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6일 목요일

베어풋, 프리데스티네이션, 더 월즈 엔드

예전에 보려고 했다가 못 본 영화들을 해결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신작 영화를 우선적으로 보게되기 때문에 예전의 좋은 영화들을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간단히 평을 쓸 영화를 먼저 적자면 '베어풋'이 있다. 맨발의 처녀, 정신병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젊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알고보면 정신병이 있었던 건 그 어머니였고, 어머니가 그녀를 아무데도 못 가게, 즉 집에 가두고 키우다보니 그 여인이 일반적인 사람이 보기엔 정신이상자로 보였다는 것이다.

영화의 여주인공은 원래는 낯선 배우였겠지만 얼마전 끝난 HBO의 드라마 '웨스트월드'의 여자주인공이었기에 이제는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의 백치미 연기가 웨스트월드에 캐스팅된 계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베어풋'은 작은 규모의 영화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난 가슴따듯해지는 이야기다.

에단 호크 주연의 '프리데스티네이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영화 제목은 칼뱅의 '예정설'이라는 교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신이 정한 구원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원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것이긴 하다.

영화는 재미있게도 영화에 나온 대부분의 인물이 사실상 동일 인물의 다른 시간대의 모습이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선사한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짤막한 단편을 장편 영화로 발전시킨 이야기인데 원작은 '언매리드 마더'라는 필명의 작가와 바텐더의 만남으로 시작된 반면 영화는 에이전트가 된 존이 바텐더로 성형수술하게 된 계기, 피즐 바머에 의해 얼굴이 다 타버린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그 장면을 먼저 보여준다.

여러 리뷰나 의견들을 읽어봤지만 영화의 플롯을 완전히 납득할만한 설명은 없었다.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에 대한 대답으로 수탉(루스터)라는 답이 영화에서 나오는 수수께끼에 대한 희한한 대답처럼 영화를 합리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무언가 그럴듯한 구석이 있고, 약간의 설명이 추가된다면 말이 되는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수긍 정도가 가능하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에 대한 질문 그 자체다. 여자아이로 태어나(사실 남성성기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남자로 성전환을 하고 시간총국의 에이전트가 되어 피즐 바머라는 테러리스트를 막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피즐 바머가 미쳐버린 자기 자신이라는 이야긴데 이렇게 변신을 거듭하는 한 존재가 있지만 애초에 그(녀)가 왜 생겨났는지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 남성인 자신과 여성적 자신의 성교로 인해 태어난 자신이라는 설정인데 1945년의 아기가 1960년대에 태어나서 시간여행으로 고아원 앞에 놓여졌다는 건 애초에, 이야기의 맨 처음에 1945년의 아기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는지 그 실체가 무엇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하고, 영화에서 언급되는 꼬리를 문 뱀, 우로보로스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결국 시작과 끝이 없음을, 그 무한함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이야기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혹자는 시간 여행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무슨 과학적 논리를 더 따지려드느냐고도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재미없게 만드는 주장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더 월즈 엔드라는 영국 영화 이야기를 적어본다. 사이먼 펙이 나오길래 코믹 영화겠구나 했더니, 영화를 보고 찾아보니 내가 예전에 열광했던 숀 오브 더 데드, 핫 퍼즈의 감독이 예전 출연진들을 데려와서 찍은 영화였다.

파란 피의 외계인? 로봇?이라는 설정은 재미있었다. 파란 피는 귀족의 혈통을 의미할텐데 영화 속의 로봇들은 속이 텅 빈, 도자기나 플라스틱 같은 존재들이다. 외계인이 떠나버리겠다고 하자 다들 고개를 떨구고 작동을 멈췄다(나중에 보니 되살아나기도 하더라).

감독의 전작과 유사하게 폭력성의 수위도 역시나 높은 영화였고, 많은 술이 등장하여 유쾌하기도 하고 긴장되게 만들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했다. 네트워크의 폐해, 똑같은 존재들이 늘어난 세상에 대한 불안, 조롱, 경계를 드러낸 영화랄까, 세상은 기계 문명이 사라져도 살만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영화는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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