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인줄 전혀 모르고 봤다가 결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을 받았다. 스포는 언제나 철저히 하는 블로그였으니 혹시 스포를 원치 않는 사람은 읽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혼잣말일 수도 있겠지만.
치매 노인인 남자 주인공이 아내가 최근에 죽고 난 후 친구 노인으로부터 비밀 지령을 받게 된다. 둘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생존자들로, 그들에게 고통을 준 독일 장교가 미국에 와서 살고 있음을 알고 그를 총으로 죽이기로 한다. 하지만 동명의 남자가 네 명이라 하나하나 확인해봐야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네 명을 만나는 순서는 친구 노인이 정해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기실 치매 노인은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던 유대인인양 팔뚝에 숫자 문신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자기가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독일인 장교였던 것이다. 바로 그 점이 가장 논쟁적이고도 도발적이다. 아무리 치매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미국으로 도피한지 70년은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미국에서 유대인 행세를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독일인인 것을, 유대인 학살의 주범임을 그렇게 철저히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
나치에 부역했지만 당시엔 10대 소년에 불과해 아우슈비츠에 가고 싶어도 못 갔던 어느 독일인의 아들 에피소드에서 치매 노인은 나치 독일에 대한 혐오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70년의 세월은 이 정도의 자기기만도 가능하게 한단 말인가.
치매 노인이 본색을 드러낸 건 네 명 중 마지막으로 동료 장교였던 독일인을 찾아가서 바그너를 연주할 때다. 그 동료 노인은 자신을 찾아온,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노인이 자신의 친구였음을 즉시 알아보았다. 치매 노인은 유대인도 음악으로서 바그너를 좋아할 수도 있지 않냐고 항변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치매 노인은 그 전에는 아마도 폴란드 작곡가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야말로 가면이었을까?
그 전에 요리사 출신 독일인의 아들을 아주 무참히도 정확히 총으로 죽였던 것, 그리고 태연히 그 집에서 샤워를 하고 잠을 잔 것은 처음에는 우연과 치매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젊은 시절 장교로서 개미 죽이듯 사람을 죽였던 습관이 튀어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잠을 자고 현장을 떠났으리라.
결론을 알고 보면 영화 전체의 틀은 완전히 다른 식으로 해석된다. 치매 노인의 여행은 자신의 과거의 잘못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소환해내는 여정이었고, 결국 자살로 귀착될 운명이었다. 아우슈비츠 피해자와의 만남은 동감의 과정이 아니라 참회의 과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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