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미드] 보스(Boss)

네이트 미드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 '24'를 접하고 이후 미드를 좀 보긴 했으나, 내 드라마 시청의 1순위는 수년 간 일드였다. 그러나 일 년 쯤 되었을까, 이제는 일드보다 미드를 훨씬 많이 보게 된다. 일드의 전성기가 지난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고, 월요일 9시 드라마가 20%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하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CSI를 비롯해 미드의 열풍이 한국을 휩쓴 것은 오랜 일이나 나로서는 이상하리만치 미드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회의적인 심정으로 보기 시작했던 '매드 멘'이 생각보다 재미있음을 발견하고, '게임 오브 쓰론'의 웅장한 스케일과 스펙터클에 빠져들며 미드의 매력을 다시 발견했던 것 같다. 사실 일드나 미드나 마찬가지지만 경찰, 법조계, 의학계라는 전통적인 장르들은 너무나 우려먹어서 아무리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더라도 정을 붙이기가 어렵다.

이러다 서론이 너무 길어질 우려가 있어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우연히 '보스'라는 미드를 접하게 되었다. 누가 추천한 것도 아니고, 그저 평점이 높은 드라마라 한번 보기로 했는데  만만찮은 재미를 준다. 얼마 전에 시즌 2가 끝났는데 예상과 달리 다음 시즌도 방영될 기세다.

시카고라는 도시는 고층 빌딩, 화재, 농구팀, 야구팀 등으로 유명하지만 그곳의 시장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설정이 처음에는 잘 와닫지 않았다. 미국 정치나 행정 시스템은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아서 처음 몇 편을 보면서는 어떤 정치적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와닿지 않았다. 알고보니 일리노이 주지사 후보를 선출하는 선거 캠페인이 진행 중이었는데, 주인공인 시카고 시장 탐 케인이 현직 주지사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고, 차세대 정치인을 밀어주는 과정이었다.

시즌 1, 2를 연달아서 쭉 보았는데 케인에게 부정적인 정치적 악재들이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그는 모두 물리치며 재기하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처음부터 곧 고약한 병 때문에 시장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질 것이 예견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증세는 처음부터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고, 회가 거듭될수록 그리고 그가 손에 더 많은 피를 묻힐 수록 그의 희생자들의 환영들의 환청이 크게 들려온다.

이런 운명, 최고의 권력자이지만 권좌에서 내려와야만 하는 운명에 거세게 저항하는 한 남자의 싸움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그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측근을 암살하고, 아내의 가슴에 총알을 박고, 딸을 체포하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이런 말만 보면 이런 막장 드라마가 왜 좋은 평가를 받는지 의아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도 아니고 고작 시장 한 명이 휘두르는 권력이 얼마나 강할 수 있을지 실감이 안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현실성 측면보다는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로 읽어햐하는지 모른다. 케인, 즉 시장의 부인 메레디스는 케인 이전에 시카고 시장을 오래 역임한 남성의 딸이다. 메레디스는 가능하다면 자신이 시장이 되고 싶었겠으나, 차기 시장의 아내가 되는 것에 만족해야만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견제한다. 케인은 20년 이상(?) 시카고 시장 자리를 유지한 것으로 설정되는데, 그 전에 그의 장인이 쭉 시카고 시장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시카고의 시장 자리는 선출직이 아니라 거의 세습직으로 보인다.

이런 독재가 가능한 것은 이 시장들이 엄청난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로 인해 불쌍한 아이들이 독극물에 중독되어 피해를 입고, 가난한 지역의 시민들이 개발 사업 때문에 쫓겨났다. 드라마를 통해 펼쳐지듯이 이 시장들은 지역 재계 인사들과 유착 관계에 있고, 시 의원들과도 거래를 통해 집단적인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그러나 여러 지역 인사들의 이해관계를 정밀하게 통제함으로써 계속해서 정치력을 유지한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민주정의 공간에서 사실상의 독재정, 왕정이 유지되는 것처럼 설정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는 이 드라마를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렇게 왕과 다름없는 케인이지만 그의 딸은 마약 중독 상태이고 마약 거래를 하는 흑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 딸 에마를 더 매정하게 버린 것은 케인만큼이나 비정한 정치적 동물인 어머니 메레디스였다. 시즌 2에 가면 케인의 사생아가 등장해 케인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비스 씬에 가까운 이해하기 어려운 성관계 장면들이 아니더라도 막장스러운 설정들은 엄청나게 더 많기에 이 드라마가 권장할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스타즈의 방송답게 재미있긴 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현실성의 잣대로 잘만들었다고 보긴 힘들다는 것만 다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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