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름다운 영화는 이상하게 파리가 많이 등장한다. 파리가 딱히 엘리오를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지만 엘리오의 곁에는 유난히 파리 한 마리가 함께 등장했다. 점잖은 영화 리뷰들에서 파리를 언급한 경우를 보지 못했지만 구글 검색을 해보면 나처럼 파리의 존재에 주목한 글들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슬레이트의 글에서는 파리가 부패나 죽음에 대한 상징으로 이용되었을 수 있다는 짐작이 소개되어 있었고(http://www.slate.com/blogs/browbeat/2017/12/08/why_are_there_so_many_houseflies_in_call_me_by_your_name.html) 또 다른 사이트의 글은 주인공이 잘 안 씼어서 그렇다느니 복숭아즙 때문이라느니 외 기타 말도 안 되는 추측을 제시하기도 한다(https://www.refinery29.com/2017/11/182629/call-me-by-your-name-flies-theories).
가장 신경쓰이는 파리는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의 벽난로 근처에서 엘리오의 어깨 주변을 날아다닌 그 놈이다. 한국을 생각하면 따뜻할 때 파리가 많다가 날 추워지면 없어지는 것이 도리인데 북부 이탈리아의 파리는 다르단 말인가? 한여름의 파리는 이해하더라도 겨울의 파리는 뭐지? 혹시 마지막 씬도 사실은 여름인데 겨울인척 설정을 하고 촬영한 것일까?
파리의 미스터리를 뒤로 하고 영화 이야기를 더 적어본다. 주요 시상식에서 티모시 샬라메라는 이름이 거론될 때 이 친구는 누구인가 궁금했다. 이 영화를 봐도 전에 본 기억은 없다. 새로 발굴된 얼굴인가 싶었다. 그런데 인터스텔라를 돌려보는 와중에 엘리오의 얼굴과 닮은 소년이 나왔다. 정말 그 배우, 샬라메였다.
샬라메의 상대역은 아미 해머다. 눈에 띄는 큰 키와 잘생긴 외모로 잊혀지지는 않지만 아직 완전한 주연작으로 인상을 남긴 것은 별로 없는 그가 게이 연기를 했다는 것이 처음에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물론 작품에서 해머는 상당 시간 상반신과 긴 다리를 노출했지만 두 주연 배우의 정사 장면은 매우 절제되고 짧게 공개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그림과 조각상들의 사진들이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오프닝 시퀀스를 감안하면 이 두 남성, 10대 후반과 20대 중반의 남자들의 사랑은 완벽한 신들 혹은 영웅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즐거이 서로의 훌륭한 육체를 탐닉하는 것처럼 거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보이게끔 연출되었다. 이 두 남자는 여성과의 성관계도 할 수 있고, 즐길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이끌렸다. 이는 이성이냐 동성이냐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적 사랑의 관계였다.
엘리오의 아버지 역할의 스털바그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를 눈치챘으면서 그 둘의 관계를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매우 희박한 존재 가능성의 아버지다. 사랑의 상처를 싸매고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울면서 고통을 겪어내라는 그의 연설이나 쎄라피에 가까운 말들은 확실히 울림이 있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스털바그는 더 셰입 오브 워터에서도 학자로 등장했다는 점이 눈에 띄고, 샬라메는 아직 못 본 레이디 버드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영화는 좋은 음악들이 많이 나오고, 엘리오가 피아노와 기타에 재능이 있음은 물로 음악의 작곡, 편곡에도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983년쯤으로 설정된 영화의 시간에서 80년대 초반의 팝 음악들도 귀를 사로잡았다. 워즈 같은 노래는 너무 들어 큰 감흥이 없었지만 '러브 마이 웨이'는 그 노래 장단에 넋을 놓고 춤을 춘 아미 해머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 다시 듣게 된다.
2018년 3월 6일 화요일
영화들
근래 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
<토르: 라그나로크>
토르 시리즈를 그다지 재미있게 보지 못 하던 차에 지난 여름 극장에서 토르: 라그나로크의 예고편을 보고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봉 이후 평가가 꽤 좋기에 늦게나마 봤는데 확실히 몇 가지 지점에서 이야기할 점이 있었다. 우선 라그나로크, 즉 신들의 세계의 종말이 제목이고 실제로 영화에서 완전히 망가지는데 이를 시리즈의 종결로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고향이 망가져도 희망은 언제나 있다는 식의 우회로를 택했다. 강력한 토르 누님의 등장 앞에서 라그나로크를 토르가 선택하는 방식은 원래 신화 중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는지 몰라도 좀체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였다. 발퀴레, 발키리를 연기한 테사 톰슨도 인상적이었는데, 웨스트월드에서 처음 주목하게 된 배우인데 20대는 지나간, 경력이 짧지 않은 배우지만 최근 출연작들이 모두 만만치 않아서 차기작들도 기대가 된다.
<쓰리 빌보즈 아웃사이드 에빙, 미주리>
영화는 이미 주요 영화시상식에서 많은 상들을 휩쓸고 있고, 특히 여우주연상을 독식하고 있다. 줄거리만 보면 평범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강한 여성 캐릭터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있는 샘 락웰의 경찰관 연기도 좋았다. 망나니지만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딸을 누가 죽였는지 알기 위한 엄마의 집념은 지역 경찰관들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경찰 캐릭터는 자살을 했고(진짜 동기는 그 사건이 아니고 투병 과정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경찰은 상관 자살 이후의 광기로 말도 안 되는 폭력을 행사했다. 빌보드, 광고판들이 불타고 엄마는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이어졌다.
<다키스트 아워>
왜 영화가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거론되는지 이해가 간다. 다른 캐릭터들은 그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매번 촬영을 위한 분장에 3, 4 시간이 걸렸다는데 개리 올드먼은 처칠과 외모가 매우 다르지만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처칠과 매우 유사했다고 한다.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 막판에 나온 처칠의 연설이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덩케르크 해안의 영국군 병사들이 사투를 벌인 것처럼 처칠도 자신의 정치적 위치와 영국의 국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처칠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영국 왕의 태도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는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화면이 처음부터 좋았던 영화. 주인공 엘리오를 연기한 샬라메는 가만 보니 인터스텔라에서 케이시 애플렉이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였다. 당시는 10대였겠으나 이제 22살이 된 그는 이 영화에서 17살을 연기했고 그 나이로 보였다. 아미 해머가 20대 중반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걸 알게 되고 깜짝 놀랐다. 자세한 이야기는 별도로 써보겠다.
<더 셰입 오브 워터>
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서 17년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동화 같고, 영화에 대한 영화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게 용기를 주는 이 영화에서 흠잡을 곳이 별로 없을 것이다. 표절 시비가 있고, 노골적 오마주(이창동의 오아시스 오마주도 있다고 한다)를 비롯하여 과거의 고전들에서 빌려온 장면이 많다는 점은 논란이 되었다. 샐리 호킨스는 모디에 이어 유사하게 신체적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다만 여기서 그녀는 명백히 인어공주였다. 동화와 달리 땅위의 왕자가 아닌 수륙양용의 혹은 양서류의 왕자 혹은 신을 만나 그녀는 구원되었다.
<저스티스 리그>
기왕에 저 멀리 별나라에서 온, 그리고 예수 캐릭터의 변형임이 분명했던 기존작품을 감안할 때 수퍼맨의 부활은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아쿠아맨이 왜 지상에서 그렇게 잘 싸우는지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아쿠아맨이 왜 저스티스 리그에 포함된 것일까?
<1>1>
휘슬 블로어라는 내부고발자의 영어식 표현을 화면과 소리로 직접적으로 보여준 흥미로운 사례다. 김상경의 군인 연기가 좋았다.
<강철비>
작품의 내력을 전혀 모르고, 변호인의 감독의 두번째 작품임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 이 영화는 화면의 완성도를 볼 때 꽤 공을 들인 작품으로 인정할만했다. 미사일 씬과 엔딩 크레딧이특히 인상적이었다. 작품 속 설정은 공교로움이 넘치고 작위적이라 할만한 것도 많아 어색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토르: 라그나로크>
토르 시리즈를 그다지 재미있게 보지 못 하던 차에 지난 여름 극장에서 토르: 라그나로크의 예고편을 보고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봉 이후 평가가 꽤 좋기에 늦게나마 봤는데 확실히 몇 가지 지점에서 이야기할 점이 있었다. 우선 라그나로크, 즉 신들의 세계의 종말이 제목이고 실제로 영화에서 완전히 망가지는데 이를 시리즈의 종결로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고향이 망가져도 희망은 언제나 있다는 식의 우회로를 택했다. 강력한 토르 누님의 등장 앞에서 라그나로크를 토르가 선택하는 방식은 원래 신화 중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는지 몰라도 좀체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였다. 발퀴레, 발키리를 연기한 테사 톰슨도 인상적이었는데, 웨스트월드에서 처음 주목하게 된 배우인데 20대는 지나간, 경력이 짧지 않은 배우지만 최근 출연작들이 모두 만만치 않아서 차기작들도 기대가 된다.
<쓰리 빌보즈 아웃사이드 에빙, 미주리>
영화는 이미 주요 영화시상식에서 많은 상들을 휩쓸고 있고, 특히 여우주연상을 독식하고 있다. 줄거리만 보면 평범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강한 여성 캐릭터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있는 샘 락웰의 경찰관 연기도 좋았다. 망나니지만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딸을 누가 죽였는지 알기 위한 엄마의 집념은 지역 경찰관들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경찰 캐릭터는 자살을 했고(진짜 동기는 그 사건이 아니고 투병 과정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경찰은 상관 자살 이후의 광기로 말도 안 되는 폭력을 행사했다. 빌보드, 광고판들이 불타고 엄마는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이어졌다.
<다키스트 아워>
왜 영화가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거론되는지 이해가 간다. 다른 캐릭터들은 그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매번 촬영을 위한 분장에 3, 4 시간이 걸렸다는데 개리 올드먼은 처칠과 외모가 매우 다르지만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처칠과 매우 유사했다고 한다.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 막판에 나온 처칠의 연설이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덩케르크 해안의 영국군 병사들이 사투를 벌인 것처럼 처칠도 자신의 정치적 위치와 영국의 국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처칠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영국 왕의 태도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는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화면이 처음부터 좋았던 영화. 주인공 엘리오를 연기한 샬라메는 가만 보니 인터스텔라에서 케이시 애플렉이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였다. 당시는 10대였겠으나 이제 22살이 된 그는 이 영화에서 17살을 연기했고 그 나이로 보였다. 아미 해머가 20대 중반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걸 알게 되고 깜짝 놀랐다. 자세한 이야기는 별도로 써보겠다.
<더 셰입 오브 워터>
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서 17년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동화 같고, 영화에 대한 영화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게 용기를 주는 이 영화에서 흠잡을 곳이 별로 없을 것이다. 표절 시비가 있고, 노골적 오마주(이창동의 오아시스 오마주도 있다고 한다)를 비롯하여 과거의 고전들에서 빌려온 장면이 많다는 점은 논란이 되었다. 샐리 호킨스는 모디에 이어 유사하게 신체적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다만 여기서 그녀는 명백히 인어공주였다. 동화와 달리 땅위의 왕자가 아닌 수륙양용의 혹은 양서류의 왕자 혹은 신을 만나 그녀는 구원되었다.
<저스티스 리그>
기왕에 저 멀리 별나라에서 온, 그리고 예수 캐릭터의 변형임이 분명했던 기존작품을 감안할 때 수퍼맨의 부활은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아쿠아맨이 왜 지상에서 그렇게 잘 싸우는지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아쿠아맨이 왜 저스티스 리그에 포함된 것일까?
<1>1>
휘슬 블로어라는 내부고발자의 영어식 표현을 화면과 소리로 직접적으로 보여준 흥미로운 사례다. 김상경의 군인 연기가 좋았다.
<강철비>
작품의 내력을 전혀 모르고, 변호인의 감독의 두번째 작품임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 이 영화는 화면의 완성도를 볼 때 꽤 공을 들인 작품으로 인정할만했다. 미사일 씬과 엔딩 크레딧이특히 인상적이었다. 작품 속 설정은 공교로움이 넘치고 작위적이라 할만한 것도 많아 어색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90번째 아카데미 시상식
이번 시상식을 생방송이나 재방송으로도 접하지 못한 상태인데 주요한 상들의 수상작/자를 보면 이변이 하나도 없다시피한 시상식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여우주연상에 프란시스 맥도먼드, 남우주연상에 개리 올드먼, 장편 애니메이션의 코코, 작품상에 더 셰입 오브 워터까지. 그동안 무시당하고 있다고 주장되어온 겟 아웃은 수상했으나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는 하나도 상을 받지 못했다. 시상식 실시간 중계글에서는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코비 브라이언트가 참여한 작품이 수상한 것을 두고 미투, 타임스 업 캠페인의 와중에서 논란이 될만한 선정이었다는 평이 있었다. 성폭력의 과거 때문에 케이시 애플렉은 관례와 달리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덩케르크는 주로 사운드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블레이드 러너는 촬영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 같다.
2018년 1월 11일 목요일
2018 골든 글로브
올해 1월에도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TV 부문과 영화 부문을 한꺼번에 시상하고, TV, 영화도 세부 장르에 따라 더 나눠져서 매우 많은 배우들이 상을 받는 행사다. 작품상, 감독상까지 더하면 숨이 차다. 기타 부문은 음악상, 해외영화상 정도가 있을까?
올해는 공로상 정도로 보이는 세실 드 밀 상을 받은 오프라 윈프리의 연설이 화제였다. 이미 수십 년간 자신의 쇼를 진행했던 오프라는 영화에도 종종 출연했다. 나도 몇 편 본 적이 있는데 시상식을 보니 모르는 출연작들도 있다. 그녀는 이번 영화제의 화두였던 타임스 업, 미투 캠페인과 연결되는 일장연설을 펼쳤고 이는 언론들에서도 크게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당장 오프라를 2020년 대선 후보로 내세우자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많은 경우 그렇지만 올해에도 쟁쟁한 후보들이 경쟁을 해서 누가 수상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부문이 많았다. 그렇지만 수상 후보들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누군가는 들어갔어야 했는데 제외되었다고 두루 인정되는 배우, 감독, 작품들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그레타 거윅을 비롯한 여성 감독들이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 많이 거론된다. 거윅은 자신은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작품상을 받았다.
나로서는 가장 이상한 수상자는 이완 맥그리거의 남우주연상 선정이다. 해당 부문은 트윈 픽스 더 리턴의 카일 매클라클란도 후보로 올라 수상 가능성을 점쳤던 미니시리즈 드라마 부문이었다. 기사들에서도 이완 맥그리거의 수상은 이상하다는 평가가 보였고, 그가 파고에서 쌍둥이로 1인 2역을 했기 때문에 준 거 아니냐는 말도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카일은 1인 3역을 했기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 파고는 커리어의 하락세인 이완 맥그리거의 재기작 격이었지만 눈부신 연기였다고 하기는 힘들다.
쓰리 빌보드 아웃사이드 에빙 미주리가 많은 상을 가져갔고, 드라마 부문 영화 남우주연상은 예상대로 처칠을 연기한 개리 올드먼에게 돌아갔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좋은 작품으로 많이 평가를 받았지만 수상에는 실패했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수상 소감을 그만두고 퇴장하라는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자기는 25년을 기다렸으니 1분다 더 달라며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셰잎 오브 워터는 많이 기대가 되지만 짤막짤막하게 볼 수 있는 영상들만으로는 평론가들의 찬사가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올해는 공로상 정도로 보이는 세실 드 밀 상을 받은 오프라 윈프리의 연설이 화제였다. 이미 수십 년간 자신의 쇼를 진행했던 오프라는 영화에도 종종 출연했다. 나도 몇 편 본 적이 있는데 시상식을 보니 모르는 출연작들도 있다. 그녀는 이번 영화제의 화두였던 타임스 업, 미투 캠페인과 연결되는 일장연설을 펼쳤고 이는 언론들에서도 크게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당장 오프라를 2020년 대선 후보로 내세우자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많은 경우 그렇지만 올해에도 쟁쟁한 후보들이 경쟁을 해서 누가 수상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부문이 많았다. 그렇지만 수상 후보들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누군가는 들어갔어야 했는데 제외되었다고 두루 인정되는 배우, 감독, 작품들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그레타 거윅을 비롯한 여성 감독들이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 많이 거론된다. 거윅은 자신은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작품상을 받았다.
나로서는 가장 이상한 수상자는 이완 맥그리거의 남우주연상 선정이다. 해당 부문은 트윈 픽스 더 리턴의 카일 매클라클란도 후보로 올라 수상 가능성을 점쳤던 미니시리즈 드라마 부문이었다. 기사들에서도 이완 맥그리거의 수상은 이상하다는 평가가 보였고, 그가 파고에서 쌍둥이로 1인 2역을 했기 때문에 준 거 아니냐는 말도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카일은 1인 3역을 했기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 파고는 커리어의 하락세인 이완 맥그리거의 재기작 격이었지만 눈부신 연기였다고 하기는 힘들다.
쓰리 빌보드 아웃사이드 에빙 미주리가 많은 상을 가져갔고, 드라마 부문 영화 남우주연상은 예상대로 처칠을 연기한 개리 올드먼에게 돌아갔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좋은 작품으로 많이 평가를 받았지만 수상에는 실패했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수상 소감을 그만두고 퇴장하라는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자기는 25년을 기다렸으니 1분다 더 달라며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셰잎 오브 워터는 많이 기대가 되지만 짤막짤막하게 볼 수 있는 영상들만으로는 평론가들의 찬사가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트윈 픽스와 골든 글로브
아침에 가디언 뉴스를 보다가 골든 글로브 후보들이 공개된 걸 알게 되었다. 후보들을 쭉 보면 영화 부문은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 많아 모르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TV 시리즈들은 최소한 들어본 것들이 대부분인데 눈에 띄게도 트윈 픽스는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오직 남우주연상 후보로서 카일 매클라클란만 볼 수 있다.
영미의 뉴스, 잡지들에서 이번 후보 선정을 두고 말이 많은데 원더 우먼의 패티 젠킨스가 왜 감독상 후보에 들지 못했냐는 것이 가장 큰 논란이다. 할리우드의 성폭력 스캔들 시국에 여성 감독들이 너무 무시를 당한다는 것이다. 나는 원더 우먼이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라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패티 젠킨스의 후보 미선정은 이상하지 않지만 더 비가일드의 소피아 코폴라 혹은 디트로이트의 캐서린 비글로우, 혹은 작품상 후보에 오른 레이디 버드의 그레타 거윅은 고려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디트로이트는 기대 이하였지만).
이 외에도 겟 아웃 감독의 감독상 후보 배제, 영화 mother!의 배제, 드라마 마인드 헌터가 하나도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들도 많이 언급된다. 미녀와 야수 그리고 그 주인공 에마 왓슨도 후보가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골든 글로브 후보 리스트를 보면서 눈에 띄는 배제 작품은 블레이드 러너 2049였다. 엄청난 제작과 홍보비 때문에 본전을 건지지 못한 이 비운의 영화는 적어도 평단의 압도적 호평은 얻었는데 이번 시상식에서는 전혀 호응을 얻지 못 했다. 골든 글로브에 촬영 부문 시상이 있었다면 적어도 여기에는 후보로 올랐을 것 같다. 음악도 나쁘지 않았는데 한스 짐머는 덩케르크로 해당 부문의 후보가 되었다.
누가 후보가 되지 않았냐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막상 후보로 선정된 작품이나 배우, 영화인들을 보면 납득이 안 된느 것은 아니다. 그만큼 후보로 오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닌 것이고, 시상식마다 전통적으로 편애하거나 미워하는 작품이 있는 만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있다.
영미의 뉴스, 잡지들에서 이번 후보 선정을 두고 말이 많은데 원더 우먼의 패티 젠킨스가 왜 감독상 후보에 들지 못했냐는 것이 가장 큰 논란이다. 할리우드의 성폭력 스캔들 시국에 여성 감독들이 너무 무시를 당한다는 것이다. 나는 원더 우먼이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라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패티 젠킨스의 후보 미선정은 이상하지 않지만 더 비가일드의 소피아 코폴라 혹은 디트로이트의 캐서린 비글로우, 혹은 작품상 후보에 오른 레이디 버드의 그레타 거윅은 고려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디트로이트는 기대 이하였지만).
이 외에도 겟 아웃 감독의 감독상 후보 배제, 영화 mother!의 배제, 드라마 마인드 헌터가 하나도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들도 많이 언급된다. 미녀와 야수 그리고 그 주인공 에마 왓슨도 후보가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골든 글로브 후보 리스트를 보면서 눈에 띄는 배제 작품은 블레이드 러너 2049였다. 엄청난 제작과 홍보비 때문에 본전을 건지지 못한 이 비운의 영화는 적어도 평단의 압도적 호평은 얻었는데 이번 시상식에서는 전혀 호응을 얻지 못 했다. 골든 글로브에 촬영 부문 시상이 있었다면 적어도 여기에는 후보로 올랐을 것 같다. 음악도 나쁘지 않았는데 한스 짐머는 덩케르크로 해당 부문의 후보가 되었다.
누가 후보가 되지 않았냐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막상 후보로 선정된 작품이나 배우, 영화인들을 보면 납득이 안 된느 것은 아니다. 그만큼 후보로 오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닌 것이고, 시상식마다 전통적으로 편애하거나 미워하는 작품이 있는 만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있다.
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트윈 픽스 더 리턴 다시 보기 - 1
트윈 픽스 블루레이 디스크가 인기를 끌어서 많은 구매자들이 아직 못 받고 있다는 소식이 보이는 가운데 아마존의 블루레이 세트 가격은 예매 때보다 십몇 달러 정도 인상되었다. 당분간 사지는 못할 듯 하고 '더 리턴'의 초반 에피소드 몇 개를 다시 보았다.
예상대로 1편부터 다시 보면 몇 달 전 어리둥절한 상태로 보았던 조각들이 더 잘 맞춰진다. '더 리턴'을 18시간 짜리 영화로 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확실히 18편까지 전체를 염두에 두고 봐야, 즉 다시 보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리즈다.
이번에 다시 발견한 부분은 3편 초반에 끝도 없이 어디론가 떨어지는 듯한 장면에서 흔들리는 쿠퍼의 얼굴이 고든 콜 사무실의 카프카 사진의 얼굴과 매우 비슷하게 연출된 점이다. 그 의도가 카프카의 어떤 소설과 연관이 있는지는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빨간 방에서 마이크가 쿠퍼에게 한 이야기는 잘 몰랐던 것을 알게 해준다. 마이크는 빨간 방에 갖힌 쿠퍼가 나가기 위해서는 도플갱어인 미스터 C가 빨간 방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스터 C가 알고 있었고, 손을 써놨다고 말했다. 이후의 전개 과정을 보면 미스터 C가 돌아간 후 쿠퍼가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 더기가 빨간 방으로 들어갔고 쿠퍼는 더기로서 세상에 나왔다.
위의 상황을 감안하면 더기라는 존재는 미스터 C가 빨간 방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이며, 세상에 존재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기가 커리어를 쌓았다는 보험사의 공간과 제이니 이와 소니 짐이 있는 가정의 공간은 모두 미스터 C가 만들어냈거나 혹은 미스터 C가 조작해낸 장소들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드라마의 흐름상 이는 명확해보인다. 미스터 C는 쿠퍼의 암살도 사주했다.
통나무틀 통해 마가렛은 호크에게 인디언의 유산과 연관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라고 했다. 회의실에서 증거물들을 늘어놓은 이후 증거품 중 하나인 토끼 그림이 그려진 초콜릿이 의혹의 대상이 되는데 호크는 토끼가 상관있을리가 없다고 확신한다. 그 과정에서 설마하는 심정으로 돌아가다가도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나듯이 잭래빗의 궁전이 가야할 장소였으니 통나무의 조언은 확실한 정보였다.
쿠퍼가 더기로 세상에 나온 이후의 모습은 어린아이 같다는 이야기는 이미 나온 바 있는데 그는 확실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더기/쿠퍼는 남들이 자기를 미스터 잭팟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받아들였고, 남들이 너는 더기 존스라고 부르자 나는 더기 존스라고 말했다. 자신이 에이전트 쿠퍼라는 의식은 전혀 없었다. 그는 갓난아이처럼 말들을 배우고, 화장실 이용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지만 커피에 대한 본능이나 암살자를 제압했을 때의 반응처럼 쿠퍼로서의 경험이 무의식 상태로 남아있다.
실버 머스탱 카지노에서 CCTV 카메라가 두 번 카메라에 잡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쿠퍼 덕에 두 번의 메가잭팟을 터뜨린 가난한 할머니는 쿠퍼가 잭팟을 떠뜨리고 수거하지 않은 동전을 탐내다가 머리 위의 감시 카메라를 보며 손가락 욕을 했다. 카지노를 떠나 집으로 가려던 쿠퍼는 카지노 사무실에서 돈자루를 받으며 관리자의 위협을 받고는 역시 머리 위의 카메라를 보았다. 그의 의식 수준에서 감시 카메라의 존재를 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물론 그 카메라를 통해 미첨 형제들이 감시를 하는 것이지만 쿠퍼가 그들을 만난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마치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감시를 인식하듯이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이 시리즈에서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다. 처음부터 뉴욕의 고층 빌딩 옥상에서 텅 빈 상자를 멍하니 한참 바라보는 청년이 등장했고, 커다른 TV를 보는 새라의 장면은 초반은 물론 이후로도 몇 번 등장한다. 화이트 로지로 알려진 거인과 세뇨리타 다이도의 공간은 극장처럼 생겼고 극장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보는 행위들은 모두 다른 의미가 있다. 카지노 사무실에서 쿠퍼의 감시 카메라 보기는, 쿠퍼가 눈길이 바로 가는 관리자 책상 위에 놓인 주사위로 만든 펜꽂이를 호기심에 바라보는 행위와는 다른, 마치 카메라가 나를 보라고 명령해서 바라본 것 같은 시선의 이동이었다. 카지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감시 카메라가 출입자들을 다 파악하고 있으니 다시는 카지노에 오지 말라는 관리자의 말을 확인하는 차원의 행위이겠으나 이 때의 쿠퍼가 그럴리는 없다. 요원으로서 쿠퍼의 무의식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 장면은 매우 이상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즉각적으로 어떤 신의 시선을 느낀 피조물의 의식 같은 것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과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예상대로 1편부터 다시 보면 몇 달 전 어리둥절한 상태로 보았던 조각들이 더 잘 맞춰진다. '더 리턴'을 18시간 짜리 영화로 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확실히 18편까지 전체를 염두에 두고 봐야, 즉 다시 보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리즈다.
이번에 다시 발견한 부분은 3편 초반에 끝도 없이 어디론가 떨어지는 듯한 장면에서 흔들리는 쿠퍼의 얼굴이 고든 콜 사무실의 카프카 사진의 얼굴과 매우 비슷하게 연출된 점이다. 그 의도가 카프카의 어떤 소설과 연관이 있는지는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빨간 방에서 마이크가 쿠퍼에게 한 이야기는 잘 몰랐던 것을 알게 해준다. 마이크는 빨간 방에 갖힌 쿠퍼가 나가기 위해서는 도플갱어인 미스터 C가 빨간 방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스터 C가 알고 있었고, 손을 써놨다고 말했다. 이후의 전개 과정을 보면 미스터 C가 돌아간 후 쿠퍼가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 더기가 빨간 방으로 들어갔고 쿠퍼는 더기로서 세상에 나왔다.
위의 상황을 감안하면 더기라는 존재는 미스터 C가 빨간 방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이며, 세상에 존재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기가 커리어를 쌓았다는 보험사의 공간과 제이니 이와 소니 짐이 있는 가정의 공간은 모두 미스터 C가 만들어냈거나 혹은 미스터 C가 조작해낸 장소들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드라마의 흐름상 이는 명확해보인다. 미스터 C는 쿠퍼의 암살도 사주했다.
통나무틀 통해 마가렛은 호크에게 인디언의 유산과 연관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라고 했다. 회의실에서 증거물들을 늘어놓은 이후 증거품 중 하나인 토끼 그림이 그려진 초콜릿이 의혹의 대상이 되는데 호크는 토끼가 상관있을리가 없다고 확신한다. 그 과정에서 설마하는 심정으로 돌아가다가도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나듯이 잭래빗의 궁전이 가야할 장소였으니 통나무의 조언은 확실한 정보였다.
쿠퍼가 더기로 세상에 나온 이후의 모습은 어린아이 같다는 이야기는 이미 나온 바 있는데 그는 확실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더기/쿠퍼는 남들이 자기를 미스터 잭팟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받아들였고, 남들이 너는 더기 존스라고 부르자 나는 더기 존스라고 말했다. 자신이 에이전트 쿠퍼라는 의식은 전혀 없었다. 그는 갓난아이처럼 말들을 배우고, 화장실 이용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지만 커피에 대한 본능이나 암살자를 제압했을 때의 반응처럼 쿠퍼로서의 경험이 무의식 상태로 남아있다.
실버 머스탱 카지노에서 CCTV 카메라가 두 번 카메라에 잡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쿠퍼 덕에 두 번의 메가잭팟을 터뜨린 가난한 할머니는 쿠퍼가 잭팟을 떠뜨리고 수거하지 않은 동전을 탐내다가 머리 위의 감시 카메라를 보며 손가락 욕을 했다. 카지노를 떠나 집으로 가려던 쿠퍼는 카지노 사무실에서 돈자루를 받으며 관리자의 위협을 받고는 역시 머리 위의 카메라를 보았다. 그의 의식 수준에서 감시 카메라의 존재를 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물론 그 카메라를 통해 미첨 형제들이 감시를 하는 것이지만 쿠퍼가 그들을 만난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마치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감시를 인식하듯이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이 시리즈에서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다. 처음부터 뉴욕의 고층 빌딩 옥상에서 텅 빈 상자를 멍하니 한참 바라보는 청년이 등장했고, 커다른 TV를 보는 새라의 장면은 초반은 물론 이후로도 몇 번 등장한다. 화이트 로지로 알려진 거인과 세뇨리타 다이도의 공간은 극장처럼 생겼고 극장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보는 행위들은 모두 다른 의미가 있다. 카지노 사무실에서 쿠퍼의 감시 카메라 보기는, 쿠퍼가 눈길이 바로 가는 관리자 책상 위에 놓인 주사위로 만든 펜꽂이를 호기심에 바라보는 행위와는 다른, 마치 카메라가 나를 보라고 명령해서 바라본 것 같은 시선의 이동이었다. 카지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감시 카메라가 출입자들을 다 파악하고 있으니 다시는 카지노에 오지 말라는 관리자의 말을 확인하는 차원의 행위이겠으나 이 때의 쿠퍼가 그럴리는 없다. 요원으로서 쿠퍼의 무의식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 장면은 매우 이상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즉각적으로 어떤 신의 시선을 느낀 피조물의 의식 같은 것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과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2017년 12월 6일 수요일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
비정성시를 보아야지 마음만 먹고 있던 와중에 최근 한국에 개봉한 거의 4시간짜리 대만 영화,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화제다. 일반 관객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전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유명한 영화(음악) 팟캐스트들에서는 주요한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영화를 보고 씨네21 송경원의 글과 중앙일보 김형석의 글까지 읽어보았다.
이제는 고인이 된 영화감독의 역작이라는 말보다는 대만의 1960년대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 마음이 더 끌렸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기대보다 훨씬 복잡한 당시 대만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감독이 60년대 대만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재현했는지는 미지수고 우리나라 사람이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송경원의 말처럼 누군가가 다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치더라도 영화의 장면이 실제와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따져볼 수는 있다. 어느 정도 고증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내가 위에 언급한 두 가지 글은 공히 빛을 중요하게 다뤘다. 그러한 지적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이 된다. 영화에는 빛이 매우 중요한 테마였다. 샤오쓰는 야간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 주간학교로 진입하고자 했다. 영화 촬영장에서 빛/조명이 중요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촬영장에서도 장면마다 손전등을 비추는가 마는가, 촬영 중인가 아닌가, 밤인가 낮인가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등장한다. 김형석이 소년이 손전등을 훔쳐서 놀다가 말미에 다시 촬영장에 반납하고는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어둠의 세계로 완전히 가버린 소년의 마음과 행동으로 해석한 것은 맞는 말 같고 감독이 의도한 것 같다. 전력 공급이 부족해서 일어난 밤의 깜빡거림에 대한 지적도 유익했다.
나에게 더 주목되는 지점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군인의 풍경이다. 소년들의 학교 교복마저 군복처럼 보이는 가운데 영화 속 대만의 도시에는 갑작스럽게 탱크들이 거리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학교에서 멀지 않은 평지에서 군인들이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당시의 대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직후, 한국전쟁 즈음 혹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나 상상할만한 탱크의 시내 활보는 충격적이었다.
군인의 폭력은 적군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거대한 살상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그 가능성, 그 상상 자체가 사회의 긴장을 유발했을 것이다. 공산화된 중국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은 60년 정도라면 여전히 고향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것이고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마저도 배제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대만이라는 땅은 아직 낯설 뿐이고, 일단 왔으니 어떻게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야 할 투쟁의 장이다. 어른들은 직업의 안전성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부모의 관심이 부족한 아이들, 사내 아이들은 갱이 되어 다른 조직과 싸움을 벌인다.
소년 갱들의 다툼은 성인의 범죄 조직과 연결되어 있었고, 갱들의 다툼은 종종 살인으로 이어졌다. 일본과 공산당과의 싸움과 그 유산으로서 대만에는 사무라이 칼과 총들이 많았다. 일본인 지배자들이 살다가 도망치듯 버리고 간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대만/중국인들의 아이들은 다락에서 사무라이 검(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다)과 권총을 찾아내서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실제 조직간 다툼에서 살상 무기로도 사용했다. 이런 종류의 유혈낭자한 소년 폭력은 한국 문학에서 본 기억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갖고 놀 정도로 검이나 총이 많지는 않았던 것일까? 정부에서 강력한 단속을 했을까?
밍이 권총으로 장난을 치다가 샤오쓰를 향해 권총이 격발되었을 때는 영화 제목의 ‘소년 살인’이 밍이 소년 샤오쓰를 죽이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샤오쓰는 멀쩡하고, 그 뒤편 어딘가가 총알에 맞은 흔적도 없다. 그러나 그 상징적 장면과 정반대로 샤오쓰가 밍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소년’ 샤오쓰가 여자아이를 살인한 사건의 진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진상 자체는 송경원의 말처럼 영화의 본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만 사회에서 최초의 미성년 살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널리 알려지면서 사건 이름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으로 굳어진 모양이지만 고령가 주변에서 소년들은 이미 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 사건이 크게 된 이유는 갱단 멤버를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찰의 의문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철학적이고 얌전한 소년이 저지른 살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샤오쓰는 갱단과 함께 다니긴 하지만 나름대로 성적도 괜찮은 아이였다. 하지만 갱단과 다니며 폭력에 전염 혹은 면역이 되었기 때문인지 그의 폭력성은 영화 초반부터 튀어나온 것 같다. 막판에 교무실에서 전구를 야구방망이로 깨버린(직후 아버지와 자전거를 밀며 나누던 대화에서 나온 것처럼 그가 때린 것은 전구라기 보다 교장(?)의 머리였던가?) 그의 행동은 어린 시절 나의 행동 혹은 드러내지 못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현실성은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도 드러난다.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일본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있던 60년 경의 대만은 이제 일본이 아니라 미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진으로 도배된 캣(키가 너무 작아 친구라고 보기 불가능할 정도지만 노래와 의리 하나는 기막혔던 캣)의 방이 상징적이고, 샤오쓰의 큰 누나의 미국 유학도 그런 사회의 단면이다. 자격 서류를 중국에 두고 온 엄마는 미국으로 가능한 빨리 가라고 딸을 종용했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과 대만은 매우 닮아있는데 아들이 아닌 딸을 유학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도 구한말부터 여자아이가 해외 유학을 가긴 했다. 캐릭터들의 이름이 허니, 슬라이, 캣과 같이 영어식인 것도 재미있다.
야구방망이라는 물건도 재미있다. 야구방망이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야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이 즈음에 세계적으로 야구를 많이 하는 나라는 별로 없었다. 미국에서 개발된 이 스포츠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본의 식민지인 대만과 한국에도 깊이 이식되었다. 일본을 벗어나 미국의 우산으로 들어간 대만과 한국에서 야구방망이는 이상하지 않은 물건이긴 한데 영화에서는 야구를 하는 장면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방망이는 그저 흉기인 몽둥이로 사용될 뿐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야구 '빠따'는 흉기로 인정된다.
4시간이 한 시간 같다는 뉴스 제목이 보이긴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생각만큼 지루하지 않았다, 감독의 다른 작품도 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작품이 인생에서 누구나 꼭 봐야할 영화라고 찬양하는 평론가, 작가들의 말에 100% 공감은 안 되지만 곱씹어볼 여지가 많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영화감독의 역작이라는 말보다는 대만의 1960년대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 마음이 더 끌렸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기대보다 훨씬 복잡한 당시 대만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감독이 60년대 대만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재현했는지는 미지수고 우리나라 사람이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송경원의 말처럼 누군가가 다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치더라도 영화의 장면이 실제와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따져볼 수는 있다. 어느 정도 고증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내가 위에 언급한 두 가지 글은 공히 빛을 중요하게 다뤘다. 그러한 지적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이 된다. 영화에는 빛이 매우 중요한 테마였다. 샤오쓰는 야간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 주간학교로 진입하고자 했다. 영화 촬영장에서 빛/조명이 중요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촬영장에서도 장면마다 손전등을 비추는가 마는가, 촬영 중인가 아닌가, 밤인가 낮인가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등장한다. 김형석이 소년이 손전등을 훔쳐서 놀다가 말미에 다시 촬영장에 반납하고는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어둠의 세계로 완전히 가버린 소년의 마음과 행동으로 해석한 것은 맞는 말 같고 감독이 의도한 것 같다. 전력 공급이 부족해서 일어난 밤의 깜빡거림에 대한 지적도 유익했다.
나에게 더 주목되는 지점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군인의 풍경이다. 소년들의 학교 교복마저 군복처럼 보이는 가운데 영화 속 대만의 도시에는 갑작스럽게 탱크들이 거리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학교에서 멀지 않은 평지에서 군인들이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당시의 대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직후, 한국전쟁 즈음 혹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나 상상할만한 탱크의 시내 활보는 충격적이었다.
군인의 폭력은 적군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거대한 살상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그 가능성, 그 상상 자체가 사회의 긴장을 유발했을 것이다. 공산화된 중국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은 60년 정도라면 여전히 고향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것이고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마저도 배제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대만이라는 땅은 아직 낯설 뿐이고, 일단 왔으니 어떻게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야 할 투쟁의 장이다. 어른들은 직업의 안전성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부모의 관심이 부족한 아이들, 사내 아이들은 갱이 되어 다른 조직과 싸움을 벌인다.
소년 갱들의 다툼은 성인의 범죄 조직과 연결되어 있었고, 갱들의 다툼은 종종 살인으로 이어졌다. 일본과 공산당과의 싸움과 그 유산으로서 대만에는 사무라이 칼과 총들이 많았다. 일본인 지배자들이 살다가 도망치듯 버리고 간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대만/중국인들의 아이들은 다락에서 사무라이 검(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다)과 권총을 찾아내서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실제 조직간 다툼에서 살상 무기로도 사용했다. 이런 종류의 유혈낭자한 소년 폭력은 한국 문학에서 본 기억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갖고 놀 정도로 검이나 총이 많지는 않았던 것일까? 정부에서 강력한 단속을 했을까?
밍이 권총으로 장난을 치다가 샤오쓰를 향해 권총이 격발되었을 때는 영화 제목의 ‘소년 살인’이 밍이 소년 샤오쓰를 죽이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샤오쓰는 멀쩡하고, 그 뒤편 어딘가가 총알에 맞은 흔적도 없다. 그러나 그 상징적 장면과 정반대로 샤오쓰가 밍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소년’ 샤오쓰가 여자아이를 살인한 사건의 진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진상 자체는 송경원의 말처럼 영화의 본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만 사회에서 최초의 미성년 살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널리 알려지면서 사건 이름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으로 굳어진 모양이지만 고령가 주변에서 소년들은 이미 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 사건이 크게 된 이유는 갱단 멤버를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찰의 의문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철학적이고 얌전한 소년이 저지른 살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샤오쓰는 갱단과 함께 다니긴 하지만 나름대로 성적도 괜찮은 아이였다. 하지만 갱단과 다니며 폭력에 전염 혹은 면역이 되었기 때문인지 그의 폭력성은 영화 초반부터 튀어나온 것 같다. 막판에 교무실에서 전구를 야구방망이로 깨버린(직후 아버지와 자전거를 밀며 나누던 대화에서 나온 것처럼 그가 때린 것은 전구라기 보다 교장(?)의 머리였던가?) 그의 행동은 어린 시절 나의 행동 혹은 드러내지 못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현실성은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도 드러난다.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일본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있던 60년 경의 대만은 이제 일본이 아니라 미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진으로 도배된 캣(키가 너무 작아 친구라고 보기 불가능할 정도지만 노래와 의리 하나는 기막혔던 캣)의 방이 상징적이고, 샤오쓰의 큰 누나의 미국 유학도 그런 사회의 단면이다. 자격 서류를 중국에 두고 온 엄마는 미국으로 가능한 빨리 가라고 딸을 종용했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과 대만은 매우 닮아있는데 아들이 아닌 딸을 유학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도 구한말부터 여자아이가 해외 유학을 가긴 했다. 캐릭터들의 이름이 허니, 슬라이, 캣과 같이 영어식인 것도 재미있다.
야구방망이라는 물건도 재미있다. 야구방망이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야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이 즈음에 세계적으로 야구를 많이 하는 나라는 별로 없었다. 미국에서 개발된 이 스포츠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본의 식민지인 대만과 한국에도 깊이 이식되었다. 일본을 벗어나 미국의 우산으로 들어간 대만과 한국에서 야구방망이는 이상하지 않은 물건이긴 한데 영화에서는 야구를 하는 장면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방망이는 그저 흉기인 몽둥이로 사용될 뿐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야구 '빠따'는 흉기로 인정된다.
4시간이 한 시간 같다는 뉴스 제목이 보이긴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생각만큼 지루하지 않았다, 감독의 다른 작품도 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작품이 인생에서 누구나 꼭 봐야할 영화라고 찬양하는 평론가, 작가들의 말에 100% 공감은 안 되지만 곱씹어볼 여지가 많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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