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1일 수요일

트윈 픽스 시즌3 에피소드7에 대한 리뷰들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식의 표현을 보게 된다. 서양인-그 중 아마도 대부분은 미국인일터인데-의 덕력이 최고라는 의미다. 트윈 픽스의 경우도 양덕의 해석은 대단한 점이 있다. 물론 내가 보는 게 영어로 된 리뷰들이니 상당히 편향된 소스를 접하는 셈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그네들의 꼼꼼한 리뷰에 무릎을 탁 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확인하는 것이지만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TV recap의 일환으로서 트윈 픽스 리뷰는 그 길이도 압도적일 뿐더러 매우 세세하고 때로는 과하다 싶은 해석들을 볼 수 있었다. 다른 매체의 리뷰들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내용들이 있었는데, 어떤 리뷰들은 그저 리뷰를 위한 리뷰인 것도 있다. 양덕이 아니라 직업 글쟁이의 흔한 생산물은 수준이 떨어진다.

가장 놀란 점은 닥터 헤이워드, 그러니까 원래 트윈 픽스 시리즈에서 마을의 의사를 연기한 배우의 이름이 워런 프로스트였고, 그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데이빗 린치와 함께 이 시리즈를 창조한 마크 프로스트의 아버지라는 점이다. 시즌1, 2에서 배우들 이름은 매 번 봤는데 워런 프로스트를 그렇게 많이 보면서 마크와 연관이 있으리라는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하여간 7편에서 닥터 헤이워드는 스카이프를 통해 해리 트루먼 대신 트윈 픽스의 치안을 담당하는 프랭크 트루먼과 스카이프로 대화를 했다. 그는 노회했지만 여전히 유쾌해보였다. 그러나 리뷰들에서 그가 올해 초에 돌아가신 걸 알게 되었다. 이번이 워런이 시즌 3에 출연한 유일한 경우라는 이야기다. 로그 레이디와 더불어 원작 시리즈의 또 한 명의 주요한 인물이 죽었다.

하나 더 리뷰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뱅뱅 바에서 전화를 받은 그 친숙한 외모의 인물이 원작 시리즈에서 죽은 것으로 된 자크 르노와 성이 같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자크를 연기했던 배우가 다른 이름으로 출연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일 것으로 추측된다. 트윈 픽스에서 여전히 로라 팔머 같은 십대 소녀들이 매춘에 이용되고 있으니 우울하다.

어떤 리뷰어는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더기를 찾아온 경찰 세 명이 모두 성이 같다는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세 경찰이 형제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번 에피소드 전체가 형제 이야기로 꾸며졌다고도 주장한다. 꽤 설득력이 있는데 왜냐하면 보안관 트루먼 형제가 등장했고, 제리와 벤자민 혼이 있고, 예의 경찰 형제가 있겠고, 착한 쿠퍼와 나쁜 쿠퍼도 일종의 형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번 편이 미국의 아버지의 날 즈음에 방영된 점도 지적되었다. 트윈 픽스에는 릴랜드 팔머와 벤자민 혼과 같이 나쁜을 넘어 사악한 아버지들이 많지만 돌아가신 닥터 헤이워드처럼 좋은 아버지도 있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 워런 프로스트를 기억한 것은 좋은 제스쳐였다.

가장 놀라운 추측은 리차드 혼이 오드리 혼과 나쁜 쿠퍼의 아들이 아니냐는 설이다. 레딧 같은 곳에서 이미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모양인데, 헤이워드가 나쁜 쿠퍼가 혼수상태의 오드리의 병실에서 한 시간 정도 있었다는 증언을 하여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쿠퍼가 감옥소장을 협박할 때 미스터 스트로베리를 언급했는데, 일부 리뷰어는 스트로베리가 개라는 해석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마 나쁜 쿠퍼가 개 다리를 언급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지만, 개 다리에 어떤 메시지를 첨부하거나 해서 몇 명에게 보내놨다는 다른 리뷰어의 말이 더 그럴 듯 하다.

2017년 6월 19일 월요일

트윈 픽스 시즌3 에피소드7

18편의 트윈 픽스 시즌3의 중반에 접어들었다. 아마도 이번 편은 지금까지 시즌 3의 에피소드 중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평가될 것이다. 좀비 같던 쿠퍼의 뛰어난 액션이 있었고, 다이앤이 입이 거친 여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벤자민 혼 집안이 여전히 트윈 픽스에서 중요함이 드러났다.

지난 편에서 더기에 대한 암살 지령이 떨어졌고, 이번 편에서 더기-쿠퍼가 죽을 운명이었으나 역시 주인공답게 갑자기 FBI의 본능이 깨어나 암살자를 물리쳤다. 지난 주에는 빨간 방의 외팔이가 도움을 줬다면 이번에는 그에게서 떨어져나가서 자체적으로 진화한 팔이 쿠퍼에게 암살자를 물리칠 방법을 알려줬다. 쿠퍼는 이후 원래대로 정신이 꽤 돌아오나 싶었는데 린치가 더 이상의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 아직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올 시점은 아닐 것이다.

다이앤은 쿠퍼의 비서이자 부하였음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심상치 않았으리라는 암시들이 있었다. 쿠퍼가 시즌1, 2에서 그렇게 말을 속삭여댔으니 단순히 같은 팀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쿠퍼의 상사인 고든과 동료인 알버트는 감옥에 갇힌 나쁜 쿠퍼가 어딘기 이상하다, 즉 진짜 쿠퍼같지 않다고 여겼고, 그를 매우 잘 아는 인물로 다이앤을 지목하여 그녀로부터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역시 그녀도 나쁜 쿠퍼가 진짜가 아님을 알아봤고 좌절했다.

레딧인가 어느 신문의 리뷰엔선가의 예상처럼 호크가 화장실에서 발견한 것은 로라 팔머의 다이어리 중 찢겨진 세 페이지였다. 아직 찾지 못한 한 페이지도 있는데 한 페이지의 내용이 매우 놀랍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인데, 좋은 쿠퍼가 빨간 방(정식 이름은 검은 오두막)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로라 팔머의 일기에 있다. 쿠퍼는 로라의 사망 때문에 트윈 픽스에 왔으므로 미래의 일이 이미 꿈 속에서 예견되었던 것이다. 이 미스터리는 어떻게 풀릴지, 애니가 빨간 방을 통해 복귀를 할지도 궁금한 일이다.

벤자민 혼이 오래간만에 출연했고, 그의 비서로 연기 중인 애슐리 주드도 등장했다. 이 두 명은 호텔의 어느 곳에선가 이상한 소리가 나는지 확인 중이었다. 원래 시리즈에서 벽 사이에 어떤 공간이 있어서 혼의 아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 소리일 것으로 보인다. 비서는 궁금해했지만 벤자민은 효과적으로 의문을 비켜갔다. 애슐리 주드는 집에 돌아가서 아마도 남편으로 보이는 인물과 만나는데 그의 이름이 톰이었다. 원래 시리즈에 나왔던 인물인가 싶어 구글링을 했지만 아마도 아닌 듯 하다.

나머지의 큰 이야기는 나쁜 쿠퍼가 감옥을 벗어나는 이야기다. 다이앤의 방문으로 진짜 쿠퍼가 아님이 드러난 상황에서 감옥 관리자를 협박해서 유유히, 당당하게 어디론가 떠났다.

또 시즌 3 초반에 발견된 머리와 몸통이 다른 시체에서 몸통 부분이 젊은 시절(아마도 실종 시점)의 갈란드 브릭스 소령임이 이번 편에서 밝혀졌다.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진 이번 편 덕분에 새로 트윈 픽스를 접하고 그만 보려던 시청자들을 다시 잡아둘 수 있을 것 같다.

2017년 6월 18일 일요일

제이니-이와 더기의 이상함

어제 레딧에서 트윈 픽스에 대한 글들을 조금 읽어보았다. 시즌3이 시작된 이후 처음 방문이다. 이미 그곳에서는 시즌3의 괴상한 세상을 나름대로 설명해두고 있었다. 특히 더기와 관련된 내용은 꿈 속의 이야기일 것 같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었다. 아직 수긍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레딧의 글은 익숙치가 않아서 잘 안 읽게 된다.

오늘은 가디언을 비롯해 다른 유력 매체들의 시즌3 리뷰들을 조금 읽어보았다. 세네 곳의 글을 본 거라 한정적이긴 한데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리뷰였다. 가장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럴듯하게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을 설명해준다.

가디언 등의 에피소드 5, 6 리뷰에서는 나도 느꼈던 제이니-이와 더기의 그 이상함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이 나온다. 어떤 이는 더기의 행동이 로봇과 같다고 느꼈고, 어떤 이는 더기가 아이 같다는, 즉 제이니-이가 엄마 같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당연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데 더기의 이상함, 즉 쿠퍼보다는 더 살이 찌고 머리 모양도 다르고 무엇보다 거의 사람 같지 않은, 의지가 없는 존재인 이 사람의 괴이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조차 외모는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쿠퍼-더기를 그냥 받아들여 버린다. 직장 동료들도 더기가 '조금' 이상해졌다고만 여길 뿐 심각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장면들인데 오히려 린치, 프로스트가 친밀한 대상에게조차 무심한 세태를 비판하려고 이런 연출을 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보인다.

하나 새로 알게된 점은 에피소드5의 막판에 등장하고 에피소드6에서 갱단에 위협당하고 아이를 차로 치는 사고를 저지른 젊은 남자의 성이 혼이라는 것이다. 벤자민 혼은 원래 트윈 픽스 마을의 최고 권력자인데 그와 모종의 혈연 관계가 예상된다. 리뷰어들은 오드리 혼의 아들이 아니겠냐고 하는데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엄마의 성을 따를 이유가 없다. 기억하기론 벤자민의 아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쪽의 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더 블랙리스트 시즌 4

시즌 4의 중반은 참 지루했다. 레딩턴의 가장 큰 적들이 쓰러져가며 내용보다는 이 시리즈를 어떻게,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지 궁금한 와중에 몇 개의 에피소드들은 안 봐도 무방했다.

후반부로 와서 레딩이에 독이 든 술을 먹고 의식을 잃고 그 범인을 찾는 과정이 나오고, 범인이 바로 시체를 완벽히 처리해주던 미스터 캐플란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녀가 엘리자베스, 즉 아기 리즈의 돌보미였음이 드러나고 여자인 그녀가 왜 미스터 캐플란이 되었는지 알게 된다.

시즌 4는 죽은 줄 알았던 그녀의 귀환과 복수극이 큰 흐름이라 하겠고, 누구보다 레딩턴에 가까웠던 그녀의 복수로 인해 레드의 왕국은 거의 궤멸되기에 이른다. 미스터 캐플란은 다리에서 뛰어내려 익사를 시도했으나 그녀가 정말 죽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시즌 피날레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은 마침내 유전자 검사를 통해 레드가 리즈의 아버지임이 밝혀졌고, 엄마, 양부, 돌보미까지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린 리즈가 남아있는 생부인 레드가 아무리 악인이라도 버릴 수 없다며 둘이 껴안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레딧에는 지금의 레딩턴은 리즈의 친부인 레딩턴이 아니라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고, 블랙리스트의 제작자도 그런 가설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목숨까지 버릴 것 같은 레딩턴의 리즈에 대한 헌신적 태도를 보면 그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 이상한데 만약 아니라면 실제로는 무슨 관계일지 모르겠다.

미스터 캐플란이 죽기 전에 땅에서 파낸 뼈를 리즈의 남편인 톰 킨이 받아서 어디론가 가져가는데 이게 누구의 뼈인지도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처음에 가방에 붙어있는 이름표에 엘리자베스라고 되어 있길래 레드가 진짜 레드가 아닌 게 아니라 리즈가 진짜 리즈가 아닌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는데 그건 아닌 듯 하다. 이름표에 엘리자베스 킨이라고 되어 있으니 그것은 톰을 만난 이후의 리즈의 이름이다. 나무에 새겨진 K 글자 때문에 레딧에서는 카타리나가 아니냐는 말이 많은데 여태껏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의 유골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다른 사람 중 같은 의문을 제기한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 했는데 내가 가장 눈여겨본 것은 미스터 캐플란이 레딩턴을 사랑했다는 말을 한두 번도 아닌 세 번이나 했다는 대목이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딱 한 번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단은 동성애 성향이 있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성애적 취향이나 경험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카타리나를 어느 정도는 동성애적 감정으로 대했을 수도 있겠는데 왜 레딩턴을 사랑한다고 했을까 모르겠다. 이에 대해 레딩턴이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일방적인 사랑이었다는 것일까? 둘 사이에 어떤 비밀스런 관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시즌 5는 리즈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한 악의 제국을 상실한 레딩턴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여전히 리즈에게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얼만큼 밝혀질지 관건이다.

2017년 6월 12일 월요일

트윈 픽스 시즌3 에피소드 6 리뷰


이번 에피소드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잔혹한 장면이 나왔다. 어린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비교적 적나라하게 찍혔다. 그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트윈 픽스 사람들(그렇다. 이번 편은 트윈 픽스 장면이 꽤 많이 나왔다)은 모두 눈물을 흐렸다. 트레일러에서 사는 한 노인은 아마도 죽은 소년의 영혼으로 추정되는 노란 것이 하늘로 올라가며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가장 주목되는 장면은 시즌 1, 2에서 쿠퍼가 녹음기에 대고 이야기할 때 상대방으로 설정된 다이앤이 드디어 공개된 것이다. 시즌 3이 시작되기 전에 다이앤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던 바 있는데, 그녀는 데이빗 린치 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로라 던이 연기한다. 하지만 얼굴만 한 번 보여줬을 뿐 아무 말도 없었고 다음 편 이후의 활약을 예고한다.

더기 존스로서 세상에 복귀하여 고생하고 있는 데일 쿠퍼는 지난 에피소드의 엔딩에서 머물렀던 그 장소에 계속 있다가 경찰(?)에 인도되어 귀가한다. 그리고 보험 회사 상사가 맡긴 케이스 파일들을 열어 해결하는데 빨간 방의 외팔이 아저씨의 도움을 받는다. 외팔이는 쿠퍼에게 일어나라고 외치고 이어서 죽지 말라고도 했다. 그래서 쿠퍼가 제정신을 차리나 싶었지만 별로 그렇지는 않았고, 카지노에서 잭팟이 터질 슬롯 머신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작은 빛이 보험 서류의 문제점들을 알려주자 연필로 사다리와 계단 그리고 선과 원을 그리면서 표시를 해둔다.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직장 상사는 처음에 장난친 거냐고 하다가 계속 들여다보며 전문가닾게 그 깊은 뜻을 알아챈다.

또 다른 큰 이야기는 5편 마지막에 뱅뱅 클럽(?)에서 담배를 피고 행패를 피우던 그 청년이 더 큰 마약 조직과 접선하는 과정에서 망신을 당하고 앞서 언급한 소년을 차로 치게 된 긴 과정이다. 지난 시즌들에서 혼 가문이 지역 사회를 장악한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외부의 거대 조직이 개입하여 큰 사단이 날 것을 예고한다.

더기의 아내 역할을 연기하는 나오미 와츠는 계속하여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어 보기에 불편하다. 사실은 쿠퍼인 더기가 워낙 무반응이니 실상 혼자 대화를 하는 셈이라 이해가 가지만 어색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번 편에서 그녀는 남편의 외도 사진을 통해 돈을 뜯어내는 불량배들에게 소리를 치며 어둡고 어려운 시대를 논했다. 방영은 트럼프 대통령 시대지만 촬영은 오바마 때 됐을 터인데 공교로운 일이다.

이번 편은 엔딩이 예전처럼 뱅뱅 클럽의 인디 밴드 공연으로 끝났다. 배경음악이 흐르고 검은 화면에서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대부분의 경우와 다르긴 한데 데이빗 린치가 이런 식의 엔딩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사가 해당 에피소드의 내용과 꼭 연결되는 것 같지도 않은데.

2017년 6월 7일 수요일

트윈 픽스 시즌 3의 엔딩

매 편이 끝날 때를 엔딩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아직 초반인 시즌3의 엔딩을 어떻게 아는 건지 궁금해서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과한다.

여하튼 영화가 끝날 때의 엔딩 크레딧 같은 장면을 트윈 픽스의 시즌3의 에피소드마다 볼 수 있다. 화면 아래쪽에서부터 출연자와 촬영, 편집에 참여한 인물들의 이름이 위를 향해 계속 올라간다. 사운드 효과를 전적으로 담당한 린치의 이름도 그래서 매 번 보게 된다.

에피소드 3, 4에서 뱅뱅 클럽에서 밴드들의 공연 장면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사용해서 이건 무슨 의미인가 궁금한 터였다. 이번 5편에서도 거의 끝날 때 또 뱅뱅 클럽에서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어서 설마하니 또 이런 식인가 했는데 다행히도 살짝 비틀어서 밴드 공연 장면 이후 회사 앞 카우보이? 동상을 떠나지 못 하는 쿠퍼를 비춰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이번에 조금 변화를 줬으니 6편의 엔딩 크레딧은 어떤 장면이 등장할지 기대해본다.

Incendies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중 초기작인 Incendies, 한국 개봉명 '그을린 사랑'은 안 보고 있던 차였는데 영화가 레바논에 관한 것이라길래 잉?하며 급히 찾아보게 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은 거의 다 봤다고 생각했고, 본 영화들 대부분은 할리웃 영화였기 때문이다. 조금 전 imdb에서 보니 감독작은 새로운 블레이드 러너를 포함하여 16개나 되므로 프리즈너스 이전 작품은 하나도 못 본 셈이다. 프리즈너스 이후 할리웃 대작들을 찍고 있다.

그을린 사랑이라는 제목 자체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무슨 의미인지,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을린 사랑이라는 국내 개봉명이 잘 된 번역이라고 말한다. '그을린'이라는 말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사실 영화의 원작이 되는 연극 극본의 제목이 scorched, 즉 그을림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한국 번역자가 생각해낸 번역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앵상디 정도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프랑스어인 원제는 화재가 기본적인 의미이고, 확장적인 의미로 분쟁, 내전까지 의미하는 듯 하다. 여하간 불, 화재와 그 결과로서의 그을림이라는 연결이 이루어진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인 의미에서의 화재는 버스에서 발생했고, 내전으로 인해 불에 타고 무너진 건물들을 볼 수도 있었다.

본 사람은 다 이해할 수 있을 영화 내용인데 영화의 구성은 쌍둥이 남매가 죽은 엄마의 과거의 비밀을 스스로 알아나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엄마를 고용했던 캐나다인 공증인은 아마도 비밀을 상당히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남매가 스스로 충격적인 비밀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린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평은 단적으로 오이디푸스 신화를 현대에 적용한 거라고 평했다. 소년이 왕이 되지도 않고, 직접적으로 아버지를 죽인 것도 아니긴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몰라보고 성관계를 갖는 것(이런 중립적이고 온건한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만은 공통적이다. 영화가 오이디푸스에 해당할 남성이 아니라 어머니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큰 차이다.

영화의 충격적 반전은 사실이 완전히 까발려지기 전에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는 바였다. 설마 그렇게까지할까라는 의심은 있었지만. 애초에 어머니가 큰 아들을 낳은 시점 자체가 의문이었는데 왜냐하면 같은 배우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무슬림 난민인 남자 친구가 죽은 시점에 도대체 몇 살인가 헛갈리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10대 시절이라는 건데, 이후 이 여성이 대학에 들어가고 운동을 하고 정치범으로 수용되는 걸 감안하면 처음 등장할 때 10대였던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마 화면상의 외모로는 별로 그렇게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40 전후가 되었을 그 비극의 순간에 큰 아들의 만행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의 원작이 레바논을 배경으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레바논을 배경으로 한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영화의 사건과 레바논 현대사에 일치점이 있을 뿐이다. 레바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적은 없지만 오랜 내전이 있었고 그 성격이 무슬림과 기독교의 대결이라는 점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기독교인인데 갑자기 기독교 지도자를 암살하길래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아들이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무슬림쪽에 가담했던 모양이다.

세월이 지난 후에 화제작을 처음 접하면 김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영화는 촬영이나 개봉 당시에 봐야 그 의미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 터이다. 지금 와서야 보게된 그을린 사랑은, 만약 감독의 의도대로 레바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사 일반적인 이야기라고 하면, 이게 무슨 희한한 이야기인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로 평가될 가능성도 다분한다. 실제 나의 느낌이 그렇다. 추리극 같았던 영화의 전개와 구성 방식은 뛰어났으나 현실적 의미를 배제한 채 중동 같긴 한데 아닐 수도 있다는 장소의 이상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믿을 수 없이 무한한 모성애에 대한 경외감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까.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건널 수 없는 간극에 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절대악에 대한 것일까, 절대악도 사연이 있다는 이해를 요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