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4일 월요일

위험사회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우리는 보통 그 점을 잊고 살아간다. 그걸 생각하다간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던 옛사람처럼 되고 말았으리라.

울리히 벡이 학교를 다녀가기도 했지만 위험사회라는 것이 실감이 나는 것 같다. 어린애들이 납치되고 죽어서 돌아오고, 굴지의 기업인 삼성은 특검으로 뒤숭숭하고, 닭, 오리들이 떼로 죽어나간다. 생쥐깡을 비롯한 음식물 안전에 대한 논란은 음식물 가격 급상승과 더불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사회에 의심과 적대감이 넘친다. 불법 체류 노동자의 범죄가 터지니 다 내쫓아버리라고 하고, 태안의 환경 문제가 다시 지적되자 거기 사시는 분들이 알아서 하세요라는 여론이 급등한다. 이것뿐이겠는가. 느닷없는 4월의 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한편 Sharkwater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는데 상어보다 무서운 사람이야기다.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상어도 무섭지 않아라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런지는 더 알아볼 일이다.

2008년 4월 10일 목요일

미녀들의 수난-무방비 도시, 연의 황후

캐스팅만 보면 꽤 기대를 가질 만한 두 편의 영화였지만 보고난 후의 감상은 모두 별로였다. 오히려 심각한 주제는 뒤로 가고 종종 실소를 자아낼 뿐이었다.

개봉 전부터 손예진의 파격 변신이 예고된 무방비 도시를 보며 관객들은 적어도 배우들의 외모 변신에 무방비로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밖의 극적 전개에서는 제대로 당했을 것이다. 조폭의 변종인 폭력적인 소매치기단의 권력 다툼이 그렇게 심각하지 몰랐고,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해서는 안 되는 사랑, 부모에 대한 원망 등 비극적 요인이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슬픔을 강요하지만 그다지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진 않는다. 강한 여장부로 분한 손예진은 영화 내내 여러 남자들의 물리적 폭력과 협박에 의외로 쉽게 굴복하며 그녀가 강한 캐릭터인 건 맞는지조차 의심을 사게 했다.

연의 황후에서 진혜림은 연의 공주으로서 최초로 여성 군주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훈련을 받는 그녀의 표정은 항상 코믹하게 끝난다. 영화 내내 코믹 연기가 절반은 되는 것 같았다. 군주의 책임을 버리고 유유자적하는 멋진 남성과의 전원 생활을 택했지만 혈통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최근 많이 보게 된 견자단의 연기는 좋았건만 좀처럼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온갖 설정은 몰입을 방해한다. 중국의 자신감은 역사마저 간단히 무시하게 만드는 것인지, 이 영화가 원래 판타지 영화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미녀들이 수다를 떨건 수난을 당하건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두 영화는 결국 여성의 역할과 이미지에 대한 고정 관념을 고착시키는 건 아니었을까.

2008년 4월 4일 금요일

The other Boleyn girl

스칼렛 요한슨, 나탈리 포트만 뭐가 더 필요한가? 에릭 바나는 나오거나 말거나.

이 영화를 보며 스칼렛 요한슨의 섹시함은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탈리 포트만과 비교가 됐기 때문인지 아니면 병상에 오래 누워있다가 출산 연기를 해서 그런지 극중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에서 섹시함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괴상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5년쯤 전에 영국사 강의를 들을 때 박지향 교수님은 헨리 8세 부분에서 앤 불린 이야기가 꽤 유명하다고 했다. 난 전혀 몰랐는데. 이 여자가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고 정식으로 왕비가 된 것도 미드 튜더스를 보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거기다 메리 불린? 메리의 존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이 영화는 너무 부각을 해서 실존 인물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The_Other_Boleyn_Girl)를 찾아보니 실존 인물이지만 극정 설정과 달리 메리가 앤의 언니라는 의견이 더 많고 프랑스 궁정에 갔다 온 것도 메리란다.

워낙 걸출한 두 여배우가 주연을 맡아 그녀들의 섹시함 대결(영화 전단지엔 어김없이 뜨거운 베드신을 찬사하는 문구가 포함되었다)에 시선이 집중되기 쉽지만 영화 전체의 흐름을 보자면 긴 이야기를 다 넣기 위해 설렁설렁 넘어가는 부분이 많음을 지적할 수 있다. 앤 불린이 헨리와 처음 만났을 때와 프랑스에 다녀온 이후 변한 점을 느낄 수 없었는데도 헨리는 아들을 낳은 메리를 버리고 앤에게 달려든다. 몸을 허락하지 않는 앤을 위해 캐서린을 버리고 로마 가톨릭에도 등을 돌린 헨리의 모습은 미색에 미혹되어 정신이 나간 발정난 남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순히 정욕을 위해 그렇게 엄청난 정치적 결정들을 내렸을까? 이런 것들은 원작 소설을 봐야 제대로 잘못을 추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헨리 8세는 너무나 감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튜더스의 헨리 8세가 너무 날씬하다 못해 빈약해 보이는 반면 에릭 바나는 원래 체격도 있는데다 잔뜩 부풀려진 의상을 종종 입어서 덩치에 있어서는 그림을 통해 접하는 실제 헨리 8세에 근접한 것 같다. 앤 불린은 그림 속의 인물보다 너무 예쁘지만 그 시대에는 나탈리의 미모가 부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목인 The other Boleyn girl은 당연히 메리를 두고 말하는 것이지만(극중 둘의 어머니가 헨리에게 Which one?이라고 묻듯) 영화의 비중으로 보면 오히려 앤 불린이 The other 쪽인 것 같다. 작가는 메리가 앤의 위치에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야심가가 아닌 순수하게 남자를 사랑한 여자 쪽이. 사랑은 얼마나 허망하던가. 메리는 왜 헨리를 사랑했으며 어떻게 계속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2008년 4월 3일 목요일

[일드] 허니와 클로버





젊은 청년이 눈물을 펑펑 쏟으니 가슴이 아프다. 한편 이 청년의 오해를 생각하니 더 기가 막히다. 그는 왜 우는가? 착각했기 때문이다.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네잎 클로버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샌드위치 속에 숨겨진 네잎 클로버를 구하기 위해 하구짱이 얼마나 고생했을까라며 그녀의 정성에 감탄했던 것이다. 원작인 책이나 먼저 나온 애니메이션 판을 보지 않아서 제목인 허니와 클로버에서 클로버가 뭔지 궁금했는데 결국 이 클로버들인가 보다. 하지만 내 경험상 네잎 클로버가 의외로 집중 서식하는 지역이 있기도 하고, 요즘은 돈으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분위기상 하구미가 돈내고 샀을 것 같진 않지만 운이 좋아 한꺼번에 여러 개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여자로부터 정성이라 생각하고 감동하긴 했겠지. 허니와 클로버 극장판에서 워낙 실망을 했던 터라(아오이 유우의 머리는 정말...)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잘 만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것은 드라마에 대한 것인지 내 청춘에 대한 것인지.

엔딩곡 '캔버스'는 돌아오지 않는 20대의 사랑에 대한 애잔함이 잘 표현된 좋은 노래였다.

2008년 3월 30일 일요일

사슴남자 아오니요시-두 번의 키스로 끝난 드라마




노다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타마키 히로시와 꾸준히 명성을 쌓아올린 아야세 하루카라는 두 스타를 앞세운 사슴남자 아오니요시가 종영되었다. 보조 캐릭터들의 네임 밸류도 상당해서 시작 전에는 꽤 기대를 모았지만 지속적으로 시청한 한국의 팬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타마키가 인기를 얻은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적인 비현실성과 체코, 프랑스를 넘나드는 촬영지로 인해 일본색이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그야말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일본 드라마는 보통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도시적 배경이 바탕으로 깔린 것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오래된 도시인 나라, 오사카, 교토의 풍경, 각 도시의 상징, 전설이 드라마의 핵심인 이 드라마가 한국 대중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드라마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어야할 이유도 없고, 일본에서 대충 인기를 끌면 된다. 하지만 요즘 일본 드라마는 한국 케이블 방송 편성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한류 열풍에도 불구하고 일본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직접적인 리메이크인 하얀 거탑은 물론이고 뉴하트의 설정은 일본의 의룡을 떠올리게 한다.

여하튼 이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의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최고 인기 드라마의 시청률인 20%선에 근접조차 하지 못했다. 배우들의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인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극적 구성의 치밀함을 논하고 싶지는 않으나 하이라이트라할 '눈'의 쟁탈전과 메기를 누르기 위한 의식이 마지막화 초반에 끝나버려 김이 빠진 부분이 없지 않다. 타마키의 분열증적 캐릭터는 노다메에서 치아키의 매력과 너무 이질적이었고, 아야세는 호타루의 빛에서 개그 캐릭터로 성공한 것을 밀고 나갈 셈인 모양인데 이번에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가장 주목할만한 캐릭터는 최근 각종 드라마, 영화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타베 미카코인 것 같다. 드라마 초반 화난 얼굴로 결석하고 칠판에 낙서를 해서 선생을 골탕먹이는 의문의 소녀로 등장했지만 막판 타마키, 아야세와 대동단결하여 일본의 붕괴를 막는다. 이 배우는 귀엽긴 하나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꾸준히 등장하는 것을 보니 연기력이 상당한 모양이다. 하지만 드라마 막판 타마키와의 키스신은 역대 최악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사프리의 이토 미사키와 카메나시 카즈야의 키스와 비견할 바는 아니라도.

드라마의 주역 중 하나는 때로는 CG로 변신하기도 했던 로봇 사슴이다. 일본의 기술력을 칭찬해야 하는지 코웃음을 쳐야 하는지 애매한 인조 사슴의 연기는 극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1분기 드라마 중 아직 다 못 본 장미없는 꽃집을 제외하면 요즘 일본 드라마가 왜 이런가 하는 통탄을 해 마지 않을 상황이다. 허니와 클로버는 아름다운 배우들로 꾸몄으나 영화판만큼이나 실망을 안겨줬고, 내일의 키타요시오는 초반의 실망감을 후반에 약간 만회한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아직 2분기 드라마에 대한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톱스타들을 끌어 모아서 졸작을 만들지는 말기를 소망한다.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Into the wild



처음에는 라스트 킹 오브 스코틀랜드가 떠올랐다. 하지만 라스트 킹의 니콜라스 게리건은 순진한 마음에 우간다로 떠났지만, 인투 더 와일드의 Christopher McCandless는 아니 알렉산더 수퍼트램프는 꽤 작정을 하고 집을 떠난다. 영국 지식인으로서의 오만한 봉사 의식과 달리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정의 부조리를, 사회의 요구들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떠난다.

월든을 탐독하던 그의 선택은 무엇인가. 영화를 보면서 그가 언젠가는 사회로 돌아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하망하게도 그는 독초를 먹고 외롭게 죽는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가 본 마지막 장면을 상상하며(실제 이야기지만 마지막 장면 만큼은 상당한 상상력을 발휘했으리라) 그에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회에는 없는 무언가로 와일드한 태양을 제시한다.

주인공은 알래스카로 떠나기 직전 만난 노인에게 당신은 두려움이 많다고 약올렸다. 하지만 알렉스는 어떨까. 자신이 원하는 바를 극한까지 추구한다는 면에서 용기가 많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출발 자체가 도피였다. 시궁창에서 살지 않겠다고 뛰쳐나가는 것은 좋으나 누구도 납득하지 않는 알래스카에서의 삶 속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2008년 3월 7일 금요일

도킨스의 개체 중심적 사고

...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 중 절반은 잠재적으로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 있고, 새끼의 양육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이용 가치가 있을 잠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같은 종에 속하는 성원들은 서로 아주 닮아 있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활방식으로 유전자를 보존하는 기계이므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놓고 다투는 특히나 직접적인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

이상원,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p.50.(ㄴ도킨스 글 직접 인용한 것)

동족상잔이야말로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