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파고 시즌 2의 2화

다소 평면적이라고 느껴졌던 1화와 달리 2화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맛이 있었다.


영화에서 봤던 사람을 기계로 갈아버리는 장면도 나오고 엄청난 폭력성을 잠재했음이 분명한 갱단의 중간 보스가 침착하게 경찰과 대면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인상적인 대사는 2차 대전 이후 6년 간 살인 사건이 없던 파고가 지금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는 한탄. 때는 1979년이었고(마침 '가장 폭력적인 해' 정도로 번역될 제목의 영화도 비슷한 시기였다), 와플 가게의 살인 사건은 워터게이트와 연결되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던스트의 남편이 왜 옷을 다 벗어서 태운 것인가? 피를 닦는 과정에서 더럽혀진 옷을 다시 입기는 힘들겠으나 속옷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일부로 살을 찌운 듯한 정육점의 직원 캐릭터의 신체를 오랜 시간 카메라가 잡은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남편 캐릭터는 살인을 아마도 처음 저지른 것 같았으나 옷을 태우는 의식을 치른 이후 각오한 듯 잔인한 사체 처리 과정을 해낸다. 사실 그는 직업상 살인은 아니라도 살우, 살돈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사람이다.

분할 화면은 보기에 불편함이 있는데 특별히 어떤 효과를 노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동시간대 다른 인물들을 비교하는 것 정도일 터인데.

2화 마지막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지역 갱단과 더욱 광범위한 지역을 커버하는 캔자스 시티의 갱단 그리고 경찰이 모두 사라진 사내를 찾고 있다. 이들의 만남과 충돌은 더 많은 피를 예고하고 있다.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채피 (2015)

디스트릭트 9으로 혜성 같이 등장한 감독의 신작 영화 채피. 평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는데 그럭저럭 웃으며 볼 수 있었다.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인공지능을 그렇게 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결국 인간과 맞먹는 걸로 보이는 영화 속 인공지능이 USB 같은 저장장치에 간단히 들어갈만한 적은 용량일 수 있을지 등인데 아마 감독은 기술적인 부분은 중요치 않다고 본 것 같다.

만약(영어로 치자면 big 'if'가 되겠지만)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치자.

그러나 영화는 기존 작품들을 많이 떠올리게 한다. 로봇 경찰이라는 설정에서는 로보캅을, 인간 두뇌를 업로드하여 기계 속에 넣는다는 부분에서는 트랜센던스를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영화는 인공지능이 완전히 백지 영역에서부터 성장한다는 설정을 보여줌에서 기존 영화와 다른데 아마 책이나 만화에는 이미 등장한 상상일지 모른다.

채피는 아기의 지능에서 깡패? 폭력배? 소굴에서 성장하는데 단지 며칠 만에 배운 정보의 양을 보면 결코 인간과 같은 정도는 아니다. 인간보다 급속히 배운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업로드된 예전 인간 시절 두뇌는 능력이 업그레이드된다는 의미일까?

약물로 인간 지능이 극대화되는 이야기는 최근에 리미틀리스, 루시 등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캐릭터들은 평소 인간의 능력을 완전히 초월한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과연 업로드된 인공지능과 어떤 것이 우월할지도 궁금해진다.

배경은 남아공으로 디스트릭트 9과 동일한데 이번 영화에서 지역적 배경은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는다. 폭력집단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모습이고 다른 영화적 세팅들도 마찬가지다. 남아공이 영화에서처럼 총기 난사가 흔한 국가인지 정도가 궁금하다.

마음이 약한 채피의 행동은 웃음을 유발한다. 예정된 길이겠지만 불량배의 언행을 따라하는 모습, 로봇이 어설프게 겁에 질려 움직이는 장면들은 확실히 재미있다.

채피를 기준으로 볼 때 생물학적, 물리적으로 전혀 부모가 아니지만 부모라고 간주되는 불량 남녀가 있었고, 그의 창조자maker가 있다. 채피는 인간 사회의 암적 존재로 간주되는 부모를 그럭저럭 인정했고 특히 엄마에 대해서는 큰 애착을 보였다. 그의 창조자에 대해서도 왜 결함이 있게 만들었냐며 항의하긴 했지만 그를 구원하는 역설적 모습도 보인다. 채피가 인간, 신, 기계의 관계에 대한 탐구라면 재미있는 설정들이었다.

파고Fargo 시즌2 시작!

코엔 형제의 영화에 이어 미드판 파고가 한 시즌이 방영된 이후 시즌2가 시작되었다. 최근 시작한 미드 중 9/10으로 가장 높은 평정을 받고 있으며 첫 화를 보고 나니 역시 재미있다.

HBO의 기대작이었지만 전작에 미치지 못한 트루 디텍티브처럼 같은 제목을 쓰고 있지만 등장 인물들은 다 갈아치우는 식의 시즌 2였다. 1화 중반까지 아는 얼굴이 안 나오길래 이런 컨셉인가 싶었는데, 드디어 경찰로 패트릭 윌슨이 등장했고, 이어서 긴가민가 혹은 설마 싶은 여성 캐릭터가 있어 검색해보니 커스틴 던스트였다.

위키피디아의 간략한 소개를 보면 대통령 후보 시절 레이건이 등장한다고 한다. 지역 폭력 조직의 후계자 승계, 미궁의 살인 사건, 은폐, 뺑소니, 경찰의 조직 파괴 작전에 곧 대통령이 될 인물까지 엮인다니 흥미롭긴 하다.

파고 시즌1에서처럼 1화부터 살인 사건이 있었고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대신 시즌1과 같이 종교적 질문은 아직까지는 결어되었다.

트루 디텍티브 시즌2는 산만하여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려웠다. 지금 일도 파악하기 어려운데 묻힌 과거사까지 알아야했다. 그러나 파고 시즌2는 그런 것 없이 직관적으로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편이다. 시즌1보다 무게감은 덜 하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브레이킹 배드 유감

이번 겨울의 많은 시간을 브레이킹 배드를 보며 보냈다. 소문을 들은 적은 많았고, 특히 마지막인 시즌 5가 끝난 후 트위터에서의 격한 아쉬움들을 보며 꽤 재미있나보다 생각하긴 했다. 그리고 시즌 1의 몇 편을 보면서 시즌 4까지는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는 전개가 이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프링이 사망했고, 또 시즌 5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한 시즌 5의 주된 내용이 어떨지는 뻔했다. 다름 아닌 월터의 몰락일 수밖에 없는데 그 방식들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시즌 5는 천천히 보게 됐고 행크가 생각보다 일찍 죽고 나자 아쉬움 때문인지 마지막 두 편은 별로 인상적이지 못하기까지 했다.

범죄 소굴의 최정상의 위치에 가까운 악한들과 대면한 월터가 그들을 굴복시키고 자신의 말대로 '제국'을 건설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인상적이었다. 월터는 계속 자신의 범행을 가족을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아내인 스카일러에게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라고 고백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메쓰 랩에서 홀로 최후를 맞이하며 웃고 있었다. 후회는 없다는 듯.

죽음과 경제적 곤란에 찌들고 억압당한 월터가 자신이 제조한 최상급 순도의 마약을 수단으로 권력을 하나하나 얻어나가는 과정은 마약 중독자 못지 않은 권력 중독자의 모습에 다름아니었다. 월터의 오만함은 죽음까지도 얕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가장 아쉬운 설정이 나온다. 월터의 폐암이 돌아온 부분이다. 수술 후 완치는 아니었지만 활동에 아무 지장이 없던 월터인데 스카일러가 월터에게 다시 병에 걸리라고 저주를 하자마자 다시 폐암 때문에 죽어간다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었다.

또한 행크가 월터의 집 화장실에서 휘트먼의 시집을 보며 모든 것을 깨달은 과정도 우연이 지나친 경우였다. 누구보다 DEA 간부인 행크를 경계하는 월터가 집 안에 증거를 놔둔다? 그리고 제시 핑크먼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려던 찰나에 월터가 브록에게 독이 있는 식물을 줬다는 사실을 깨달은 장면은 볼 때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월터의 몰락의 계기들이라는 것들이 작위적이고 이야기를 어떻게건 끝내기 위한 억지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월터가 권력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과정에도 많은 우연이 개재되었던 것도 맞다. 다만 너그러이 생각하더라도 몰락의 경우가 더 이해하기 어려웠음은 어쩔 수 없다.

아마도 더 와이어보다도 더 평이 좋은, 10점 만점에 9점 이상의 이 드라마는 약간은 과대평가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약을 본격적으로 다룬 이 드라마가 적어도 시즌 4까지는 중독성이 상당했다는 것은 인정하며 마친다.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인간이란 : Her, Transcendence, RoboCop

새삼스럽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영화들을 보며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느낀다. 인공지능, 즉 사람이 설계한 기계의 지적 능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상상하면 종교적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터미네이터>에서처럼 기계가 인간을 없애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인조인간과 사람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벌어지는 혼란에 대한 고전적 영화들은 너무 많았는데 근래 드라마 중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그런 문제를 깊게 다룬바 있다.

작년, 올해 중에 개봉했던 유명작들도 이 주제를 다룬 것들이 있다. 그 중 <허>, <트랜센던스>, <로보캅>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세 작품의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 다르다. <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고, <트랜센던스>는 수퍼컴퓨터에 인간의 지성 혹은 영혼을 업로드하면 어떻게 될까의 이야기였고, <로보캅>은 예전 시리즈의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을텐데 육체로서 최소한의 인간성(정말 최소한인지는 논란의 대상이겠지만)을 갖춘 로봇 혹은 인간과 로봇의 융합체에 대한 이야기다.

<허>는 지금의 현대 사회가 조금만 더 지나면 나올 법한 세상을 그렸다. 이미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치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의 음악, 뉴스, 게임 혹은 팟캐스트에 빠져 주변 사람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웨어러블이 모바일 기기의 새로운 주류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 <허> 속의 세상은 정말 멀지 않은 미래로 보인다. 이미 사람들은 자기 세상에 빠져있는데 만약 귓속으로 24시간 언제나 감미로운 이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맘에 드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를 연기한 운영체제가 인간과 사랑(심지어 육체적으로!?)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만약 빅데이터의 축적이 더 진행된다면 소프트웨어가 그럴듯한 대답을 해낼 수도 있다고 상상할 수는 있으리라.

만약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영혼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한다면 <트랜센던스>는 거꾸로 인간의 정신을 업로드하겠다는 발상을 한 것 같다. 이에 어떻게 가능한지 설득력은 떨어지고, 영화 속에서도 그것이 가능하겠냐고 의심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는 SF라기보다 종교 영화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원래부터 조니 뎁은 신성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컴퓨터와 결합된 이후 진정한 신이 될 수 있었다. 신성을 가진 기계,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지구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수 있고,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거룩한 목표를 위해 행동하는 존재. 그래서 범인들은 이 기계신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고, 그래서-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인 것처럼-살해한다.

로보캅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묻는 방식으로서 기계로 만들어진 사지에 의해 목숨이 지탱되는, 원래 가진 것은 머리와 심장, 허파 정도밖에 남지 않은 한 경찰을 이용한다. 이 사람은 머리는 아직 인간의 것이지만 상업적 이해 때문에 뇌마저 통제당하고 만다. 그러나 기계적 통제는 인간 두뇌의 깊은 능력을 모두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반인반기계 인간은 만든 이들이 보기엔 폭주하고 만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전작의 리메이크고, 주제도 새롭다고 할 것은 없지만 자잘하게 보는 재미가 있다. 트랜센던스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모건 프리먼, 킬리안 머피 등을 끌어들여서 아주 희한하게 무의미한 캐릭터로 전락시키는 실수를 한 반면 로보캅은 미묘하게 배트맨과 연결되고 있다. 게리 올드만이 여기에서도 정의로운 캐릭터로 등장했고, 로보캅은 영화의 상당 분량에서 검은 의상을 입고 다녔다. 검은 의상은 회사의 이익에 끌려다니는 어두운 캐릭터를 상징하기도 하고 존재적 의미에서 박쥐와 연결될 수도 있겠다.

2014년 7월 3일 목요일

홍명보 감독 유임

바야흐로 관용의 시대다. 지도자들의 사의는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에 의해 반려된다. 아마도 닮은 꼴인 두 사람은 식물권력자의 삶을 조금은 더 살아야할 모양이다. 한 명은 총리, 한 명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홍명보 감독이 2015년까지의 계약 기간을 채우기로 공식 결정이 난 것은 놀라자빠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에게 많은 아량을 베풀었고, 국민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달았어도 감독 경질에 대한 암시조차 준 적이 없다. 오히려 오전의 공식 발표 전까지 유임할 것 같다는 말만 자꾸 흘러나왔다.

이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축구인, 심지어 이번 월드컵 첫 경기인 러시아와의 경기를 무승부로 마친 이후 전술로 칭찬을 받기조차했던 이 사람은 결국 알제리, 벨기에라는 같은 조 16강 진출 팀들에 무참히 패배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대표팀 축구를 그다지 보지 않게 된지 오래이기에 월드컵 때 조금 보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자격은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감독의 권한을 운운하며 함량 미달의 선수들을 안고 대회에 임한 그에게 1년의 주어진 시간 동안 잘 모르는 선수를 뽑아 쓸 여유는 없었다고 그의 선수 기용을 이해해버릴 수는 없다.

 홍명보에게 일단 주어진 하나의 대회는 아시안컵이다. 그런데 그는 징계 때문에 두 경기를 나올 수 없을 예정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카드가 되어버린 박주영을 비롯하여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소위 홍명보의 아이들을 제외해야 할텐데 그가 어떤 선수들을 쓸지가 가장 관건이다.

 만약 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이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시 한 번 홍명보의 아이들만을 중용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다른 아이들에게 뛰어 볼 기회라도 줘야 한다. 그러나 식물감독이 두 경기나 벤치에도 앉지 못할 대회에서 어떻게 한국 축구의 미래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늦었더라도, 차기 감독을 생각조차 해본적 없는지 몰라도, 약간의 공백기가 있을지 몰라도 역시 새 감독을 찾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부적절한 후보자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 결국 그나마 홍명보 유임이 가장 나은 선택지였을까? 어떻게 보아도 암담한 결론이다.

2014년 6월 30일 월요일

옥상 똥

아침에 아내가 현관 문을 열고 외출하려던 찰나 옆집 청년이 옥상에서 내려오다 아내와 마주치자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누군가 옥상에 똥을 싸고 갔다는 것이다.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주민이 그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랬을까? 

아무리 급하더라도 5층의 높이를 계단을 통해 걸어올라가야하는 수고를 해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그(녀)는 급하긴 했을까? 아니면 모종의 복수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