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9일 화요일

심장약을 그만 먹게 된 딸

 태어나면서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심장을 위한 약을 먹던 딸 아이가 몇 달만에 서울대병원에 다녀왔는데 이제 약을 그만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왔다. 언제 그만 먹나했는데 거의 8년이 걸렸다. 다른 약은 여전히 먹고 있지만 기쁜 날이다.

2021년 1월 27일 수요일

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며칠 전 2월에 이와이 슌지 감독의 라스트 레터라는 영화가 개봉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영화 포스터의 여성 얼굴이 매력적이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와이 슌지가 이십 몇 년 전의 러브 레터에 이어 또 무슨 레터를 내놓는다니 흥미가 생겼다.

 좀 찾아보니 이와이 슌지는 2018년에 동명의 소설을 먼저 내놓았고, 같은 해 중국에서 동명의 영화(안녕, 지화라는 제목도 있다)를 개봉했고, 작년인 2020년에 일본에서도 같은 이름의 영화가 개봉되었다(제작이 2019년이라 2019로 표기되기도 한다). 중국 영화는 중국 배우들로, 일본 영화는 일본 배우들로 찍었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는 2018년의 중국 영화인 셈이다. 러브 레터와의 연관성은 일본판이 더 강한데 중국 버전이 먼저 한국에서 개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영화 라스트 레터는 러브 레터와의 연관성을 숨기지 않는다. 편지가 훨씬 많아졌고, 관계의 수가 많아졌지만 편지를 통한 사랑의 호소, 전달이라는 주제는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러브 레터의 두 주인공인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가 여기서도 커플로 나오는 점이 러브 레터 후속으로서 이 영화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보다 더 놀라운 캐스팅은 안노 히데아키다. 에반게리온을 만든 그 안노가 영화에 출연한 이유는 아마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매우 궁금해진다. 그는 마츠 다카코의 남편 역할이다. 만화가의 아내인 유리는 짝사랑했던 선배가 소설가가 되었으니, 소설가의 아내가 못 된 대신 만화가의 아내가 된 것일까? 혹은 러브 레터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이 영화(소설과 중국 영화로 이미 나온 걸 또 제작했으니)는 만화처럼 봐주세요라는 감독의 제안일까?

 마츠 다카코는 영화의 주연격인데 그녀는 이와이 슌지의 초기작 중 하나인 4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그 때도 남자 선배를 짝사랑했던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고, 그녀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어서(도서관은 회상씬에서도 나온다) 러브 레터와의 또 하나의 연결점이다. 

 또한 마츠 다카코의 캐릭터 유리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배우는 모리 나나(처음 본 배우다)인데, 그녀는 러브 레터에서 나카야마 미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의도적인 캐스팅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에서 이상한 장면 중 하나는 마츠 다카코가 언니 대신 동창회에 참석한 일이다. 그녀는 언니 대신 갔고, 분명 짝사랑했던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지 그녀가 언니의 이름표를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동창들이 그녀를 언니로 대해준다. 오직 그 남자 선배만이 그녀가 동생임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몰라보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영화의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글도 보았는데, 마츠 다카코가 얼핏 말하듯이 졸업한지 한참 지난 후의 만남이기에 노화가 심한 사람도 있고, 특히 여성들은 성형 수술로 얼굴이 변하기도 했을 것이다. 다들 변한 얼굴을 당연히 받아들이기에, 더구나 자매니 비슷한 면이 있기도 했겠고(영화상으로는 두 인물의 얼굴은 달라보였지만) 납득은 된다. 오히려 이름표만으로 누군가를 인정해버린 무관심이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히로세 스즈는 여전히 빛나는 외모를 자랑했다. 이제는 20대가 된 그녀지만 여기서는 10대 그리고 영정 사진 속의 2, 30대 외모를 선보인다. 어린 시절 연기로는 출연 분량이 적어서일까 유리 캐릭터가 더 부각되었고, 현재 시점 아유미 역할로서의 히로세 스즈도 무언가 많이 보여줄 시간은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던 정도의 느낌이다. 영화 전체가 광고 영상 같은 느낌이 있어서 안타까운데, 히로세 스즈도 많은 장면에서 배우보다 모델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네이버 이북 카페의 분열

전자책, 이잉크(e-ink) 기기를 써본지 오래된 편이다. 아주 예전 대학생 시절(?)에 중고등학교 동기가 소니의 전자책 단말기(모델명은 모르겠다)를 당당히 자랑했을 때가 기억난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기업들의 전자책 단말기가 몇 가지 있었고, 삼성도 기기를 만들던 시절이다.

이후 국내기업 파피루스(?)에서 페이지원이라는 기기를 18만원인가의 가격으로 내놓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것이 내 전자책 리더 생활의 시작이었다. 페이지원은 여러모로 좋은 기기였지만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리며 전자책 기기도 안드로이드 기반 단말기의 시대로 전환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내가 네이버의 이북카페에 가입한 것도 페이지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나는 아이리버와 KT가 합작한 단말기를 두번째로 소유했고, 킨들 시리즈를 비롯해 한국epub의 크레마 시리즈, 중국의 오닉스 제품들, 소니의 dpt 시리즈 등도 사용해보았다. 나름 여러 기기를 사용해보았는데, 일단 이북 리더기를 써보면 여러 개를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써보게 마련이라 특이한 경우도 아니다.

이북카페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얻었다. 안드로이드 기기의 시대가 오며 루팅이라는 걸 해야했기에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카페에서 많은 글을 읽었지만 직접 글을 쓰는 일은 별로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 나는 글을 별로 안 쓴다.

그런데 얼마 전 최근 많이 들락거리는 커뮤니티에서 최신의 이잉크 액정의 스마트폰을 소개하는 글을 보았다. 전자기기들이 많이 소개되는 커뮤니티지만 이잉크 이용자들이 많아보이진 않는 곳이었다. 리뷰를 읽어보니 구미가 당기는 기기인지라 검색을 해보니 관련글이 많은 카페가 있었는데 네이버 이북카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름은 이북카페나 별로 차이가 없는, 들어가보니 같은 성격의 카페인 것이다. 또한 이북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이용자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은 무엇인가? 왜 이북카페라는 대표적인 이북 리더기 카페가 있는데 같은 걸 왜 만들었지? 여기 회원수는 왜 이렇게 많지? 등 온갖 궁금증이 생겼다. 카페가 생긴지는 이제 1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잠정적으로 알아낸 바로는 2018년 7월 12일을 기점으로 이북카페의 여러 이용자들이 탈퇴하여 새로이 카페를 만들었다. 그 자초지종은 이북카페에서 게시글 3개의 등업 조건을 채우고 판매글 혹은 홍보글만 올리고 사라지는 이용자들을 제재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졌고, 운영자는 날선 반응으로 대응했고, 이에 반발한 많은 회원들이 이동한 것이었다. 이북카페는 자주 가는 곳인데 그런 사건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새로운 카페의 존재를 1년 반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는 것에도 놀랐다.

이북카페의 운영자가 이 카페는 내 것이니 나갈 테면 나가라는 식의 글을 올린 모양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많은 정보글 작성으로 이북카페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작성글을 남김없이 삭제하여 자기 것에 대한 소유권을 표현했다.

현재로서는 2018년 7월 12일 언저리의 글이 많이 사라져 정확한 경과는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두 개의 이북 리더기 카페에 가입되어있다. 그렇다고 어디에서건 글을 자주 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카페 혹은 어떤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것이 아무리 잘 돌아가도 결국 주인은 정해져있고, 돈을 버는 건 그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된다.

2020년 1월 19일 일요일

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12 멍키스의 감독인 테리 길리엄의 최근작은 돈 키호테에 관한 영화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거의 시작점이면서 역대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테리 길리엄이 만들었다는 점 만으로도 엄청난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주연 배우는 최근 가장 핫한 남자 배우인 아담 드라이버와 역시 좋은 작품들에서 비중있는 연기를 펼치는 조나단 프라이스다. 그런 상황은 이 둘이 작년 말 넷플릭스의 전략적 아카데미 후보용 작품인 매리지 스토리, 더 투 포프스의 주연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살펴보지 않았지만 수상 소식을 들은 바도 없고, 사람들이 거론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미치광이 이야기로 치부되는 돈 키호테는 너무 오래된 식상한 이야기고, 테리 길리엄은 브라질을 만들었던 아주 오래된 감독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개봉 소식을 듣고는 현기증을 일으킬 이 작품을 막상 접하고는 몇 번이나 초반 몇 장면을 넘기지 못했던 걸 보면 이 영화에 존재하는 어떤 장벽이나 결함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드디어 어제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고, 결국 '망작'은 아니라는 결론은 얻을 수 있었다.

돈 키호테 이야기는 오래된 만큼이나 많이 변주되어 왔고, 철학자들의 사유를 자극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기사도 소설을 너무 읽어서 소설 이야기가 진실이며 자신은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라고 믿게 된 어느 스페인 사람이 기사도 여행을 떠나며 벌이는 여러 에피소드가 소설의 주를 이른다. 돈 키호테 1권의 성공에 힘입어 나오는 2권은 1권에서 모험을 펼친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돈 키호테를 다룬다는 점에서 푸코의 상상력을 키운바있다. 소설은 픽션, 허구라고 하지만 두 권에 걸친 돈 키호테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가 몇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조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영화로 만들자 이 층위는 다시 몇 배로 복잡해졌다.

영화의 초반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 키호테가 등장한다. 말 그대로 소설 책과 그 안의 문자들이 1차 텍스트로서 제시된다. 이어서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든 장면이 등장하고, 또 이어서 그 장면을 촬영하는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등장한다. 이미 세 가지 차원이 등장한 것인데, 근래 일본 영화로 화제를 일으킨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연상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극중 돈 키호테 영화의 감독인 토비(아담 드라이버)는 유명한 감독인데, 10년 전 첫 연출작으로 이미 돈 키호테 영화를 찍은 바 있다. 그 첫 작품의 제목이 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였다. 그는 새 돈 키호테 영화를 찍으러 스페인에 온 도중에 자신의 첫 작품의 DVD를 발견하고 다시 돌려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첫 작품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했고, 영화를 보며 그 속의 주인공들을 다시 찾게 된다. 10년 전 돈 키호테 영화라는 네 번째 차원이 등장한 것이다.

토비가 돈 키호테 역할을 했던 남성(조나단 프라이스)을 찾아가니 그는 여전히 자신을 극중 역할인 돈 키호테라고 믿고 있었다. 400년도 더 전에 탄생한 캐릭터가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미 조짐은 10년 전 촬영 장소에서 보였다. 토비는 원래 구두를 만들던 남자를 배우로 만드는 과정에서 연기 지도를 많이 했고, 그 남자는 연기 상황이 아닌 때에 칼을 휘드르며 돈 키호테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돈 키호테라고 10년 동안 주장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그의 광기를 이용하여 중개자로서 돈을 벌고 있었다.

토비와 재회한 자칭 '돈 키호테'는 즉각 토비를 산초 판사라고 규정했다. 토비는 보통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영화의 캐릭터가 자신을 또 다른 캐릭터로 규정한 이후 이 새로운 세계에 합류한다. 그는 환상을 체험하는데 무가치한 화폐를 스페인 제국 금화로 착각하고, 양이 자신의 얼굴을 핥는 것을 여성(안젤리카)의 키스로 오해하기도 했다. 안젤리카를 가짜로 화형시키는 장면을 중세 마녀 사냥처럼 보며 절규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황량한 그 마을의 세팅은 돈 키호테가 현대 문명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그의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방해했다. 물론 돈 키호테는 대도시를 보더라도 마법사의 장난이라고 가볍게 해석해낼 수는 있다.

이렇게 10년 전의 과거가 현재의 토비의 현실을 바꾼 것이 또 다른 차원이다. 그리고 원래 소설의 내용을 영화로 만든 테리 길리엄의 차원도 있다. 그는 이 복잡한 여러 겹의 이야기를 원작 소설의 핵심 장면들과 엮으려고도 노력했다. 그래서 그 유명한 풍차/거인에 대한 공격씬이 여러 돈 키호테들에 의해 연출되었고, 가짜 말을 타고 하늘로, 달로 날아가는 돈 키호테도 등장하고, 돈 키호테를 집으로, 제정신으로 돌려보내려는 이웃 지인들의 노력도 등장했다. 그가 영화 초반에 25년간 제작을 하다가 포기하다가 겨우 만들었다는 자막을 넣은 것도 이해할만하다. 지금 살펴보니 국내의 감상평은 대개 황당한 이야기라는 반응이고, 해외의 평도 60점대로 대중적인 평이 어중간하다.

영화 속 돈 키호테는 토비로 인해 사망하고, 이어서 토비는 자신이 또 다른 돈 키호테라고 자임하며 결론이 난다. 창조자가 핵심 캐릭터를 죽이고, 자신이 그 역을 취한다는 묘한 관계의 전환이 일어난다. 그는 감독에서 산초 판사로 격하되었다가, 돈 키호테로 변신한 것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산초가 생겼다. 겉보기로는 허구에 너무 탐닉하다가 탄생한 또 하나의 미치광이에 불과하지만 보스와 돈줄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반기를 들고 10년전 젊은 시절의 순수성으로 회귀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원작 소설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 소설이 모든 장면을 다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부분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인상깊은 장면은 토비가 안젤리카의 아버지 라울과 재회한 부분이다. 둘은 처음에 스페인어로 이야기하지만 토비가 화면 하단에 등장하는 자막을 손으로 치우면서 우리는 이런 게 필요없다며 이후 영어로 대화를 한다. 스페인의 시골 식당 주인인 라울이 영어를 할 일은 거의 없고, 토비가 스페인어를 할 수는 있지만 유창하지는 않아서 둘의 소통이 쉽지는 않지만 그런 '사실적인' 설정은 걷어치우고 내용/스토리에 집중하자는 선언처럼 보였다. 혹은 허구의 세계, 소설의 세계, 영화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한 창조자의 상황을 보여주고 이어지는 난관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2019년 12월 31일 화요일

마지막 날 짤막 리뷰들

Watchmen : 시간과 계란과 수퍼맨과 흑인 학살의 이야기. 훌륭한 구성이었지만 끝나고 나니 의외로 큰 여운은 없음.


The Witcher : 소설과 게임의 이야기의 넷플릭스 드라마화. 어느 원작도 경험하지 못 하고 본 이후의 느낌은 다른 이들처럼 시간관이 이상하다.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 존재.

For all mankind : Watchmen처럼 대안역사 이야기. 달에 소련이 더 먼저 착륙한다는 설정은 재미있으나, 이 대안역사 혹은 평행우주 스토리는 시간이 진척될수록 의미가 급격히 퇴락하는 느낌.

The Mandolarian : 디즈니의 OTT의 야심작. 존 파브로가 만들고, 유명 배우, 유명 감독이 에피소드 제작에 참여했지만 아기 요다야말로 핵심. 아기의 체구에 노안으로 유명한 요다를 아기로 만든 반전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음.

Wildlife : 폴 다노가 감독한 작품. 캐리 멀리건, 제이큰 질렌할의 좋은 조합.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삶이 wildfire를 핑계로 집 나간 남편 덕에 더 곤란해진 젊은 엄마의 고난.

Loving Vincent, At eternity's gate : 고흐가 근래에 훌륭한 두 편의 영화로 재조명된 이유가 궁금. 그리고 왜 그의 말년이 대상이 되었는가? 사실상 그에 대해 너무 몰랐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 잘 적응이 되지 않는 타란티노의 영화들인데 이 영화는 그나마 이해가 됨. 역시 대안적 현실에 대한 영화로 그가 그동안 그런 영화를 찍어왔다는 것도 잘 몰랐음. 

The Two Popes :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축구팬이라는 점으로 시작과 끝을 맺음. 교황마저, 전대 교황에 비해 찬사를 받는 현 교황마자 매우 어두운 과거가 있었음을, 그럼에도 그는 계속 속죄를 위해 행동했음을 보여줌.

Marriage story : 보기 전의 찬사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보면서 괴롭다가 결국 인생은 흘러간다는 결과에 씁쓸하며 무덤해짐. 

The Irishman : 스콜세지 감독이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를 긁어모아 만든 매우 긴 영화. 보면서는 반신반의했지만 평론가들의 설명을 듣고 납득. 존 케네디를 누가 죽였는지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알게 됨.


Ford v Ferrarri : 믿고 보는 두 주연배우가 출연했고 레이스 씬도 볼만했는데 거기까지인 듯. 포드 자동차가 레이싱에 참여하고 우승해서 포드의 매출이 늘어난 것인지? 이후 르망24의 우승팀들을 보니 절대 강자는 없다는 걸 보고 놀람.

Under the Silver Lake : It follows의 감독이 만든 문제작. 혹평이 대세인데 관대한 평도 아무리 좋게 봐줘도 각본은 문제라고. 과연 새로운 컬트 무비가 될까? 앤드루 가필드도 로버트 패틴슨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Watchmen ep8

8편이 방영됨으로써 이제 Watchmen은 1편만이 남았다. 원래는 한 시즌으로 끝날 예정이지만 린델로프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다음' 시즌도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커지는 중이다.

린델로프의 충신들은 그의 전작인 더 레프트오버스를 근래 가장 뛰어난 TV 드라마라고 칭송하는 바인데, 이번 Watchmen도 거의 그 정도에 위치시키고 있는 중이다. 레프트오버스는 소설 원작이 있고, 원작자가 각본에 참여한 반면 이번 Watchmen의 원작자 앨런 무어는 TV 드라마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차이는 있지만 린델로프는 괜찮은 원작을 자신의 해석을 버무려 작품으로 잘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원작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라 그가 보여야할 재주가 더 많았다.

이번 8편은 지난 7편까지 부재했던 신, 닥터 맨하튼이 등장한다. 과연 9편까지 나오기는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그는 8편에 등장했고 중심 캐릭터다. 1편 말미의 후속 에피소드에 대한 예고편에서 한 컷으로 닥터 맨하튼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등장하긴 했다. 하지만 닥터 맨하튼의 가면이 있을뿐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그인지는 불확실했다. 진짜라면 왜 닥터 맨하튼의 가면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의문은 곧 풀렸다. 베트남이 배경인 장면에서 이제 성인이고 베트남 경찰이 된 앤젤라 에이바는 바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데 누군가 길에 떨어진 닥터 맨하튼의 가면을 집어들어 쓰고 그녀에게 다가가 자기가 닥터 맨하튼이라 주장한다. 그는 진짜였고, 사람들이 자신을 따라하는, 코스프레라고 할만한 행위가 일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목을 끌기 실어 닥터 맨하튼 가면을 썼던 것이다. 더 황당하게도 그는 그녀와 이미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했고, 앞으로 있을 둘의 사사랑의 시작과 끝을 설명했다.

닥터 맨하튼은 마치 "어라이벌"의 헵타포드처럼 시간을 순차적인 것이 아닌, non-linear하게 경험하기에 연애의 시작과 끝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하고 성교도 하고 같이 10년을 살게 되지만 그 끝에 다다른 시점이야말로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순간이라고 고백한다. 보통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신과 같은 존재의 경험이니 존중하는 수밖에 달리 이해할 도리가 없다.

이번 편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자신의 능력을 타인에게 넘겨줄 수 있다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미 윌 리브스나 앤젤라 에이바 둘 중 하나가 닥터 맨하튼의 능력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상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계란, 와플, 수영장 물 등이 전달 매체다.

8편 말미에 텔레포트된 닥터 맨하튼이 9편에서 최후를 맞이하는지, 그렇다면 그 능력이 다른 캐릭터게 전달되는지, 아니면 최후가 아닌지 밝혀질 예정이다. 그리고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에서 고통당하는 에이드리안 바이트가 말발굽으로 탈옥에 성공해서, 지구에 돌아오는 것인지도(많이들 그렇게 예상한다), 또 돌아온다면 어떤 형태인지도 주목된다.

2019년 12월 5일 목요일

Watchmen 7화

몇 번을 Watchmen에 대해 글을 쓰다 멈추었다. 워낙 다룰 지점이 많아서 일단 시작하면 계획한 시간 내에 마무리를 지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어서다. 그래서 전체적인 이야기는 미루기로 하고 최근 에피소드만 다루는 방법을 시도한다.

지난 6편에서 후디드 저스티스의 정체가 윌 리브스였음이 드러나며 큰 충격을 안겼는데 이번 편은 화성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닥터 맨하탄이 실제로는 드라마의 주 무대인 오클라호마의 털사에 있음이 밝혀졌다. 애초에 왜 대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 털사에 세계 최고의 갑부가 이상한 건축물을 세우고, 경찰들이 세븐스 캐벌리에 의해 살해되는지가 문제시 되었다. 드라마의 크리에이터인 데미언 린델로프는 트윈 픽스 이후 많은 미국 드라마들이 그렇듯이 작은 도시의 비밀스러운 사건을 다루는 것인냥 말했지만 애초에 닥터 맨하탄이 털사에 있었기 때문에 중요했던 것이다.

닥터 맨하탄은 왜 털사로 왔는가. 이는 다음 8편에 더 밝혀진 예정이지만 이번 시리즈의 취지와 연결짓자면 털사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블랙 월 스트리트' 학살 사건 때문일 것이다. 이 사건은 윌이라는 꼬마 흑인을 수퍼맨의 운명을 지닌 '후디드 저스티스'로 변모시켰고, 후디드 저스티스는 복면 영웅들이 줄줄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윌이 후디드 저스티스가 된 실제 장소는 털사가 아니라 뉴욕이었지만, 그의 아내인 쥰은 아들을 데리고 털사로 돌아갔다.

이번 7편은 윌과 쥰의 손녀인 드라마의 주인공 앤젤라 아바의 베트남에서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룬다. 앤젤라의 아버지는 털사에서 자랐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는데, 이 세계관에서는 닥터 맨하탄에 의해 베트남이 미국의 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굳이 털사로 돌아오지 않고 베트남에 체류 중이었다. 그는 베트남에서 흑인 아내를 만났고 딸 앤젤라를 키웠다. 레이디 트리우가 베트남 출신인 것처럼 이 드라마는 베트남이 기왕에 미국의 일부가 된 이상 그 설정을 극대화하여 미국 최고의 부자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설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앤젤라의 어린 시절 베트남인들 중에는 닥터 맨하탄의 가공할 폭력과 그로 인한 굴욕적 항복에 분개하는, '민족주의자'라고 할 사람들, 미국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앤젤라의 부모가 모두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된다. 아직 영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베트남에서 흑인 고아가 되어 고아원에서 구박만 받는 앤젤라는 겨우겨우 할머니 쥰을 만나지만 심장이 좋지 않은 그녀는 앤젤라를 털사로 데려갈 택시 옆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린델로프는 최신 인터뷰에서 앤젤라를 가능한 가장 외롭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 6편에 이어 7편에서도 앤젤라는 윌의 노스탤지어 약을 복용하며 윌의 경험을 거의 직접적 체험인 것처럼 겪었고, 자신의 기억과 할아버지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미국 현대사의 치부인 베트남, 그리고 미국사 전체에 걸쳐 치부로 남은 인종 문제가 결합되어 드라마는 극적인 상상을 자극하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레이디 트리우가 성공한 것은 순전히 기술적 분야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녀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기에, 즉 그녀의 아버지가 에이드리안 바이트라는 설이 지배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녀의 성공이 아버지 덕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천재 백인의 딸이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면 전복적인 의미는 축소된다. 그러면서도 베트남전에서 고통받은 어머니라는 존재도 부각되었기에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비록 가상의 현실이지만 베트남이라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여전히 현재의 미국 안에 각인되어있다는 상징적 설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이가 이 드라마가 재미있지만 왜 인종 문제에만 집착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원작은 권력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뤘는데 왜 린델로프는 명백하게 선악이 갈리는 인종 문제에 초점을 맞추냐는 주장이다. 나도 원작을 읽지는 않았지만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많은 등장인물들이 피부색이 달라도 이중적이거나 근본적인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설정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단순한 구도라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일단 마무리하고 다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