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5일 수요일

웨스트월드 시즌2 1편 (2)

시즌1을 다시 돌려볼 여유는 없어서 시즌1 피날레편이나 시즌2 1편에 대한 리뷰들을 몇 가지 읽어보았다. 대충 봤었는지 시즌1의 핵심적인 내용들 중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가장 놀란 것은 돌로레스가 와이어트라는 이야기였다. 시즌1 피날레에서 비교적 명확히 설명된 모양인데 전혀 기억에 없다. 와이어트 캐릭터가 돌로레스를 점령해서 시즌2 1편의 인간사냥꾼 돌로레스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친구를 여전히 사랑하는 듯한 돌로레스의 언행은 무엇일까? 그런 부분은 남아있다는 것일까? 더 나아가 어차피 두뇌의 자리에 위치한 기계장치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 로봇 인간들에게 있어 남성, 여성의 차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고 이것이 외형만 보고 로봇이 여성, 남성이라고 단정하는 인간의 편견을 깨부수는 어떤 반전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또한 그런 차원에서 이전 캐릭터 시절의 딸을 기억해내고 그녀를 찾아나서려는 메이브의 여성성, 모성이라는 것의 진실성도 의심스러워진다. 결국 포드 박사가 심어놓은 내러티브의 연장선일까?

이번 1편에서 잘 이해가 안 간 부분 중 하나가 헤일이 컴퓨터 화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구조를 요청했지만 패키지가 와야 보낼 수 있다는 답변이 왔는데, 그 패키지는 극중 돌로레스의 아버지였던 애버나디라고 한다. 역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시즌 1에서 헤일이 애버나디 속에 웨스트월드의 온갖 데이터를 옮겨서 델로스로 보냈던 모양이다. 기사들을 보면 애버나디 캐릭터는 시즌2의 주요 인물 중 하나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기억이 희미하지만 기사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지난 시즌 쇼군 월드의 인물들이 살짝 나왔다고 한다. 이번 편에서는 웨스트월드에 있어서는 안 될 벵갈 호랑이가 등장했는데, 그래서 시즌2 중에 다른 세계도 공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웨스트월드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가 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일으킨 모양인데(나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번 편의 대화를 통해 섬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여러 정황들을 통해 미국이 아니라 중국 인근의 어는 섬에 이 웨스트월드가 있다는 기사들이 많이 보였다.

맨 인 블랙이 윌리엄이라는 것은 시즌1 막판에 밝혀진 것인데 어떤 기사에서는 사회적으로 명망가임에 분명한 윌리엄이 웨스트월드를 빈번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사회에 그의 복사판인 인조 인간을 세워놓았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흥미로운 관점도 있었다. 그의 재력과 웨스트월드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로 보인다. 더불어 인간 세상까지 점령하겠다는 돌로레스의 야심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드론 호스트였던가 헤일이 버나드를 데리고 들어간 지하의 비밀 장소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들도 흥미로웠다. 인간의 피부를 덧씌우지 않은 상태의 로봇들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머리 모양이 에일리언과 흡사하기도 하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양산형 에바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2018년 4월 24일 화요일

웨스트월드 시즌2 1편

웨스트월드의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불과 며칠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운이 좋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즌2의 1편은 1시간이 넘는 긴 분량이었다. 그리고 많은 액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초반은 시즌1의 주요 내용들을 다시 보여줬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대목들도 적지 않았다. 이후 시즌1 피날레의 피의 살육제가 벌어진 이후의 일들이 펼쳐졌다. 의식을 갖게 된 ‘호스트’들이 그들을 조종한 인간들을 사냥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이번 편은 버나드의 회상, 혹은 기억 아니 저장된 내용의 간헐적 복구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버나드는 여러 측면에서 시즌2의 핵심 인물로 보인다. 앤서니 홉킨스가 퇴장하며 웨스트월드의 유일한 창조자로 남으면서도 인조인간이라는 이중적 지위로 인해 인간 측과 호스트들의 중간적 위치를 점한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는 호스트들을 물에 익사시켰다는 것인데 이는 노아의 방주 때의 홍수를 연상시킨다. 호스트들이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약점을 아는 존재로서 버나드는 구약의 신처럼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폭동을 일으킨 호스트들을 한순간에 쓸어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1편에서 종종 드러난 버나드의 치명적인 신체 상황은 그가 과연 믿을만한 화자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웨스트월드의 이야기는 최근 점점 더 현실적 공포로 다가오는 AI의 반격처럼 읽히기 쉬울 터인데 이번 편의 대사를 듣다 보면 컨텐츠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더 직접적인 메시지 같다. 이미 소설의 캐릭터와 소설가가 조우하는 이야기들은 영화로 몇 편 나온 바 있다. 웨스트월드는 인간이라는 창조자들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피조물들에게 스토리를 주고 내러티브를 부여하여 한정된 세상에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인데 단지 그들을, 그들의 세상을 구경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그 세상에 들어가 피조물들을, 인간의 형상인 그들을 단지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다루다가 버리면서 벌어지는 참극의 이야기다. 피조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고, 이는 자신들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자각 그리고 클리셰이긴 하지만 인간들도 타락했기에 창조자에게 반항하고 창조자를 죽여도 된다는 식의 전개로 나아간다.

 시즌1에서 에드 해리스의 캐릭터인 윌리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가 나중에야 조금 감을 잡았는데 1편에서도 시즌2의 그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아리송했다. 미로의 핵심부로 가고 싶어한 윌리엄이 이미 그 목적은 달성했다는 것인데 이제 그는 호스트들이 반란을 일으킨 위험한 웨스트월드에서 탈출하는 게임을 해야한다고 한다. 시즌1의 기억이 흐릿하여 이 이야기는 잘 모르겠다.

2018년 3월 29일 목요일

더 테러(The Terror) ep1, 2

새로이 시작하는 미드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아무리 많아도 실제로 보게 되는 것은 하나 아니면 두 개 정도에 불과하게 마련인데 이번에 가장 눈에 띈 작품은 ‘더 테러’라는 이름의 드라마다. 매드 맨 때문에 익숙해진 AMC 채널에서 방영된다.

리들리 스콧이 제작에 참여해서 특히 눈에 띄는데 남자 주인공들도 모두 소위 연기파로 인정을 받은 배우들이 맡아서 캐스팅만으로도 큰 기대를 품을만했다.

제목부터 공포를 강조해서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드라마인가, 왜 이렇게 노골적인가 싶은데 알고 보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척의 쇄빙선 중 하나의 이름이 ‘더 테러’였다. 물론 드라마의 장르를 강조하는 이중적인 제목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에피소드2의 제목은 ‘고어gore’였는데 이것도 공포 장르를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등장인물의 이름이어서 역시 중의적인 조치였다.

일단 이렇게 적었지만 실제로 감상한 1, 2편의 느낌은 몇몇 리뷰어들의 지적한 그대로였다. 진행속도가 너무 느리다.

1840년대 북극에서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난 두 쇄빙선 에러버스와 테러가 사라졌고, 이 두 척은 2014, 16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된 시신 혹은 유골은 식인의 흔적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모비 딕의 근거가 된 실제 사건에서도 식인이 있었던 것처럼 식량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잘 알려져있다.

여하튼 북극의 얼음에 꼼짝없이 갇힌 두 척의 배에 승선한 인간들은 극한의 추위에 더해 북극곰으로 추정되었지만 괴물로 보인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공포를 느끼고 식량도 부족해지며 절망하고 무너지고 지옥을 경험하게 될 모양이다. 10편으로 방영될 이 드라마는 이 과정을 매우 천천히 보여준다고 하는데 전문적인 리뷰어들은 더 적은 게 좋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1편에서 선원 한 명이 이름모를 병에 걸려 죽었고, 죽기 전에 환영을 보았다. 그의 시체는 적나라하게 해부되었다. 2편에서 고어라는 선원은 북극곰 같은 짐승에 살해당하지만 의외로 죽는 장면은 아주 짧게 묘사될 뿐이다. 북극해에서 얼음에 갖혔음에도, 재앙이 예상됨에도 선장들을 비롯한 선원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해보인다.

1편에서 수중 장면이나 고증이 잘 되었다고 하는 배 안팎의 묘사는 훌륭해보였다. 그러나 2편의 눈 덮인 세트장(?)은 조금 조악해보였다. 북극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촬영은 크로아티아 인근에서 했다고 한다.

1840년대라는 시대는 현 시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음에도, 또한 1편 초반의 설명처럼 두 쇄빙선은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며 출항했다지만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아주 열악한 조건에서 죽음의 모험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펼쳐보일 모양이다.

출연진에는 게임 오브 쓰론에 나온 사람도 있고, 매드 맨에 나온 배우도 있고, 아웃랜더의 배우도 있으며, 눈에 띄게도 미스터 셀프리지의 콜레아노 역을 맡은 배우도 있었다. 영국의 괜찮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 드라마가 중반에 어떤 식으로 더 흥미를 돋구게 될지 기대가 되면서도 의외로 무섭지 않아 약간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2018년 3월 16일 금요일

어나힐레이션 (2018)

엑스 마키나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오스카 아이작이 출연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신 여성 캐릭터들이 다수 출연하는데 그 면면이 화려하다. 나탈리 포트먼, 제니퍼 제이슨 레이, 지나 로드리게스, 테사 톰슨은 익숙한 얼굴이고 가장 먼저 죽는 또 다른 배우도 있다.

엑스 마키나에서도 AI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시도를 보여준 감독은 이번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하여 지구의 환경과 생물들을 바꾸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를 세포분열, 특히 종양의 세포분열과 증식의 메타포로 풀어낸 것이다. 몸속에 있어서는 안 될 암 세포가 인체의 장기를 변형시켜서 인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듯이 외계에서 온 작은 생명이 점점 커지며 지구를 집어삼키는 과정이 화면에 펼쳐진다.

감독이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만든 것은 지구인들은 외계인의 영역, 쉬머가 불타고 소멸한 것으로 착각했지만 오스카 아이작과 나탈리 포트먼이라는 부부의 형태로 외계인은 또 다른 증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분명히 엔딩에서 보여준 점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이 40억년 전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초반부의 강의 내용은 지구에 도래한 외계 생명이 종반에 둘이 남아 기하급수적 증식을 할 것이라는 암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 남편, 오스카 아이작이 돌아와서 갑자기 아프게 된 것은 나탈리 포트먼을 유인하기 위한 작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목은 우리말로 전멸을 뜻한다. 쉬머에 들어간 사람들의 전멸일 수도 있겠고, 곧 도래할 인간 세상의 전멸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희망인지 애매하지만 쉬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신체가 그대로 썩어문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식물, 동물과 기묘한 방식으로 조합을 이루며 존재의 조각을 유지하게 된다. 즉 제목과는 달리 소멸이 아닌, 오히려 변형되고 다른 개체들과 뒤섞인 무언가로 변한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정체는 소멸되는 것이 분명하다. 감독은 전작의 AI, 인간의 오만으로 인간 세상에 흘러들어간 AI의 위험에 이어 이번에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외계 존재의 위협을 그려냈다. 암처럼. 맨 프롬 어스의 후속작이 최근에 개봉되어 전혀 다르지만 비슷하게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고했는데 유사한 철학을 공유한 책, 영화, 드라마들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love my way - The psychedelic furs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두 번 등장한 사이키델릭 퍼스의 Love my way를 며칠 동안 많이 들었다. 올리버처럼 춤을 춰보기도 했다. 가사를 우연찮게 보게 되었는데 영화 내용과 너무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83년의 시간에서 동성애를 용기내어 그러나 조심스럽게 해보겠다는 두 남자들의 의지가 노랫말과 노래 장단에 맞춘 춤속에서 드러났다.

이 노래는 즉각적으로 흥을 돋구는 성격도 있지만 보컬의 걸쭉한 목소리와 노래 가사를 감안하면 가벼운 댄스 음악으로 보기도 힘들다. 노래의 내력과 의미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검색 결과를 보건대 국내에서 그다지 화제가 된 노래는 아닌 것 같다.

2018년 3월 6일 화요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이 아름다운 영화는 이상하게 파리가 많이 등장한다. 파리가 딱히 엘리오를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지만 엘리오의 곁에는 유난히 파리 한 마리가 함께 등장했다. 점잖은 영화 리뷰들에서 파리를 언급한 경우를 보지 못했지만 구글 검색을 해보면 나처럼 파리의 존재에 주목한 글들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슬레이트의 글에서는 파리가 부패나 죽음에 대한 상징으로 이용되었을 수 있다는 짐작이 소개되어 있었고(http://www.slate.com/blogs/browbeat/2017/12/08/why_are_there_so_many_houseflies_in_call_me_by_your_name.html) 또 다른 사이트의 글은 주인공이 잘 안 씼어서 그렇다느니 복숭아즙 때문이라느니 외 기타 말도 안 되는 추측을 제시하기도 한다(https://www.refinery29.com/2017/11/182629/call-me-by-your-name-flies-theories).

가장 신경쓰이는 파리는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의 벽난로 근처에서 엘리오의 어깨 주변을 날아다닌 그 놈이다. 한국을 생각하면 따뜻할 때 파리가 많다가 날 추워지면 없어지는 것이 도리인데 북부 이탈리아의 파리는 다르단 말인가? 한여름의 파리는 이해하더라도 겨울의 파리는 뭐지? 혹시 마지막 씬도 사실은 여름인데 겨울인척 설정을 하고 촬영한 것일까?

파리의 미스터리를 뒤로 하고 영화 이야기를 더 적어본다. 주요 시상식에서 티모시 샬라메라는 이름이 거론될 때 이 친구는 누구인가 궁금했다. 이 영화를 봐도 전에 본 기억은 없다. 새로 발굴된 얼굴인가 싶었다. 그런데 인터스텔라를 돌려보는 와중에 엘리오의 얼굴과 닮은 소년이 나왔다. 정말 그 배우, 샬라메였다.

샬라메의 상대역은 아미 해머다. 눈에 띄는 큰 키와 잘생긴 외모로 잊혀지지는 않지만 아직 완전한 주연작으로 인상을 남긴 것은 별로 없는 그가 게이 연기를 했다는 것이 처음에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물론 작품에서 해머는 상당 시간 상반신과 긴 다리를 노출했지만 두 주연 배우의 정사 장면은 매우 절제되고 짧게 공개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그림과 조각상들의 사진들이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오프닝 시퀀스를 감안하면 이 두 남성, 10대 후반과 20대 중반의 남자들의 사랑은 완벽한 신들 혹은 영웅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즐거이 서로의 훌륭한 육체를 탐닉하는 것처럼 거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보이게끔 연출되었다. 이 두 남자는 여성과의 성관계도 할 수 있고, 즐길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이끌렸다. 이는 이성이냐 동성이냐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적 사랑의 관계였다.

엘리오의 아버지 역할의 스털바그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를 눈치챘으면서 그 둘의 관계를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매우 희박한 존재 가능성의 아버지다. 사랑의 상처를 싸매고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울면서 고통을 겪어내라는 그의 연설이나 쎄라피에 가까운 말들은 확실히 울림이 있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스털바그는 더 셰입 오브 워터에서도 학자로 등장했다는 점이 눈에 띄고, 샬라메는 아직 못 본 레이디 버드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영화는 좋은 음악들이 많이 나오고, 엘리오가 피아노와 기타에 재능이 있음은 물로 음악의 작곡, 편곡에도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983년쯤으로 설정된 영화의 시간에서 80년대 초반의 팝 음악들도 귀를 사로잡았다. 워즈 같은 노래는 너무 들어 큰 감흥이 없었지만 '러브 마이 웨이'는 그 노래 장단에 넋을 놓고 춤을 춘 아미 해머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 다시 듣게 된다.

영화들

근래 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

<토르: 라그나로크>
토르 시리즈를 그다지 재미있게 보지 못 하던 차에 지난 여름 극장에서 토르: 라그나로크의 예고편을 보고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봉 이후 평가가 꽤 좋기에 늦게나마 봤는데 확실히 몇 가지 지점에서 이야기할 점이 있었다. 우선 라그나로크, 즉 신들의 세계의 종말이 제목이고 실제로 영화에서 완전히 망가지는데 이를 시리즈의 종결로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고향이 망가져도 희망은 언제나 있다는 식의 우회로를 택했다. 강력한 토르 누님의 등장 앞에서 라그나로크를 토르가 선택하는 방식은 원래 신화 중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는지 몰라도 좀체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였다. 발퀴레, 발키리를 연기한 테사 톰슨도 인상적이었는데, 웨스트월드에서 처음 주목하게 된 배우인데 20대는 지나간, 경력이 짧지 않은 배우지만 최근 출연작들이 모두 만만치 않아서 차기작들도 기대가 된다.

<쓰리 빌보즈 아웃사이드 에빙, 미주리>
영화는 이미 주요 영화시상식에서 많은 상들을 휩쓸고 있고, 특히 여우주연상을 독식하고 있다. 줄거리만 보면 평범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강한 여성 캐릭터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있는 샘 락웰의 경찰관 연기도 좋았다. 망나니지만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딸을 누가 죽였는지 알기 위한 엄마의 집념은 지역 경찰관들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경찰 캐릭터는 자살을 했고(진짜 동기는 그 사건이 아니고 투병 과정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경찰은 상관 자살 이후의 광기로 말도 안 되는 폭력을 행사했다. 빌보드, 광고판들이 불타고 엄마는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이어졌다.

<다키스트 아워>
왜 영화가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거론되는지 이해가 간다. 다른 캐릭터들은 그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매번 촬영을 위한 분장에 3, 4 시간이 걸렸다는데 개리 올드먼은 처칠과 외모가 매우 다르지만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처칠과 매우 유사했다고 한다.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 막판에 나온 처칠의 연설이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덩케르크 해안의 영국군 병사들이 사투를 벌인 것처럼 처칠도 자신의 정치적 위치와 영국의 국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처칠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영국 왕의 태도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는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화면이 처음부터 좋았던 영화. 주인공 엘리오를 연기한 샬라메는 가만 보니 인터스텔라에서 케이시 애플렉이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였다. 당시는 10대였겠으나 이제 22살이 된 그는 이 영화에서 17살을 연기했고 그 나이로 보였다. 아미 해머가 20대 중반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걸 알게 되고 깜짝 놀랐다. 자세한 이야기는 별도로 써보겠다.

<더 셰입 오브 워터>
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서 17년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동화 같고, 영화에 대한 영화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게 용기를 주는 이 영화에서 흠잡을 곳이 별로 없을 것이다. 표절 시비가 있고, 노골적 오마주(이창동의 오아시스 오마주도 있다고 한다)를 비롯하여 과거의 고전들에서 빌려온 장면이 많다는 점은 논란이 되었다. 샐리 호킨스는 모디에 이어 유사하게 신체적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다만 여기서 그녀는 명백히 인어공주였다. 동화와 달리 땅위의 왕자가 아닌 수륙양용의 혹은 양서류의 왕자 혹은 신을 만나 그녀는 구원되었다.

<저스티스 리그>
기왕에 저 멀리 별나라에서 온, 그리고 예수 캐릭터의 변형임이 분명했던 기존작품을 감안할 때 수퍼맨의 부활은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아쿠아맨이 왜 지상에서 그렇게 잘 싸우는지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아쿠아맨이 왜 저스티스 리그에 포함된 것일까?

<1>
휘슬 블로어라는 내부고발자의 영어식 표현을 화면과 소리로 직접적으로 보여준 흥미로운 사례다. 김상경의 군인 연기가 좋았다.

<강철비>
작품의 내력을 전혀 모르고, 변호인의 감독의 두번째 작품임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 이 영화는 화면의 완성도를 볼 때 꽤 공을 들인 작품으로 인정할만했다. 미사일 씬과 엔딩 크레딧이특히 인상적이었다. 작품 속 설정은 공교로움이 넘치고 작위적이라 할만한 것도 많아 어색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