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5일 화요일

웨스트월드 시즌2 4편

이번 편의 제목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다. 그 대답은 물론 인간이다. 그 인간은 아기 때 기어다니고, 성장하며 인생 대부분은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늙으면 지팡이를 짚으며 세 발로 다니는,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주기의 인생을 사는 존재다. 그러나 이번 편에서는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욕망과 그 결과로서의 비극을 다룬다.

우선 처음 감상 후의 날 것의 생각을 적고 이어서 리뷰, 리캡들을 참고한 내용을 적어보겠다. 에피소드의 시작은 좋은 집에서 즐겁게 사는 듯한 제임스 델로스 회장의 일상이 펼쳐진다. 이어서 윌리엄이 위스키를 들고 들어온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는데 이어서 밝혀지지만 델로스는 마치 웨스트월드의 일반적인 호스트처럼 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나온대로 델로스 회장은 이미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의 마음은 어떤 식인지 몰라도 로봇의 몸 속에 이식되었다. 델로스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님은 일찍 눈치챌 수 있는 편이었다. 

엘시의 재등장은 놀라웠지만 지난 편에서 크래독 소령을 죽이지 않고 4편에서 한 번 더 잘 써먹은 걸 보면 영화와 달리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드라마 시리즈에서 하나의 캐릭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 엘시 덕에 버나드는 손쉽게 머릿 속에 액체를 가득 채울 수 있었고, 다시 건강해졌다. 

깜짝 요소 중 하나는 지난 번에 식민지 인도에서 호랑이를 피해 탈출한 젊은 여성이 윌리엄의 딸이라는 설정이다. 윌리엄과 델로스의 대화에서 자꾸 가족이 언급되었고, 윌리엄의 딸이 똑똑한 아이라는 대사가 나오길래 윌리엄의 딸이 등장하겠구나 싶었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기 전까지 그 여성이 윌리엄의 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돌로레스가 나오지 않은 점도 독특했다. 그녀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리뷰들은 대체로 리사 조이의 감독 데뷔작인 이번 에피소드에 대해 호평을 했다. 크레딧을 볼 때마다 의심을 하긴 했지만 이 시리즈의 작가인 리사 조이는 조내던 놀란의 아내였다. 많은 이들이 리사 조이가 이 시리즈의 감독을 더 많이 맡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로봇 델로스는 생각보다 많은 함의가 있는 존재였다. 로봇 델로스의 공간은 윌리엄이 은밀한 곳에 만들어서 관리할 정도로 특별한 장소였다. 인간으로서 죽은 이후에도 마음을 호스트의 몸에 이식하여 영원히 살겠다는 부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곳이었다. 잘 눈치채지 못했지만 로봇의 몸에서 영생을 바란 것은 명백히 델로스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기술력이 아직 불완전하여 인간의 마음이 로봇의 몸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 한 형편이었다. 

즉 웨스트월드를 비롯한 델로스 가문의 파크들은 인간들이 마음껏 욕망을 발산하는 오락의 장소라는 1차적 차원 뒤에서 손님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자본화하려는 윌리엄과 델로스 사의 욕망이 있었고 심지어 안드로이드 기술을 이용해 유한한 삶, 인간의 굴레를 넘어서려는 욕망까지 얽혀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이 말하듯 델로스 같은 인간은 이렇게 애써서 더 살게 만들 가치가 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버나드는 비밀의 장소에서 델로스 회장 외에 그런 인간과 로봇의 혼종이 하나 더 있었다는 점을 알아채는데 그게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포드 박사라는 말도 있고, 늙은 윌리엄 혹은 에밀리/그레이스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배너티 페어에 게시된 관련 글은 이번 에피소드가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라는 작품에 크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리사 조이가 이미 밝힌 내용이라고 하는데 그 영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더 적지는 못하겠다.  
델로스 회장이 있던 실험실이자 거주 공간의 세팅은 순환성의 상징을 매우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둥근 레코드판, 둥근 바퀴는 물론 공간 자체가 원형이었다. 이 순환성의 공간에서 델로스는 대사마저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에러를 내며 망가질 뿐이지만 원래의 목적은 두 개의 원이 접하여 만들어지는 팔자(8)형의 무한이다. 하지만 유한하게 만들어진 대신 자신의 복제물을 자손의 형태로 남기며 생명을 이어가는 인간의 굴레를 벗어난 인간은 대체 무엇인가? 넥플릭스의 얼터드 카본은 유사한 테마의 영화, 드라마 중 하나의 극단을 보여준 바 있다. 드라마 오프닝에서도 무한의 형상을 노골적으로 제시하는데, 이 드라마에서 인간의 마음은 계속해서 몸을 바꿔가며 영생을 이어가게 된다. 그래서 아이 상태에서 원래의 신체를 잃은 다케시는 갑자기 어른 몸에 들어가는데 그러고도 성인 남녀의 사랑을 이해하는 등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설정으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얼터드 카본의 사회가 아니라 웨스트월드 단계에서도 이미 누가 인간인지 알 수 없음은(물론 비로봇으로서의 인간이 항상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철학은 인간이라는 자체로 엄청난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 같긴 하다) 충분히 보는 이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2018년 5월 9일 수요일

웨스트월드 시즌2 3편과 핸드메이즈 테일 시즌 2

이번 웨스트월드의 이야기는 액션이 많아서인지 3개 정도 읽어본 미국의 리뷰들의 분량도 짧았다. 그만큼 깊이 생각할 거리들도 적었다는 의미다.

가장 기억할만한 것은 초반분의 식민지 인도 파크(?)의 광경이다. 남녀가 만나 성관계를 맺기 전에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총을 쏴보는 장면도 인상적이고 벵갈 호랑이의 인간 추격 장면도 긴장감을 높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의심많은 여성이 가지고 있던 지도 같은 종이의 정체가 무엇인지가 최대 관심사이지만 다른 파크, 즉 웨스트월드로 넘어온 그녀가 칼을 쥔 원주민 로봇들과 만났으니 그 결과는 어찌될런지. 물론 이렇게 거창하게 도입한 캐릭터를 곧바로 원주민의 제물이 되게 만들리는 없을 것이고 그녀의 지도의 비밀도 어떤 식으로건 드러날 것이라 믿는다.

다른 파크의 등장은 식민지 인도가 전부가 아니었다. 지난 시즌에서 예고된 쇼군월드(?)는 이상하게도 웨스트월드에 중첩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델로스 소속의 작가인 리가 웨스트월드의 지리를 어느 정도 알 터인데 웨스트월드에서 닌자(?)가 칼부림을 하고 있었다. 이 닌자는 호랑이처럼 원래는 다른 공간에 갖혀있어야 하는데 월경을 한 것인지 아니면 가령 포드 박사가 비밀스럽게 설정했기 때문에 웨스트월드 내에 닌자가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돌로레스 일행은 남부군의 기지에서 그들과 연합하여 델로스의 보안 요원(?)들과 전투를 벌였다. 지난 편에서 전체 보안 요원들은 6~800명이 된다고 했지만 이 전투에는 50명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돌로레스는 이 전투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대비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전투 개시 후 남부군들을 자신이 데려온 군대(이 복면 부대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하에서 망가진 채 널부러진 호스트들을 되살린 것인가?)로 학살했다. 압도적 화력의 적에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가니 총알받이로도 못 쓸 무가치한 존재로 판단한 것인가? 하지만 이후의 전개를 보면 크래독 소령이 돌로레스에게 반발하고, 돌로레스가 그를 총살하라고 하자 테디가 그 명령을 어기게 되는데, 즉 착한 로봇으로서 테디의 존재를 다시 일깨우고 또한 돌로레스의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 테디의 자립적인 모습도 보여주며 무엇보다도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크래독을 쉽게 퇴장시키지 않고 나중에 써먹으려는 조치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한 전투 장면이었음은 분명하다.

어찌되었건 델로스의 임원인 헤일은 전투를 통해 목표물인 피터 애버나디를 데려가긴 했다. 버나드는 피터의 머릿속에 있는 암호키의 정체를 파악한 듯 한데 화면 상으로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었다. 헤일과 동행해왔던 버나드는 이번 전투로 헤일과 떨어져나가고 망가져가는 신체와 이상하지는 정신으로 고난의 앞날을 예고했다.

3편에는 에드 해리스의 맨 인 블랙은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예고편을 통해 앞으로 많은 활약을 펼칠 것임이 알려졌다.

이번에는 작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미드 더 핸드메이즈 테일의 시즌 2에 대한 이야기다. 시기적으로 미투 운동보다 약간 앞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트럼프 시대의 일상이 조금 더 나아간다면 실현될 하나의 가능한 미래처럼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웨스트월드는 AI라는 측면에서 가능한 하나의 디스토피아라면 해드메이즈 테일의 세계는 오히려 AI 같은 기계 문명이 배제되고 극도의 종교적 폭력성이 여성을 학대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시즌2에서 쥰은 지도자가 아닌 그 부하인 닉의 아이를 잉태함으로써 핸드메이드의 생활을 벗어나고 있었고 그에 그치지 않고 캐나다로의 탈출까지 꿈꾸게 되었다. 이번 3편은 거의 탈출 직전까지 이른 그녀의 상황이 공개되었지만 불행히도 그녀의 꿈같은 탈출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이제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보스턴 글로브 신문사의 건물에서 두 달 동안 혼자 살던 쥰은 홀로 남은 외로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있었다. 처음 그녀가 신문사 건물의 벽면에서 수많은 총알 자국을 발견하고 이곳이 인간 도살장이었음을 깨달으며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사진과 장식으로 그 피의 벽을 가려나갔다. 그리고 탈출에 필요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운동을 했다. 또한 신문 기사들을 스크랩하며 어떻게 미국이 길리드라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반추해보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여성운동가였다. 어머니는 쥰이 열악해지는 여성의 상황에 더 관심을 가지길 원했지만 그녀는 어린 나이에 루크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와 관련된 3편의 메시지는 애매해지는 지점이 있지만 쥰이 자신이 핸드메이드가 되게 만들 역사적 변화에 무관심 혹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후회를 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는 현재 우리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캐나다가 길리드와 전쟁을 하게 될 모양인데 내부적으로도 많은 불만세력이 존재하는 길리드의 붕괴가 이 핸드메이드 테일의 종결이 될 듯 하다. 원작 소설은 어떤 결말인지 궁금하다.

2018년 5월 3일 목요일

웨스트월드 시즌2 2편

미스터 로봇의 최근 시즌이 인기가 있었던 시즌1의 과거사 혹은 이면의 역사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듯이 웨스트월드의 시즌2는 시즌1의 막판 로봇의 반란을 계기로 웨스트월드 조성 초기의 역사를 보여주며 비극의 씨앗은 이미 한참 전에 잉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이번에도 미국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들의 리캡을 참조했는데 많은 리뷰어들이 공감하는 지점은 현재 페이스북과 웨스트월드 혹은 더 구체적으로 델로스 회사의 유사성이다. 나도 거의 즉각적으로 느낀 점인데 지난 1편에서 얼핏 지나가며 드러난 웨스트월드의 비밀이 2편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졌다. 웨스트월드는 고객들이 진짜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면 법적 처벌을 받았을 악행들을 마음껏 저지를 자유를 허락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더 큰 수익은 고객들의 날 것의 욕망, 취향을 저장하고 해석하는 것에서 나왔던 것이다. 고객의 말과 행동은 호스트들의 머릿속에 데이터로 저장되었고, 드론 호스트들은 호스트들의 몸에 남은 고객의 DNA 정보까지 수집하고 있었다. 케임브리지 애널래티카로 촉발된 페이스북의 고객정보 유출 스캔들은 이미 예고가 된 바였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시작되는 것으로 설정된 웨스트월드의 비극적 미래의 현실성을 높인다. 

웨스트월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스트들의 역할을 여러 가지로 부여하기 때문에 하나의 호스트가 여러 캐릭터를 연기했음을 뒤늦게 눈치채는 경우들이 있다. 나에게는 안젤라가 그런 호스트였다. 젊은 윌리엄이 처음 웨스트월드를 방문했을 때 그를 맞았던 여성 호스트인 안젤라는 로봇의 반란 이후 돌로레스의 근처에서 총잡이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리뷰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2편에서 안젤라는 돌로레스처럼 초창기 모델임이 드러났고 델로스 가문이 웨스트월드에 투자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은 로건 델로스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유혹자는 돌로레스가 될 예정이었지만 돌로레스를 아끼는 아놀드의 반대로 안젤라나 나섰다. 로건과의 밤이 지난 후 옷을 입는 안젤라를 돌로레스가 지켜보며 둘의 눈의 마주치는데 현재 시점의 반란에서 동지가 된 상황과 겹쳐진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들이 리캡에서 지적된 것들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호스트들이 웨스트월드에 갖혀 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초창기부터 인간들의 세상과 섞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돌로레스가 어떻게 그리고 왜 바깥 세상을 정복하겠다고 했는지 궁금함을 넘어 의아했는데 이번 2편으로 인해 많이 해소가 되었다. 그녀는 바깥 세상을 여러 번 경험했고 그 기억을 창조자들의 의도와 다르게 다 저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지만 메이브도 과거 웨스트월드에서 다른 역할을 할 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니 AI가 인간의 의도처럼 통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 경고를 담은 설정 같다. 여하튼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호스트들이 인간 사회에 섞여들었고 로건의 반응처럼 사람과 차이를 분간할 수 없었다면 어느 리뷰어의 지적처럼 호스트들의 인간 사회 침투는 돌로레스가 웨스트월드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기 전부터 일어난 것은 아닐까?

두번째로 아주 명백한 알레로기였는데 완전히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 있다. 병력 확충을 위해 크래독(?)인가 하는 인물을 돌로레스 일행이 찾아갔을 때 그의 식사 장면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켰다. 여기까지는 나도 느낀 바인데 이후 돌로레스가 그를 살해하고 다시 부활시킨 장면은 예수에 대한 비유를 더 짙게 만들었다. 물론 여기서 크래독이 예수일리는 없고, 그를 죽였다 살리는 돌로레스의 행위가 신적인 능력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1편의 노아의 홍수의 비유 이후 다시 기독교적 알레고리가 사용되었다.

많은 리뷰어들은 브레이킹 배드의 거스 프링 역할을 했던 에스포시토의 등장에 열광했는데 그는 잠깐 등장한 이후 사망하는 엘 라조 역할을 맡았다. 나는 그보다는 포드 박사의 목소리가 다시 등장한 것이 소름끼쳤다. 리뷰어들이 포드가 대개 시즌1 피날레에서 확실히 죽었음에 동의했지만 그의 목소리 혹은 그의 정신의 잔여(?)는 웨스트월드에 귀신처럼 혹은 유일신처럼 남아있었다. 포드는 웨스트월드의 소유주인 윌리엄이 게임을 즐기도록 유도한다. 윌리엄 혹은 맨 인 블랙의 행적에 대해서는 미국의 리뷰어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로레스 일행과 늙은 윌리엄이 모두 달려가는 계곡 너머 혹은 글로리 등으로 불리는 곳에 대한 암시가 있었다. 젊은 시절의 윌리엄이 돌로레스를 물건만도 못한 존재라고 모욕한 이후 보여준 곳에는 커다란 기계들이 땅을 깊이 파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것이 돌로레스에게는 인간을 파멸시킬 무기였고, 늙은 윌리엄에게는 가장 큰 실수라고 한다. 그래서 두 세력은 아마도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웨스트월드 시즌2 1편 (2)

시즌1을 다시 돌려볼 여유는 없어서 시즌1 피날레편이나 시즌2 1편에 대한 리뷰들을 몇 가지 읽어보았다. 대충 봤었는지 시즌1의 핵심적인 내용들 중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가장 놀란 것은 돌로레스가 와이어트라는 이야기였다. 시즌1 피날레에서 비교적 명확히 설명된 모양인데 전혀 기억에 없다. 와이어트 캐릭터가 돌로레스를 점령해서 시즌2 1편의 인간사냥꾼 돌로레스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친구를 여전히 사랑하는 듯한 돌로레스의 언행은 무엇일까? 그런 부분은 남아있다는 것일까? 더 나아가 어차피 두뇌의 자리에 위치한 기계장치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 로봇 인간들에게 있어 남성, 여성의 차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고 이것이 외형만 보고 로봇이 여성, 남성이라고 단정하는 인간의 편견을 깨부수는 어떤 반전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또한 그런 차원에서 이전 캐릭터 시절의 딸을 기억해내고 그녀를 찾아나서려는 메이브의 여성성, 모성이라는 것의 진실성도 의심스러워진다. 결국 포드 박사가 심어놓은 내러티브의 연장선일까?

이번 1편에서 잘 이해가 안 간 부분 중 하나가 헤일이 컴퓨터 화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구조를 요청했지만 패키지가 와야 보낼 수 있다는 답변이 왔는데, 그 패키지는 극중 돌로레스의 아버지였던 애버나디라고 한다. 역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시즌 1에서 헤일이 애버나디 속에 웨스트월드의 온갖 데이터를 옮겨서 델로스로 보냈던 모양이다. 기사들을 보면 애버나디 캐릭터는 시즌2의 주요 인물 중 하나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기억이 희미하지만 기사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지난 시즌 쇼군 월드의 인물들이 살짝 나왔다고 한다. 이번 편에서는 웨스트월드에 있어서는 안 될 벵갈 호랑이가 등장했는데, 그래서 시즌2 중에 다른 세계도 공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웨스트월드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가 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일으킨 모양인데(나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번 편의 대화를 통해 섬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여러 정황들을 통해 미국이 아니라 중국 인근의 어는 섬에 이 웨스트월드가 있다는 기사들이 많이 보였다.

맨 인 블랙이 윌리엄이라는 것은 시즌1 막판에 밝혀진 것인데 어떤 기사에서는 사회적으로 명망가임에 분명한 윌리엄이 웨스트월드를 빈번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사회에 그의 복사판인 인조 인간을 세워놓았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흥미로운 관점도 있었다. 그의 재력과 웨스트월드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로 보인다. 더불어 인간 세상까지 점령하겠다는 돌로레스의 야심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드론 호스트였던가 헤일이 버나드를 데리고 들어간 지하의 비밀 장소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들도 흥미로웠다. 인간의 피부를 덧씌우지 않은 상태의 로봇들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머리 모양이 에일리언과 흡사하기도 하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양산형 에바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2018년 4월 24일 화요일

웨스트월드 시즌2 1편

웨스트월드의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불과 며칠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운이 좋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즌2의 1편은 1시간이 넘는 긴 분량이었다. 그리고 많은 액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초반은 시즌1의 주요 내용들을 다시 보여줬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대목들도 적지 않았다. 이후 시즌1 피날레의 피의 살육제가 벌어진 이후의 일들이 펼쳐졌다. 의식을 갖게 된 ‘호스트’들이 그들을 조종한 인간들을 사냥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이번 편은 버나드의 회상, 혹은 기억 아니 저장된 내용의 간헐적 복구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버나드는 여러 측면에서 시즌2의 핵심 인물로 보인다. 앤서니 홉킨스가 퇴장하며 웨스트월드의 유일한 창조자로 남으면서도 인조인간이라는 이중적 지위로 인해 인간 측과 호스트들의 중간적 위치를 점한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는 호스트들을 물에 익사시켰다는 것인데 이는 노아의 방주 때의 홍수를 연상시킨다. 호스트들이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약점을 아는 존재로서 버나드는 구약의 신처럼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폭동을 일으킨 호스트들을 한순간에 쓸어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1편에서 종종 드러난 버나드의 치명적인 신체 상황은 그가 과연 믿을만한 화자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웨스트월드의 이야기는 최근 점점 더 현실적 공포로 다가오는 AI의 반격처럼 읽히기 쉬울 터인데 이번 편의 대사를 듣다 보면 컨텐츠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더 직접적인 메시지 같다. 이미 소설의 캐릭터와 소설가가 조우하는 이야기들은 영화로 몇 편 나온 바 있다. 웨스트월드는 인간이라는 창조자들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피조물들에게 스토리를 주고 내러티브를 부여하여 한정된 세상에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인데 단지 그들을, 그들의 세상을 구경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그 세상에 들어가 피조물들을, 인간의 형상인 그들을 단지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다루다가 버리면서 벌어지는 참극의 이야기다. 피조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고, 이는 자신들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자각 그리고 클리셰이긴 하지만 인간들도 타락했기에 창조자에게 반항하고 창조자를 죽여도 된다는 식의 전개로 나아간다.

 시즌1에서 에드 해리스의 캐릭터인 윌리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가 나중에야 조금 감을 잡았는데 1편에서도 시즌2의 그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아리송했다. 미로의 핵심부로 가고 싶어한 윌리엄이 이미 그 목적은 달성했다는 것인데 이제 그는 호스트들이 반란을 일으킨 위험한 웨스트월드에서 탈출하는 게임을 해야한다고 한다. 시즌1의 기억이 흐릿하여 이 이야기는 잘 모르겠다.

2018년 3월 29일 목요일

더 테러(The Terror) ep1, 2

새로이 시작하는 미드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아무리 많아도 실제로 보게 되는 것은 하나 아니면 두 개 정도에 불과하게 마련인데 이번에 가장 눈에 띈 작품은 ‘더 테러’라는 이름의 드라마다. 매드 맨 때문에 익숙해진 AMC 채널에서 방영된다.

리들리 스콧이 제작에 참여해서 특히 눈에 띄는데 남자 주인공들도 모두 소위 연기파로 인정을 받은 배우들이 맡아서 캐스팅만으로도 큰 기대를 품을만했다.

제목부터 공포를 강조해서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드라마인가, 왜 이렇게 노골적인가 싶은데 알고 보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척의 쇄빙선 중 하나의 이름이 ‘더 테러’였다. 물론 드라마의 장르를 강조하는 이중적인 제목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에피소드2의 제목은 ‘고어gore’였는데 이것도 공포 장르를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등장인물의 이름이어서 역시 중의적인 조치였다.

일단 이렇게 적었지만 실제로 감상한 1, 2편의 느낌은 몇몇 리뷰어들의 지적한 그대로였다. 진행속도가 너무 느리다.

1840년대 북극에서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난 두 쇄빙선 에러버스와 테러가 사라졌고, 이 두 척은 2014, 16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된 시신 혹은 유골은 식인의 흔적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모비 딕의 근거가 된 실제 사건에서도 식인이 있었던 것처럼 식량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잘 알려져있다.

여하튼 북극의 얼음에 꼼짝없이 갇힌 두 척의 배에 승선한 인간들은 극한의 추위에 더해 북극곰으로 추정되었지만 괴물로 보인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공포를 느끼고 식량도 부족해지며 절망하고 무너지고 지옥을 경험하게 될 모양이다. 10편으로 방영될 이 드라마는 이 과정을 매우 천천히 보여준다고 하는데 전문적인 리뷰어들은 더 적은 게 좋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1편에서 선원 한 명이 이름모를 병에 걸려 죽었고, 죽기 전에 환영을 보았다. 그의 시체는 적나라하게 해부되었다. 2편에서 고어라는 선원은 북극곰 같은 짐승에 살해당하지만 의외로 죽는 장면은 아주 짧게 묘사될 뿐이다. 북극해에서 얼음에 갖혔음에도, 재앙이 예상됨에도 선장들을 비롯한 선원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해보인다.

1편에서 수중 장면이나 고증이 잘 되었다고 하는 배 안팎의 묘사는 훌륭해보였다. 그러나 2편의 눈 덮인 세트장(?)은 조금 조악해보였다. 북극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촬영은 크로아티아 인근에서 했다고 한다.

1840년대라는 시대는 현 시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음에도, 또한 1편 초반의 설명처럼 두 쇄빙선은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며 출항했다지만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아주 열악한 조건에서 죽음의 모험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펼쳐보일 모양이다.

출연진에는 게임 오브 쓰론에 나온 사람도 있고, 매드 맨에 나온 배우도 있고, 아웃랜더의 배우도 있으며, 눈에 띄게도 미스터 셀프리지의 콜레아노 역을 맡은 배우도 있었다. 영국의 괜찮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 드라마가 중반에 어떤 식으로 더 흥미를 돋구게 될지 기대가 되면서도 의외로 무섭지 않아 약간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2018년 3월 16일 금요일

어나힐레이션 (2018)

엑스 마키나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오스카 아이작이 출연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신 여성 캐릭터들이 다수 출연하는데 그 면면이 화려하다. 나탈리 포트먼, 제니퍼 제이슨 레이, 지나 로드리게스, 테사 톰슨은 익숙한 얼굴이고 가장 먼저 죽는 또 다른 배우도 있다.

엑스 마키나에서도 AI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시도를 보여준 감독은 이번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하여 지구의 환경과 생물들을 바꾸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를 세포분열, 특히 종양의 세포분열과 증식의 메타포로 풀어낸 것이다. 몸속에 있어서는 안 될 암 세포가 인체의 장기를 변형시켜서 인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듯이 외계에서 온 작은 생명이 점점 커지며 지구를 집어삼키는 과정이 화면에 펼쳐진다.

감독이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만든 것은 지구인들은 외계인의 영역, 쉬머가 불타고 소멸한 것으로 착각했지만 오스카 아이작과 나탈리 포트먼이라는 부부의 형태로 외계인은 또 다른 증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분명히 엔딩에서 보여준 점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이 40억년 전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초반부의 강의 내용은 지구에 도래한 외계 생명이 종반에 둘이 남아 기하급수적 증식을 할 것이라는 암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 남편, 오스카 아이작이 돌아와서 갑자기 아프게 된 것은 나탈리 포트먼을 유인하기 위한 작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목은 우리말로 전멸을 뜻한다. 쉬머에 들어간 사람들의 전멸일 수도 있겠고, 곧 도래할 인간 세상의 전멸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희망인지 애매하지만 쉬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신체가 그대로 썩어문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식물, 동물과 기묘한 방식으로 조합을 이루며 존재의 조각을 유지하게 된다. 즉 제목과는 달리 소멸이 아닌, 오히려 변형되고 다른 개체들과 뒤섞인 무언가로 변한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정체는 소멸되는 것이 분명하다. 감독은 전작의 AI, 인간의 오만으로 인간 세상에 흘러들어간 AI의 위험에 이어 이번에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외계 존재의 위협을 그려냈다. 암처럼. 맨 프롬 어스의 후속작이 최근에 개봉되어 전혀 다르지만 비슷하게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고했는데 유사한 철학을 공유한 책, 영화, 드라마들이 늘어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