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마키나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오스카 아이작이 출연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신 여성 캐릭터들이 다수 출연하는데 그 면면이 화려하다. 나탈리 포트먼, 제니퍼 제이슨 레이, 지나 로드리게스, 테사 톰슨은 익숙한 얼굴이고 가장 먼저 죽는 또 다른 배우도 있다.
엑스 마키나에서도 AI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시도를 보여준 감독은 이번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하여 지구의 환경과 생물들을 바꾸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를 세포분열, 특히 종양의 세포분열과 증식의 메타포로 풀어낸 것이다. 몸속에 있어서는 안 될 암 세포가 인체의 장기를 변형시켜서 인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듯이 외계에서 온 작은 생명이 점점 커지며 지구를 집어삼키는 과정이 화면에 펼쳐진다.
감독이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만든 것은 지구인들은 외계인의 영역, 쉬머가 불타고 소멸한 것으로 착각했지만 오스카 아이작과 나탈리 포트먼이라는 부부의 형태로 외계인은 또 다른 증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분명히 엔딩에서 보여준 점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이 40억년 전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초반부의 강의 내용은 지구에 도래한 외계 생명이 종반에 둘이 남아 기하급수적 증식을 할 것이라는 암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 남편, 오스카 아이작이 돌아와서 갑자기 아프게 된 것은 나탈리 포트먼을 유인하기 위한 작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목은 우리말로 전멸을 뜻한다. 쉬머에 들어간 사람들의 전멸일 수도 있겠고, 곧 도래할 인간 세상의 전멸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희망인지 애매하지만 쉬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신체가 그대로 썩어문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식물, 동물과 기묘한 방식으로 조합을 이루며 존재의 조각을 유지하게 된다. 즉 제목과는 달리 소멸이 아닌, 오히려 변형되고 다른 개체들과 뒤섞인 무언가로 변한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정체는 소멸되는 것이 분명하다. 감독은 전작의 AI, 인간의 오만으로 인간 세상에 흘러들어간 AI의 위험에 이어 이번에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외계 존재의 위협을 그려냈다. 암처럼. 맨 프롬 어스의 후속작이 최근에 개봉되어 전혀 다르지만 비슷하게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고했는데 유사한 철학을 공유한 책, 영화, 드라마들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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