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름다운 영화는 이상하게 파리가 많이 등장한다. 파리가 딱히 엘리오를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지만 엘리오의 곁에는 유난히 파리 한 마리가 함께 등장했다. 점잖은 영화 리뷰들에서 파리를 언급한 경우를 보지 못했지만 구글 검색을 해보면 나처럼 파리의 존재에 주목한 글들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슬레이트의 글에서는 파리가 부패나 죽음에 대한 상징으로 이용되었을 수 있다는 짐작이 소개되어 있었고(http://www.slate.com/blogs/browbeat/2017/12/08/why_are_there_so_many_houseflies_in_call_me_by_your_name.html) 또 다른 사이트의 글은 주인공이 잘 안 씼어서 그렇다느니 복숭아즙 때문이라느니 외 기타 말도 안 되는 추측을 제시하기도 한다(https://www.refinery29.com/2017/11/182629/call-me-by-your-name-flies-theories).
가장 신경쓰이는 파리는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의 벽난로 근처에서 엘리오의 어깨 주변을 날아다닌 그 놈이다. 한국을 생각하면 따뜻할 때 파리가 많다가 날 추워지면 없어지는 것이 도리인데 북부 이탈리아의 파리는 다르단 말인가? 한여름의 파리는 이해하더라도 겨울의 파리는 뭐지? 혹시 마지막 씬도 사실은 여름인데 겨울인척 설정을 하고 촬영한 것일까?
파리의 미스터리를 뒤로 하고 영화 이야기를 더 적어본다. 주요 시상식에서 티모시 샬라메라는 이름이 거론될 때 이 친구는 누구인가 궁금했다. 이 영화를 봐도 전에 본 기억은 없다. 새로 발굴된 얼굴인가 싶었다. 그런데 인터스텔라를 돌려보는 와중에 엘리오의 얼굴과 닮은 소년이 나왔다. 정말 그 배우, 샬라메였다.
샬라메의 상대역은 아미 해머다. 눈에 띄는 큰 키와 잘생긴 외모로 잊혀지지는 않지만 아직 완전한 주연작으로 인상을 남긴 것은 별로 없는 그가 게이 연기를 했다는 것이 처음에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물론 작품에서 해머는 상당 시간 상반신과 긴 다리를 노출했지만 두 주연 배우의 정사 장면은 매우 절제되고 짧게 공개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그림과 조각상들의 사진들이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오프닝 시퀀스를 감안하면 이 두 남성, 10대 후반과 20대 중반의 남자들의 사랑은 완벽한 신들 혹은 영웅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즐거이 서로의 훌륭한 육체를 탐닉하는 것처럼 거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보이게끔 연출되었다. 이 두 남자는 여성과의 성관계도 할 수 있고, 즐길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이끌렸다. 이는 이성이냐 동성이냐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적 사랑의 관계였다.
엘리오의 아버지 역할의 스털바그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를 눈치챘으면서 그 둘의 관계를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매우 희박한 존재 가능성의 아버지다. 사랑의 상처를 싸매고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울면서 고통을 겪어내라는 그의 연설이나 쎄라피에 가까운 말들은 확실히 울림이 있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스털바그는 더 셰입 오브 워터에서도 학자로 등장했다는 점이 눈에 띄고, 샬라메는 아직 못 본 레이디 버드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영화는 좋은 음악들이 많이 나오고, 엘리오가 피아노와 기타에 재능이 있음은 물로 음악의 작곡, 편곡에도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983년쯤으로 설정된 영화의 시간에서 80년대 초반의 팝 음악들도 귀를 사로잡았다. 워즈 같은 노래는 너무 들어 큰 감흥이 없었지만 '러브 마이 웨이'는 그 노래 장단에 넋을 놓고 춤을 춘 아미 해머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 다시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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