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9일 수요일

곡성 (2016)

숱한 화제를 낳은 영화라는 소문만 듣고 있다가 오늘 보게 되었다. 주변인의 말로는 해석이 분분한 이 영화에 대한 설명 중 외계인 이야기도 있다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외계인이 어떻게 나온 해석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기독교 역사에 관심을 갖던 터라 영화 도입부부터 누가복음의 구절을 인용한 영화의 스탠스가 도전적으로 다가왔다. 과연 기독교를 어떻게 영화에 버무린 것일까.

그러나 감독 인터뷰에서 드러난 대로 곡성이 예루살렘이고 외지인인 일본인이 예수처럼 왔다가 죽고 부활하는 설정이긴 한데 외지인은 자신의 정체가 결국 악마임을 확연히 드러내버린다. 인간들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신적 존재인 예수가 악마적인 야비한 미소와 시커먼 얼굴을 드러낼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이것은 기독교적 구도를 차용했지만 결코 기독교적인 내용은 아니다.

악마는 자신을 해치러온 부제가 너는 누구냐며 정체를 묻자, 너는 이미 내가 악마라고 확신하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악마는 영화 중반에서도 자신의 집을 찾아온 경찰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도 어차피 안 믿을 거라고 말했다. 마치 이미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이상 자신이 하느님과 교신하는 예수라고 해도 너는 안 믿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기도 했다. 영화는 확실히 반복적으로 뜬 소문을 믿는 나약한 인간들의 심리, 신념을 문제시하고 있다.

일종의 반전처럼 일본인이 한 때 곡성의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선한 무당인 것처럼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가 이미 그렇지 않은 이상 일본인이 악마라는 점을 의심할 수는 없다.

인터뷰에 따르면 나홍진 감독이 이 영화에서 신적 존재로 위치시킨 캐릭터는 천우희가 연기한 '무명'이라는 여성이다. 사람이 아니라 영적 존재라는 것인데 누가복음의 구절에서는 부활한 예수가 유령(혹은 그냥 영)은 육신이 없지만 자신은 육신이 있다고 말하며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 무명이 육신이 없는 듯 나오는 장면이 있다고 누군가 적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딱히 알아채지는 못 했다. 오히려 악마인 외지인은 자신의 육체성을 부제에게 확인시켰다.

어찌되었건 씨네21의 칼럼에서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예수 혹은 그에 필적한 악마라는 존재, 혹은 그와 별개로 혹은 다른 종교적 맥락에서 신적 존재로서 무명이 등장한다고 할 때 이들의 존재적 위치는 너무 일관성이 없다. 순전히 관객을 헛갈리게 만들려다 실수를 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나홍진 감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하필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질문을 한다고 할 때 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논리를 볼 때 악의 근원은 악마다. 씨네21 칼럼의 내용에 비춰볼 때 감독의 전작인 추격자와 황해에도 역시 악마가 등장했다고 한다. 그 대척점으로서 위치한 무명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려고 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지만 방관한다. 나홍진은 신이 개입할 수는 없다고 방관해야 한다는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일광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황정민이 분한 무당은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애초 시나리오 상으로는 분명히 악마와 한 편이다. 둘이 같은 차에 타는 장면이 원래 시나리오에 있고 촬영도 했지만 뺐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 왜 한 편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영화 장면으로만 보면 둘 모두 피해자들의 사진을 찍는 습관이 있어서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고, 갈등 구조상 무명이 악마, 일광과 모두 대립하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었던가?

다시 악마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기독교 신학의 하나의 해석으로서 인간 예수가 신적 존재로 고양되었다는 입장과 유사하게 영화 속 악마도 아마도 무당이었던 인간이었다가 점점 더 힘이 센 악마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면 영화에서 일본인의 모습은 너무 이상하다. 시나리오 상 일본인은 신원조회 결과 수십 년 전에 죽었어야 할 인물이라는 점이 증명된다고 하니 영화 속 모습이 어떤 평범한 인간이 악마가 들어왔건 무슨 이유가 되었건 더 센 악마로 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악마인데 수십 년 전 일본인의 외양을 하고 돌아다니며 시장에서 한국말도 못 해서 애처로운 얼굴로 닭값을 흥정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일광이 굿을 할 때 말뚝? 정?을 박을 때 죽을 것처럼 구는 것은 또 무언가. 기독교적 악마를 한국 무당이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인가? 보통 엑소시즘, 구마는 가톨릭 사제가 해야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새로운 종교적 해석인가?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검은 사제다. 오컬트라는 장르적 요소도 있고, 신부와 부제가 등장하기도 하고 돼지 때문이기도 하다. 검은 사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에 등장하는 마가복음의 구절,악마(악령)들이 돼지 속으로 들어갔다는 그 구절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어린 돼지 속에 악마를 가둔다. 곡성은 영화 초반에 스치듯 돼지 한 마리를 카메라로 잡는데 확언할 수는 없지만 어떤 연관이 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나홍진 감독은 주인공인 평범하고 그저 아픈 딸을 구하는 일념 하에 살인도 불사하는 한 아버지가 딸이 미쳤건 악마에 씌어서건 엄마와 외할머니를 죽이는 걸 막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 정도 했으면 최선을 다 했다, 나머지는 인간이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회의 상처입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힘빠지게 만드는 역설적인 이야기 같기도 하다.

악마, 귀신, 무당 같은 것들을 그저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은유로서 받아들이면 될까? 일제 식민지적 유산의 악마성, 치명성일까? 그저 독버섯이 문제인데 소문에 현혹된 사람들이 괜시리 종교적 장치들에 달려든 것이 오히려 문제일까?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감독이 의도하고 그려낸 영화 내의 논리와는 다르다. 작품이 일단 창작자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창작자만의 것이 아니기도 하니 마음껏 해석을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무섭다는 평들 때문에 잔혹한 장면이 나올까 괜히 겁먹고 긴장하다가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아 안도하기도 했다. 다시 보거나 더 생각해보거나 해야겠지만 떡밥이 많은 것에 비해 영화의 영양가가 높은 것인가는 현재로서는 회의적이다.

2016년 6월 21일 화요일

아이 인 더 스카이 eye in the sky

미국에 의한 드론 공격의 비인간성은 몇 번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된 것 같은데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영국이 주도하는 작전의 드론 미사일 공격을 다룬다. 주도권은 영국군이 가지고있지만 드론은 영국 것이 아니라 미국 소유다. 이 드론을 조종하는 인물 중 하나가 아론 폴이다.

007시리즈도 그렇지만 이런 영화를 보면 여전히 제국주의 시절을 영국이 잊지 못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영국 고위층들은 우호국의 특정 지역에 미사일을 쏘게 되는 작전을 오직 미국과 상의하여 실행해버린다. 다른 행위자들의 의견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헬렌 미렌은 작전을 총지휘하는 대령이다. 그녀는 영국과 미국에서 공히 높은 순위에 오른 테러리스트(아마 넘버2, 3, 4였을 것이다)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절호의 기회, 그들이 입은 조끼 폭탄이 도심에서 터질 경우 80여명이 죽을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해 케냐에서 드론 공격을 준비하게 된다.

정책결정자들의 우왕좌왕이 거듭되는 가운데 영국 군부는 계속 작전 실행을 요구했고 간신히 결정이 내려진 찰나 테러리스트 결집지의 바로 옆집에 사는 꼬마가 어머니가 집의 화덕에서 구운 빵을 하필 미사일 투하 지점 바로 옆에서 팔게 되며 이야기의 핵심적 갈등이 빚어진다.

미사일을 쏠 경우 이 꼬마 아이가 죽을 확률이 최대 65%인데 실행해야 하는가. 만약 테러리스트들을 놔둘 경우 수십 명 혹은 백 명 이상이 죽거나 다칠 예정인데 꼬마 아이 한 명의 죽음을 묵과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샌덜 교수의 Justice에서 다뤘던 내용 같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투하 지점을 약간 조정하였으나 죽을 확률은 65%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암묵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분석관은 사망확률을 최대 45%라고 수정해서 보고했고 결국 떨어진 미사일에 여자아이는 죽고 만다. 처음에 약간 몸을 움직여 희망이 보이는 듯 했지만 병원에 가는 길에 숨을 거둔다.

탑 타겟 테러리스트를 일소했다는 기쁨에 들떠야 할 정책 결정자들과 군인들은 아무 것도 모른채 빵을 다 팔았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고작 몇 걸음만 가면 있는 자기 집에 돌아가려던 여자아이의 죽음 앞에서 찝찝함만 남기고 말았다.

작전 지역이 케냐가 아니라 소말리아라면 모두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닐 수도 있다. 결국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인간적으로 죄를 지었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기 합리화가 쉬울 것인가는 상황마다 다를 수는 있겠다.

제목은 드론 비행기와 소형 감시카메라로 작전을 수행하는 상황에 대한 암시라고 할 터인데 요즘 종교적 글을 조금 읽다보니 다른 식으로도 읽힌다. 하늘의 시선은 신적인 시선이기도 하다. 난데 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미사일은 불벼락, 번개, 천벌을 떠올리게 한다. 제국의 통치자들은 식민지 혹은 그에 준하는 지역에 대해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감정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고 하늘의 눈은 그런 오만함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더 패쓰(path) 시즌1

아론 폴의 전성기인 모양이다. 브레이킹 배드의 찌질한 마약쟁이역으로 나왔을 때는 크랜스턴의 훌륭한 조연 정도로 생각했는데 드라마 종영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맹활약하고 있다.

더 패쓰는 신흥종교인 마이어리즘의 집단 거주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드라마인데 아론 폴은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방황하는 인물이다. 미셸 모너핸과 휴 단시가 또 다른 주연들이다.

모너핸은 꽤 좋게 봐온 배우인데 중요한 역할들을 맡긴 하지만 원톱이라는 이미지까지는 구축하지 못한 듯 하여 아쉬움이 있고, 휴 단시는 미드 하니발 시리즈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인데 이 드라마에서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연기를 했다.

마이어리즘이라는 종교는 추상적인 '사다리'를 올라가 '빛'에 가능한 가까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듯 하다. 신을 빛으로 표현하는 것은 기독교 혹은 유대교에서도 이미 봐온 바였기 때문에 마이어리즘이 이상한 광신도 집단이라기보다 여러 종교 집단들의 이야기로 봐도 좋을 듯 하다. 기독교도 신흥 종교의 시절을 거쳐 세계 종교가 되었으니 현재 지배적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 하나의 신흥 종교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다. 그러나 외적으로 cult라고 표현되는 부정적 뉘앙스의 종교집단으로 낙인찍힌 마이어리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기를 일으킬 혐오의 대상이다.

여하튼 마이어리즘은 1대 교주격인 스티브라는 인물이 병상에 계속 누워있다가 죽는 것으로 설정이 되는데 놀랍게도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멀쩡히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속임수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무슨 내막이 있는 것인지는 다음 시즌에 밝혀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 자체로는 예수 이야기와 유사성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휴 단시는 스티브의 뒤를 자신이 이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스티브의 유지가 자신에게 왔다고 거짓말을 하며 마이어리즘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끌려고 한다.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단시가 이끄는 새로운 방식의 마이어리즘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나 1대 종교 지도자들의 승인을 얻지 않은 상태라 시즌 2에 큰 고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아론 폴의 종교적 방황, 즉 빛은 커녕 마이어리즘이 완전 사기라고 믿게 된 상황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와 엮이며 역동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제로는 어떤 부적절한 관계도 없었지만 믿음의 상실 때문에 자꾸 겉도는 상황이 아내에게는 새 여자로 인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론 폴은 아내인 모너핸이 휴 단시와 종교적 업무 때문에 자꾸 얽히는 것도 그렇고 아내가 자기보다 먼저 단시를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둘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한다. 단시는 모너핸에 대한 감정이 상당했고, 반대 방향의 감정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모너핸은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시즌1에서 이야기되지 않지만 아론 폴이 종반으로 갈수록 어떤 '비전'들, 죽은 동물이나 뱀이 자기에게 기어오는 환시를 보게 되며 단시나 모너핸이 아닌 폴이야말로 마이어리즘에서 어떤 종교적 경지에 오르게 되는 역설이 벌어지지 않을까 짐작하게 된다.

여하튼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드라마지만 나름 시즌2가 기대된다.

2016년 6월 9일 목요일

더 블랙리스트 시즌3까지

제임스 스페이더의 대 변신을 볼 수 있는 미드. 물론 변신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먼 옛날 그가 어딘가 여리면서도 섹시한 외모를 자랑하던 때를 기억해야 할 터이다. 그 시절을 아는 나에게 까까머리 중년 아저씨로 등장한 스페이더의 비주얼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외모가 자꾸 보면 어렵지 않게 납득이 된다.

여하튼 아무리 생각해도 리즈(엘리자베스)의 아버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레딩턴(스페이더)인데, 그 추측이 자꾸 부정당하니 좀 혼란스럽지만 결국 레딩턴은 리즈의 아버지 역할임에는 분명하다.

레딩턴은 시즌1에서 리즈에게 나는 네 아빠가 아니란다라고 말했고, 시즌3에서는 알렉산더 커크라는 인물이 소련식 이름을 대며 자기가 리즈의 아빠라고 주장했다. 호기심이 동해 구글링을 해보니 별 이야기는 없지만 커크가 리즈 어머니의 남편일 수는 있지만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그게 현재로서는 가장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레딩턴이 리즈 엄마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많고, 어떤 이유에서건 리즈 엄마가 커크와 혼인 관계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레딩턴이 리즈가 자기 딸임을 알고 있는 반면 커크는 자기 딸로 착각을 하고 있으리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레딩턴이 리즈가 죽었다고 생각한 이후 좌절하고 리즈 외할아버지와 만나는 에피소드를 보면 그가 리즈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보기가 힘들다. FBI에 자수한 이후의 모든 생사를 넘나든 위험 감수는 리즈를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이것은 어떤 계약이나 신의 관계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정체를 밝히기 싫은 리즈의 친부가 따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커크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레딩턴과 커크는 대립 관계이니 그가 커크를 보호하기 위해 정체를 감추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커크가 리즈의 생부가 맞는데 리즈 생모의 부탁을 받고 레딩턴이 리즈에게 비밀로 한 것일까?

여하간 시즌3까지 수많은 에피소드들에서 희한한 사건들이 많았지만 대부분이 리즈를 지키기 위한 레딩턴의 의도적인 정보 제공의 결과물들이었다. 그 많은 이야기가 결국 아버지-딸의 재회 및 신뢰 쌓기의 과정이다. 톰 킨이 회개하기도 했고 갑자기 고아인 그의 어머니가 거물임이 밝혀지고, 유명 카메오들이 많이도 죽어나갔지만 큰 줄기이자 이 쇼의 핵심은 그 둘의 이야기다.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센스8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워쇼스키 남매의 드라마.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산만했다. 등장인물들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다 한다는 것도 거슬린다. 다작 배우 이경영은 심지어 여기에도 등장하고, 보기 힘든 차인표는 영어 때문인지 캐스팅되었다. 배두나를 격투기의 달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뭘까 궁금하다. 한국의 태권도와 연결시킨 걸까?

트렌스젠더 여성에게 레즈비언 연인이 있고 멕시코 최고의 섹시 남자 배우가 알고 보니 게이라는 등 설정도 역설적이고 파격적인데다 지상파 방송 같은 제약도 받지 않으니 파격적인 장면들도 많다. 아마 가장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출산 장면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그렇다고 다리 사이에서 아이 머리가 나오는 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기억은 없다.

동성애자는 성적 소수자이고 트렌스젠더는 더욱 소수일 것이다. 마침 워쇼스키 한 명은 트렌스젠더이니 드라마는 알고 보면 감독인 자기들 이야긴지도 모르겠다 싶다.

흥미로운 드라마였으나 세간의 평대로 그다지 추천할만한 요소는 별로 없었다.



파고 시즌 2의 2화

다소 평면적이라고 느껴졌던 1화와 달리 2화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맛이 있었다.


영화에서 봤던 사람을 기계로 갈아버리는 장면도 나오고 엄청난 폭력성을 잠재했음이 분명한 갱단의 중간 보스가 침착하게 경찰과 대면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인상적인 대사는 2차 대전 이후 6년 간 살인 사건이 없던 파고가 지금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는 한탄. 때는 1979년이었고(마침 '가장 폭력적인 해' 정도로 번역될 제목의 영화도 비슷한 시기였다), 와플 가게의 살인 사건은 워터게이트와 연결되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던스트의 남편이 왜 옷을 다 벗어서 태운 것인가? 피를 닦는 과정에서 더럽혀진 옷을 다시 입기는 힘들겠으나 속옷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일부로 살을 찌운 듯한 정육점의 직원 캐릭터의 신체를 오랜 시간 카메라가 잡은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남편 캐릭터는 살인을 아마도 처음 저지른 것 같았으나 옷을 태우는 의식을 치른 이후 각오한 듯 잔인한 사체 처리 과정을 해낸다. 사실 그는 직업상 살인은 아니라도 살우, 살돈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사람이다.

분할 화면은 보기에 불편함이 있는데 특별히 어떤 효과를 노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동시간대 다른 인물들을 비교하는 것 정도일 터인데.

2화 마지막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지역 갱단과 더욱 광범위한 지역을 커버하는 캔자스 시티의 갱단 그리고 경찰이 모두 사라진 사내를 찾고 있다. 이들의 만남과 충돌은 더 많은 피를 예고하고 있다.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채피 (2015)

디스트릭트 9으로 혜성 같이 등장한 감독의 신작 영화 채피. 평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는데 그럭저럭 웃으며 볼 수 있었다.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인공지능을 그렇게 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결국 인간과 맞먹는 걸로 보이는 영화 속 인공지능이 USB 같은 저장장치에 간단히 들어갈만한 적은 용량일 수 있을지 등인데 아마 감독은 기술적인 부분은 중요치 않다고 본 것 같다.

만약(영어로 치자면 big 'if'가 되겠지만)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치자.

그러나 영화는 기존 작품들을 많이 떠올리게 한다. 로봇 경찰이라는 설정에서는 로보캅을, 인간 두뇌를 업로드하여 기계 속에 넣는다는 부분에서는 트랜센던스를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영화는 인공지능이 완전히 백지 영역에서부터 성장한다는 설정을 보여줌에서 기존 영화와 다른데 아마 책이나 만화에는 이미 등장한 상상일지 모른다.

채피는 아기의 지능에서 깡패? 폭력배? 소굴에서 성장하는데 단지 며칠 만에 배운 정보의 양을 보면 결코 인간과 같은 정도는 아니다. 인간보다 급속히 배운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업로드된 예전 인간 시절 두뇌는 능력이 업그레이드된다는 의미일까?

약물로 인간 지능이 극대화되는 이야기는 최근에 리미틀리스, 루시 등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캐릭터들은 평소 인간의 능력을 완전히 초월한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과연 업로드된 인공지능과 어떤 것이 우월할지도 궁금해진다.

배경은 남아공으로 디스트릭트 9과 동일한데 이번 영화에서 지역적 배경은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는다. 폭력집단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모습이고 다른 영화적 세팅들도 마찬가지다. 남아공이 영화에서처럼 총기 난사가 흔한 국가인지 정도가 궁금하다.

마음이 약한 채피의 행동은 웃음을 유발한다. 예정된 길이겠지만 불량배의 언행을 따라하는 모습, 로봇이 어설프게 겁에 질려 움직이는 장면들은 확실히 재미있다.

채피를 기준으로 볼 때 생물학적, 물리적으로 전혀 부모가 아니지만 부모라고 간주되는 불량 남녀가 있었고, 그의 창조자maker가 있다. 채피는 인간 사회의 암적 존재로 간주되는 부모를 그럭저럭 인정했고 특히 엄마에 대해서는 큰 애착을 보였다. 그의 창조자에 대해서도 왜 결함이 있게 만들었냐며 항의하긴 했지만 그를 구원하는 역설적 모습도 보인다. 채피가 인간, 신, 기계의 관계에 대한 탐구라면 재미있는 설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