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Watchmen에 대해 글을 쓰다 멈추었다. 워낙 다룰 지점이 많아서 일단 시작하면 계획한 시간 내에 마무리를 지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어서다. 그래서 전체적인 이야기는 미루기로 하고 최근 에피소드만 다루는 방법을 시도한다.
지난 6편에서 후디드 저스티스의 정체가 윌 리브스였음이 드러나며 큰 충격을 안겼는데 이번 편은 화성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닥터 맨하탄이 실제로는 드라마의 주 무대인 오클라호마의 털사에 있음이 밝혀졌다. 애초에 왜 대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 털사에 세계 최고의 갑부가 이상한 건축물을 세우고, 경찰들이 세븐스 캐벌리에 의해 살해되는지가 문제시 되었다. 드라마의 크리에이터인 데미언 린델로프는 트윈 픽스 이후 많은 미국 드라마들이 그렇듯이 작은 도시의 비밀스러운 사건을 다루는 것인냥 말했지만 애초에 닥터 맨하탄이 털사에 있었기 때문에 중요했던 것이다.
닥터 맨하탄은 왜 털사로 왔는가. 이는 다음 8편에 더 밝혀진 예정이지만 이번 시리즈의 취지와 연결짓자면 털사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블랙 월 스트리트' 학살 사건 때문일 것이다. 이 사건은 윌이라는 꼬마 흑인을 수퍼맨의 운명을 지닌 '후디드 저스티스'로 변모시켰고, 후디드 저스티스는 복면 영웅들이 줄줄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윌이 후디드 저스티스가 된 실제 장소는 털사가 아니라 뉴욕이었지만, 그의 아내인 쥰은 아들을 데리고 털사로 돌아갔다.
이번 7편은 윌과 쥰의 손녀인 드라마의 주인공 앤젤라 아바의 베트남에서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룬다. 앤젤라의 아버지는 털사에서 자랐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는데, 이 세계관에서는 닥터 맨하탄에 의해 베트남이 미국의 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굳이 털사로 돌아오지 않고 베트남에 체류 중이었다. 그는 베트남에서 흑인 아내를 만났고 딸 앤젤라를 키웠다. 레이디 트리우가 베트남 출신인 것처럼 이 드라마는 베트남이 기왕에 미국의 일부가 된 이상 그 설정을 극대화하여 미국 최고의 부자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설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앤젤라의 어린 시절 베트남인들 중에는 닥터 맨하탄의 가공할 폭력과 그로 인한 굴욕적 항복에 분개하는, '민족주의자'라고 할 사람들, 미국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앤젤라의 부모가 모두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된다. 아직 영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베트남에서 흑인 고아가 되어 고아원에서 구박만 받는 앤젤라는 겨우겨우 할머니 쥰을 만나지만 심장이 좋지 않은 그녀는 앤젤라를 털사로 데려갈 택시 옆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린델로프는 최신 인터뷰에서 앤젤라를 가능한 가장 외롭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 6편에 이어 7편에서도 앤젤라는 윌의 노스탤지어 약을 복용하며 윌의 경험을 거의 직접적 체험인 것처럼 겪었고, 자신의 기억과 할아버지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미국 현대사의 치부인 베트남, 그리고 미국사 전체에 걸쳐 치부로 남은 인종 문제가 결합되어 드라마는 극적인 상상을 자극하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레이디 트리우가 성공한 것은 순전히 기술적 분야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녀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기에, 즉 그녀의 아버지가 에이드리안 바이트라는 설이 지배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녀의 성공이 아버지 덕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천재 백인의 딸이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면 전복적인 의미는 축소된다. 그러면서도 베트남전에서 고통받은 어머니라는 존재도 부각되었기에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비록 가상의 현실이지만 베트남이라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여전히 현재의 미국 안에 각인되어있다는 상징적 설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이가 이 드라마가 재미있지만 왜 인종 문제에만 집착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원작은 권력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뤘는데 왜 린델로프는 명백하게 선악이 갈리는 인종 문제에 초점을 맞추냐는 주장이다. 나도 원작을 읽지는 않았지만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많은 등장인물들이 피부색이 달라도 이중적이거나 근본적인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설정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단순한 구도라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일단 마무리하고 다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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