졌을지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고 있는 듯 했다. 불륜은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결점이기에 개리가 대통령이 되었어야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그 윤리적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추문을 퍼뜨린 마이애미 헤럴드라는 언론의 행태, 그 자극적인 소재를 보도하려는 신문과 방송의 과열된 취재에 대한 비판도 동반되었다. 미국 정치를 잘 모르지만 개리 하트의 이미지는 1992년에 등장한 또 하나의 젊은 정치인 빌 클린턴을 연상시켰다. 클린턴은 비록 취임 후지만 역시 젋은 여성과의 성추문을 일으켜서 묘하게도 공통점이 추가되었다.

2019년 4월 29일 월요일

왕좌의 게임 시즌8 1~3화

왕좌의 게임의 마지막 시즌이 중반으로 왔다. 이번 3편은 거의 영화 상영 시간에 버금가는 긴 러닝 타임으로 제작되었다. 지난 화에서 예고되었듯이 나잇킹이 이끄는 죽음의 부대와 산 사람들의 전투가 윈터펠에서 벌어졌다.

지난 편들에서 전투 계획은 수립되었다. 수적으로 희망은 없지만-왜냐하면 나잇킹은 이번 3편에서 보여주듯 죽은 자들을 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나잇킹을 브랜에게 유인하면 무슨 수가 생길 거라는 전략이다. 하지만 유인하고 나서 누가 나잇킹을 죽일지는 정해두지 않았다. 실제 전투가 끝난 3편 마지막에 나잇킹을 해치우는 주인공은 뜻밖의 인물이다.

3편의 핵심 인물은 멜리산드레였다. 에피소드의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고 하겠는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확실치 않다. 그녀는 3편 초반에 홀연히 말을 타고 등장하여 도쓰라키 부대의 칼에 말그대로 불을 붙였다. 전투의 선봉에 선 도쓰라키 기병대는 어둠 속에서 급속히 줄어드는 불빛과 함께 거의 전멸했다. 멜리산드레는 나중에 성 외곽의 목책(?)에 불을 지르는 역할을 하고, 나중에 아랴에게 큰 목적을 암시하는 말을 전하고는 전투가 끝난 후 처음에 약속한 것처럼 새벽이 오기 전에 죽음을 맞는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예전 시즌에 잠시 드러난 것처럼 아주 늙은 노파라는 실제의 형상으로서 사라지는데, 이 시리즈의 원작에서 얼음과 불로 상징되는 두 축에서 불을 대변했던 그녀가 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마치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그녀는 스타니스의 편에서 싸우기도 하고, 존 스노우를 되살리기도 하다가 죽음의 부대를 막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역시 이 에피소드의 결말을 책임진 아랴에 대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녀는 전투 초반에 멀뚱멀뚱 있다가 화살이나 몇 번 쏘는 소극적인 전투원이었다. 그러나 근접 전투가 시작되자 새로 만든 무기를 휘두르며 실력을 보였다. 그럼에도 죽음의 부대원들의 수는 압도적이라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맞았고 때로 하운드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녀는 파란 눈도 많이 죽일 거라는 멜리산드레의 예언을 듣자 그녀의 역할을 직감하고 사라졌다. 드라카리스로 인한 용의 분노의 화염에도 죽지 않는 나잇킹으로 인해 좌절하던 존 스노우가 나잇킹이 다시 일으킨 새로운 부대원들을 헤치며 브랜을 향해 힘겹게 나아가며 시선을 끄는 사이, 그리고 씨온 그레이조이가 브랜을 호위하며 마지막까지 싸우고 거의 나잇킹을 죽일 뻔하다 최후를 맞이하며 또 시청자들의 혼을 빼놓는 사이에 전투는 브랜을 죽이기 위해 다가간 나잇킹의 순간으로 치달았다. 나잇킹이 등에서 칼을 뽑으려는 찰나 아랴가 어디에선가(어디에 숨었던 것인지 모른다!) 날아들어 나잇킹을 칼로 찌르려는데 나잇킹이 눈치채고 아랴를 나꿔채서 그녀의 계획은 수포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손에서 칼을 놓고 아래 쪽에 있던 다른 손으로 칼을 잡고는 나잇킹을 찔렀고 그렇게 죽음의 부대는 소멸된다.

이 전투에서 많은 캐릭터들이 최후를 맞이했다. 조라 모몬의 죽임이 가장 큰 캐릭터의 최후가 되겠고, 당찬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은 리아나는 무려 거인을 죽이면서 함께 죽었다. 그 외에도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많이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죽었고, 다행히 고스트는 죽지 않았다(4편 예고에 등장하므로).

다른 전투의 근접씬도 그렇지만 드래곤들의 전투도 워낙 정신없는 화면 전환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구름 위에서 벌인 전투 씬은 볼만했다. 나잇킹에게 넘어간 드래곤은 막판에 죽은 게 확실하고, 대너리스이 드래곤도 살아있는데, 존 스노우가 탔던 드래곤은 어떻게 되었는지(예고편에 등장한 듯도 하다) 궁금하다. 여하튼 어마어마한 CG 비용으로 출연이 제한되었던 드래곤들은 이번 편에서 많이 등장했다.

다음 편에서는 써씨가 지배하는 킹스 랜딩에서 다시 전투가 벌어진 것이 암시된다. 남은 편수를 감안하면 역시 1시간이 넘는다지만 다음 편에서 모든 것이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전투가 벌어진다면 두 편은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 에피소드들에서 분명히 드러났지만 왕좌의 게임은 의외로 매우 여성의 역할이 부각되는 드라마가 되었다. 킹스 랜딩은 써씨가, 북부는 산사가 그리고 모든 왕국을 지배하겠다는 대너리스까지 여성 군주들이 두드러진다. 물론 가장 강력하게 왕좌를 주장할 수 있는 인물로서 존 스노우, 즉 에이곤 타르가르옌이 권력을 내키지 않아하지만 남아있긴 하다. 매드 킹보다는 훨씬 나은 대너리스이기에 그녀의 지배가 나쁠 것 같지는 않지만 일곱 왕국을 모두 지배해야겠다는 그 욕망은 북부의 자치를 원하는 산사와 충돌했기에 갈등의 소지가 크다. 개과천선한 제이미가 래니스터 가문의 새 지도자가 된다면 평화적이고 분권형의 왕국 배치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의 부대가 거의 윈터펠을 점령하고 모든 산 사람을 없애기 직전인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헛된 구상처럼 보였다. 이 참사 후에 살아남은 자들이 곧바로 권력을 위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전혀 아름답지 않지만 그것이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이자 어떤 본능과 같은 것이라고 이 쇼는 말하는 것인가. 누군가 왕좌에 앉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비록 이 왕좌의 게임은 곧 종영을 해야하지만.

2019년 2월 26일 화요일

아카데미 시상식, 콜드 워, 그린 북, 트루 디텍티브 시즌 3

연례행사인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나갔다. 어제는 다른 볼 일이 있다보니 시상식을 라이브로 보거나 소식을 곧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예전처럼 작품상을 엉뚱한 작품에 수여할 뻔한 사고도 없었고, 워런 비티가 다시 나오지도 않은 모양이다. 대신 로마는 이번에도 주요 부문의 상을 받아갔고, 10개의 후보가 되었다는 더 페이버릿은 여우주연상만 받아갔다. 가디언에서는 시상식 전에 거의 글렌 클로스의 수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기사를 냈던 바 있지만 실제로는 올리비아 콜먼의 수상으로 끝났다. 이전에 골든 글로브, 바프타 등에서 계속 올리비아 콜먼이 받았는데 왜 글렌 클로스의 수상을 점쳤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처음 아카데미에서 후보로 오르고 삼십 몇 년을 기다렸다는 글렌 클로스는 이번에도 수상하지 못 했다.

놀랍게도 라미 말렉은 이번에도 남우주연상을 받아갔고,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그린 북의 작품상 수상이다. 가장 마지막에 수여되어 시상식 최고의 영예로 간주될만한 부문에서 그린 북이 수상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되었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백인 구원자'라는 흔한 소재라는 점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돈 셜리 친척 쪽에서 문제를 삼기도 했고, 무엇보다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이자 각본에 참여한 아들 닉이 이슬람 혐오 트윗을 했던 전력이 문제가 되었다.

영상이 아닌 사진 한 컷으로만 접했지만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피아노에서 얼굴을 맞대고 어 스타 이스 본의 노래를 부른 장면은 트위터에서 많은 구설에 올랐던 모양이다. 이 영화는 많은 상을 받을 것 같다는 예상이 많았지만 이번 시상 시즌에서 거의 레이디 가가 정도만 상을 받고 말았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최종 단계에서 외국어 영화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비키 가조쿠나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콜드 워조차도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에 수상의 영광을 양보해야했다.

콜드 워는 폴란드 출신 감독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다. 부모님이 젊은 시절 침대에서 뒹구는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지만 이 남녀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았다. 스승과 제자와 같은 관계로 시작된 이 둘의 만남은 베를린, 크로아티아, 파리, 폴란드를 거치며 많은 굴곡이 있었다.

김혜리 기자의 평가에서 좋은 포인트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둘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지위가 변하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최종적으로 남자는 고문으로 인해 손이 망가져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고, 여성은 폴란드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차지한다. 막판의 장면들로 보건대 여성은 다른 남성과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은 듯 했는데, 그렇지만 이 두 남녀는 기어이 결혼을 한다. 그렇다면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언제 태어난 것인가? 혹여 감독의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남성이었던 것인가 궁금해졌다. 만약 어머니가 이미 다른 남성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것이라면 어머니가 이후의 삶에서 이전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없었을 터인데 영화는 많은 것이 생략되어 그런 부분은 그저 궁금해할 따름이다.

냉전의 시대에 자유 세계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공산 세계의 삶을 잘 상상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감독의 어머니가 자유의 상징과 같은 공간인 파리에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에 돌아간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지옥같을 수 있음도 생각해본다.

논란의 영화 그린 북에 대해 한국에서는 평이 좋은 것 같다. 너무 영리하고 치밀하다는 평가도 들어봤는데, 영미권에서는 여러 논란 때문에도 그렇고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전형성을 얼마나 벗어난 것이냐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들이 많았다. 결국 돈 셜리 입장이 아니라 토니 발레롱가 쪽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보니 토니가 미화되었을 것이다.

마허샬라 알리가 연기한 돈 셜리는 피아노 연주를 하며 백인 상류사회에서 섞일 수 있는 입장권은 갖고 있지만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자신이 연주하는 장소에서조차 식사를 할 수 없는 웃긴 상황을 마주한다. 그는 그런 상황을 알면서, 그린 북에 나온대로 흑인 전용 시설을 이용해야함을 알면서 그런 흑인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그 투어를 견뎌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케네디와 킹 목사의 시절의 남부는 큰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돈 셜리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마허샬라 알리는 며칠 전 종영한 HBO의 시리즈 트루 디텍티브 시즌 3의 주연이기도 했다. 이 시리즈가 시즌 1의 강렬한 인상 이후 시즌 2의 상대적인 폭망(?) 이후에 시작되어 많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는데 다 끝난 후에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이번에는 레딧에서 많은 설들을 읽지 않았기에 중반에 이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의아한 적도 많았지만 시즌 피날레는 일찌감치 사건의 전말을 해명하고 나서 이후로도 긴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시즌 1에서처럼 악마같은 범죄자는 시즌 3에 없었다. 불행한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의 실수는 소년의 죽음을 초래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애매한 한 소녀는 어쨌거나 성인이 되었고 의외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평생을 죄책감에 살았던 한 형사는 이제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손녀 그리고 한동안 멀어졌던 형사 동료이자 친구와 함께 편안한 여생을 살아갈 것처러 그려졌다. 하지만 손자, 손녀가 자전거를 타는 풍경은 시리즈 초반에 범죄의 대상이 된 그 소년, 소녀를 즉각 연상시켜 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의문에 빠지게 만든다. 한국 영화 써니 때의 리뷰에서도 썼던 것 같지만 아이들의 미래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때 이른 죽음에 이를 수도 있고, 누구보다 오래 살 수도 있고, 사회적 성공 가도를 달릴 수도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아이들의 의지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들을 보살필 어른들의 세상과의 작용의 결과일 수 있다.

알리가 연기한 웨인 형사는 베트남 참전 경험이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베트남의 정글로 들어가는 회상 장면인데, 그가 아내에게도 털어놓지 못 하는 지옥도가 펼쳐졌던 모양이다. 노인이 된 웨인은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앓고 있는데 이것이 베트남전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노인이 된 상태에서 아주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때로는 그가 정말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기억상실 상태를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니까 정신이 말짱한데 아닌 척 하는 것인지 애매한 부분도 있었다. 시즌 피날레에서도 그랬는데 나는 그가 죽은 줄 알았던 줄리 퍼셀을 대면하고는 알아본 것으로 이해했는데 미국의 리뷰들에서는 기억상실 상태라 몰라본 것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어쨌거나 그가 과거를 통째로 망각하는 상태는 아닌 이상 어느 시점에서는 줄리 퍼셀이 살아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음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 본다. 

문라이트에 이어 그린 북으로 최근 몇 년 간 두 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알리는 무슬림이기도 해서 많은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이번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로도 수상을 할 수 있으니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에 출연할지도 기대가 된다.

2019년 2월 14일 목요일

어느 가족, 더 페이버릿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비키 가조쿠, 한국 개봉명 어느 가족은 감독의 전작들을 많이 연상시켰다. 예전에 듣기로 감독이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며 세 번째 살인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다시 가족이라는 소재를 가져왔고 매우 도발적으로 다루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간다에서 가난하지만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강조한 릴리 프랭키는 만비키 가조쿠에서도 따뜻한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의 따뜻함 뒤에 어두운 과거와 비밀이 있었다. 할머니 역할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여러 번 노모 역할로 등장한 키키 키린이 맡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유작으로 남았다. 원래도 고령이었지만 영상 속 키키 키린은 정말 병약해보였다. 그녀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아이와 중년의 남성이 어느 마트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일본 마트에는 CCTV가 없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들은 집에 가는 길에 아동 학대를 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줄 요량으로 집에 데려온다. 그렇게 아이는 가족 구성원이 된다.

그 집의 가족은 얼핏 보기에 할머니가 있고, 중년의 부부가 있고, 20살 전후의 젊은 여자가 있고,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새로 들어온 미취학 여아로 구성된다. 하지만 사실상 그 누구도 혈연은 아니다. 진실이 드러난 바에 따르면 할머니와 젊은 여자는 일종의 할머니와 손녀 관계이지만 손녀의 부모와 할머니의 혈연 관계가 없다. 중년의 부부는 중심축이라고 하겠는데 일종의 불륜 관계였고 심지어 여성의 원래 남편을 공모하여 죽이기까지 했다. 초등학생 남아와 미취학 여아는 모두 이 부부가 주워온(?) 아이들이다. 이 부부는 사실상 할머니도 주워왔고, 그런 면에서 이 불법의 부부는 불법의 삼대 가족을 생성해냈다.

돈이 부족한 이 가족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돈을 번다. 각자 직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할머니의 경우 할아버지의 또 다른 가족들로부터 돈을 뜯어낸다. 그렇긴 하지만 돈이 부족하다보니 마트 절도를 통해 생활을 이어간다.

어린 아이들은 영화 첫 장면에서처럼 절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자기들끼리 일을 벌이기도 한다. 버려진 아이들은 이 새로운 가족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리를 요구하기 위해 자기 몫의 생활비를 벌려고 생각하고 스스로 절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영화 후반부의 비극의 시작을 알린다. 린이라는 이름을 새로 부여받은 여아가 무리한 절도를 시도하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오빠가 아무 것이나(양파?) 들고 도주하다가 고가 도로에서 뛰어내려서 입원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의 질문에 유사 부모는 경찰로부터 도주했고, 아마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의 신고로 아동보호 기관의 조사가 시작되어 이들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린은 학대자인 원래 부모에게 돌려보내졌고,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듯 이 생물학적 부모이지만 학대자에 불과한 가족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남자 아이는 아동보호 시설에 보내지지만 유사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그가 범죄자이지만 아버지로 남았으면 하는 심정을 유지한다. 불륜 남녀 중 여성이 모든 죄를 떠안으며 5년의 수감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녀는 임신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고 그런 신체적 결함이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온 동기가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법적으로 '유괴'였다.

영화에서는 유쾌한 순간들도 많이 그려지고 영화 포스터의 해변 장면이 대표적일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에서도 해변 장면이 포스터에 나오는데 이 때는 영화 결말부인 반면 만비키 가조쿠에서 해변 장면은 비극 직전의 하나의 이상적인 시점으로 등장했다. 합법의 테두리에서는 존재할 수 없고, 텔레비전에 충격적인 사건(유괴, 살인, 사체유기 등등)으로 보도될 범죄의 집합체인 이 유사 가족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간다에서 혈연상 남의 자식을 잘 길러냈던 릴리 프랭키가 이번 영화에서 사실상 같은 배역이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이번 영화는 가슴이 따뜻해지기 보다는 서늘해지는 경향이 더 크기에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세 번째 살인에 이어 더 어두운 이야기를 펼쳐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감독은 이미 파괴된 가족을 복원하기가 어렵다면, 그리고 유사 가족의 형태라도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합법의 범위를 더 넓혀야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치정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는 예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있었다. 애초에 가족이 잘 굴러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이제 그러기가 쉽지 않다면 각 가족을 구성하는 인간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더 근원적인 원인에 대한 규명도 필요할 것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이자 각종 유명 시상식에서 상복이 터진 더 페이버릿은 사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앤 여왕의 치세, 18세기 초반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우주연상을 쓸어담는 올리비아 콜먼이 앤 여왕이고, 레이첼 바이스가 말보로 공작부인인 새라, 에마 스톤이 새라의 사촌이자 몰락한 가문 출신의 애비게일 역을 맡았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단순한 편이다. 기왕에 앤 여왕의 총애를 받던 새라가 있고, 새로 궁전에 들어와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애비게일이 허브를 이용해 여왕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계기로 점점 여왕의 총애를 얻게 되어 결국 새라를 궁에서 축출하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는 동성애가 적극 개입된다. 역사상의 사실로서 앤 여왕이 동성애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한다. 다만 소문이 위력을 발휘하던 상황이 영화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어떤 소문, 모함으로서 그런 이야기가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극중에서는 새라가 여왕이 자신에게 보낸 적나라한 연애 편지를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인 조나단 스위프트에게 넘겨 스캔들을 일으키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 그와 비슷한 소문이었을 것이다.

새라의 남편은 말보로 공작으로 그는 처칠 수상의 조상이기도 하다. 당시는 프랑스와의 전투가 진행되었는데 말보로 공작이 전투를 이끌었고, 승전보도 올리는 모양이었고, 궁에서는 토리와 휘그가 본격적으로 대립을 하고 있었다. 새라는 전투 승리를 위해 토지세를 두 배로 올리는 안을 원했고, 토리를 대표하는 할리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즉 당시의 전세는 지원병이 있다면 영국의 대승이 예상되었지만 국내 정치에서 새라에 반대하는 토리 측에서 토지세 인상을 반대하여 결과적으로 추가 파병이나 군비 지원을 반대하였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새라가 패배하고 영국은 프랑스와 휴전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사건, 더구나 잘 모르는 영국의 어느 시절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 묘사된 새라는 앤 여왕을 조종하는 실력자인데 그녀의 정책은 전장에 있는 남편을 죽일 수도 있지만 영국의 패권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왕권을 뒤흔드는 존재는 왕정 통치기에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의회를 통한 견제가, 모략의 형태로 나타나긴 했지만 실현된 것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비게일은 새라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앤 여왕은 그녀의 행태가 새라보다 더 추악할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아비게일을 억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더 페이버릿이 왜 평단의 극찬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 오늘 아침 가디언에서 한 페미니스트는 유명 여배우 셋이 출연하고 영국의 어느 여왕의 시절을 다루며 여성 동성애 스토리가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실망감을 보이기도 했다.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들이 블랙 코미디적이면서 괴팍하고 신화적 이야기를 다뤄서 소화하기 어려웠던 반면 이번 영화도 블랙 코미디적이긴 하지만 스토리 자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전혀 없다. 이해를 못 해야 좋은 영화인 것은 전혀 아니지만 스토리에서 어떤 깊이를 발견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궁 내부의 권력 암투라고 하면 한국의 사극에서 흔하디 흔한 소재이고 여왕이 포함되는 여성 동성애라고 하더라도 새롭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던 시기에 대한 어떤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역사 지식의 측면에서는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내용에서는 무엇이 특별했던가. 앞서 말한 페미니스트는 광각 혹은 어안 렌즈의 과다 사용이 시상식을 휩쓰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전작인 한국 개봉명 '킬링 디어'에서도 광각 렌즈가 주요하게 쓰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여왕의 외로움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라고는 한다.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앤은 17명이나 자식을 낳았지만 아무도 장성하지 못했고, 그 슬픔과 무상함을 영화에서는 17마리의 토끼를 기르는 것으로 표현했다. 아비게일은 실세 권력이 된 후 무도하게도 토끼 한 마리를 발로 잔인하게 밟아보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몰락을 의미했다. 하지만 심한 질환에 계속 시달리는 앤 여왕은 결국 후계자가 없었고, 영국은 하노버 왕조의 치세로 넘어간다. 앤 여왕을 17번 잉태시킨 남성 배우자는 누구였는가? 앤 여왕이 영화에서처럼 동성애를 했다면 그것은 결실없는 양성애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을까? 앤 여왕이 아이가 세상을 떠날 때마다 자기의 일부분도 사라진다고 했는데 이는 매우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그런 면에서 앤 여왕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겨워했던 것이 납득이 된다. 영화의 세 주인공인 여성들은 모두 불행한 결말을 맞을 것이 예고되었고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 추구의 무상함을 반증하기도 한다.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2018 연말의 한국 대작 영화들

최근 씨네21에는 송경원 기자가 쓴, 대자본을 투입하고 2018년 연말에 개봉하여 모두 손익분기점에 크게 미치지 못한 세 편의 영화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글을 읽다보니 영화를 보고 읽어야할 것 같아 영화들을 보고 나중에 기사의 나머지를 읽었다. 송경원의 글은 대개 수긍할만했지만 나로서는 과하게 비판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마약왕은 송강호 원톱 주연 영화로서 송강호에게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다. 나도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기왕에 흥행에 실패한 이후 봐서인지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작은 밀수꾼이 마약 밀매를 하다가 나중에 제조도 하고, 피맛을 본 이후에는 직접 몸에 뽕을 놔서 마약쟁이가 되고 파멸한다는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두삼에게서 박정희를 발견한다면 제대로 본 거라고 친절하고 설명하는 걸 읽고 난 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친절하게 이두삼의 부인을 육영수 여사의 머리 스타일로 변신시킨 장면까지 있었다. 설에 만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는 자기가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박정희가 없었으면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가, 그러니까 이런 경제발전의 세상을 만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오랜 친구의 그런 반응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이 시점에 박정희 말년에 대한 비판 영화가 적절한 것이냐라는 질문은 던질 수도 있겠다.

아마 영화의 기획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에 이루어졌고, 원래의 박근혜 정권 말기를 겨냥한 영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파급력도 크고 논쟁도 더 크게 되었을 터이지만 갑자기 시작된 문재인 정부에서 이 영화는 이미 몰락한 박정희 정부와 그의 딸인 박근혜 정권도 과거의 일이 된 상황에서 이들 부녀의 정권이 이렇게 추악했다는 걸 환기시키는 역할 정도에 그쳤다. 이두삼은 직접적으로 박정희와 악수하고 대면하는 위치에 올랐고, 권력의 중요직에 있는 여러 인물에게 뇌물을 바쳤다. 박정희 사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는 이두삼의 수첩에는 여러 권력자들의 연락처가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적혀있었다.

후반부의 텅빈 저택에서 엽총을 쏘아대는 이두삼의 광경은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상당히 길게 묘사된 그 장면에서 감독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을까?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는 폭군의 말로?

스윙 키즈는 어떤가. 작년 초에 이런 영화가 올해 개봉한다는 씨네21의 기사에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탭 댄스를 추는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줄거리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거제 수용소에서 탭 댄스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 엄청난 거리감은 결국 영화의 설득력을 무너뜨렸다. 강형철의 예전 작품인 써니는 웃음 포인트는 많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몇 장면 때문에 좋게 평가할 수 없었다. 스윙 키즈는 비극의 장소인 포로수용소에서마저 많은 웃음 포인트를 넣었고 어떤 지점에서는 설득이 될 뻔도 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영화를 본 후에 많이 찾아서 읽어보았다. 나로서는 뜨악한 설정은 기록사진에서 수용소에서 탈춤 추는 걸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완전한 판타지는 아니라는 것이고, 영화는 뮤지컬 원작이 있다고도 한다. OK. 영화가 흥겨운 전반부와 광기의 후반부로 급격히 전환되는 이유에 대해 감독은 뻔한 전개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막판 주인공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설정에 대해 친구는 B급, C급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라 평했다. 하지만 거제수용소의 실제 역사를 감안한다면 감독이 비극의 결말을 제시하며 남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의 비극을 환기한다는 그 취지에는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인 하사, 가짜 전쟁영웅의 동생인 북한군 포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게 들어온 민간인, 뚱뚱한 영양실조의 중국군 포로, 젊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스윙 키즈 탭 댄스단은 여러 마이너리티들의 조합이자 전쟁 참전국들이 고르게 포함된 다층적 메타포일 것이다. 결국 이 순진무구한 존재들은 이데올로기의 광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다(미국인은 죽지 않는다. 그들이 살인자였다). 감독의 취지는 남북 화해 모드의 현실에서 이 관계가 다시 옛날처럼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포로 수용소라는 장소를 그저 용광로 같은 소재로 보지 말고 그 비극성의 역사적 심각함을 생각했어야 한다.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 할 기획이라고 본다.

영화 개봉 초기의 반응은 칭찬 일색이었다. 특히 언론 기사, 리뷰는 거의 하나도 빼지 않고 긍정적이었다. 흥행 참패 이후에서야 150억 투자한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책임감이 없었다는 때늦은 비판이 나오긴 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열연, 새로운 배우들의 발견, 신나는 탭 댄스, 올바른 영화의 취지까지 흠을 잡지 않으려면 장점은 많다. 그러나 보헤미안 랩소디가 역주행 흥행을 하는 상황에서 몰살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은 너무 어두웠던 모양이다. 그 반작용인 것처럼 극한직업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지금까지 흥행 싹쓸이를 하고 있다.

PMC 더 벙커는 송경원 기자가 세 작품 중 그나마 후하게 평한 영화였다. 많은 대사가 영어로 처리되는데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장르적 차원에서는 호의적으로 평할만한 영화였다. 특히 막판에 낙하산 씬과 미사일 씬은 한국 영화에서 이런 것도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다룬 이 영화에서 대선 투표일에 출구 조사 결과가 대통령이 인터뷰하는 와중에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장면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눈여겨본 것은 하정우가 맡은 배역의 이름인 에이햅이다. 에이햅은 모비 딕의 그 유명한 선장 캐릭터다. 선장, 캡틴. 에이햅이 다리를 잃은 것은 흰 고래 때문이고 그 고래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집착이 소설의 줄기다. 이 영화가 소설의 에이햅과 같은 것은 한쪽 다리를 잃은 캐릭터라는 점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에이햅이 의족을 한 이유는 낙하산에서 한 명을 더 안고 내려와서이고 이는 죽어가는 동료를 데리고 다녀야하느냐는 영화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는 문제와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죽어버리더라도 그냥 놔두면 속절없이 죽을 동료를 살려보겠다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영화의 대답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냥 두면 죽을 북한 의사를 애써 살려내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 모비 딕이 죽을 것을 알면서 죽으러가는 이야기라면 영화는 노력해도 동료가 거의 죽을 걸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려보는 노력을 해본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복잡하게 돌아가서 미국이 대선일에 서울 하늘에서 미사일을 북한 소행으로 위장해 날리고 막고, 중국이 북한을 먹으려고 하기도 하고, 중국과 미국이 공중전을 벌이는 등 살벌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잘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 모든 소동의 결과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하는 모양인데 한반도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정우는 사실상 미국인이고 이선균은 북한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한국 땅에서 살아남아서 나중에 어떻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 영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남북 관계를 다룬다. 스윙 키즈가 이념 대립의 극한에서 전쟁을 벌이던 과거를, 마약왕은 일본이라는 제3국을 경유한 남북 민간 합작의 한 형태를, PMC는 가상의 미래에 지하 벙커에서의 전투를 그린다. PMC는 굳이 따지면 남한 쪽은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미군과 북한군 그리고 민간 전투 집단들의 조합. 근래에 북한을 다룬 영화는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한국 내의 사건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총기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좋은 소재였을까? 북한을 전반적으로 악마처럼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하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실제 북한의 모습과 영화 속의 그 모습들은 얼마나 닮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가상의 전형을 만들어 놓고 답습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