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들을 오래간만에 몰아봤다. 가장 인상적인 순서대로 제목에 적어봤다.
싱글 라이더는 작년 초반에 개봉했던 영화로 당시 정우가 주연한 재심과 제임스 맥어보이의 23 아이덴티티와 경쟁했다고 한다. 이병헌 주연의 영화지만 총 관객은 30만명 안팎에 그쳤다. 사실 나는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반전이라고 할 부분에 대해서는 따지고 보면 큰 반전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반부터 암시는 매우 많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객들 앞에서 수모를 당한 후 집 노트북 앞에 앉은 재훈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그것이었다. 그가 고객들에게 남긴 이메일의 내용도 충분히 그렇다. 책상 위의 약통. 정신병원에서 처방받은 그 약들. 하지만 그가 시드니행 비행기를 예매하는 모습도 보이고 그가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가는 가니 관객들은 그가 죽으려고 하다가 그냥 호주로 간 것인가 착각을 일으킨다. 굳이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두고 간 것도 워낙 고객이나 회사에서 전화가 자꾸 오니까 그랬으리라 이해를 해보기도 한다. 소희가 맡은 지니의 경우는 일단 재훈이 유령이 아니라고 간주한다면 그녀도 유령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비교적 분명하게 지니는 다른 한국인들에게 사기를 당해서 그들의 집에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것이 약물로 잠든 것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 때 죽은 것이 나중에 드러나지만 유령이라면 왜 비틀거리며 등장했는가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2년 동안 번 돈을 뺏기고도 여유로웠던 그녀의 모습은 아주 이상하긴 했다.
40대 초반의 남성과 20대 초반의 여성을 평행선에 놓았다가 교차시키며 한국의 현실을 호주에서 폭로하는 이 영화의 틀은 도식적이기도 하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땅 속에 뭍힌 지니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녀를 죽인 것은 마찬가지로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온 한국인들. 오히려 호주인은 따뜻했다. 영화에서 약간 드러내긴 하지만 영어가 뭐길래 호주에 가서 배워야 하고, 왜 대학생들이 농장일을 하러 그 먼 곳까지 가야 할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제기한다.
비밀은 없다는 매우 색다른 느낌의 한국 영화다. 싱글 라이더에서도 새로운 느낌을 받았지만 비밀은 없다는 훨씬 더 이색적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고민해보지는 않았지만 그 이질감은 오래 남는다.
순서로 보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후 이 영화를 봐서 손예진 배역의 차이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손예진이 이런 연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꼬마 아이의 엄마였다가 훨씬 큰 사춘기 아이의 엄마로서의 손예진. 그녀가 얼마 전에 밥 잘 사주는 누나 역할을 했음을 감안하면 이런 영화들에서 엄마 손예진은 아직도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감독의 전작은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영화는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애매하다.
불한당의 경우 칸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라는 점만 알고 봤는데 곱씹어볼 수록 애매하다. 재미가 있다고 하겠지만 잔인했고, 너무 흔한 조폭 영화라는 점에서는 식상하고, 조직에 잠입한 경찰이라는 설정은 이미 많이 봤다. 다만 중반에 경찰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음에도 둘의 관계가 유지된다는 점은 특이하다 하겠다. 불한당보다 불신이야말로 영화의 키워드라 하겠다. 아무도 못 믿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기심만 남은 세상.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작품은 아주 오래 전에 일본드라마로 봤다. 다 보지는 못한 것 같다. 일본 영화가 매우 유명했는데 어찌어찌 아직도 못 본 상태로, 죽은 엄마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온 것인지 그 의문만 남은 채 살아왔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을 보니 결국 타임슬립이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본은 타임슬립을 과용한다. 소지섭의 데이트 복장만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다.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건 처음 접한 사람은 곱씹어보면 괜찮다고 느낄만한 영화고, 전작을 뭐든 봤다면 식상한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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