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6일 월요일

어라이벌에 대한 생각 (2)

한국에서 '컨택트'라는 다소 어이없는 제목이 붙어 개봉한 영화 어라이벌의 원작 소설을 영어로 읽어보고, 영화를 다시 보았다. 원문으로 읽은 테드 창의 원작 소설 'The story of your life'은 지나치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과학적 논리나 용어들이 많아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원작 소설은 단편이라고는 해도 너무 짧은 이야기도 아니었다. 읽은데 시간이 적잖이 걸렸는데, 무엇보다 우선 평가할 점은 영화가 원작의 내용을 꽤 많이 가져가서 썼다는 점이다. 캥거루라는 단어의 기원이나 논 지로 썸 게임 같은 부분은 정확히 옮겨서 이용되었다. 영화 엔딩 부분도 원작의 엔딩과 맞추기 위해 꽤 노력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강대국들의 갈등과 세계적 전쟁 발발 가능성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반면 소설에는 그런 긴장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샹 장군 같은 인물이 원작에는 없다. 영화는 딸 하나의 출생과 죽음의 과정을 짤막하게 보여준 후 곧바로 외계인이 온 후 인간들의 불안을 다루며 무언가 불길한 일이 생길 거라는 암시를 계속 준다.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한다면 어떤 흉한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지만 영화는 평화를 주는 외계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불안의 정서는 영화적 긴장감을 위한 장치로 볼 수 밖에 없다.

딸의 이름이 영화에서 하나라고 제시되는데 원작에는 안 나왔던 것 같다. 하나Hannah라는이름의 영어 철자가 앞에서부터 읽어도, 뒤어서부터 거꾸로 읽어도 같아진다는 바로 그 설정 때문에 선택된 이름일 것이다. 마치 주인공인 루이스가 외계인 헵파포드가 준 보편언어 덕분에 선형적이지 않은 시간 관념을 갖게 된 것처럼.

영화의 전체적 틀은 맨 앞에 딸 하나의 출생과 사망이라는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고 제시한 다음, 영화의 대부분인 그 다음 이야기가 딸의 출생이라는 사건의 시작이 어떻게 가능했나라는 그 전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루이스는 외계인이 떠나면서 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다시 말한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인상적인 점은 영화 제목인 어라이벌이 딸의 출생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리고 디파쳐는 딸의 사망을 말하는 단어로 등장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어라이벌은 외계인 헵타포드의 도래로 보는 게 일차적인 반응일 수밖에 없다. 물론 헵타포드의 도착도 중요한 사건이지만 루이스의 인생에서는 남편될 남자와의 만남, 그리고 그와 낳은 딸과의 삶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헵타포드가 3천년의 미래를 운운하며 루이스의 행동이 인류와 헵타포드 종족의 긴 미래에 핵심적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을 알려주긴 하지만 개인사로 보자면 그건 부차적이다.

그렇게 보자면 원작 소설의 한글 번역본의 제목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잘못 된 게 아닌가 싶다. '당신'은 따지고 보면 루이스의 딸, 영화에서는 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다. 그렇다면 존칭을 붙일 게 아니라 "너의 인생의 이야기"라고 해야 적절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고 하면 마치 작가가 독자들을 '당신'으로 지칭하는듯한 뉘앙스가 강하다.

소설에서는 빛이 공기 중에서 물로 이동할 때 굴절되는 현상을 매우 강조한다. 빛이 가장 빠른 길이 어디인지 미리 아는 것처럼 물을 만나자 정확한 각도로 꺾여서 이동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기 중의 한 지점 a에서 물 속의 한 지점 b까지는 직관적으로는 직선적으로 이동해야 가장 빠를 것 같지만 빛으로서는 굴절되어 이동해야 가장 빠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가 마치 정해져있다는 듯한 영화의 메시지와 연결시켜 보면 현 시점에서 가장 빠른 길로 보이는 과정이 나중의 시점까지 고려할 때 실제로 가장 빠른 진행 과정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가 영화에서 보인 여러 행동처럼 타인의 눈으로 보면 무모하게 혹은 미친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정답일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다른 역설적 논리도 다룬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서 나중에 되새겨보아야겠다. 하지만 모든 일의 과정이 정해져있다는 식의 논리라면 꽤나 위험하기도 하다. 또 인간들이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시간 관념을 그들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터득하게 되면, 즉 루이스처럼 미래를 알 게 되는 인간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반드시 평화에 이바지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논리적으로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인간이 자기가 예쁜 외동딸을 낳을 건데 10대나 20대에 불치병으로 혹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것을 알고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와 소설이 달랐던 점 하나만 더 적고 마무리하겠다. 영화에서 이언과 루이스의 결합이 그럴 듯하다는 장치들이 깔려있기는 하지만 무언가 둘이 사랑에 빠지기엔 부족했다는 느낌이 있다. 반면 소설에서는 이 두 연인이 외계인이 떠나기 전에 이미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래서 루이스는 남자에게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려고 연구에 참여시킨 게 아니냐고 농담을 던진다.

컨택트는 외계인과의 만남을 뜻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했던 예전 영화에서는 그들과 만나기 위한 지난한 과정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 어라이벌에서 외계인은 멀리서 메시지만 보낸 게 아니라 지구의 열두 곳에 갑자기 도래했다. 그들과의 접촉, 컨택트는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원작 소설이 그렇고 영화의 엔딩이 그렇듯 남녀의 사랑과 아이를 갖자는 둘의 결단의 결과인 한 자녀의 도착, 탄생이야말로 영화의 주제다. 그러므로 컨택트라는 한국 개봉시의 영화명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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