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극장에서 '파라노이드 파크'를 본 이후 집에서 '라스트 데이즈'와 '엘리펀트'를 연달아 봤다. 감독의 필르모그라피를 보다가 '굿 윌 헌팅'의 감독이었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 왠지 깐느에서나 상영하고 상을 받을만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줄 알았건만. 내 기억의 구스 반 산트는 '아이다호' 그리고 '엘리펀트'로 남아있고, 몇번씩이나 용기를 내서 보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라스트 데이즈'의 감독이었다. '그런' 영화들에 대한 이미지는 딱히 뭐라 잡아내기 어렵다. 이번에 한 번 잡아보려고 했건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다.
'파라노이드 파크'를 보러 가기 전 맥스무비에서 영화 정보를 누르니 별 내용이 없었다. 무슨 영화일까? 평점은 꽤나 높건만... 궁금증만 커져갔다. 영화 전반부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졸고 있었다. 대략 20분간의 내용은 극히 희미하게 남아있다. 어느 순간 알렉스는 여자 친구와 탈의실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경찰이 찾아와 살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스케이트 보더들을 불러모으고 조사했고, 알렉스는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있었던 사고의 진상을 기억해낸다. 아니 감독은 중반부에 그 일을 보여준다. 알렉스는 항상 기억하고 있지만 감추고 싶었을 뿐이다. 새로 친해진 여자애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하나의 해결책으로 사건을 글로 적은 이후 태우며 위로해볼 뿐이다.
몇 가지 오해와 편견이 영화의 이해를 막았다. 제목의 '파라노이드'에 집착해서 소년의 망상이 불러일으킨 비극을 예상했었다. 스케이트 보드까지 나오는 대목에서 콘 사토시의 '망상대리인'과 오버랩되며 알렉스가 악질 범죄자인양 상상했다. 하지만 알렉스는 부모가 이혼하려는 상황이라는 점을 빼면 그다지 별날 것도 없는 소년이다. 게다가 스케이트 보드는 잘 못타기 때문에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들의 더 프로페셔널한 무대인 파라노이드 파크에 진출하고 싶어하면서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어느 날 갔던 파라노이드 파크(이 장면을 놓친 것 같다)는 잔혹한 기억만을 남길 뿐이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스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면의 구성을 보는 것이 핵심이다. 왕가위 영화의 촬영을 도맡았던 크리스토퍼 도일이 만든 화면은 아주 아름답지는 않았으나(차라리 '엘리펀트'의 화면이 더 좋았다) 알렉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측면에서는 훌륭했다. 오늘 본 '엘리펀트'에서 부모들의 얼굴이 희미하거나 아예 잘린 상태인 것과 이혼을 앞둔 알렉스 부모들의 얼굴이 희미하게 처리된 것이 유사하다. 미국 청소년들에게 부모란 그 정도 존재인가보다. 우리나라라고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Knocked Up에서 사고쳐서 만든 아이라도 잘 기르겠다고 애쓰던 주인공들의 커플 되어보기 프로젝트를 보면 애들 교육은 왜 모양이 되고 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라스트 데이지'는 어제 재생해서 눈을 화면에 두긴 했지만 제대로 봤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엘리펀트' 만큼이나 건조한 시선의 영화였다. 옐로우 페이지 아저씨의 설교, 선교사 아저씨들의 설교는 소귀의 경읽기도 그런 경우가 없을 터인데 참 열심이다 싶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보이즈 투 멘의 'On Bended Knee' 뮤직비디오가 상당히 길게 흘러나온 장면이다. 아예 TV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왜 그랬을까? 커트 코베인이 아닌 '블레이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너바나의 음악이 아니라 R&B 음악이. 어색하게 보이기 효과를 노린 것일까. 커트 코베인이라고 해서 너무 이상한 놈은 아니다 보이즈 투 멘도 듣는다 뭐 이런거? 세세한 감상을 쓰기에 영화는 너무 지루했다. 다시 볼 지 모르겠으나 촬영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엘리펀트'와 상당히 유사한 것 같다.
'엘리펀트'를 다시 보니 의외로 새롭다. 무능하거나 문제있는 어른들. 그들 밑에서 문제가 있기도 하고 그냥 평범하기도한 아주 당연한 아이들이 육성된다. 확실히 영화는 여러 사람들의 시점을 통해 한 가지 사건을 보여주지만 그렇게 봐도 별다를 것이 없다. 가장 크게 사회문제로 대두된 '교내 총격 사고'만이 부각되지만, 미국판 이지메, 히틀러 영상물, 락 음악,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 뒷담화, 인터넷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총기 등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것들이 총체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즉 각각의 요소를 해결한다고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물론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원인이 있는 것인양 떠들고 사회 전체의 분위기, 정서를 바꾸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된다.
'파라노이드 파크'의 광고 카피에도 있지만 의외로 늙으신 구스 반 산트 감독님은 반항아 기질이 있는 미소년들을 좋아하나보다. 리버 피닉스, 맷 데이먼(?)에 이어 계속 새로운 얼굴들을 제시한다. 처음 연기를 하는 친구들도 많다. 최근 본 구스 반 산트의 영화들에서 배우들은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배우지만 배우가 아닌. '엘리펀트'에서는 실제 고등학교 학생들이 실제 이름으로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 영화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요즘 구스 반 산트의 영화들은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는 것 같다. 아주 돈 벌자는 것도 아니고, 알흠다운 화면을 보여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영화제를 위한 영화를 찍는 것 같긴 하고, 어찌 보면 소소한 일들만 그려내는 것 같고, 뭐라 한 마디로 하긴 어렵지만 그나마 볼 만한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은 든다. 비록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