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 코프에 출근하게 된 엘리엇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매일 성실하게 출근해서 자신이 초래한 스테이지 2를 막기 위해 분투한다. 이 코프에서 복구팀의 하급 직원으로 일하면서 상사들에게 종이 서류를 뉴욕으로 모으지 못 하게 하고 스캔해서 보관하도록 설득하는 프리젠테이션을 하지만, 바로 위 상사는 듣기 싫고 구구돌스 공연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엘리엇은 상사의 이메일을 해킹해서 그의 비리를 FBI에 고발했다. 엘리엇은 그 위의 상사도 같은 방식으로 FBI에 체포되게 만들었는데, 다행히 그 위의 상사는 엘리엇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시작 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엘리엇의 상상이 상당히 가미된 것처럼 보이고, 스테이지 2를 막았다는 엘리엇의 자기 확신도 약해보였다.
엘리엇은 스테이지 2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위로를 하면서도 밀려드는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 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다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오래 간만에 출연한 의사(?)는 처음으로 미스터 로봇을 대면하게 되었는데, 미스터 로봇은 그녀와 대화를 했지만 아무 것도 내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엘리엇은 미스터 로봇이 나타나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 했다. 그러나 완전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미스터 로봇은 전에는 엘리엇과 혼연일체였는데 지금은 하나가 있으면 나머지 하나는 완전히 뒤로 물러나있어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편의 하나의 테마는 엘리엇의 고독인데, 그는 자신의 생일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날 저녁 여동생을 만난 그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그녀에게 함께 있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달린은 한밤중에 엘리엇의 컴퓨터에 감시 장치를 설치했고, 미스터 로봇은 그걸 알아채고 그녀를 추궁했다. 처음에 미스터 로봇/엘리엇은 감시 장치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에피소드 마지막에 드러나듯 그 상황을 역이용하려고 했다. 엘리엇은 달린을 보면 미스터 로봇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고 말하며 여동생을 안 보려고 했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 일종의 계획을 갖고 달린을 일부로 집에 초대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타이렐의 부인이 벌써 시리즈에서 이탈했다. 남편만 사랑했다는 방송에서의 발언 때문에 지난 시즌에 관계를 맺은 바텐더의 분노를 산 것이다. 머리에 총알을 맞은 그녀는 부검실에서 두개골이 절단되었다. 묘한 성적 매력을 발산한 그녀의 이른 퇴장은 아쉬움을 남긴다. 어머니의 피범벅이 된 아기는 FBI 요원의 말처럼 고아원으로 갈 것인가.
이 드라마의 시간대는 여전히 2015년인 것도 드러났는데, 그렇다면 지난 편에서 트럼프와 메이는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이 코프에서는 이코인을 달러를 대신한 기축통화로 만들려했는데 중국은 재미있게도 비트코인을 내세웠다. 현실의 중국은 비트코인을 규제하는 상황인데 매우 최근의 일이라서 드라마 각본을 쓸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을 것 같긴 하다. 화이트로즈는 유엔에서 어떤 결론이 나건 스테이지 2를 실시하겠다고 다짐했다.
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블레이드 러너 2049 - 생각들 추가
자기 전에 지난 번 글에서 적지 못했거나 여타 잡다한 생각을 짧게 적어두려고 한다.
지난 리뷰에서 빠뜨린 가장 중요한 내용은 고독에 대한 것이었다. 82년 영화의 LA의 모습도 황량하긴 했지만 2049의 LA와 그 속의 K는 더욱 고독한 존재로 그려졌다. 2049에서 K의 호버카는 하늘에 있는 유일한 차였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대도시인 LA 하늘에 차가 한 대만 다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영화 속의 현실이라기보다 K의 고독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유튜브에서 김중혁 작가가 영화의 K라는 이름을 카프카와 연결시키는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카프카의 K야말로 고독한 개인이었다.
82년 영화에서 조라가 죽는 장면에서 주변에 마네킨들이 즐비했던 것도 상징적이었다. 보진 않았지만 큐브릭도 마네킨을 핵심적으로 이용한 영화를 찍은 바 있었는데, 옷가게에 있는 마네킨들은 가끔씩 섬뜩한 느낌을 주곤 한다. 이 사람과 비슷하면서 신체의 여러 부분이 생략되고 영혼은 물론 없는 이 물체는 레플리컨트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레이첼을 연기한 숀 영은 며칠 전까지도 꽤 잘 나가는 배우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지만 실상은 이미 오래 전에 배우 경력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리하여 블레이드 러너는 그녀의 초기 작품이지만 최고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후 두세 편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 등에 출연했다. 알고 보니 남성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흉흉한 에피소드도 있고, 캣우먼으로 캐스팅되기 위해 기행을 벌이기도 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고, 알콜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82년 작품에서도 출연 분량은 매우 적었다. 숀 영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함께 블레이드 러너에 출연했던 대릴 하나도 의외로 화제작에는 별로 출연하지 못 한 것으로 드러나 나름 충격적이었다. 룻거 하우어는 여전히 활발하게 연기 경력을 이어가지만 생각만큼 유명한 작품 출연은 별로 없었다.
지난 번 조이와 K의 인접성을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러브도 알파벳 상으로 인접한 이름이었다. J, K, L.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복제가 가능할 테니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고 해야할지?
지난 리뷰에서 빠뜨린 가장 중요한 내용은 고독에 대한 것이었다. 82년 영화의 LA의 모습도 황량하긴 했지만 2049의 LA와 그 속의 K는 더욱 고독한 존재로 그려졌다. 2049에서 K의 호버카는 하늘에 있는 유일한 차였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대도시인 LA 하늘에 차가 한 대만 다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영화 속의 현실이라기보다 K의 고독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유튜브에서 김중혁 작가가 영화의 K라는 이름을 카프카와 연결시키는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카프카의 K야말로 고독한 개인이었다.
82년 영화에서 조라가 죽는 장면에서 주변에 마네킨들이 즐비했던 것도 상징적이었다. 보진 않았지만 큐브릭도 마네킨을 핵심적으로 이용한 영화를 찍은 바 있었는데, 옷가게에 있는 마네킨들은 가끔씩 섬뜩한 느낌을 주곤 한다. 이 사람과 비슷하면서 신체의 여러 부분이 생략되고 영혼은 물론 없는 이 물체는 레플리컨트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레이첼을 연기한 숀 영은 며칠 전까지도 꽤 잘 나가는 배우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지만 실상은 이미 오래 전에 배우 경력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리하여 블레이드 러너는 그녀의 초기 작품이지만 최고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후 두세 편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 등에 출연했다. 알고 보니 남성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흉흉한 에피소드도 있고, 캣우먼으로 캐스팅되기 위해 기행을 벌이기도 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고, 알콜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82년 작품에서도 출연 분량은 매우 적었다. 숀 영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함께 블레이드 러너에 출연했던 대릴 하나도 의외로 화제작에는 별로 출연하지 못 한 것으로 드러나 나름 충격적이었다. 룻거 하우어는 여전히 활발하게 연기 경력을 이어가지만 생각만큼 유명한 작품 출연은 별로 없었다.
지난 번 조이와 K의 인접성을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러브도 알파벳 상으로 인접한 이름이었다. J, K, L.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복제가 가능할 테니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고 해야할지?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블레이드 러너 2049
언제나 기대를 충족시키는 영화를 내놓은 드니 빌뇌브의 신작은 리들리 스콧의 SF 고전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편이다. 이미 개봉을 했는데,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두기도 했다. 그래서 책, 2049, 예전 영화의 순으로 최근에 감상을 한 셈인데 이야기가 어디까지 흘러갈지 모르지만 그 감상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5일까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국 박스오피스 성적은 22만명 수준이라고 한다. 해외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지만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과 느릿한 전개, 혹은 롱 테이크 장면들이 많아서 여러 관객의 고백처럼 졸기에 좋은 영화였다. 나는 12일 정식 개봉일에 봤는데 자리가 많이 비었을 뿐 아니라 뒷 자리의 두 남성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큰 목소리로 토론을 해서 성가셨던 터이다. 나도 졸음을 떨쳐내기 위해 한동안 노력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영화에 대한 진지한 리뷰를 본 적은 없다. 자주 가는 대형 커뮤니티에는 많은 감상들이 올라와있지만 근거를 적지 않거나 짤막한 이유를 대며 극찬을 하는 경우가 우세했고, 정반대로 왜 찬사를 받는지 모르겠다거나 졸렸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SF 장르에 익숙하거나, 전작을 여러번 본 사람들의 글, 댓글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내용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짤막한 분량 때문에 영화 전반, 혹은 전작, 원작 소설과의 연결시켜 체계적으로 분석한 글은 아니었다. 굳이 열심히 찾아 읽은 건 아니었고, 이렇게 극찬을 하는 사람이 많은 이상 어딘가에 좋은 리뷰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혹은 전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릭 데커드라는 캐릭터가 레플리컨트 혹은 원작의 표현대로면 안드로이드인가의 여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82년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은 릭 데커드를 레플리컨트로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릭 K. 딕의 원작 소설을 읽고는 릭 데커드가 안드로이드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기에(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원작을 읽은 독자와 영화판을 본 관객의 입장은 다를 수 있고, 둘 다 본 사람은 헛갈릴 수 있다. 하지만 창작자가 의도를 명확히 한 이상 릭의 정체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을 본 바로는 릭이 레플리컨트라는 암시를 별로 받지 못했다. 레이첼이 당신은 테스트를 받아봤느냐고 도발했던 점 정도가 떠오르는데 이는 원작 소설에도 있던 내용이다. 그런데 82년 영화에 대한 리뷰들을 보면 유니콘의 꿈을 꾸는 데커드 장면과 영화 마지막에 가프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 유니콘이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는 강력한 암시라고 한다. 유니콘 꿈을 꾸는 장면은 원래 극장판에서는 빠졌던 것인데 나중에 감독판으로서 들어갔다고 한다.
2049에서는 릭이 자신과 레이첼, '우리'가 쫓겨다녔다는 식의 대사가 있었고(나는 레플리컨트니까 도망다녔다로 이해했지만, 82년작을 보면 단순히 레이첼을 보호하기 위해 도망다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월러스가 프로그램된 대로 레이첼과 사랑에 빠진 거라고 릭을 놀리는 대목도 그가 레플리컨트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다. 릭이 K에게 자신이 '은퇴했다'고 말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소설에서 '은퇴'는 레플리컨트의 죽음을 의미하고, 이는 영화(아마 82년작?) 초반에 나오는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2049에서 릭의 은퇴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은퇴했다는 의미가 1차적이었다.
가프의 종이접기, 일본식으로 오리가미도 재미있는 내용이긴 하다. 그는 82년 영화에서 닭, 사람 모양(성기가 큰?), 유니콘을 접었고 모두 데커드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된 행위였다. 그는 2049에서는 양을 접었다. 원작 소설에서 릭은 집에서 전기양을 기르고 있었으므로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이다. 82년 영화에서 부각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원작 소설에서는 지구 상에 진짜 동물은 거의 남지 않았고 인간의 안드로이드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 동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데커더는 집에 있는 가짜 양이 아니라 진짜 동물을 너무 갖고 싶어했고, 그래서 나중에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고 받은 돈으로 진짜 염소를 할부로 구매한다. 하지만 이는 소설의 내러티브고, 82년 극장판의 데커드는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 빠진 캐릭터이므로 가프의 양 오리가미가 어떤 의미일지는 불확실하다.
내가 최근에 본 순서 때문에 2049를 볼 때는 가프가 누구인지 몰랐다. 즉 배틀스타 갈락티카(이 드라마도 인간과 인조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다룬 작품이었다)의 카리스마 넘치는 선장으로서의 에드워즈 제임스 올모스라는 배우를 기억했지만 블레이드 러너의 출연 배우로서 올모스는 몰랐던 것이다. 그의 출연 분량이 적은 것에 대한 불만도 볼 수 있지만 82년 버전에서도 출연 분량 자체는 많지 않았다. 다만 릭 데커드의 정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였을 뿐이다.
다음으로 소설의 주인공인 K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주인공의 이름이 K라는 점은 여러모로 상징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즉각적으로는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인 K가 떠오르고, 소설의 작가가 미들네임으로 K를 갖고 있으니 이와 연결이 될 수도 있겠다. 2049의 내러티브 속에서는 이름을 가질 수 없는 레플리컨트, 노예 신분으로서의 존재를 상징한다. 그의 홀로그램 연인이 조이Joi고 그가 나중에 그녀로부터 조Jo라는 이름을 얻은데, J와 K는 인접한 알파벳이기도 하다.
2049에서 가장 의문인 점 중 하나는 사람들, 레플리컨트들이 어떻게 K가 레플리컨트인지 즉각적으로 알아채는냐이다. 레플리컨트들이 인간이 하기 싫은 직업들을 시키기 위해 창조된 존재들이라면 특정 직업군은 레플리컨트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으나 K는 경찰이다. 경찰서 내에서 그의 정체를 아는 동료들이야 그를 레플리컨트라고 천대할 수 있겠으나 경찰서 밖의 세계에서 어떻게 그의 정체가 그토록 쉽게 탄로가 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K가 릭과 레이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레플리컨트 반란군 측에서는 그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그가 나름대로 블레이드 러너로서 활보를 하고 다녔으니 그의 손에 죽지 않으려는 레플리컨트들은 그를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거리의 모두가 K를 보고 즉각적으로 레플리컨트인지 알아챌 수는 없었을 것이다.
K의 여정은 릭의 여정과 닮은 면이 많다. 직업적으로 동일하고 레플리컨트이면서 레플리컨트를 은퇴시키는 아이러니에 처해 있다. 게다가 영화의 전개 흐름상 K가 릭의 아들이라는 암시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반복되는 사건, 인생이라는 주제인가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이 결국 K는 릭의 아들이 아니었고, 그저 남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하나의 레플리컨트일 뿐이다. 유튜브의 단편 영화를 보건대 82년 영화의 레플리컨트들은 넥서스 6이었고, 2022년?인가에 수명 연한이 없어진 넥서스 8이 제조되었다(사실 이 부분이 릭이 레플리컨트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면 근거가 될 수 있다. 넥서스 6은 4년 연한이 있었고, 2019년에 살았던 릭이 넥서스 8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분명히 나왔는지 기억은 없지만 영화 초반 은퇴한 레플리컨트가 K를 신형으로 지칭해서인지 K를 넥서스 9로 칭한 유튜버도 있었다.
2049에서는 K의 연인인 조이 역의 아나 데 아르마스가 뛰어난 미모로 인해 많은 주목을 끌었다. 전에도 아름다운 배우였겠지만 화제작에서 보편적인 미를 대변하는 캐릭터를 맡아서 인기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조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허'를 연상시키는 존재다. 실체를 따지면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인데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K만을 위한 존재, 의미있는 존재로 변한 것처럼 변한다. '허'의 인공지능이 동시에 세계의 뭇 남성과 연애를 할 수 있고, 조이도 원래는 그랬는데 중앙 서버와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막대기 같은 단말기 안에 들어가 K만을 위한 조이로 변한 것이다. 인간에 대해 레플리컨트가 로봇이나 노예 같은 존재였다면, 조이는 레플리컨트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더 아래 단계의 존재다. 인간이 레플리컨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원작 소설의 테마였다면, 이번에는 레플리컨트가 홀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식으로 유사하면서 다른 차원의 사랑이 변주된다.
안드로이드/레플리컨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적'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초기 레플리컨트들이 수명 연한이 4년에 불과한 만큼 자기들끼리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성인 크기의 레플리컨트를 만들어내면 되는데 왜 성가시게 수정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하는 과정을 거친단 말인가. 그러나 신체적 능력은 더 우월하고 정신적 능력은 인간과 유사한 레플리컨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보다 떨어지는 인간들에게 왜 복종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신작인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주제와 정확히 부합하지 않나! 여하간 레플리컨트들은 자신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면 인간이 없어도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월러스도 그렇게 잉태할 수 있는 레플리컨트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레플리컨트가 아무리 인간과 유사하더라도 찢어진 피부를 접착제로 발라 붙여버리는 K의 장면을 보건대 세포가 있더라도 인간과는 다른 세포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출산까지 가능했던 것일까? 한 번의 기적을 제외하면 레플리컨트들 사이의 후손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과연 반복할 수 있을까? 한 번만 일어나는 일 아닐까? 혹은 안드로이드에서 태어난 아이는 반란군의 동기 부여를 위한 사기극은 아닐까?
기적이 일어나서 레플리컨트들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스텔라인 박사가 정말 릭과 레이첼의 아이라고 치자. 그녀는 가장 기억을 그럴 듯 하게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한 창의성, 예술성이 인간이 아니라 레플리컨트로부터 나온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가장 도발적인 설정이라고 본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적수가 될 수 없을 거라던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미 인간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인공 지능이 인간이 들어서 그럴 듯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세상에 이미 도달한 지금 인간성의 대표적인 지표로 거론되는 예술성마저 레플리컨트가 점령한다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그 특이성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기타 몇 가지 지점들을 적어두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타이렐 회사가 망한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월러스인데 둘 사이의 유사점도 발견된다. 레플리컨트를 제조하는 회사임은 물론이고 타이렐이 로이의 공격으로 눈이 망가지며 죽음에 이르렀는데 월러스가 공교롭게도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눈, 눈동자는 82년작과 2049 모두 오프닝 신에서 주요하게 배치되었다. 레플리컨트는 오른쪽 눈에 일련번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른쪽 안구가 없는 존재는 사람인지 레플리컨트인지 쉽게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 월러스에게는 많은 비밀이 있는 듯 한데 영화를 한 번 보고서는 종잡기 어려웠다. 그가 레이첼을 이야기하며 성서의 라헬(=레이첼)을 운운한 것은 재미있었다. 불임의 여성에게 일어난 기적.
릭 데커드가 은신하고 있던 라스 베가스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스 베가스에는 많은 벌거벗은 여성 조각, 거대한 조각 혹은 건축물들이 무너져내려 있었다. 무대에는 시대착오적으로 거의 100년 전의 가수 엘비스와 배우 마릴린 먼로가 등장했다. 그걸 즐기는 릭 데커더는 또 무언가.
영화에서 한국말이 들리고 한글 간판들이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82년 영화에서도 한국말이 들렸다. 밥 먹으려는 릭을 경찰서로 데려가며 가프와 함께 온 경찰이 '이리 와'라고 한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재미있었다. 아마도 스페인어를 주로 쓰는 가프와 한국어를 쓰는 또 다른 경찰, 그리고 그들의 말을 해석해서 영어로 말하는 일본인인 식당 주인.
2049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괜찮은 면모가 많고, 특히 시각적인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전편보다 더 나아간 측면이 있었다. 반젤리스에서 한스 짐머로 교체된 음악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작을 보고 나니 전작이 더 마음에 들기는 했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이전 영화들이 더 좋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15일까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국 박스오피스 성적은 22만명 수준이라고 한다. 해외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지만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과 느릿한 전개, 혹은 롱 테이크 장면들이 많아서 여러 관객의 고백처럼 졸기에 좋은 영화였다. 나는 12일 정식 개봉일에 봤는데 자리가 많이 비었을 뿐 아니라 뒷 자리의 두 남성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큰 목소리로 토론을 해서 성가셨던 터이다. 나도 졸음을 떨쳐내기 위해 한동안 노력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영화에 대한 진지한 리뷰를 본 적은 없다. 자주 가는 대형 커뮤니티에는 많은 감상들이 올라와있지만 근거를 적지 않거나 짤막한 이유를 대며 극찬을 하는 경우가 우세했고, 정반대로 왜 찬사를 받는지 모르겠다거나 졸렸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SF 장르에 익숙하거나, 전작을 여러번 본 사람들의 글, 댓글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내용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짤막한 분량 때문에 영화 전반, 혹은 전작, 원작 소설과의 연결시켜 체계적으로 분석한 글은 아니었다. 굳이 열심히 찾아 읽은 건 아니었고, 이렇게 극찬을 하는 사람이 많은 이상 어딘가에 좋은 리뷰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혹은 전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릭 데커드라는 캐릭터가 레플리컨트 혹은 원작의 표현대로면 안드로이드인가의 여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82년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은 릭 데커드를 레플리컨트로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릭 K. 딕의 원작 소설을 읽고는 릭 데커드가 안드로이드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기에(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원작을 읽은 독자와 영화판을 본 관객의 입장은 다를 수 있고, 둘 다 본 사람은 헛갈릴 수 있다. 하지만 창작자가 의도를 명확히 한 이상 릭의 정체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을 본 바로는 릭이 레플리컨트라는 암시를 별로 받지 못했다. 레이첼이 당신은 테스트를 받아봤느냐고 도발했던 점 정도가 떠오르는데 이는 원작 소설에도 있던 내용이다. 그런데 82년 영화에 대한 리뷰들을 보면 유니콘의 꿈을 꾸는 데커드 장면과 영화 마지막에 가프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 유니콘이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는 강력한 암시라고 한다. 유니콘 꿈을 꾸는 장면은 원래 극장판에서는 빠졌던 것인데 나중에 감독판으로서 들어갔다고 한다.
2049에서는 릭이 자신과 레이첼, '우리'가 쫓겨다녔다는 식의 대사가 있었고(나는 레플리컨트니까 도망다녔다로 이해했지만, 82년작을 보면 단순히 레이첼을 보호하기 위해 도망다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월러스가 프로그램된 대로 레이첼과 사랑에 빠진 거라고 릭을 놀리는 대목도 그가 레플리컨트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다. 릭이 K에게 자신이 '은퇴했다'고 말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소설에서 '은퇴'는 레플리컨트의 죽음을 의미하고, 이는 영화(아마 82년작?) 초반에 나오는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2049에서 릭의 은퇴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은퇴했다는 의미가 1차적이었다.
가프의 종이접기, 일본식으로 오리가미도 재미있는 내용이긴 하다. 그는 82년 영화에서 닭, 사람 모양(성기가 큰?), 유니콘을 접었고 모두 데커드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된 행위였다. 그는 2049에서는 양을 접었다. 원작 소설에서 릭은 집에서 전기양을 기르고 있었으므로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이다. 82년 영화에서 부각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원작 소설에서는 지구 상에 진짜 동물은 거의 남지 않았고 인간의 안드로이드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 동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데커더는 집에 있는 가짜 양이 아니라 진짜 동물을 너무 갖고 싶어했고, 그래서 나중에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고 받은 돈으로 진짜 염소를 할부로 구매한다. 하지만 이는 소설의 내러티브고, 82년 극장판의 데커드는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 빠진 캐릭터이므로 가프의 양 오리가미가 어떤 의미일지는 불확실하다.
내가 최근에 본 순서 때문에 2049를 볼 때는 가프가 누구인지 몰랐다. 즉 배틀스타 갈락티카(이 드라마도 인간과 인조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다룬 작품이었다)의 카리스마 넘치는 선장으로서의 에드워즈 제임스 올모스라는 배우를 기억했지만 블레이드 러너의 출연 배우로서 올모스는 몰랐던 것이다. 그의 출연 분량이 적은 것에 대한 불만도 볼 수 있지만 82년 버전에서도 출연 분량 자체는 많지 않았다. 다만 릭 데커드의 정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였을 뿐이다.
다음으로 소설의 주인공인 K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주인공의 이름이 K라는 점은 여러모로 상징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즉각적으로는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인 K가 떠오르고, 소설의 작가가 미들네임으로 K를 갖고 있으니 이와 연결이 될 수도 있겠다. 2049의 내러티브 속에서는 이름을 가질 수 없는 레플리컨트, 노예 신분으로서의 존재를 상징한다. 그의 홀로그램 연인이 조이Joi고 그가 나중에 그녀로부터 조Jo라는 이름을 얻은데, J와 K는 인접한 알파벳이기도 하다.
2049에서 가장 의문인 점 중 하나는 사람들, 레플리컨트들이 어떻게 K가 레플리컨트인지 즉각적으로 알아채는냐이다. 레플리컨트들이 인간이 하기 싫은 직업들을 시키기 위해 창조된 존재들이라면 특정 직업군은 레플리컨트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으나 K는 경찰이다. 경찰서 내에서 그의 정체를 아는 동료들이야 그를 레플리컨트라고 천대할 수 있겠으나 경찰서 밖의 세계에서 어떻게 그의 정체가 그토록 쉽게 탄로가 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K가 릭과 레이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레플리컨트 반란군 측에서는 그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그가 나름대로 블레이드 러너로서 활보를 하고 다녔으니 그의 손에 죽지 않으려는 레플리컨트들은 그를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거리의 모두가 K를 보고 즉각적으로 레플리컨트인지 알아챌 수는 없었을 것이다.
K의 여정은 릭의 여정과 닮은 면이 많다. 직업적으로 동일하고 레플리컨트이면서 레플리컨트를 은퇴시키는 아이러니에 처해 있다. 게다가 영화의 전개 흐름상 K가 릭의 아들이라는 암시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반복되는 사건, 인생이라는 주제인가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이 결국 K는 릭의 아들이 아니었고, 그저 남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하나의 레플리컨트일 뿐이다. 유튜브의 단편 영화를 보건대 82년 영화의 레플리컨트들은 넥서스 6이었고, 2022년?인가에 수명 연한이 없어진 넥서스 8이 제조되었다(사실 이 부분이 릭이 레플리컨트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면 근거가 될 수 있다. 넥서스 6은 4년 연한이 있었고, 2019년에 살았던 릭이 넥서스 8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분명히 나왔는지 기억은 없지만 영화 초반 은퇴한 레플리컨트가 K를 신형으로 지칭해서인지 K를 넥서스 9로 칭한 유튜버도 있었다.
2049에서는 K의 연인인 조이 역의 아나 데 아르마스가 뛰어난 미모로 인해 많은 주목을 끌었다. 전에도 아름다운 배우였겠지만 화제작에서 보편적인 미를 대변하는 캐릭터를 맡아서 인기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조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허'를 연상시키는 존재다. 실체를 따지면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인데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K만을 위한 존재, 의미있는 존재로 변한 것처럼 변한다. '허'의 인공지능이 동시에 세계의 뭇 남성과 연애를 할 수 있고, 조이도 원래는 그랬는데 중앙 서버와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막대기 같은 단말기 안에 들어가 K만을 위한 조이로 변한 것이다. 인간에 대해 레플리컨트가 로봇이나 노예 같은 존재였다면, 조이는 레플리컨트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더 아래 단계의 존재다. 인간이 레플리컨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원작 소설의 테마였다면, 이번에는 레플리컨트가 홀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식으로 유사하면서 다른 차원의 사랑이 변주된다.
안드로이드/레플리컨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적'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초기 레플리컨트들이 수명 연한이 4년에 불과한 만큼 자기들끼리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성인 크기의 레플리컨트를 만들어내면 되는데 왜 성가시게 수정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하는 과정을 거친단 말인가. 그러나 신체적 능력은 더 우월하고 정신적 능력은 인간과 유사한 레플리컨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보다 떨어지는 인간들에게 왜 복종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신작인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주제와 정확히 부합하지 않나! 여하간 레플리컨트들은 자신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면 인간이 없어도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월러스도 그렇게 잉태할 수 있는 레플리컨트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레플리컨트가 아무리 인간과 유사하더라도 찢어진 피부를 접착제로 발라 붙여버리는 K의 장면을 보건대 세포가 있더라도 인간과는 다른 세포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출산까지 가능했던 것일까? 한 번의 기적을 제외하면 레플리컨트들 사이의 후손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과연 반복할 수 있을까? 한 번만 일어나는 일 아닐까? 혹은 안드로이드에서 태어난 아이는 반란군의 동기 부여를 위한 사기극은 아닐까?
기적이 일어나서 레플리컨트들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스텔라인 박사가 정말 릭과 레이첼의 아이라고 치자. 그녀는 가장 기억을 그럴 듯 하게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한 창의성, 예술성이 인간이 아니라 레플리컨트로부터 나온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가장 도발적인 설정이라고 본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적수가 될 수 없을 거라던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미 인간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인공 지능이 인간이 들어서 그럴 듯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세상에 이미 도달한 지금 인간성의 대표적인 지표로 거론되는 예술성마저 레플리컨트가 점령한다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그 특이성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기타 몇 가지 지점들을 적어두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타이렐 회사가 망한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월러스인데 둘 사이의 유사점도 발견된다. 레플리컨트를 제조하는 회사임은 물론이고 타이렐이 로이의 공격으로 눈이 망가지며 죽음에 이르렀는데 월러스가 공교롭게도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눈, 눈동자는 82년작과 2049 모두 오프닝 신에서 주요하게 배치되었다. 레플리컨트는 오른쪽 눈에 일련번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른쪽 안구가 없는 존재는 사람인지 레플리컨트인지 쉽게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 월러스에게는 많은 비밀이 있는 듯 한데 영화를 한 번 보고서는 종잡기 어려웠다. 그가 레이첼을 이야기하며 성서의 라헬(=레이첼)을 운운한 것은 재미있었다. 불임의 여성에게 일어난 기적.
릭 데커드가 은신하고 있던 라스 베가스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스 베가스에는 많은 벌거벗은 여성 조각, 거대한 조각 혹은 건축물들이 무너져내려 있었다. 무대에는 시대착오적으로 거의 100년 전의 가수 엘비스와 배우 마릴린 먼로가 등장했다. 그걸 즐기는 릭 데커더는 또 무언가.
영화에서 한국말이 들리고 한글 간판들이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82년 영화에서도 한국말이 들렸다. 밥 먹으려는 릭을 경찰서로 데려가며 가프와 함께 온 경찰이 '이리 와'라고 한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재미있었다. 아마도 스페인어를 주로 쓰는 가프와 한국어를 쓰는 또 다른 경찰, 그리고 그들의 말을 해석해서 영어로 말하는 일본인인 식당 주인.
2049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괜찮은 면모가 많고, 특히 시각적인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전편보다 더 나아간 측면이 있었다. 반젤리스에서 한스 짐머로 교체된 음악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작을 보고 나니 전작이 더 마음에 들기는 했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이전 영화들이 더 좋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미스터 로봇 시즌3 1편 해외 리뷰
트윈 픽스 더 리턴 때처럼 미국 언론의 리뷰를 보면 도움이 될까 싶어 세 개 정도를 읽어 봤다. 확실히 이전 시즌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진 상태에서 1편을 봤을 때 보지 못한 부분들을 더 알 수 있었다. 레딧에는 물론 많은 해석들이 넘치겠지만 거기까지 확인할 여력은 없다.
가장 놀란 점은 정전이 이미 시즌 2에서 시작되었다는 대목이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쨌거나 1편을 볼 때는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1편은 정전이 끝나는 것으로, 전기가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1편의 내용에서 시간 여행이 암시되었다는 해석들도 나를 놀라게 했다. 아무리 엘리엇이 천재 해커라고 해도, 다크 아미가 상상 못 할 능력들이 있다고 해도 시간 여행이라고?? 발전소는 이 코퍼레이션의 소유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 발전소에서 누군가 평행 우주론을 펼치고는 있었고, 안젤라가 엘리엇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이야기를 던지긴 했는데 리뷰어들은 시간 여행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만약 시간 여행이 실제로 이 드라마에서 실현된다면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 같다. 시간 여행은 아니라도 적어도 미스터 로봇이 어떻게 화이트로즈에게 이용당하고 죽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는 나중에 나올 것 같긴 하다.
가장 놀란 점은 정전이 이미 시즌 2에서 시작되었다는 대목이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쨌거나 1편을 볼 때는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1편은 정전이 끝나는 것으로, 전기가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1편의 내용에서 시간 여행이 암시되었다는 해석들도 나를 놀라게 했다. 아무리 엘리엇이 천재 해커라고 해도, 다크 아미가 상상 못 할 능력들이 있다고 해도 시간 여행이라고?? 발전소는 이 코퍼레이션의 소유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 발전소에서 누군가 평행 우주론을 펼치고는 있었고, 안젤라가 엘리엇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이야기를 던지긴 했는데 리뷰어들은 시간 여행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만약 시간 여행이 실제로 이 드라마에서 실현된다면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 같다. 시간 여행은 아니라도 적어도 미스터 로봇이 어떻게 화이트로즈에게 이용당하고 죽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는 나중에 나올 것 같긴 하다.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미스터 로봇 시즌3 1편
트윈 픽스 더 리턴이 방영되기 전까지는 가장 좋아하던 시리즈 중 하나인 미스터 로봇이 이번에는 가울에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마음에 드는데 믿을 수 없는 화자의 문제 때문에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이 안 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시즌 1이 시즌 2보다는 훨씬 좋았다.
시즌 3는 타이렐이 쏜 총을 맞고 쓰러진 엘리엇으로부터 시작한다. 엘리엇이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어빙이라는 이름이다. 그는 아마도 이 드라마의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화이트로즈의 명령을 받고 일하는 듯 했다. 덕분에 엘리엇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깨어난 엘리엇은 친구 안젤라와 동생 달린을 만난다. 달린을 만나서는 '스테이즈 2'를 멈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데 깨어나서 한동안은 미스터 로봇이 나타나지 않아서, 아버지의 망령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시 안젤라를 만난 후 드러나듯 미스터 로봇은 건재했다. 미스터 로봇은 엘리엇의 조치에 분개했다.
1편의 대부분 시간 동안 대규모 정전이 이어져서 밤은 어둠이 지배한다. 정전 자체가 스테이지 2는 아닌 듯 하고, 어떤 발전소에 나타난 화이트로즈의 장면을 감안하면 다크 아미와 관련된 일은 맞는 것 같다. 전기가 사라진 어둠의 시간은 엘리엇의 머릿속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의 메이 총리가 득세하는 어두운 현실의 시대상황과 연결된다. 사실 오바마 시대로 맞춰졌던 시즌 2까지의 시간대를 생각하면 거의 같은 시점에서 트럼프, 메이가 등장하는 게 이상하기도 한데 지금 시청자들에게는 울림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엘리엇은 시대의 어둠, 선동 정치, 공룡 기업의 횡포를 반추하다가 남탓을 할 게 아니고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있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구글급의 회사로 보이는 이 코포레이션에 대한 공격이 이 드라마의 대부분이었음을 생각하면 어느 한 개인(물론 그는 악마같은 초대형 기업을 무너뜨릴 힘이 있었지만)에게 책임이 있다는 진단은 어떤 철학을 담은 것일까? 마치 성공과 실패는 모두 네 책임이라는 현 시대의 윤리와 동일시될 우려가 있지는 않을까. 미리 몇 개 에피소드를 본 평론가들이 모두 시즌3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한 걸 보면 그런 윤리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매우 우려되는 시작이긴 하다.
시즌 3는 타이렐이 쏜 총을 맞고 쓰러진 엘리엇으로부터 시작한다. 엘리엇이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어빙이라는 이름이다. 그는 아마도 이 드라마의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화이트로즈의 명령을 받고 일하는 듯 했다. 덕분에 엘리엇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깨어난 엘리엇은 친구 안젤라와 동생 달린을 만난다. 달린을 만나서는 '스테이즈 2'를 멈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데 깨어나서 한동안은 미스터 로봇이 나타나지 않아서, 아버지의 망령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시 안젤라를 만난 후 드러나듯 미스터 로봇은 건재했다. 미스터 로봇은 엘리엇의 조치에 분개했다.
1편의 대부분 시간 동안 대규모 정전이 이어져서 밤은 어둠이 지배한다. 정전 자체가 스테이지 2는 아닌 듯 하고, 어떤 발전소에 나타난 화이트로즈의 장면을 감안하면 다크 아미와 관련된 일은 맞는 것 같다. 전기가 사라진 어둠의 시간은 엘리엇의 머릿속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의 메이 총리가 득세하는 어두운 현실의 시대상황과 연결된다. 사실 오바마 시대로 맞춰졌던 시즌 2까지의 시간대를 생각하면 거의 같은 시점에서 트럼프, 메이가 등장하는 게 이상하기도 한데 지금 시청자들에게는 울림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엘리엇은 시대의 어둠, 선동 정치, 공룡 기업의 횡포를 반추하다가 남탓을 할 게 아니고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있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구글급의 회사로 보이는 이 코포레이션에 대한 공격이 이 드라마의 대부분이었음을 생각하면 어느 한 개인(물론 그는 악마같은 초대형 기업을 무너뜨릴 힘이 있었지만)에게 책임이 있다는 진단은 어떤 철학을 담은 것일까? 마치 성공과 실패는 모두 네 책임이라는 현 시대의 윤리와 동일시될 우려가 있지는 않을까. 미리 몇 개 에피소드를 본 평론가들이 모두 시즌3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한 걸 보면 그런 윤리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매우 우려되는 시작이긴 하다.
2017년 9월 13일 수요일
트윈 픽스 : 더 리턴 종료 후 생각 1
꿈만 같이 시리즈가 다시 시작되고 꿈처럼 끝나버린지 거의 열흘이 되어가고 있다. 시즌 종료 후에 혼란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았고, 어떤 이들은 이게 원래 린치 스타일이니 깔끔한 설명과 종료를 바랐다면 그야말로 착각이라는 말도 한다. 언제까지나 논란이 이어질 이번 트윈 픽스를 되새기는 글들을 몇 개는 쓰지 않을까 싶은데 우선 즉각적인 것들 몇 개만 적어본다.
'트윈 픽스 시즌3'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리뷰 글들을 써왔는데 미국 매체들의 리뷰들에서는 시즌3가 아니라 그냥 '더 리턴'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통상적인 드라마 시즌이 1년 혹은 2년 내에 다음 시즌이 방영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27년만에 돌아온 드라마를 시즌3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다. 실제로 트윈 픽스를 방영한 미국의 쇼타임은 시즌3라고 부르지 않는다. 쇼타임이 시즌1, 2도 재방영했던 걸 생각한다면 이번 트윈 픽스는 편의상 시즌3라고 부를 수 있지만 정식 명칭은 '트윈 픽스 : 더 리턴'이 맞는 것이었다.
'더 리턴'이라는 말은 시즌4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즌3가 없었는데 시즌4가 있을 수 없다. 다음 트윈 픽스가 TV 시리즈로 방영된다면 '더 리턴'과 유사한 식의 부제가 붙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70대인 감독의 나이와 출연 배우들이 계속 세상을 떠나는 상황에서 원작 시리즈의 등장 인물이 주축이 된(이미 '더 리턴'의 스토리에서는 중심에서 멀어졌던 바이고) 다음 시즌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카일 매클라클란은 한 번 더 한다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아마 다른 트윈 픽스를 바라는 것은 모두에게 그저 희망없는 희망 사항에 그칠 것이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이번의 '더 리턴'을 되돌아보면 린치와 프로스트는 이 시리즈를 영원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 것도 같다. 이번에 오드리 혼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그녀가 16편의 마지막 씬이 암시하는 것처럼 정신병원에 갖힌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고 해답은 없는 상태인데, 만약 '더 리턴'의 오드리 씬들이 거의 확실하게 오드리의 상상 속의 장면들이라면 팬들도 상상을 통해, 꿈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만의 트윈 픽스의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작가, 감독이 18편의 여행을 통해 원작 시리즈의 플롯마저 뒤엎어버린 것은 트윈 픽스의 저주에서 벗어나서 다른 대안을 찾아보라는 제안은 아니었을까? 트윈 픽스 이야기를 원한다면 당신들 마음대로 만들어보라, 그러나 영원한 저주의 이 세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가? 세상엔 TV 드라마보다 더 좋은 것이 많다, get a real life!
어젯밤인가 문득 든 생각은 데이빗 린치의 극중 직함에 대한 것이다. '더 리턴'에서 고든 콜은 FBI의 부국장이다. deputy director인데 director는 영화 감독이다. 린치는 극 속에서 부국장이라는 캐릭터의 직함과 감독이라는 현실의 직함을 중첩되게 이용하고 있다. 그는 모니카 벨루치라는 현실의 배우를 꿈 속에서 만났다. 고든 콜이 모니카 벨루치 꿈을 꿀 수 있을까? 우리는 모니카 벨루치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더 리턴'은 TV 쇼의 세계, 현실과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고든 콜이 모니카 벨루치를 꿈 속에서 만난 것은 현실과 가공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행위다. 그런데 가공의 인물이 꿈을 꾼다면 가공의 가공으로 더 깊숙한 비현실의 세계로 가는데 그곳에 현실의 인물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블루 로즈에 대해서도 짧게 생각나는 바를 적어본다. 블루 로즈 케이스는 로이스 더피라는 여성과 그녀의 털파가 얽힌 사건이다. 털파 로이스 더피는 죽어가며 '나는 블루 로즈 같다'라고 말하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루 로즈가 무엇인가? 파란 장미라는 것은 왠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꽃일 것 같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실제로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꽃이다. 그렇다면 털파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완벽한 비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드하우스에서 공연된 곡에 대해 말해보기로 한다. 로드하우스 공연곡들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내가 노래가 좋았냐 여부보다는 노래 가사가 이 시리즈에서 갖는 의미가 더 중요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래 가사들은 시리즈 혹은 각 에피소드의 이야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걸 하나하나 분석하는 사람이 이미 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요즘 많이 듣는 크로마틱스의 섀도우의 가사 중에는 사진을 떼어낸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17편에서 새라가 로라의 사진을 내려놓고 마구 쳤던 그 장면이 예견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노래는 재작년에 만들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더 리턴'의 방영에 맞춰 공개되었다고 한다.
'트윈 픽스 시즌3'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리뷰 글들을 써왔는데 미국 매체들의 리뷰들에서는 시즌3가 아니라 그냥 '더 리턴'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통상적인 드라마 시즌이 1년 혹은 2년 내에 다음 시즌이 방영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27년만에 돌아온 드라마를 시즌3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다. 실제로 트윈 픽스를 방영한 미국의 쇼타임은 시즌3라고 부르지 않는다. 쇼타임이 시즌1, 2도 재방영했던 걸 생각한다면 이번 트윈 픽스는 편의상 시즌3라고 부를 수 있지만 정식 명칭은 '트윈 픽스 : 더 리턴'이 맞는 것이었다.
'더 리턴'이라는 말은 시즌4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즌3가 없었는데 시즌4가 있을 수 없다. 다음 트윈 픽스가 TV 시리즈로 방영된다면 '더 리턴'과 유사한 식의 부제가 붙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70대인 감독의 나이와 출연 배우들이 계속 세상을 떠나는 상황에서 원작 시리즈의 등장 인물이 주축이 된(이미 '더 리턴'의 스토리에서는 중심에서 멀어졌던 바이고) 다음 시즌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카일 매클라클란은 한 번 더 한다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아마 다른 트윈 픽스를 바라는 것은 모두에게 그저 희망없는 희망 사항에 그칠 것이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이번의 '더 리턴'을 되돌아보면 린치와 프로스트는 이 시리즈를 영원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 것도 같다. 이번에 오드리 혼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그녀가 16편의 마지막 씬이 암시하는 것처럼 정신병원에 갖힌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고 해답은 없는 상태인데, 만약 '더 리턴'의 오드리 씬들이 거의 확실하게 오드리의 상상 속의 장면들이라면 팬들도 상상을 통해, 꿈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만의 트윈 픽스의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작가, 감독이 18편의 여행을 통해 원작 시리즈의 플롯마저 뒤엎어버린 것은 트윈 픽스의 저주에서 벗어나서 다른 대안을 찾아보라는 제안은 아니었을까? 트윈 픽스 이야기를 원한다면 당신들 마음대로 만들어보라, 그러나 영원한 저주의 이 세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가? 세상엔 TV 드라마보다 더 좋은 것이 많다, get a real life!
어젯밤인가 문득 든 생각은 데이빗 린치의 극중 직함에 대한 것이다. '더 리턴'에서 고든 콜은 FBI의 부국장이다. deputy director인데 director는 영화 감독이다. 린치는 극 속에서 부국장이라는 캐릭터의 직함과 감독이라는 현실의 직함을 중첩되게 이용하고 있다. 그는 모니카 벨루치라는 현실의 배우를 꿈 속에서 만났다. 고든 콜이 모니카 벨루치 꿈을 꿀 수 있을까? 우리는 모니카 벨루치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더 리턴'은 TV 쇼의 세계, 현실과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고든 콜이 모니카 벨루치를 꿈 속에서 만난 것은 현실과 가공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행위다. 그런데 가공의 인물이 꿈을 꾼다면 가공의 가공으로 더 깊숙한 비현실의 세계로 가는데 그곳에 현실의 인물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블루 로즈에 대해서도 짧게 생각나는 바를 적어본다. 블루 로즈 케이스는 로이스 더피라는 여성과 그녀의 털파가 얽힌 사건이다. 털파 로이스 더피는 죽어가며 '나는 블루 로즈 같다'라고 말하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루 로즈가 무엇인가? 파란 장미라는 것은 왠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꽃일 것 같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실제로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꽃이다. 그렇다면 털파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완벽한 비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드하우스에서 공연된 곡에 대해 말해보기로 한다. 로드하우스 공연곡들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내가 노래가 좋았냐 여부보다는 노래 가사가 이 시리즈에서 갖는 의미가 더 중요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래 가사들은 시리즈 혹은 각 에피소드의 이야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걸 하나하나 분석하는 사람이 이미 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요즘 많이 듣는 크로마틱스의 섀도우의 가사 중에는 사진을 떼어낸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17편에서 새라가 로라의 사진을 내려놓고 마구 쳤던 그 장면이 예견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노래는 재작년에 만들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더 리턴'의 방영에 맞춰 공개되었다고 한다.
2017년 9월 4일 월요일
트윈 픽스 시즌3 피날레 해외 리뷰들
아직 주요 리뷰어들이 장문의 제대로 된 리뷰를 써낼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쇼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정확히는 몇 시간 전까지) 나온 미국 언론들의 리뷰들을 보고 알게 되었거나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피날레 에피소드의 줄거리는 대체로 동의가 되는 것 같다. 쿠퍼가 과거로 돌아가 로라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냈고, 그리하여 무언가 세상이 바뀌는 듯 했지만 새라는 여전히 울고 있고, 캐리는 자기가 로라인지 모르며, 새라의 집에서는 새라를 모르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이것이 과거인지 미래인지 혹은 평행 우주인지 알 수 없다. 쿠퍼는 로라를 구하려고 했지만 계속 실패하는 것 같고, 그럼에도 쿠퍼는 여전히 그 시도를 그만두지 못 한다는 것이다.
리뷰에서 알게 된 것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쿠퍼가 캐리를 데려간 로라의 집, 혹은 새라의 집에서 나온 여주인의 이름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녀의 성 트리먼드와 그 전 주인으로 알려진 찰폰트라는 이름 모두가 블랙 로지에 사는 존재들이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트윈 픽스의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 같기도 하지만 사악한 존재들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로라를 구출하려고 해도 달라진 건 없다는 의미인가? 여담으로 앨리스 트리먼드라는 이름으로부터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린 리뷰어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언급할만한 것은 쿠퍼의 변화다. 쿠퍼가 다이앤과 함께 다른 차원, 혹은 세계로 넘어간 이후 이전의 쾌활한 쿠퍼가 아니라 미스터 씨의 면모가 반쯤 섞였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아까 리뷰에서 정사 장면을 언급하긴 했는데 이 때 쿠퍼의 자세가 뻣뻣하긴 했다. 카우보이에게 총을 쏜 장면이나 끓는 기름 속에 권총을 넣는 장면도 미스터 씨를 연상시킨다.
쿠퍼만 변한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도 변했다. 쿠퍼와 다이앤이 들어간 모텔과 그들이 타던 차가 모두 다르게 변한 것이다. 아까 볼 때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리뷰에 적지는 못 했던 내용이다.
다이앤의 외모의 변화를 지적한 것도 흥미롭다. 다이앤은 빨간 머리가 되었고, 손톱을 흰 색, 검은 색으로 번갈아서 칠했다. 이를 보고 두 명의 리뷰어들이 블랙 로지, 빨간 방을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빨간 머리를 두고는 나도 그런 생각이 떠오르긴 했는데 바닥의 흑백 문양과 손톱 색도 분명히 연결지을 수 있다.
이번 시즌3가 린치 감독의 전작들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은 꾸준했는데 특히 이번 두 편을 두고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로스트 하이웨이를 노골적으로 연상시킨다는 분석이 여럿 나온다. 전기를 통해 다른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모티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어둠 속을 헤쳐나가려는 시도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사실로서 더 적어볼 부분으로 마이크의 팔이라 주장하는 나무에 대한 것이 있다. 이 나무는 전에는 "팔의 진화"라고 자기를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팔"이라고 말했고, "저기에 살던 어린 소녀의 이야기인가?"라는 대사를 했는데 이는 오드리의 대사였다. 오드리가 언급은 안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그녀를 떠올릴 말이 하나 나오긴 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디's 식당에 있던 웨이트리스는 다름 아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딸이라고 한다. 서부극 영화에 많이 출연했고 나중에는 서부극을 비틀었던 클린트의 딸이 카우보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니 무언가 역설적이랄까 아니면 너무 당연하달까.
마지막에 쿠퍼와 캐리가 트윈 픽스에 왔을 때 더블R은 시즌3에서 계속 보던 리모델링한 RR to go가 아니었다고 한다. 확실히 그랬다.
네이도의 이름을 통해 그녀가 다이앤이라는 걸 먼저 파악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내용도 한 리뷰에서 소개되었다. Naido를 거꾸로 하면 O-Dian이고 이는 Original Diane의 약자라는 것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매우 그럴 듯하다.
이전 리뷰에서 정정할 부분으로 우선 "우리는 꿈 속에서 산다"라고 말한 것은 파이어맨이 아니라 쿠퍼였다. 한 리뷰어가 쿠퍼라고 하길래 설마했는데 확인해보니 화면에 배경으로 깔린 희미하고 거대한 쿠퍼의 입이 그 말을 하고 있는 걸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두번 째로 고칠 것은 오데사가 워싱턴 주가 아니라 텍사스 주의 오데사라고 한다. 모두가 텍사스의 오데사라고 하니 내가 잘못 봤다고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도 상으로 워싱턴과 텍사스는 1000마일이 넘는 걸로 나와서 430마일과 매치하기가 어려운데, 물론 같은 주 내의 오데사라면 너무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자동차로 하루 꼬박 운전하면 텍사스에서 워싱턴으로 갈 수 있다고 하닌 그런가보다 한다.
피날레 에피소드의 줄거리는 대체로 동의가 되는 것 같다. 쿠퍼가 과거로 돌아가 로라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냈고, 그리하여 무언가 세상이 바뀌는 듯 했지만 새라는 여전히 울고 있고, 캐리는 자기가 로라인지 모르며, 새라의 집에서는 새라를 모르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이것이 과거인지 미래인지 혹은 평행 우주인지 알 수 없다. 쿠퍼는 로라를 구하려고 했지만 계속 실패하는 것 같고, 그럼에도 쿠퍼는 여전히 그 시도를 그만두지 못 한다는 것이다.
리뷰에서 알게 된 것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쿠퍼가 캐리를 데려간 로라의 집, 혹은 새라의 집에서 나온 여주인의 이름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녀의 성 트리먼드와 그 전 주인으로 알려진 찰폰트라는 이름 모두가 블랙 로지에 사는 존재들이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트윈 픽스의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 같기도 하지만 사악한 존재들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로라를 구출하려고 해도 달라진 건 없다는 의미인가? 여담으로 앨리스 트리먼드라는 이름으로부터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린 리뷰어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언급할만한 것은 쿠퍼의 변화다. 쿠퍼가 다이앤과 함께 다른 차원, 혹은 세계로 넘어간 이후 이전의 쾌활한 쿠퍼가 아니라 미스터 씨의 면모가 반쯤 섞였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아까 리뷰에서 정사 장면을 언급하긴 했는데 이 때 쿠퍼의 자세가 뻣뻣하긴 했다. 카우보이에게 총을 쏜 장면이나 끓는 기름 속에 권총을 넣는 장면도 미스터 씨를 연상시킨다.
쿠퍼만 변한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도 변했다. 쿠퍼와 다이앤이 들어간 모텔과 그들이 타던 차가 모두 다르게 변한 것이다. 아까 볼 때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리뷰에 적지는 못 했던 내용이다.
다이앤의 외모의 변화를 지적한 것도 흥미롭다. 다이앤은 빨간 머리가 되었고, 손톱을 흰 색, 검은 색으로 번갈아서 칠했다. 이를 보고 두 명의 리뷰어들이 블랙 로지, 빨간 방을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빨간 머리를 두고는 나도 그런 생각이 떠오르긴 했는데 바닥의 흑백 문양과 손톱 색도 분명히 연결지을 수 있다.
이번 시즌3가 린치 감독의 전작들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은 꾸준했는데 특히 이번 두 편을 두고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로스트 하이웨이를 노골적으로 연상시킨다는 분석이 여럿 나온다. 전기를 통해 다른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모티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어둠 속을 헤쳐나가려는 시도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사실로서 더 적어볼 부분으로 마이크의 팔이라 주장하는 나무에 대한 것이 있다. 이 나무는 전에는 "팔의 진화"라고 자기를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팔"이라고 말했고, "저기에 살던 어린 소녀의 이야기인가?"라는 대사를 했는데 이는 오드리의 대사였다. 오드리가 언급은 안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그녀를 떠올릴 말이 하나 나오긴 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디's 식당에 있던 웨이트리스는 다름 아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딸이라고 한다. 서부극 영화에 많이 출연했고 나중에는 서부극을 비틀었던 클린트의 딸이 카우보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니 무언가 역설적이랄까 아니면 너무 당연하달까.
마지막에 쿠퍼와 캐리가 트윈 픽스에 왔을 때 더블R은 시즌3에서 계속 보던 리모델링한 RR to go가 아니었다고 한다. 확실히 그랬다.
네이도의 이름을 통해 그녀가 다이앤이라는 걸 먼저 파악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내용도 한 리뷰에서 소개되었다. Naido를 거꾸로 하면 O-Dian이고 이는 Original Diane의 약자라는 것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매우 그럴 듯하다.
이전 리뷰에서 정정할 부분으로 우선 "우리는 꿈 속에서 산다"라고 말한 것은 파이어맨이 아니라 쿠퍼였다. 한 리뷰어가 쿠퍼라고 하길래 설마했는데 확인해보니 화면에 배경으로 깔린 희미하고 거대한 쿠퍼의 입이 그 말을 하고 있는 걸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두번 째로 고칠 것은 오데사가 워싱턴 주가 아니라 텍사스 주의 오데사라고 한다. 모두가 텍사스의 오데사라고 하니 내가 잘못 봤다고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도 상으로 워싱턴과 텍사스는 1000마일이 넘는 걸로 나와서 430마일과 매치하기가 어려운데, 물론 같은 주 내의 오데사라면 너무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자동차로 하루 꼬박 운전하면 텍사스에서 워싱턴으로 갈 수 있다고 하닌 그런가보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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