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2일 일요일

남색

성인 남성이 소년을 성적으로 탐한 사례로 고대 그리스 시대를 흔히 언급하는 것처럼 남색은 꽤 오랜 일이다. 요즘 영국에서는 가디언의 폭로 기사를 시작으로 축구 클럽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태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축구 감독이나 코치가 10대 소년들을 추행 혹은 그 이상의 행위들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 영화에서도 종종 소년에 대한 성추행이 소재로 다뤄진다. 가톨릭 사제가 행한 사례가 가장 흔하게 언급된다. '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가 바로 그런 소재였고, 최근 미드 중 '레이'도 그렇고, '더 영 포프'에서도 다뤄졌다. 청교도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가톨릭 사제들이 왜 유독 그런가(스포트라이트 엔딩 크레딧을 보면 미국이 유달리 그런 건 아니긴 하다) 의문이 생긴다. 

반면 오랫동안 가진 의문인데 한국 가톨릭 사제는 왜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가라는 불경한 궁금증도 생긴다. 하지만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딱히 답을 찾기 어렵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남색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고, 어제 처음으로 제대로 읽은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에는 한국전쟁 와중에 낙오병들이 동굴에서 남색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성이 주변에서 여성을 찾을 수 없을 때 어린 소년 혹은 그나마 가장 그에 근접한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인가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군대에서도 병사들간의 성추행(물론 간부들도 가끔 문제를 일으킨다)은 드문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강압적 남색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피해자들은 침묵하며 고통 속에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다. 한 때 동네 유지에게서 장학금 비슷한 것을 받고는 그 아저씨 집에서 성추행에 근접할 뻔한 일들을 겪은 이후의 찝찝함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지만 덕분에 남색 피해자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간혹은 남색의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사랑으로 포장해서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어내 꾸준한 관계를 얻어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하나의 젊은 남자에 싫증이 나면 다른 젊은 남자로 대체할 뿐이다. 지속적 육체적 관계는 묘한 심리 상태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모양이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 대해 더 생각을 전개해나가지는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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