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3일 화요일

마침내 트윈 픽스의 귀환

2년 전의 약속대로 트윈 픽스가 돌아왔다. 1990~91년의 원래 시리즈에서 25년 후에 만나자던 로라의 대사가 거짓말처럼 지켜졌다. 물론 제작 기간 때문에 셈에 따라 26 혹은 27년 후에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지만 정확히 25년 후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시즌1, 2가 미국의 공중파에서 방영된 것과 달리 이번 시즌은 케이블 채널인 쇼타임에서 방영된다. 그런만큼 폭력과 노출의 수위는 영화판처럼 높았고 난해하기로 따지면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여서 별로 일반 TV 시청자를 위한 드라마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실제 방영 직후 타임지 온라인 판의 리뷰는 시청자에게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은 이 드라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우선 1, 2번 에피소드가 한꺼번에 방영되었다. 마치 27년 전 충격적인 트윈 픽스의 첫 여정이 두 개 에피소드 분량의 파일럿으로 시작된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온라인을 통해서는 3, 4번 에피소드까지도 공개되었다. 한 에피소드마다 거의 한 시간을 꽉 채우고 있어 최종적으로 18회까지 방영될 이번 시리즈는 18시간의 쉽지 않은 여행이 될 터이다.

방영 전 뉴스를 통해 원작 출연자 중 의외로 많은 얼굴들이 이번에 참여해서 놀라웠다. 파이어 워크 위드 미 시절부터 이탈한 출연진도 있었고, 밥 역할의 프랭크 실바와 로그 레이디처럼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벤자민 혼과 그의 동생 같은 인물도 재등장한다. 하지만 많은 인물들이 에피소드 2까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공간적 범위가 트윈 픽스를 벗어나 뉴욕과 사우스 다코타, 라스 베가스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에 새 공간의 새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다보니 정작 트윈 픽스의 기존 인물 중 얼굴을 내비친 사람은 몇 명 없다. 새로 참여한 엄청난 네임 밸류의 배우들이 언제 등장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는 벤자민 혼의 호텔에 비서로 출연한 애슐리 주드 정도가 있었다.

몇 개의 언론 리뷰들을 읽어봤는데 대체적인 줄거리는 25년 동안 붉은 방에 사로잡힌 쿠퍼가 세상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데 일치한다. 세상에는 25년 전 밥에 사로잡혀버린, evil 쿠퍼가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나중에는 더기라는 또 다른 버전의 쿠퍼도 세상에서 살고 있음이 드러나는데 이 존재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이야기에서는 붉은 방의 쿠퍼가 더기와 교환되는 형식인데..

물론 새로운 살인, 기괴한 살인이 등장한다. 로라 팔머의 살인에서 신체훼손은 없었으나 이번 트윈 픽스의 살인(들)은 지나치게 끔찍하다. 미스터리는 더 커졌고, 그에 발맞춰 린치의 카메라워크는 시청자의 눈을 말그대로 어지럽게 만든다. 이미지들은 흔들리고, 춤을 추고, 땅이 갈라지고, 눈 앞에서 갑자기 등장하거나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거인, 작은 나무 모양의 '팔(arm)', 외팔이 남성, 로라 팔머의 수수께끼가 던져지는 가운데 뭐가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린치와 프로스트가 만든 이 트윈 픽스의 세상은 2년 동안 여름마다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군 미스터 로봇이나 봄마다 돌아온 게임 오브 쓰론처럼 쉬운 예측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우리가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것인지를 쇼가 끝난 이후에도 한참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여하튼 귀환을 환영한다.

2017년 2월 13일 월요일

핵소 리지

멜 깁슨 감독의 신작 영화 핵소 리지는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오키나와에서 미일 양군이 치열하게 싸운 장소의 이름이다. 데스먼드 도스라는 실제 인물이 이 장소에서 미군이 모두 철수했는데 혼자 남아 수십 명의 동료와 몇 명의 일본군까지 구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영화가 재미있는 점은 데스먼드 도스라는 인물이 원래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는데 자원 입대하였고, 더구나 군대에서 중대장은 물론 동료군인들이 제대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가지 않고 굳이 죽음의 소굴로 들어갔다는 거다.

거기다 핵심적인 내용은 그가 제칠일안식교라는 특정한 교파의 신자라서 총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인데도 군대에 갔다는 것이다. 그는 총은 안 잡아도 의무병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군대에 갔다. 더구나 교리상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쉬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군대에서 허용되리라 생각했다니 평시도 아닌 전시의 군인으로서는 매우 독특한 사람이라 할 수밖에 없고 그런 병사를 부하로 두어야했던 장교나 부사관들이 화를 낸 것도 당연히 이해가 간다. 오직 그가 정말로 전쟁터에서 쓸모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야 칭송을 받을 수 있었으리라.

영화의 절반은 데스먼드가 군대에 가기 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차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는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어간 후유증으로 알콜중독에 빠지고 가족들을 때렸다. 어릴 적 동네의 높은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던 데스먼드는 어린 시절 동생(?형?)을 돌로 때려 죽일 뻔한 경험을 통해 10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머리에 박혀버린다.

데스먼드에 대한 실화에 따르면 영화에도 나온 장면이지만 그가 아마도 10대 후반은 되었을 시절 아버지가 권총을 들고 어머니를 학대할 때 막으려고 하다가 권총이 발사된 걸 보고는 총을 잡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런 장면에서 데스먼드와 제칠일안식교의 관계는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상에서는 원래 해당 교파의 신자이기 때문에 총을 잡기 않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그 사건 이후로 총을 안 잡겠다고 맹세했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교파의 신자가 된 것이 부모의 영향인지 아니면 벽에 걸린 10계명의 그림 때문인지도 불확실하다.

그는 장성하여 바보같은 미소를 지으며 어떤 간호사에게 빠져들었고 그 간호사는 그 멍청한 웃음에 진실함을 느껴 그와 결혼한다. 그 시기는 그의 군 입대와 겹쳐진다. 영화에 따르면 그는 청혼을 한 이후 입대했고, 군대에서 휴가를 얻어 결혼한다. 이후 그는 돌연 핵소 리지가 있는 오키나와에 도착한다. 이 부분도 현실과 다르다. 현실에서는 이미 그 전에 괌 등지에서 전투를 경험한 이후 오키나와로 이동했는데 영화는 아무 설명없이 첫 실전을 핵소 리지에서 경험한 것처럼 그려놨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초짜 의무병의 기적같은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강조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는 영화에서 그려진 대로 혹은 부족하게 그려졌지만 공식적으로 75명의 부상병을 구해낸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자신은 50명쯤 구한 것 같다고 했고, 당시 함께 있던 동료들은 100명은 구했을 것이라고 증언해서 중간의 75명으로 정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볼 수도 있다.

그냥 뒀으면 자연적으로 혹은 일본인의 확인 사살로 목숨을 잃었을 수십 명을 구한 인물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호평을 보내는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은 멜 깁슨이 도스를 그려내는 방식을 향한다. 영화가 그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마치 메시아처럼 그려냈다는 것이다. 실제 예수의 생에 대한 흥행작 감독이기도 한 멜 깁슨은 브레이브 하트에서도 죽음을 불사하는 영웅적 인물을 그려낸 바 있다.

영화에서 일본군이 도처에 깔렸고, 실수로 들어간 굴 속도 일본군이 그렇게 많건만 도스가 어떻게 발각되지 않았는지도 신기한 일이고, 더구나 굴 속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부상병을 치료해주는 장면은 더욱 기가 막히다. 절벽 아래 있던 미군들이 일본군마저 밧줄로 내려보내는 미지의 인물을 미쳤다고 생각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전쟁 중에 적군을 적대적으로 보는 건 당연하다고 해도 될 일인데 그런 적군마저 다쳤다면 사랑으로 보듬는 그의 모습은 인간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몸이 멀쩡한 일본군이었다면 아마도 도스를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이다. 그만큼 일본군들은 그저 악귀 같은 존재들로 그려졌다. 한국,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식민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영토(오키나와가 근대에 일본에 편입된 건 일단 부차적으로 치자)를 지키는 군인들이지만 영화에서는 땅 속에서 우르르 튀어나오는 짐승이나 벌레떼처럼 그려졌고, 항복하는 척하면서도 수류탄을 몰래 던지는 악마 같은 심성이 드러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일본인들의 말, 일본어는 자막도 안 달아서 그저 외계어, 효과음 정도로 치부된다.

데스먼드는 홀로 남아 미친듯이 한 명 한 명 부상병들을 절벽 아래로 내려보낸 후 부대원들과의 다음 공격에도 참가하여 큰 부상을 입는다. 영화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수류탄 파편으로 인한 다리 부상 외에 오랜 병원 신세를 진 끝에 폐 하나도 결핵으로 잃게 된다. 영화에 나오지 않는 또 하나의 사실은 그가 영화에서 결혼한 여성이 죽은 이후 다른 여성과 다시 결혼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가 된 후의 일이긴 하다.

2017년 2월 6일 월요일

어라이벌에 대한 생각 (2)

한국에서 '컨택트'라는 다소 어이없는 제목이 붙어 개봉한 영화 어라이벌의 원작 소설을 영어로 읽어보고, 영화를 다시 보았다. 원문으로 읽은 테드 창의 원작 소설 'The story of your life'은 지나치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과학적 논리나 용어들이 많아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원작 소설은 단편이라고는 해도 너무 짧은 이야기도 아니었다. 읽은데 시간이 적잖이 걸렸는데, 무엇보다 우선 평가할 점은 영화가 원작의 내용을 꽤 많이 가져가서 썼다는 점이다. 캥거루라는 단어의 기원이나 논 지로 썸 게임 같은 부분은 정확히 옮겨서 이용되었다. 영화 엔딩 부분도 원작의 엔딩과 맞추기 위해 꽤 노력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강대국들의 갈등과 세계적 전쟁 발발 가능성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반면 소설에는 그런 긴장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샹 장군 같은 인물이 원작에는 없다. 영화는 딸 하나의 출생과 죽음의 과정을 짤막하게 보여준 후 곧바로 외계인이 온 후 인간들의 불안을 다루며 무언가 불길한 일이 생길 거라는 암시를 계속 준다.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한다면 어떤 흉한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지만 영화는 평화를 주는 외계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불안의 정서는 영화적 긴장감을 위한 장치로 볼 수 밖에 없다.

딸의 이름이 영화에서 하나라고 제시되는데 원작에는 안 나왔던 것 같다. 하나Hannah라는이름의 영어 철자가 앞에서부터 읽어도, 뒤어서부터 거꾸로 읽어도 같아진다는 바로 그 설정 때문에 선택된 이름일 것이다. 마치 주인공인 루이스가 외계인 헵파포드가 준 보편언어 덕분에 선형적이지 않은 시간 관념을 갖게 된 것처럼.

영화의 전체적 틀은 맨 앞에 딸 하나의 출생과 사망이라는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고 제시한 다음, 영화의 대부분인 그 다음 이야기가 딸의 출생이라는 사건의 시작이 어떻게 가능했나라는 그 전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루이스는 외계인이 떠나면서 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다시 말한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인상적인 점은 영화 제목인 어라이벌이 딸의 출생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리고 디파쳐는 딸의 사망을 말하는 단어로 등장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어라이벌은 외계인 헵타포드의 도래로 보는 게 일차적인 반응일 수밖에 없다. 물론 헵타포드의 도착도 중요한 사건이지만 루이스의 인생에서는 남편될 남자와의 만남, 그리고 그와 낳은 딸과의 삶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헵타포드가 3천년의 미래를 운운하며 루이스의 행동이 인류와 헵타포드 종족의 긴 미래에 핵심적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을 알려주긴 하지만 개인사로 보자면 그건 부차적이다.

그렇게 보자면 원작 소설의 한글 번역본의 제목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잘못 된 게 아닌가 싶다. '당신'은 따지고 보면 루이스의 딸, 영화에서는 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다. 그렇다면 존칭을 붙일 게 아니라 "너의 인생의 이야기"라고 해야 적절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고 하면 마치 작가가 독자들을 '당신'으로 지칭하는듯한 뉘앙스가 강하다.

소설에서는 빛이 공기 중에서 물로 이동할 때 굴절되는 현상을 매우 강조한다. 빛이 가장 빠른 길이 어디인지 미리 아는 것처럼 물을 만나자 정확한 각도로 꺾여서 이동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기 중의 한 지점 a에서 물 속의 한 지점 b까지는 직관적으로는 직선적으로 이동해야 가장 빠를 것 같지만 빛으로서는 굴절되어 이동해야 가장 빠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가 마치 정해져있다는 듯한 영화의 메시지와 연결시켜 보면 현 시점에서 가장 빠른 길로 보이는 과정이 나중의 시점까지 고려할 때 실제로 가장 빠른 진행 과정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가 영화에서 보인 여러 행동처럼 타인의 눈으로 보면 무모하게 혹은 미친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정답일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다른 역설적 논리도 다룬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서 나중에 되새겨보아야겠다. 하지만 모든 일의 과정이 정해져있다는 식의 논리라면 꽤나 위험하기도 하다. 또 인간들이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시간 관념을 그들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터득하게 되면, 즉 루이스처럼 미래를 알 게 되는 인간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반드시 평화에 이바지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논리적으로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인간이 자기가 예쁜 외동딸을 낳을 건데 10대나 20대에 불치병으로 혹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것을 알고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와 소설이 달랐던 점 하나만 더 적고 마무리하겠다. 영화에서 이언과 루이스의 결합이 그럴 듯하다는 장치들이 깔려있기는 하지만 무언가 둘이 사랑에 빠지기엔 부족했다는 느낌이 있다. 반면 소설에서는 이 두 연인이 외계인이 떠나기 전에 이미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래서 루이스는 남자에게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려고 연구에 참여시킨 게 아니냐고 농담을 던진다.

컨택트는 외계인과의 만남을 뜻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했던 예전 영화에서는 그들과 만나기 위한 지난한 과정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 어라이벌에서 외계인은 멀리서 메시지만 보낸 게 아니라 지구의 열두 곳에 갑자기 도래했다. 그들과의 접촉, 컨택트는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원작 소설이 그렇고 영화의 엔딩이 그렇듯 남녀의 사랑과 아이를 갖자는 둘의 결단의 결과인 한 자녀의 도착, 탄생이야말로 영화의 주제다. 그러므로 컨택트라는 한국 개봉시의 영화명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2017년 1월 26일 목요일

베어풋, 프리데스티네이션, 더 월즈 엔드

예전에 보려고 했다가 못 본 영화들을 해결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신작 영화를 우선적으로 보게되기 때문에 예전의 좋은 영화들을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간단히 평을 쓸 영화를 먼저 적자면 '베어풋'이 있다. 맨발의 처녀, 정신병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젊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알고보면 정신병이 있었던 건 그 어머니였고, 어머니가 그녀를 아무데도 못 가게, 즉 집에 가두고 키우다보니 그 여인이 일반적인 사람이 보기엔 정신이상자로 보였다는 것이다.

영화의 여주인공은 원래는 낯선 배우였겠지만 얼마전 끝난 HBO의 드라마 '웨스트월드'의 여자주인공이었기에 이제는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의 백치미 연기가 웨스트월드에 캐스팅된 계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베어풋'은 작은 규모의 영화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난 가슴따듯해지는 이야기다.

에단 호크 주연의 '프리데스티네이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영화 제목은 칼뱅의 '예정설'이라는 교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신이 정한 구원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원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것이긴 하다.

영화는 재미있게도 영화에 나온 대부분의 인물이 사실상 동일 인물의 다른 시간대의 모습이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선사한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짤막한 단편을 장편 영화로 발전시킨 이야기인데 원작은 '언매리드 마더'라는 필명의 작가와 바텐더의 만남으로 시작된 반면 영화는 에이전트가 된 존이 바텐더로 성형수술하게 된 계기, 피즐 바머에 의해 얼굴이 다 타버린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그 장면을 먼저 보여준다.

여러 리뷰나 의견들을 읽어봤지만 영화의 플롯을 완전히 납득할만한 설명은 없었다.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에 대한 대답으로 수탉(루스터)라는 답이 영화에서 나오는 수수께끼에 대한 희한한 대답처럼 영화를 합리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무언가 그럴듯한 구석이 있고, 약간의 설명이 추가된다면 말이 되는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수긍 정도가 가능하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에 대한 질문 그 자체다. 여자아이로 태어나(사실 남성성기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남자로 성전환을 하고 시간총국의 에이전트가 되어 피즐 바머라는 테러리스트를 막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피즐 바머가 미쳐버린 자기 자신이라는 이야긴데 이렇게 변신을 거듭하는 한 존재가 있지만 애초에 그(녀)가 왜 생겨났는지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 남성인 자신과 여성적 자신의 성교로 인해 태어난 자신이라는 설정인데 1945년의 아기가 1960년대에 태어나서 시간여행으로 고아원 앞에 놓여졌다는 건 애초에, 이야기의 맨 처음에 1945년의 아기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는지 그 실체가 무엇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하고, 영화에서 언급되는 꼬리를 문 뱀, 우로보로스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결국 시작과 끝이 없음을, 그 무한함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이야기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혹자는 시간 여행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무슨 과학적 논리를 더 따지려드느냐고도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재미없게 만드는 주장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더 월즈 엔드라는 영국 영화 이야기를 적어본다. 사이먼 펙이 나오길래 코믹 영화겠구나 했더니, 영화를 보고 찾아보니 내가 예전에 열광했던 숀 오브 더 데드, 핫 퍼즈의 감독이 예전 출연진들을 데려와서 찍은 영화였다.

파란 피의 외계인? 로봇?이라는 설정은 재미있었다. 파란 피는 귀족의 혈통을 의미할텐데 영화 속의 로봇들은 속이 텅 빈, 도자기나 플라스틱 같은 존재들이다. 외계인이 떠나버리겠다고 하자 다들 고개를 떨구고 작동을 멈췄다(나중에 보니 되살아나기도 하더라).

감독의 전작과 유사하게 폭력성의 수위도 역시나 높은 영화였고, 많은 술이 등장하여 유쾌하기도 하고 긴장되게 만들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했다. 네트워크의 폐해, 똑같은 존재들이 늘어난 세상에 대한 불안, 조롱, 경계를 드러낸 영화랄까, 세상은 기계 문명이 사라져도 살만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영화는 끝을 맺었다.


2017년 1월 22일 일요일

어라이벌Arrival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신작 어라이벌은 SF 장르에 주인공의 네임 밸류도 훌륭해서 블록버스터 영화인가 착각을 할 정도였으나 미국 내 흥행도 그렇고 감독의 성향상 시간 죽이기용의 시각적 자극으로 가득한 영화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고요하다고 해야 맞을 정도다. 감독은 '에너미'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화를 다 봐도 뭐가 어떻게 되었던 것인지 헛갈리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영어로 된 많은 영화 리뷰를 읽어봤지만 스포일러가 거의 없는 평이라 그런지 의문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레딧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나 상상력이 지나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도 많고, 양이 너무 많아서 소화하기가 힘들었다.

말하자면 영화가 가장 사람을 헛갈리게 하는 부분은 마치 에이미 아담스가 아이를 잃고 난 후에 외계인들이 온 것처럼 화면을 배치한 점이다. 그러나 결국 알고 보면 외계인들이 가고 난 후에 새로 알게 된 제레미 레너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에이미 아담스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왜 그런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는데 레딧을 보고 외계인의 언어를 통해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동의하게 되었다. 단순히 미래를 본다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시간의 개념이 통상적인 인간과 달라졌다는 게 맞을 것이다.

아담스가 레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똑같이 할 거냐고 물었던 것 같은데 그 질문은 니체의 글을 연상시켰다. 자신의 어린 딸이 병으로 죽을 것을 알면서, 십 몇 년의 양육이 끝날 것을, 자신의 자식을 땅에 묻게 될 것을 알면서 그 길을 걸을 것이냐는 것이다. 레너는 그걸 잘 받아들이지 못할 모양이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 레너는 이미 아담스를 알게 된 것이 외계인을 만난다는 일생에 일어나기 힘든 사건보다 더 나은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더 생각할 거리들이 있지만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나중에 적어보고 싶다.




남색

성인 남성이 소년을 성적으로 탐한 사례로 고대 그리스 시대를 흔히 언급하는 것처럼 남색은 꽤 오랜 일이다. 요즘 영국에서는 가디언의 폭로 기사를 시작으로 축구 클럽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태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축구 감독이나 코치가 10대 소년들을 추행 혹은 그 이상의 행위들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 영화에서도 종종 소년에 대한 성추행이 소재로 다뤄진다. 가톨릭 사제가 행한 사례가 가장 흔하게 언급된다. '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가 바로 그런 소재였고, 최근 미드 중 '레이'도 그렇고, '더 영 포프'에서도 다뤄졌다. 청교도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가톨릭 사제들이 왜 유독 그런가(스포트라이트 엔딩 크레딧을 보면 미국이 유달리 그런 건 아니긴 하다) 의문이 생긴다. 

반면 오랫동안 가진 의문인데 한국 가톨릭 사제는 왜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가라는 불경한 궁금증도 생긴다. 하지만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딱히 답을 찾기 어렵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남색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고, 어제 처음으로 제대로 읽은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에는 한국전쟁 와중에 낙오병들이 동굴에서 남색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성이 주변에서 여성을 찾을 수 없을 때 어린 소년 혹은 그나마 가장 그에 근접한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인가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군대에서도 병사들간의 성추행(물론 간부들도 가끔 문제를 일으킨다)은 드문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강압적 남색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피해자들은 침묵하며 고통 속에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다. 한 때 동네 유지에게서 장학금 비슷한 것을 받고는 그 아저씨 집에서 성추행에 근접할 뻔한 일들을 겪은 이후의 찝찝함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지만 덕분에 남색 피해자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간혹은 남색의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사랑으로 포장해서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어내 꾸준한 관계를 얻어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하나의 젊은 남자에 싫증이 나면 다른 젊은 남자로 대체할 뿐이다. 지속적 육체적 관계는 묘한 심리 상태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모양이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 대해 더 생각을 전개해나가지는 못 하겠다.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Bookdepository.com 이용 후기

지난 연말 영어 책을 몇 권 사려고 이곳저곳 가격을 비교하던 차에 bookdepository.com을 알게되었다. 원래는 아마존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보려고 했는데 직배는 배송비가 엄청나서 차라리 배대지를 고려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존은 기본 배송비가 있고 1권 추가될 때마다 일정 금액이 붙는 식이었다.

그런데 bookdepository는 무려 1권을 사도 무료배송이다. 영국 내 배송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국가로의 배송까지 무료다. 물론 책마다 할인율이 다르기 때문에 국내 인터넷 서점을 통한 구매보다 저렴한지는 매번 따져봐야한다. 그래서 몇 권은 쿠폰 할인이 컸던 알라딘을 통해 주문하고 어떤 책 한 권은 파격 할인율을 제시한 아마존 영국으로 주문했다.

그리하여 두 권을 동시에 이 사이트에서 주문을 해보았다. 12월 말의 일이었다. 연말이라 그런지 배송은 며칠 걸린 후에야 시작되었다. 그런데 배송 추적이 되지 않았다. 에어 메일이라는 전통적인 우편 배달 방식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문앞까지 가져다 주는 택배가 아니라 우편함에 넣어두고 가버리는 우편물이다.

배송기간이 얼마나 걸릴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미 국내에도 알고 있는 분들이 좀 있었다. 대략 2주 정도 생각하면 된다는 후기를 볼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엔 열흘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동시에 주문한 책들이 하루 간격을 두고 이틀동안 도착한 것이다. 1권도 무료배송이다보니 1권씩 따로 배송을 해주는 모양이다.

영어책을 사고 싶으면 꼭 가격을 체크해볼 사이트다.