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7일 화요일

Bookdepository.com 이용 후기

지난 연말 영어 책을 몇 권 사려고 이곳저곳 가격을 비교하던 차에 bookdepository.com을 알게되었다. 원래는 아마존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보려고 했는데 직배는 배송비가 엄청나서 차라리 배대지를 고려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존은 기본 배송비가 있고 1권 추가될 때마다 일정 금액이 붙는 식이었다.

그런데 bookdepository는 무려 1권을 사도 무료배송이다. 영국 내 배송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국가로의 배송까지 무료다. 물론 책마다 할인율이 다르기 때문에 국내 인터넷 서점을 통한 구매보다 저렴한지는 매번 따져봐야한다. 그래서 몇 권은 쿠폰 할인이 컸던 알라딘을 통해 주문하고 어떤 책 한 권은 파격 할인율을 제시한 아마존 영국으로 주문했다.

그리하여 두 권을 동시에 이 사이트에서 주문을 해보았다. 12월 말의 일이었다. 연말이라 그런지 배송은 며칠 걸린 후에야 시작되었다. 그런데 배송 추적이 되지 않았다. 에어 메일이라는 전통적인 우편 배달 방식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문앞까지 가져다 주는 택배가 아니라 우편함에 넣어두고 가버리는 우편물이다.

배송기간이 얼마나 걸릴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미 국내에도 알고 있는 분들이 좀 있었다. 대략 2주 정도 생각하면 된다는 후기를 볼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엔 열흘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동시에 주문한 책들이 하루 간격을 두고 이틀동안 도착한 것이다. 1권도 무료배송이다보니 1권씩 따로 배송을 해주는 모양이다.

영어책을 사고 싶으면 꼭 가격을 체크해볼 사이트다.

2017년 1월 14일 토요일

골든 글로브 시상식

올해도 어김없이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있었다. 오스카 혹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는 이 시상식은 올해도 볼 거리를 몇 가지 제공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라 라 랜드가 여러 개 상을 시상해서 마치 시상식이 라 라 랜드 천지였던 것처럼 여겨질 단초를 제공했다. 하지만 골든 글로브는 영화는 물론 TV 드라마 부문에 대한 시상도 하고 있고, 영화는 드라마가 한 축이고 음악 및 코미디가 다른 축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라 라 랜드는 골든 글로브의 여러 축 중 하나를 휩쓸었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시상식의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상이듯 골든 글로브의 마지막은 음악 및 코미디가 아닌 드라마 부문에서 장식한다.

여러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브래드 피트의 등장이 가장 재미있었다. 졸리와의 관계 악화(자세한 사정은 모르기에 이 정도로 적어두자) 때문에 공개적 자리가 부담스럽지 않나 싶었지만 왠지 그는 시종 웃고 있었고, 다른 참석자들이 많은 환호를 보냈다. 이제는 배우보다 제작자로 더 자주 이름을 올리는 이 사람에 대한 아부일까?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워런 비티의 모습이 두세 번 카메라에 잡혔다. 아네트 베닝이 시상대에 올라섰을 때도 잡혔는데 나는 그 둘이 당연히 이혼한 사이라고 생각해서 얄궂은 카메라 감독이다 싶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커플은 1992년에 결혼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헐리우드에 이런 일도 있구나 싶다.

재미로는 시상식의 오프닝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라 라 랜드의 유명한 고속도로에서의 오프닝을 패러디한 장면으로 2016년을 장식한 영화,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뮤지컬 연기를 한다. 존 스노우는 자동차 시트에서 죽은 척 하다가 갑자기 깨어났고, 웨스트월드의 여주인공도 등장한다. 심야 토크쇼의 호스트이자 시상식의 진행자인 지미 팰론은 라이언 고슬링이 피아노를 치던 장면과 천문대 장면의 패러디 영상에도 연이어 등장한다. 여기서는 저스튼 팀벌레이크와 동성애적 관계를 암시하는데 이후엔 라이언 레이놀즈도 동성애자인 것처럼 자꾸 비유하는 장면들이 나와 무슨 사연인가 싶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에마 스톤의 전 남친 앤드류 가필드와 키스를 했고 에마 스톤이 그 영상을 보고 경악하는 장면을 나중에 볼 수 있었다.

앤드류 가필드는 멜 깁슨 감독의 핵소 리지라는 전쟁 영화의 주인공으로 주요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였다.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인상은 별로 받지 못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다른 모양이다. 시상식에 등장한 영화들은 대개 이름이라도 들어봤는데 핵소 리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연초의 시상식을 보며 남자 배우들이 왜 이렇게 수염을 기르나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콧수염,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영화 드라마 부문의 주연상을 받은 케이시 애플렉도 그렇고, 크리스 파인도 못지 않은 수염을 보여주었다.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군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반면 여성들의 과감한 드레스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누가 가장 과감했는지 따지고 싶지는 않고, 이번 시상식에서는 유난히 가슴 아래까지 아주 깊숙히 골이 파인 옷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시상식에서 배우들이 상을 받은 다음 어디로 내려갈지 안내해주는 역할을 실베스터 스탤론의 세 딸들이 맡았다. 작년 어느 시상식에 나타나 딸들이 어떻게 전부 예쁘냐는 찬사를 받은바 있는데 올해는 아예 시상식 무대에 계속 자리를 잡아버렸다. 스탤론은 올해가 록키의 몇 주년인지 상대배우와 함께 시상식에 등장하기도 했다.

메릴 스트립은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의 말 그대로 단골인데 이번에도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일종의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상 연설도 인상적이었다.

수상 연설이 인상적이기로는 폴 버호벤 감독과 이자벨 위뻬르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 영화제의 이방인이라할 이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람들은 같은 영화로 상을 받았다. 폴 감독의 경우야 외국어 영화상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자벨 위뻬르가 영화 드라마 부문의 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놀라웠다. 그녀 자신도 그 점을 수상 소감으로 이야기했는데 다른 후보들이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은근히 웃기는 배우 맷 데이먼은 작년에 마션으로 주연상을 받은바 있는데 부문이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 및 코미디였다.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는데 올해 맷 데이먼드 자기가 작년에 그 부문으로 상을 받은 게 코미디였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TV 드라마 부문에서는 블래키쉬, 피플 버서스 오제이 심슨, 애틀란타 같이 흑인 위주의 작품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16년 12월 31일 토요일

리멤버 (2015)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인줄 전혀 모르고 봤다가 결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을 받았다. 스포는 언제나 철저히 하는 블로그였으니 혹시 스포를 원치 않는 사람은 읽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혼잣말일 수도 있겠지만.

치매 노인인 남자 주인공이 아내가 최근에 죽고 난 후 친구 노인으로부터 비밀 지령을 받게 된다. 둘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생존자들로, 그들에게 고통을 준 독일 장교가 미국에 와서 살고 있음을 알고 그를 총으로 죽이기로 한다. 하지만 동명의 남자가 네 명이라 하나하나 확인해봐야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네 명을 만나는 순서는 친구 노인이 정해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기실 치매 노인은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던 유대인인양 팔뚝에 숫자 문신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자기가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독일인 장교였던 것이다. 바로 그 점이 가장 논쟁적이고도 도발적이다. 아무리 치매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미국으로 도피한지 70년은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미국에서 유대인 행세를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독일인인 것을, 유대인 학살의 주범임을 그렇게 철저히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

나치에 부역했지만 당시엔 10대 소년에 불과해 아우슈비츠에 가고 싶어도 못 갔던 어느 독일인의 아들 에피소드에서 치매 노인은 나치 독일에 대한 혐오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70년의 세월은 이 정도의 자기기만도 가능하게 한단 말인가.

치매 노인이 본색을 드러낸 건 네 명 중 마지막으로 동료 장교였던 독일인을 찾아가서 바그너를 연주할 때다. 그 동료 노인은 자신을 찾아온,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노인이 자신의 친구였음을 즉시 알아보았다. 치매 노인은 유대인도 음악으로서 바그너를 좋아할 수도 있지 않냐고 항변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치매 노인은 그 전에는 아마도 폴란드 작곡가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야말로 가면이었을까?

그 전에 요리사 출신 독일인의 아들을 아주 무참히도 정확히 총으로 죽였던 것, 그리고 태연히 그 집에서 샤워를 하고 잠을 잔 것은 처음에는 우연과 치매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젊은 시절 장교로서 개미 죽이듯 사람을 죽였던 습관이 튀어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잠을 자고 현장을 떠났으리라.

결론을 알고 보면 영화 전체의 틀은 완전히 다른 식으로 해석된다. 치매 노인의 여행은 자신의 과거의 잘못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소환해내는 여정이었고, 결국 자살로 귀착될 운명이었다. 아우슈비츠 피해자와의 만남은 동감의 과정이 아니라 참회의 과정이 되었다.

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강서도서관 시스템 교체

강서도서관이 11월 후반부터 12월 초반까지 2주간 문을 닫았다가 열었다. 올해 언젠가 한 번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기간이 더 긴 것 같았다. 단순히 서가의 배열을 바꾸고 책을 옮겨서 꽂는 작업만 한 것이 아니라 대출, 반납을 위한 시스템이 완전히 교체되어 있었다.

양천과 강서도서관을 모두 이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양천도서관은 대출과 반납을 이용자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무인단말기가 있어서 편리한 반면 강서도서관은 지난 달까지는 직원에게 책을 가져가서 바코드를 읽어들이는 방식으로 처리해야 했다. 대출의 경우엔 옆에 있는 기계에서 이용자가 직접 책을 한 번 쓱 밀어줘야 했다.

양천도서관이 강서에 비해 규모가 약간 더 커 보이긴 했고, 이용자 수는 훨씬 많아 보이긴 했다. 아마 무인단말기 없이 대출과 반납을 위해 직원들을 찾아야했다면 꽤 복잡했을 것 같긴 하다.

강서도서관에서 길게 줄을 서본 적은 없던 터라 무인 기계의 도입이 시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편리한 건 사실이다. 양천도서관의 기계와 달리 대출할 때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절차가 없기도 하지만 기계가 더 최근 것이라 그런지 처리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대학교 도서관의 대출 기계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다. 물론 다른 기계들처럼 강서도서관 것도 5권까지만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한계는 동일하다.

한 편으로는 이 기계의 도입으로 도서관의 인력 수요가 줄어들 것도 분명해보인다. 전에는 항상 두세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될까? 양천도서관은 서고에 있는 도서를 가져다 주시는 분이 참 바빠 보였는데 강서도서관은 당분간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조금 쓸데없는 걱정이긴 하다.

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테일 오브 테일즈. 엘르. 더 이노센츠

테일 오브 테일즈는 동화적인 이야기 세 편이 하나에 담긴 옴니버스 스타일의 영화다. 동화라고는 해도 피가 흥건하고 성인의 알몸이 등장하는 등 수위가 높다. 그렇다고 말초적 자극을 위한 B급 영화는 아니다. 

감독에 대해 잘 몰랐는데 나폴리 지역의 범죄조직을 극사실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은 영화 "고모라"를 만든 분이었다. 고모라 이후 리얼리티라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고 얼마 전 테일 오브 테일즈를 만든 것이다. 

테일 오브 테일즈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영화지만 대사는 모두 영어고, 토비 존스 같이 유명한 영국 배우도 기용했다. 출신이 영미권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에 익숙한 얼굴인 샐마 헤이엑, 뱅상 카셀도 주연으로 등장한다. 리뷰들을 읽다보니 영어 영화를 만든 것은 관람객 층의 확대를 꾀한 조치였던 것 같은데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의 원작은 17세기 나폴리 지역의 시인인 바실레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처음 들은 이름이지만 그의 작품은 그림 형제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작가들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성들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데 모두 이탈리아에 실제로 있는 성들이라고 한다. 나폴리는 10년도 전 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치안이 불안하다느니 소매치기 조심하라느니 등의 말을 들었다. 거의 동시대에 촬영이 되었을 고모라를 생각하면 감독이 현재의 나폴리를 상상의 중세 나폴리의 엽기적 일들을 통해 풍자한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재미있게 본 영화고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도 없어 불편함이 남지 않아 좋았지만 되새겨보면 난감함이 남는다. 영어로 된 리뷰들을 보니 아무래도 전작이 뛰어난 감독이다보니 그걸 감안해 호의적으로 평가한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로저버트닷컴의 리뷰는 내 감상과 비슷하게 영화의 메시지 차원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다른 리뷰에서도 영화의 촬영 같은 기술적 부분에 대한 좋은 평가가 내용적인 부분보다 앞섰던 것 같다.

벼룩을 고기를 먹이며 애완용으로 기르면 커다란 개만큼 커진다는 상상은 황당하게 웃겼고, 문틈으로 삐져나온 노파의 손가락을 핥아대던 뱅상 카셀의 연기도 우습다. 해저 괴물의 심장으로 인해 하루만에 태어난(아비 없이! 두 명이나!) 아이들 이야기는 결말이 너무 미약했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성 위의 허공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은 왜 등장하는지도 의아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또 다른 영화, 문제작들의 아버지 폴 버호벤의 신작 "엘르" 속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바로 고공 줄타기, 그것도 아래 안전망이 없는 진짜 줄타기 연기였다는 평가를 어떤 리뷰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식이긴 폴의 영화를 볼 때는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데 두 시간이 넘는 이 영화는 어떤 불편함이 앞으로 전개될까 궁금해하며 힘들게 버텨야했다. 다름 아닌 강간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가디언을 보다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말론 브란도의 강간 장면에서 베르톨루치 감독이 현실성(성기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무엇인가가 삽입되기는 했다고 한다)을 높이기 위해 브란도와 짜고, 19살의 여배우 슈나이더에게는 알리지 않고 그 장면을 촬영했다고 하여 영화계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진 바가 있었다. 당시 어떤 기사는 "엘르"의 위페르는 무엇을 찍는지 알고 찍었다고 라스트 탱고와 비교를 했던 것이다. 엘르가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라는 점 말고는 다른 정보가 전혀 없던 시점이었다. 감독이 폴이었다는 것은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여하튼 괴상한 이 영화는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재미있게도 영화 리뷰들 중 몇 개가 영화가 B급과 고차원적 영화 사이라면서 B+ 등급을 매겼다. 결국 A는 줄 수 없다는 건데 소재의 자극성이 한몫했으리라. 

위페르의 극중 이름은 미셸 르블랑이고, 10살 때 살인마 아버지의 범행 현장에 있고 심지어 그의 범행을 도왔던 혐의를 받고 자랐다. 그녀는 문학 혹은 학계에 있다가 잔혹하고 에로틱한 비디오 게임(플스용인듯) 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벌었다. 어릴 적의 충격 때문인지 혹은 원래 그런지 그녀는 게임이 더욱 더 자극적이게 만들도록 요구했고, 그 목적을 위해 아르바이트 모델 여성이 사진사에 의해 거칠게 옷이 벗겨져도 개의치, 아니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마 영화 시작하자마자 그녀 자신이 괴한에게 강간을 당하고 나서도 별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고 아무렇지 않게 전남편과 절친에게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그녀의 태도를 가장 잘 대변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강간범을 알아채고는 그 사람을 유혹하는 장면은 처음에 이상했다. 범인이 아주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은 나중 일이지만 강간범에 대한 환상은 미셸이 많이 뒤틀린 사람임을 보여준다. 강간범 혹은 그녀의 이웃인 은행원은 미셸이 요구하면 거부한다. 다만 자신이 거칠게 여자를 때릴 때에만 성욕이 생긴다. 영화 말미에서 은행원의 아내가 말하듯(그녀는 예전에 남편의 범행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좋은 사람인데 어떤 부분에서는 고통받는 영혼이었다. 한 리뷰에서 잘 지적했듯이 성행위에서 여자가 주도하려고 할 때 남자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는 지적은 맞는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부분은 미셸의 아들인 뱅상이 약혼녀가 출산을 했는데 피부색이 상당히 어두운데도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할 뿐 아니라 그 옆에 같이 혼 흑인 친구가 자꾸 싱글싱글 대고 있어서 그 친구야말로 아기의 친아빠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도록 찍은 장면이다. 뱅상의 약혼녀는 그럼에도 언제나 당당하고 항상 뱅상에게 야단을 친다. 

더 이노센츠라는 영화도 공교롭게 강간에 대한 영화다. 처음에 수녀원이 화면에 등장해서인지 그런 영화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1945년 폴란드라고 하니 홀로코스트와 관련이 있을까 추측해보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라고 하면 수백 만명이 죽은 유대인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영화는 여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영화 속 희생자 여성은 다름 아니 수녀들이다. 폴란드의 수녀원이기에 독일군도 지나갔고 러시아군도 지나갔다. 그들은 그냥 지나간 것이 아니라 수녀들을 강간하고 갔다. 영화 속에서는 독일군의 강간은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고, 러시아군들이 하루도 아닌 며칠을 머물렀다고 한다. 

강간은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지만 여러 수녀들이 임신을 하게 되었고 수녀원이라는 설정은 더 큰 문제를 제기한다. 수녀들은 성적 순결을 맹세한 이들이고, 그렇다고 자살을 할 수도 없다. 그녀들은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원장 수녀에 의해 어디론가 옮겨졌다. 원장의 설명은 아기들이 어떤 가족에게 넘겨서 잘 클 거라는 것이었지만 영화 속 한 사례가 보여주듯 아기들은 추운 겨울밤 들판에서 얼어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프랑스 적십자 소속의 한 여성 의사가 수녀원에서 출산을 돕게 되었고,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러시아군들에게 수녀원에 티푸스?가 있다는 거짓말로 그들의 방문을 막고, 결국 나중에는 수녀원에서 수녀들이 낳은 아기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에 대한 해답까지 제시하게 된다. 

세계대전의 와중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폴란드에 수많은 고아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 고아들을 수녀원에서 돌보면 수녀들의 아기를 다른데 보내지 않고도 기를 수 있다는 처방이었다. 

아무 죄가 없는, innocent 수녀들의 이야기는 눈물없이는 보기 힘들다. 꽤 유명한 영화인가 싶었는데 네이버 영화에는 소개조차 되지 않은 듯 하다. 

2016년 11월 21일 월요일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이라 봤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적잖은 실망감을 느끼고 말았다. 전작인 아메리칸 스나이퍼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며, 영화의 정서도 유사한 지평에 있다.

대략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미국에는 새떼 때문에 양쪽 엔진이 망가진 비행기가 뉴욕 근처에서 회항해도, 심지어 강물에 착륙해도 승객 하나 죽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 유능한 비행사가 있다, 그런데 이 국민적 영웅 비행사가 왜 인근 공항으로 가지 않고 위험하게 강물로 갔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하는 감시 시스템이 있다, 일견 감시 시스템은 괜한 시비를 거는 asshole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진실을 덮으며 자신들에 유리한 주장을 유지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할 아량도 있다는 등등.


물론 오늘날 한국의 현실, 특히 세월호 이후 정부의 대처를 떠올리며 미국의 이러한 시스템, 가장 늦게 강물에 가라앉는 비행기에서 나오는 기장, 신속한 구조대의 출동 등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는 실제 있었던 일이니 세월호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대도시 속의 강에서 일어난 일과 유난히 물살이 센 바다 위의 일의 대처법이 같을 수는 없지만, 영화 터널이 그러했듯 이 영화를 보며 세월호는 어쩔 수 없이 생각난다. 미국에서는 기장이 잘 한 일까지도 철저히 조사를 받는데 한국의 세월호 조사가 어떠했는지, 또 정부, 여당에서 얼마나 비협조적이고 심지어 방해를 했는지를 생각하면 두 나라의 상황이 얼마나 천지차이인가.

영화에서 많은 포인트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에 겨우겨우 늦게 타게 된 세 남자는 비행기가 강물 위로 비상착륙을 할 때 얼마나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비행기가 절망적인 상황으로 하강하는 와중에 여자 승무원들은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까. 9/11 이후 일어난 이 사건은 만약 비행기가 설리의 꿈, 상상 속의 장면처럼 고층 빌딩과 충돌했다면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남겼을까. 대도시 주변해 공항이 있으면 얼마나 위험한가. 그렇다면 제2롯데월드는.

그러나 앞에서 적은대로 영화를 보고 가장 앞에 나오는 감정은 미국의 자뻑 같은 이런 영화를, 비록 전작 아메리칸 스나이퍼만큼 논쟁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왜 이스트우드가 자꾸 만드는걸까였다. 

2016년 9월 11일 일요일

존스 자유주 Free state of Jones

프리 스테이트 오브 존스는 매튜 매커너히의 신작이라 관심이 있는 작품이었고, 무엇보다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언급이 되어 보고 싶은 영화였다. 구글 검색에서 한글로는 존스 자유주라는 식의 번역어를 볼 수 있었다.

예고편을 볼 때는 남북전쟁 장면 밖에 안 보여서 전쟁 영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전쟁 장면은 영화 앞 부분에 잠깐 등장할 뿐이다. 나중에 펼쳐질 이야기도 일종의 전쟁이라고 볼 수는 있겠으나 통상 우리가 아는 남북전쟁의 전투와는 전혀 다르다.

영화는 놀랍게도 남부 사람이면서 오히려 남부군과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들이 남부 중에서도 가장 독하다는 미시시피 사람들의 일부라서 더 놀랍다.

매커너히는 뉴트 나이트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 뉴트는 남북전쟁에 남부군으로 참전하지만 조카가 허망하게 죽은 이후 그 시체를 데리고 고향에 간 이후 탈영자가 된다. 이후 넓은 늪지대에 피신하며 이미 피신해있던 흑인 노예 출신 도망자들과 함께 살게 되고 이어지는 탈영자들을 규합하며 이 집단의 지도자가 된다.

탈영자들은 남부군에서 노예 20명이 있으면 한 명의 병역이 면제되는 불합리한 제도에 불만을 느꼈고, 결국 남북전쟁은 남부의 노예소유주들을 위한 것이며 노예가 없는 사람들은 부자들을 위해 총알받이가 될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늪에 피신한 탈영자들은 규모가 커졌고 심지어 남부의 군대와 전투를 벌여 승리할 정도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북부군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나 영화상에서 북부의 장군들은 존스 주의 이 자유인들의 능력을 높게 사지 않았고 도움은 총만 조금 준 것으로 되어 있다.

탈영자 내부에서 백인이 흑인 노예 출신들을 차별하려는 기색이 보이자 뉴트는 탈영자 백인이 흑인과 다른 게 뭐냐고 반문한다. 부자의 속박에 얽매인 백인은 피부색이 하얄뿐 니거nigger인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자유인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남부군을 내쫓은 넓은 지역을 하나의 국가로 선포한다. state는 미국에서는 하나의 주이긴 하지만 영화에서는 주가 아니라 국가처럼 자신들의 영역을 생각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감독은 1860년대의 이 이야기를 평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약간 비틀면서 관객의 추리를 유도하는데, 바로 뉴트와 흑인 배우자의 후손이 백인과 결혼하면서 겪는 재판의 과정이었다. 겉보기에 백인인 뉴트의 후손은 따져보니 흑인 노예의 피가 흐르는 것이 확인되었고, 재판정은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정을 내린다.

이 판결은 나중에 찾아보니 1950년대의 이야기라고 한다. 뉴트의 후손인 남성에게는 징역형이 내려졌으나 실제로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영화에서 뉴트가 탈영 생활을 한 이후 부인은 아들 하나와 함께 멀리 떠났다가 몇 년 후 돌아왔다고 되어 있다. 이후 뉴트는 원래 아내와 흑인 아내 둘을 함께 데리고 살았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어느 한 부인과 그 자녀들이 다른 집에서 살았던 모양이다. 영화와 다르게 뉴트는 원래 부인과 자녀를 9명이나 두었고, 흑인 아내와는 5명을 낳았다고 한다.

뉴트는 시대를 꽤 앞서 살았던 사람임에 분명하고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는 덜 도덕적인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